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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
성 구 : 이사야 55장 8∼9절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인격의 근본이 됩니다.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선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선한 사람인 것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육신에 속한 생각만 하기 때문에 육신의 사람이고 믿는 사람들은 신령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영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5절로 8절에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예수님을 모셔들이고 그 뜻대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종국에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우리가 생각을 통해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 생각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가히 우리 생각으로 미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흘릴때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매를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했습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현격하게 다른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우리가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값없이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영광에 찬미하게 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우리들의 율법적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그냥 믿음으로 결코 의롭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행위로 의롭게 되므로 선한 행위를 많이 해서 인정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지요.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게 된다고 말하니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믿음으로 성경의 능력이 임하여 거룩하고 성령충만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과 분리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했는데 여러분 사람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생각은 인간의 도덕적인 행위와 고행과 수행을 통하여 거룩하게 된다. 그냥 거룩하게 될 턱이 있느냐? 도인이라고 말하면 수행을 해야죠. 고행을 해야죠. 도덕적인 행위를 해야 거룩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성령의 역사로 거룩하게 된다고 하는데 인간은 도덕적인 행위와 수행과 고행을 통해서 거룩하게 된다고 하니 현격한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병도 낫고 건강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병도 낫고 건강을 얻는다고 하나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오직 의사 선생님의 도움과 약과 섭생을 통하여 병이 낫고 건강하게 되지 뭘 예수 믿음으로 병이 낫고 건강하게 될 턱이 있느냐? 현격하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아 저주에서 해방되어야 삶에 복이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수단과 방법을 다해도 하나님께 복을 받지 아니하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웨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본주의적인 노력과 운이 따라야 복을 받고 잘살 수 있다. 하나님 같은 것 보기에는 아무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로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영원한 천국에 앉았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에 부활하여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간의 생각은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버리고 아무것도 없지 무엇이야? 그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니 어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과 같이 동거할 수 없는 것은 생각이 하늘과 땅처럼 다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혼하는 사람들이 서로 생각이 같지 않기 때문에 살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이 생각이 이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두손들고 하나님께 복중에 나와야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눈에 안보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분입니까? 말씀으로 오시잖아요? 말씀이란 뭡니까? 생각이 옷을 입고 온 것이 말씀 아닙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서로 틀리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시켜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로 5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을 시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와 계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우리 주장대로 우리 생각을 주장하면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게 되고 원수가 되게 되고 버림을 당케 되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들여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너무나 높아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므로 하나님이 생각을 받아 들일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해서 받아들입니까? 무조건하고 부모의 생각을 받아 들여서 복종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으로써는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너무나 높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돼요.
다윈은 모든 만물이 진화로써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릅니다. 오늘 세상은 다윈의 진화론을 믿고 모든 것이 단세포에서 진화해서 오늘날 생태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인간의 생각을 따르면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자면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무조건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변해야 삶이 변할 수가 있습니다. 생각이 변화되지 아니하면 삶이 변화되지 않아요. 하나님의 생각대로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려면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들여서 우리 생각이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는 변화되지 않아요.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와서 우리를 변화시켜 놓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을 새롭게 해서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아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우리가 변화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인 우리 다윗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오늘날처럼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서 목동으로서 그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생각을 늘 묵상했습니다. 다윗은 늘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만물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는 생각을 유독히 깊이 생각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셨다는 말이 너희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라 했으니 그는 땅과 모든 만물을 인간이 다스리기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고 갈 때 그 입에서 양새끼를 빼앗고 달라들면 주먹으로 그 수염을 자꾸 쳐서 사자와 곰을 죽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느냐? 다윗은 불과 나이가 10대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자와 곰을 칩니까? 그의 생각에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실때는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으니 짐승을 다스리지 짐승에게 우리가 복종할 이유는 없다.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너무나 담대하여 사자와 곰에게 덤벼들므로 사자와 곰이 기가 죽어 감히 10대의 다윗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그 주먹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윗의 생각이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로 꽉들어 찼으면 짐승이 다윗을 보고 물러갈리도 없고 다윗을 만만하게 여기고 물고 찢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로 35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왕의 지도하에서 블레셋하고 싸울 때 대장 골리앗이 나와서 그들을 대적하매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은 모두다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움츠리고 뒤로 물러갔습니다. 그때 다윗이 "내가가서 싸우겠다."고 할 때 이 말을 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도 그를 다스리고 그를 쳤는데 뭐 골리앗 저것을 어떻게 못치겠습니까?" 