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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갈 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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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7-10) 

갈 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요즘 젊은이들은 신세대답게 생각하는 것도, 또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도 톡톡 튀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그들이 삐삐에 녹음해 놓은 인사말만 들어도 그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게 삐삐를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손가락이 예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눌러주시고, 자신의 목소리가 예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2번을 눌러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7번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실 때 몇 번을 누르실 것 같습니까? 열이면 열 다 7번을 누르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잘난 맛에 사니까요. 그러면 거기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응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못 누르셨습니다. 삐삐호출은 1번, 음성녹음은 2번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각 속에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안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착각이 지나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항상 문제입니다.
어느 신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학기말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일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시험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지를 받아 쥔 그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지를 내자니 교수님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할지 한참 궁리를 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답안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자기는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교수님이 채점을 하려고 답안지를 보니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입니다. 과연 교수님이 그에게 몇 점을 주셨을 것 같습니까? 교수님도 빙그레 웃으면서 두 가지 점수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100점, 학생은 0점."
하나님은 다 아시니까 100점이고, 학생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0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스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무언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인줄 압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착각 속에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그저 세상일에 치우쳐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하고서, "하나님은 내 모든 사정을 다 아시니까 나를 이해하실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일에 아주 인색하면서, 하나님은 내 모든 사정을 아시고 내가 쓸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셔야 된다고 생각할 때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심지도 않고서 거두려고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추수의 원리입니다.
10월이 되었습니다. 추수의 계절입니다. 온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절로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농부가 봄철에 밭에 나가서 열심히 씨를 뿌렸습니다. 일년 동안 인내하면서 그것을 잘 가꾸었습니다. 여러 차례 태풍이 불었습니다. 그 때마다 벼가 쓰러졌습니다. 군관민이 하나가 되어서 부지런히 그것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래서 추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는 것이 바로 추수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추수의 계절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원리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편의상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추수의 원리를 살펴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 이것이 바로 추수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 원리를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컨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려고 하는 것이나, 남들보다 적게 심어놓고 남들보다 많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비웃는다, 조롱한다"라는 뜻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원리인데 그것을 비웃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심는 삶입니다.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썩어질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과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을 위해서 심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썩어질 육체를 위해서 심으면 무엇을 거두겠습니까? 심은 대로 거두니까 썩는 것밖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부패한 것,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반드시 악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눈먼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리고는 형 대신에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까?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다가 자기도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그의 품삯을 여러 번 속였습니다. 그리고 라반이 자기 딸 라헬을 야곱에게 아내로 주기로 약속을 하고서는 라헬 대신에 레아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는 형과 아버지를 속였다가 자기도 그대로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야곱은 자기의 아들들에게서도 속임을 당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의 형제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의 옷을 보여주면서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아파했습니까?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다가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하고, 또 자기 아들들에게서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거짓을 심으니까 그대로 거짓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원리대로 된 것입니다.
