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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 막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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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마가복음 9:14-29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설교 제목은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냐면 “과연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동시에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이라는 설교 제목은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이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 답이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필요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가 어떤 세대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어떤 세대이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까?

[예화]로마에 가면 바티칸이 있습니다. 인구가 약 천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면서 하나의 나라입니다. 여기에 바티칸 미술관이 있는데 그곳에 가보면 미술관 한가운데에 “그리스도의 변모”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참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의 윗 부분은 변화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모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랫부분인데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 바로 아래에 간질병에 걸린 한 소년을 고쳐보려고 하지만 고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바로 앞부분을 동시에 하나님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그림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능력을 체험했으면서도 간질병자 하나 고치지 못하는 무능한 제자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능력을 체험도 하고 맛도 보았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간질병자 하나를 고치려고 아무리 애쓰고 힘써보아도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의 믿음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도 알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도 압니다. 그러나 삶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들 앞에서 아무런 손도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그래서 절망의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하라 사막에 가면 ꡐ뱀잡이수리ꡑ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 한 마리의 가격이 3천달러 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달러에 약 1200원 정도 하니까 얼마가 됩니까? 한 360만원 정도 되겠네요. 되게 비싼 새입니다. 독수리의 일종이라고 하니까 그 정도 가격은 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뱀잠이수리는 주로 공중을 높이 날아다니다가 두더지나 뱀 같은 것을 발견하면(특별히 뱀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가 낚아챕니다. 얼마나 민첩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작은 곤충이라도 단번에 명중시킵니다.

이 새가 먹이를 잡은 후 땅에 내려앉아 잡은 먹이를 먹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맹수의 습격을 받게 되면, 이 새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혼신의 힘을 다해 -----날지 않고 -----뛴다고 합니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날짐승이 뛰어봐야 얼마나 빨리 뛰겠습니까? 결국 얼마 못 가서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셨는데, 우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무척 믿음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믿음을 적용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면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알고 능력도 압니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모든 것을 잊고 아무런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절망하며 무기력하게 당하고 맙니다. 마치 뱀잡이수리새가 맹수 앞에서 하늘을 나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로 이런 세대를 19절에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마가복음9:19)

결국 이 세대가 어떤 세대입니까? 믿음이 없는 세대입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믿음으로 무장한 사람이 없는 패역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계셨던 세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믿음이 필요합니까? ale음이 없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놓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길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에게 마음 편히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슴에 손을 얻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화] 어떤 가정에 망난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도 아들이 말을 안들으니까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이제 일을 맡기겠냐? 하고 그 어머니가 한탄을 하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하는 말이 “나라도 나에게 절대로 일 안 시킵니다. 내가 내 자신을 잘 알거든요!” 그래도 이 아들은 좀 나은 편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까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 없는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첫째는 홀로서는 믿음입니다. (19절)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마가복음9:19)


믿음이 없는 이 세대에 꼭 필요한 믿음은 “홀로서는 믿음”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홀로서는 믿음”!!!

예수님께서 세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잠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간 사이에,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제자들이 사고를 친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간질병 걸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의 간질병을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고쳤습니까? 못 고쳤습니까? --- 못 고쳤습니다. 이게 문제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전에는 고쳤습니까? 못 고쳤습니까? ---- 고쳤습니다. 고쳐도 많이 고쳤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엔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6장 13절에 보면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이 고쳤습니까? 적게 고쳤습니까? --- 많이

전에는 많이 고쳤는데 ---- 왜 지금은 그 많은 제자들이 간질병에 걸린 소년 하나 고치지 못하고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해답을 주십니다. “내가 얼마나 더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제자들은 예수님이 함께 있어야만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자들은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영적으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영적 미숙아입니다. 이런 사람은 옆에 늘 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결정을 할때 대신 해 줘야 합니다. 무엇을 선택을 해도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해 줘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화] 가끔 중국집에 가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꼭 한사람정도는 갈등이 생겨서 마지막가지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짜장면 먹자니 짬뽕이 울고, 짬뽕 먹자니 짜장면이 운다고 걱정합니다. 결국에는 대세를 따라 짜장면을 시킵니다. 그런데 아쉬운지 고민하다 곧 취소하고 짬뽕시킵니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잠시 후에 짬뽕 취소하고 짜장면 시킵니다. 이렇게 서너번 하다가 주인한테 욕 실컷 얻어먹고 결국엔 짜장면 먹으면서 “다음에 오면 꼭 짬뽕시켜 먹어야지!”아쉬워 합니다.

작은 것 하나도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합니다. 매사에 의존적입니다. 누가 해 줘야 합니다. 홀로서기가 안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남자들 가운데 이런 남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가끔 어떤 어머니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들은 어떤 옷을 사줘도 불평한마디 안하고 그냥 입는다는 것입니다.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고르는 능력, 다시 말해서 선택이나 결단의 능력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사주는 대로 입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사줘야 입지 절대로 자기가 사서 입지 못합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중앙일보에 칼럼을 썼던 이시형 교수의 말입니다. 여자들 이런 남자에게 시집가면 여자들 고생 실컷 합니다.