여러분 골리앗은 키가 3미터 가까이 되는 장신이었습니다. 요사이 북한 농구선수가 키가 2미터 이상 크다고 사람들마다 눈을 부릅뜨고 그 사람 한번 보려고 하는데 골리앗은 키가 3미터입니다. 장대도 보통 장대가 아닙니다. 제가 1미터 74센티인데 저의 키의 거의 두배가 되는 것이니 얼마나 골리앗이 큽니까? 그의 갑옷의 무게도 60킬로그램됩니다. 값옷만 60킬로그램이 되니 어마어마한 거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40일동안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엘락 골짜기에서 협박하고 공갈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다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들은 벌써 생각이 절대로 골리앗을 대항해서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록 17살 먹은 소년이었지만 그는 키나 몸으로서는 골리앗을 당할 수 없으나 생각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저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이 하나님께 할례받은 선택받은 백성과 그 군대를 대항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키나 몸무게가 무슨 관계 있느냐? 다윗은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골리앗을 대항할 수 없는데 다윗은 몸은 작은 나이는 17살 밖에 안되었지만은 그 마음에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힘과 전투력의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생각과 믿음의 대결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골리앗의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하여 말렸습니다. "야! 너 골리앗과 싸우지 못한다. 그는 어릴때부터 용산데 너 17살 먹는 초립동이 어떻게 나가서 싸우겠느냐? 못한다." 사울은 말렸습니다. 사울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 단지 그가 죽인 사자와 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민으로 택하시고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데 저 골리앗을 왜 두려워하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의 생각으로써 골리앗을 바라보니 그는 사자와 곰의 한 마리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그러므로 능히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진다고 생각했는데 다윗은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단칼에 벨 수 있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2절로 44절에 보면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단지 할례없는 이방인으로 사자와 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골리앗이 협박과 공갈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6절에 보면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 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어머어마하게 다윗은 용감하고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대해서 나갈 때 다윗의 생각이 어떠한 것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러니 하나님과 사람과의 싸움입니다. 너는 사람으로 오지만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능력으로 나간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 생각으로 충만했고 하나님 능력에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골리앗은 인간이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람과의 대결이었습니다. 비록 골리앗은 육체적으로 키도 크고 몸도 장대했고 다윗은 17살의 조그마한 소년이었지만 생각은 달랐습니다. 골리앗은 인간의 생각을 가졌고, 다윗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무장한 것입니다. 생각의 싸움에 밀리면 패합니다. 인생은 다 그래요. 생각의 싸움에 밀리면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제압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이기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지면 실제 행동에는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생각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삶의 대적 골리앗 같은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생각으로 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대결하면 패할 수밖에 없지만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나가면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기 때문에 이깁니다. 큰돌과 작은 돌이 부딪히면 적은돌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큰 생각과 적은 생각이 부딪히면 적은 생각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3절로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이 가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받아 들여서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무장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만 높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법도 우리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홍해바다와 애굽군대에 포위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뒤에는 애굽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막히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야! 이거 다리를 놓아야 되겠다." 다리놓을 시간이 있어야죠. "배를 구해야 되겠다." 300만을 태우고 갑자기 건너갈 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 헤엄쳐 건너가자." 거의 다 빠져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항복해야 될 것 아닌가. 별도리 없이 항복해야 되겠다." 인간의 생각은 고작 그런 정도의 생각밖에 못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로 11절에 보면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인간의 생각의 절망적인 절규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따라서 살면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비관적이 됩니다. 인간은 너무나 환경에 지배를 받고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길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이해를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9절에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기를 "너 지팡이를 홍해수로 내밀어 갈라지게 하라." 하나님의 생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너무 다르지요? 도무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홍해수가 갈라지는데 보니까 벌써 하나님은 대로를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은 이미 대로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나가니 그 물가운데로 지나가나 애굽 사람들은 물에 덮혀 다 죽고 말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면 하나님은 막다른 골목에도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할길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길이 없는곳에 길을 만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 종종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과 다를 때가 많아요. 한 청년이 신학을 졸업하고 마음에 깊이 은혜를 받고 아프라카 오지에 들어가서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되려고 모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서 다리 하나를 자르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탄식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아프리카 오지에 저 식인종이 들끓는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내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다리를 잃게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은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고 고무다리를 하나 만들어서 차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다가 그는 식인종에게 잡혔습니다. 식인종 앞에 묶여 나가서 추장이 온 부족들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오늘 맛있는 백인 고기를 먹게 되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그러자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백인은 백인이지만 맛있는 고기는 아니다. 너희 먹어봤자 별 필요가 없다."고 고무다리를 떼어서 던져 주었습니다. 달라 들어서 고무다리를 베어먹어 보니 너무나 맛이 없고 질리고 퉤퉤 하거든... 그러니까 그 식인종 추장이 말하기를 "이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어떻게 다리가 이렇게 맛이 없고 질긴 다리가 있느냐?" 그들이 다 엎드려서 회개하고 이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온 추장의 동리가 회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무다리 아니었으면 잡혀 먹혔어요. 