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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차원높은 감사 /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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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높은 감사  (합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우리 인간은 감사하는 태도를 보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감사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짐승도 때론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대에 그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피해 산을 배회하다가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자가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면서 드러누워 있는데 가만히 보니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꼼짝을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가서 가시를 빼내어 주었습니다. 사자는 고마운 듯이 그 사람을 보고는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원형 경기장에 이 사람을 넣고는 사자를 풀어 물어 뜯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향해서 달려오던 사자가 이 사람을 보더니 그 앞에서 절을 하듯 하며 전혀 해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전에 산에서 만난 그 사자였습니다. 그 사자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관중들이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사자도 알아볼 정도면 살려야 한다고 소리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짐승도 은혜를 안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짐승도 감사할 줄 아는데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다면 짐승보다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감사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고, 두 번째로는,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 계산적인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사실 이런 감사가 많습니다. 좋은 일을 만나고, 무엇이 생기면 감사하다가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가진 것이 줄어들면 감사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보통 수준을 넘지 못하는 평범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 데도 감사하는 차원 높은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고상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평안한 가운데 감사한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을 많이 가져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감사를 드렸고, 없는 가운데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감사를 차원높은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 하박국의 감사를 본 받기 바랍니다. 하박국처럼 차원 높은 감사를 드리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하박국의 감사는 어떤 감사였는가, 어떤 면에서 차원 높은 감사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그의 감사는 환란 중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16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 환난을 보고 있습니다.
하박국 당시의 국제정세는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 애굽 역시 그 국운이 기울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이 강력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바벨론이 유대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머지않아 말을 타고 창검을 번뜩이며 유대나라를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내사정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바벨론과 맞서 싸울만한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안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며 입술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뼈가 썩는 것 같았고 온 몸은 부들부들 떨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박국이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불렀다는 점입니다. 그냥 찬송한 것이 아니라, 여기 보니까, 영장을 세우고 수금에 맞추어 찬송하고 있습니다. 말이 그렇지, 환난 날에 찬송을 부른 것, 전쟁이 시작되고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도 "감사합니다" 라고 찬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평안할 때 누가 감사 못하겠습니까? 그것도 못한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언제나 그렇게 평안하고 형통할 수 만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을 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그런 일이 얼어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습니까? 우리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 우리의 사업이 어떻게 될지, 우리의 자녀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제가 지난번에 미국에 갔더니 저의 딸 결혼식 몇 일 전에 제가 전에 시무하던 교회에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 성도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차를 사 주었습니다. 아들은 너무 기뻐서 자기 누이 동생을 데리고 온다고 학교에 가서 동생과 함께 차를 몰고 오던 중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을 하여 두 자녀가 한꺼번에 죽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가서 기뻐하며 차를 사 준 것이 그 가정에 큰 재난이 된 것입니다.
저희 집에는 결혼식이 있었지만 그 성도의 가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정말 남의 일 같이 않더군요. 그래서 돌아오기 전에 전화해서 위로를 했는데, 그래도 그 어머니는 신앙이 좋은 어머니여서 그런 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으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주님을 의지해야겠다는 말로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어머니는 믿음이 좋고 찬양 사역을 하는 분인데, 아버지가 교회를 잘 안나가서 애를 먹이고 속을 썩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아내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장례를 치르고, 성도들이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의 마음이 움직여 오히려 그 가정의 영적인 변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할 때,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재난과 같은 일 닥쳤을 때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때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두 번째로, 하박국의 감사는 없는 가운데서 드린 감사였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기 보면, 하박국에게는 맨 없는 것들 뿐인 것 같습니다.