혹시 누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원망하지 마십시다. 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거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원망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는가?"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일을 지금 내가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나로 인해서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선을 심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아, 형들이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데 소식이 없어 궁금하구나! 한 번 가보고 오너라!"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수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형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있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였습니다. 그는 여주인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육체를 위해서 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혔었지만, 그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해서 선을 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선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해서 극심한 가뭄 속에서 그의 가족을 구원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 심습니다. 말로 심습니다. 행동으로 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 심지 마십시다. 그러면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매일 매 순간 거룩하고 선한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심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선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심는 자에게 있어서 한 가지 요구되는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내심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에 두 가지 권면이 나옵니다. 하나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매가 빨리 맺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몰라줄 때도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도회지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이 시골로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물가에서 놀다가 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헤엄을 칠 줄 몰랐습니다. 연거푸 물을 마시면서 허우적거리는 그를 발견한 시골 소년은 용감하게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익사 직전에 있던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시골 소년은 그 때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습니다. 선을 행하고서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시골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열심히 공부한 뒤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를 도회지로 유학을 보내줄 만큼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멀쑥하게 차려입은 도시 소년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과거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은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도시 소년은 자기를 구해주었던 시골 소년의 꿈이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 집안이 가난해서 그럴 형편이 못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도시 소년의 아버지는 귀족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그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그리해서 아버지로 하여금 자기를 구해주었던 시골 소년에게 장학금을 주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소년의 꿈이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도시 소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로서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리고 시골 소년은 푸른 곰팡이 페니실린을 발견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 공로로 노벨 의학상을 타게 된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뒤에 처칠이 2차 대전 중에 과로해서 쓰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폐렴에 걸렸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플레밍이 만든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서 살아났습니다. 그는 그 뒤로 건강을 회복해서 2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정계은퇴하고 나서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도 195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플레밍은 플레밍대로 자기가 심은 것을 때가 되니까 아름답게 거두었습니다. 또 처칠은 처칠대로 자기가 심은 것을 값지게 거두게 된 것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십시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하나님이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고 있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즉각적으로 거두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또 채소 같은 것은 여러 달이 지난 후에야 거두지 않습니까? 과일은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거둘 수가 있습니다. 부모가 심은 것을 자식 때에 가서 거둘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순교의 피를 아낌없이 뿌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 나라에서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되면 다 거두기 마련입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추수의 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복이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회지에 있는 가구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점원들은 손님이 없으니까 빙 둘러 앉아서 서양 장기를 두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다리를 저는 웬 할머니 한 분이 상점 밖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힐끗힐끗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가구점 안에 있는 진열된 가구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점원 가운데 한 청년이 보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할머니, 비오는데 거기 서 계시지 말고 가게 안에 들어오셔서 비를 피하세요. 그리고 심심하실 텐데 들어오셔서 가구도 좀 구경하시고요."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닐세 젊은이, 나는 지금 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할머니를 강권해서 가게 안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할머니의 우산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내주어서 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잠시 뒤에 기다렸던 차가 왔습니다. 할머니는 나가면서 그 청년에게 명함 한 장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뜻밖에도 깜짝 놀랄 만한 편지 한 통이 가구점에 전달되었습니다. 당시 강철 왕으로 이름이 나있던 카네기의 친필로 쓴 편지였습니다. 바로 그 청년에게 온 편지였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일전에 비오던 날, 우리 어머님에게 베풀어 주신 친절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서 이번에 스코틀랜드에 짓고 있는 대저택에 쓸 가구 일체와 또 우리가 새로 짓고 있는 회사에 들어갈 가구 일체를 당신의 가구점에서 구하고 싶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에 당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하자면 이 청년은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가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것입니다. 우리가 베푼 사랑과 친절이 언제나 즉각적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누가 압니까? 아브라함과 롯이 평소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일년 뒤 자기에게 아들이 생긴다는 복된 소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기와 자기 가족이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기회 있는 대로 누구에게든지 항상 착한 일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니까요. 하나님이 세우신 원리입니다.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 보면,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들에게 더욱더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구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남극과 북극의 에스키모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프리카 밀림 속에 있는 토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와 가까이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모든 이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푼다면, 주 안에서 하나된 형제들에게 더욱더 그러해야 될 줄 압니다.
교우들 가운데 물질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설사 우리가 물질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일은 월요일입니다. 월요일은 원래 웃는 날입니다. 화요일은 화사하게 웃는 날입니다. 수요일은 수시로 웃습니다. 목요일은 목청껏 소리내어서 웃어보세요. 금요일은 금새 웃고 또 웃는 날입니다. 토요일은 토실토실 예쁘게 웃는 날입니다. 오늘은 주일이니까 주로 믿음의 교우들에게 웃음을 선사합시다. 웃음을 심으면 웃음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찡그리고 인사도 제대로 안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인사하기가 싫지 않습니까? 우리가 웃음을 심을 때 화평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추수의 원리를 잘 기억하셔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한 것, 좋은 것, 거룩한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많이 심으셔서 신령한 축복과 아름다운 열매를 다 거두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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