하나님은 미리 식인종의 부족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할 것을 아시고 고무다리를 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다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나중에 지나가 보면 큰 행복으로 돌아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를 믿는 사람으로 로마서 8장 28절을 꼭 믿어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 좋은 것, 나쁜 것, 슬픈 것, 기쁜 것, 성공과 실패, 축복과 어려움이 이 합동하여 선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서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아무리 계획해도 결국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사람이 남자만 5천명, 부녀자 합하면 수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해거름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그중에 빌립에게 "빌립아, 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그들의 굶주려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그들을 먹일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립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돈도 업지요. 빵을 구할 빵집도 없지요. 날도 저물지요. 광야인데... 어디에서 이 사람을 먹일 것이냐! 인간의 생각은 이렇게 제한이 있고 한정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는 먹일수가 있으니까 먹이라고 한건데 빌립은 먹일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편 78편 19절로 2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행자만 60만, 남녀노유를 다하면 300만 가까이 되는데 하나님이 한달동안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모세도 말하기를 "주님! 양떼와 소떼를 잡으며 바다의 고기를 다 모은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고.." 인간은 언제나 인간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손이 짧아졌느냐? 내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바람을 불게 하며 메추라기가 날라와서 그들이 한달 먹고도 남을 수 있을 만한 많은 메추라기를 잡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비록 벳새다 광야에 와있으나 그거에 약 수만명의 군중들이 모여 있으나 빌립은 그 주님의 생각을 모르고 주님의 길을 몰랐습니다. 빌립은 먹일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리가 없다. 그러나 똑같은 제자중에 안드레는 그 광야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돈이 없는 것 알고, 빵집이 없는것도 알고, 시간이 늦은것도 알고 절망은 알지만은 그 모든 것 가운데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계산에 넣지 않았는데 안드레는 예수님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안믿는 사람이 뭐가 다릅니까? 안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생각하되 예수님을 계산에 넣지 않지만은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생각하되 예수님을 계산에 넣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예수님을 계산해 내야 됩니다. 예수님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길이 없다고 말할 때 예수님이 "나를 보라. 내가 곧 길이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길은 너희길보다 높다." 우리 생각의 길로써는 갈길이 없지만 예수님의 길은 우리보다 상상을 초월하게 높은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이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나가서 한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구해서 와서 예수님께 믿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자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오병이어를 축복하매 이 빵과 고기가 많아져서 그 많은 사람을 다 배불리 먹이고 열두바구니가 남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의 길이 있습니다. 성결하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 병낫는 길이 있습니다. 복받는 길이 있습니다. 천당가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따르는 것이 사는 길이요, 의의 길이요, 성결의 길이요, 치료의 길이요, 형통의 길이요, 천국길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제5성전 홍오래 권사님 10월 6일 순복음신문에 간증을 한번 들어 보세요.
20년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구역셀장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기쁘게 살았는데 어느날 두가지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얼굴, 목, 머리, 팔의 피부에 하얀 반점이 생기는 백반증에 걸렸고, 아들은 사업이 부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의사는 난치성 백반질병으로 일단 생기면 고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전도하는데 장애가 될까봐 고민하다가 그동안 신앙적 교만과 내 중심으로 살아온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생각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나는 큰일났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생각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매일저녁 철야기도로 부르짖자 석달 만에 그 백반증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아들의 사업도 위기는 넘겼지만 아들의 마음이 심히 약해서 초죽음이 된 것을 보고 이때야말로 아들이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라고 받아들이고 아들에게 "교회가서 함께 기도하자. 네 생각으로는 사업이 망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는 복 주실수 있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생각을 받아들이고 기도하자." 그렇게 하자 아들이 순순히 교회 따라와서 함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무리 구원해도 바쁘다고 핑계하며 교회 안나왔는데 아들이 시간을 정하고 꾸준히 기도하자 사업문제는 추풍낙엽같이 사라지고 회복되고 아들의 믿음도 강해지고 사업도 복구된 귀한 간증을 한 것입니다.
너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의 길보다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며 내 길은 너의 길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통일과 번영의 길이 됩니다. 아무리 '햇빛정책'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지 사람의 생각을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한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28장 9절로 13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하나님의 생각인 말씀을 따라 살고 바로 행하며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민족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섬기고 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자와 곰같은, 골리앗같은 모든 적이 다 물러가고 승리와 통일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6절로 3절은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심금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간절히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아무증거 없고 내 앞길 칠흙같이 어두워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축복이요, 화가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인 것입니다. 우리는 안된다. 못된다. 망한다. 죽는다. 절망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영화롭고 아름답고 선한 생각을 가득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너무나 높기 때문에 이해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내가 계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무나 높기 때문에 내길과는 비길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내 생각으로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길로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이 함께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어두움은 빛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죽음은 삶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추악은 아름다움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보라! 주님께서 새일을 행하리라! 고 했는데 그 새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주님께서 붙들어서 영육간에 구원을 받고 온천하 만국에 그리스도 영광을 나타내는 표적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생각이 바뀌어야 우리 환경도 운명도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지 아니하면 아무리 주위와 환경을 바꿔 놓아도 바뀌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인격도 그러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사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원하오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생각이 달라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생각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각으로 좌지우지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길에 들어서서 믿음으로 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생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니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따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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