여섯 가지가 없다고 했는데, 사실, 여기 없다고 지적한 것들은 절대로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무화과는 양식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의 주종을 이루는 포도주를 담그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당시 귀하게 쓰이던 기름입니다. 밭의 식물은 하루 세 끼 먹어야 하는 식량입니다. 양은 그 털로 옷을 만듭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수단입니다. 그 외에도 양이나 소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필수품들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쌀독의 쌀도 떨어지고, 옷장에 옷 한 벌도 없고, 자동차의 휘발유도 떨어지고, 주머니에 돈도 떨어지고 통장에 잔고도 바닥이 났다는 그런 말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때에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은 이 때에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우리가 풍부하고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을 때 누가 감사 못하겠습니까? 그런 때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때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을 때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때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독일의 재무부 장관을 지낸 바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늘 매사에 감사함으로 임하여 국가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는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 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새 도둑을 맞은 것입니다. 여행 중에 구두를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합니까? 다시 사야 하고, 또 사러 나갈 신발도 없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어느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욕을 하면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게 하시다니.." 라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주일이었는데 여관주인이 창고에서 헌 신발을 꺼내 빌려주면서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남들은 다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그는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신발을 잊어버린 것 때문에 계속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니 찬송을 하는데,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또 기도를 드릴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잘 보니 이 사람이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불구자가 하나님 앞에 찬송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바덴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겠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될 것을 괜스레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였구나"
그래서 그 후로 그의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제부터는 절대 원망하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모든 장래가 다 잘 풀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없다고 해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아직도 건강이 있고, 가족이 있고, 교회가 있고, 친구가 있고, 사지가 멀쩡한데, 생각하기 나름이지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박국은 우리들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꼭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하박국이 어떻게 그런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 18절과 19절을 봅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의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박국 첫 부분은 그의 원망과 불평, 하나님께 항의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볼 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이 땅의 의인은 핍박받고 악인이 득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유대 나라가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나라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지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고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는 망루에 올라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로 말씀해주시길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고,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고 그 뜻이 이뤄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온 우주 만물을 주장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환난의 소식을 듣고, 가진 것이 없어도 이제부터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 하나님으로 인해 찬송하고 감사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짜증을 내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며,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외적인 환경이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나님을 바로 발견하고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차원 높은 감사를 할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정말 감사가 안되면 하박국처럼 시간을 내어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할 조건이 많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이 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또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돈을 자기의 구원이나 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늘어나면 안정감을 느끼고 돈이 줄어들면 위기감을 느끼며 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무엇이 될 것 같고, 건강이 안좋으면 침울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그렇게 의지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잘 알아 위기 때에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의지하고 힘으로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할 수 없습니다. 차원높은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과 무한함으로 인해 언제든지 하나님을 의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두 아이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그런 때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욥과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욥도 한 때는 잘 나갔습니다. 자식도 많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갑자기 재난이 닥쳤습니다. 대적들이 쳐들어와 짐승들을 다 약탈해갔습니다. 많던 재산을 하루 아침에 날린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큰 형 집에 모여 밥을 먹는데, 태풍이 불어닥쳐 집이 무너져서 모든 자녀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자기의 구원과 힘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라"고 하며 자기 입술로 범죄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사를 볼 때에도 손양원 목사님이라는 분은 여순 반란사건 때 공산당원에게 두 아들을 잃은 분입니다. 그 때 그는 너무나도 괴로워서 식음을 전폐하고 이불을 뒤집어쓰시고 기도하시기를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라는 말만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가운데 결국은 두 아들의 장례식 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를 낳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이 순교해도 감사한데 두 아들을 순교하게 하셨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 했는데 그보다 좋은 천국으로 유학 갔으니 이것도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병들어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 순교를 당했으니 더더욱 감사합니다"
손목사님이 어떻게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의 정도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수 감사절에는 좀더 하나님을 아는 시간이 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되시는 것을 확실히 압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는 것을 확실히 압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발을  높은 곳으로 이끄십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영적인 경험을 가지고 인도하는 분임을 알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우리에게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동안 평안한 날을 보내며 우리 가정과 사업, 그리고 교회에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 보면 지난 한 해가 지루하고 길었던 분도 있고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사업이 파산한 사람들, 자녀를 잃은 사람들, 부모를 잃은 사람들, 그리고 가정에 여러 가지 환난과 재난을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도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저는 담대히 말씀드리기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장래를 생각해 봅니다.
지난 9월 11일 이후로 전 세계는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평안하고 살기 좋다는 미국도 테러의 공격을 받았으니 이제는 세상 어디에 가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이제는 세균전으로 온 세계가 들끓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번 뉴라운드 협정으로 인해 세계의 경제 체제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로 인한 우리의 짐과 겪어야 될 어려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많은 수출의 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제 중국은 거대한 인구를 가지고 경제력까지 키워가면서 우리를 위협합니다. 우리 동쪽에 있는 일본은 이미 경제 대국이 되었고 이제는 군사력까지 키워가고 있습니다. 우리 북쪽에는 북한이 있는데, 이들은 아직도 변할 징조가 안보입니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햇볕정책을 취해도 변화지 않습니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 인구는 많습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우리가 잘먹고 잘 산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우리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은 걱정이 많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볼 때, 이제 여러분도 몸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그나마 모아둔 물질도 조금씩 줄어들며 자녀들이나 후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이 나라의 경제나 사회체제가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주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장래를 생각해보면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여호와로 인해서,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 힘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이런 때에도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면서 하박국과 같은 차원높은 신앙을 가지고 성숙한 감사를 하면서 어려운 때를 뚫고 나가면 하나님은 절대 우리 소망을 부끄럽게 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릴 구하시고 능력으로 붙잡아주셔서, 이 어려운 때에 마치 사슴이 높은 곳을 뛰어 달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주님과 더불어 이 어려운 세상을 잘 뛰어 넘어가는 영적인 축복과 이 세상의 복을 누리게 될 줄 믿는 것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에 이렇게 차원높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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