문제는 신앙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도 홀로서기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의존적입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누군가 옆에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물론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도움을 통해서 많은 영적인 유익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것은 안내 표지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방향을 가르쳐줄 뿐입니다.

안내 표지판은 방향을 지시하는 표지판이지 목적지가 되지 못합니다. 표지판에 서울이라고 써있다면 그것은 서울을 지시할 뿐이지 서울이 아닙니다. 그 방향으로 가면 서울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지 표지판이 있는 그 자리가 서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영적인 유익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안내 표지판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줄 뿐이지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영적으로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 우상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신앙적으로 영적인 유아기를 벗어나 홀로서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둑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홀로서기를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이제 곧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이제 너희들 스스로 결단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며 병든 자를 고쳐 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신앙적인 홀로서기를 통하여 의존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스스로 세워져 가는 영적 성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이 없는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23) 따라합시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읍시다.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아버지에게 아들에 관해서 자세히 묻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마가복음9:21)

이렇게 물으시자 소년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마가복음 9:22)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9:23)

제가 보건데 이 말씀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매우 크게 호통을 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왔으면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믿져 봐야 본전이지 하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한번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십시오”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 책망을 듣고 나서야 겨우“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24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아버지는 처음부터 “ 예수님! 당신은 내 아들을 고쳐 주실 줄 믿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며 예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믿는 대로 신뢰하는 데로 되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의 능력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나 그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제한을 받으실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믿지 못할 때입니다. 우리의 불신이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을 받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해결 받지 못하는 문제는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화] 우리 교회에 병원을 운영하시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가끔 우리교회 교우들이 입원을 하면 심방을 가게 됩니다. 얼마나 환자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집사님은 뵙지도 못하고 그냥 올 때가 많습니다. 환자들이 많은 것을 실감할 때는 정작 제가 몸이 불편해서 집사님네 병원을 갈 때입니다. 집사님께 진료를 받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닫는 병원도 많다는데, 왜 우리 집사님네 병원은 저렇게 환자가 많은 걸까?? 원장님이 잘생기면 환자가 많다던데 우리 집사님이 잘생겨서 그런가? --- 이건 아닌데 잘생길 걸로 따지면 내가 더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치료받으면 잘 낫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닙니까? 낫으니까 그 병원가지 잘 낫지도 않으면 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는 우리 집사님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는 의사가 있습니다. 누군가 아십니까? 바로 접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집 애들이 남자라서 그런지 잘 부딪힙니다. 자기들끼리도 부딪히고 벽에도 부딪힙니다. 둘이 박치기 하면 누가 더 셀 것 같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예권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권이는 머리만 커보이지 물렁합니다. 한번 부딪히면 이마가 일주일 이상 퍼렇게 멍이듭니다. 예찬이는 작아 보이지만 단단합니다. 예권이보다 훨씬 더 세게 부딪혔는데도 끄떡 없습니다.

그런데 애들이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아무리 멍이 들어도, 때로는 피나 나도 저는 단 1초면 다 고칩니다. 어떻게 고치는지 아십니까? 후---- 한방이면 끝납니다. 저기 멀리서 넘어져 가지고 깨져서 동네가 그냥 떠나갈듯 울어도 제가 멀리서 큰 소리로 후----- 하면 아파서 머리를 연신 비벼 대면서 눈에는 눈물이 그렁 그렁하면서도 울음이 그침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제가 영발이 세서 고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가 후--- 하면 순진한 애들이 다 나은 줄로 ------- 믿으니까!! 그래서 우리 집 애들은 어지간히 아파서 병원 안 갑니다. 제가 다 고치거든요!!

단순합니다. 아버지를 믿는 거예요. 실제로 머리가 아파서 앞이 핑핑 도는데도 아버지가 후 하면 다 낫는 것입니다. 믿음이 치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질병보다 더 클 때, 믿음이 문제보다 더 클 때, 믿음이 고통보다 더 클 때,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간단합니다.
믿음이 크냐? 질병이 크냐?
믿음이 크냐? 문제가 크냐?
믿음이 크냐? 사고가 크냐?

오늘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하여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믿는 단순한 믿음. 믿음입니다. 질병보다 더 큰 믿음, 문제 보다 더 큰 믿음, 고통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 세 번째로 믿음이 없는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29) 따라하겠습니다. 기도하는 믿음!!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단숨에 해결하시자 집에 돌아가서 조용하게 묻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마가복음9:28)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9:29)

제자들이 간질병 걸린 소년을 고치지 못한 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고침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봉사하고, 내가 아무리 많이 헌신하고, 내가 아무리 큰 중직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믿음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봉사와 헌신, 그리고 직분이 믿음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곧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시간 묻습니다. 기도가 있습니까? 없다면 오늘부터라도 기도하는 자리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기도가 있다면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예화] 1970년 4월에 발사된 우주선 아폴로13호가 우주에서 고장이 났습니다.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확률이 0.00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닉슨은 텔레비젼을 통해 전국민에게 기도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관공서에서는 국기를 반기로 게양하고 모든 교회는 종을 울리고 성도들은 아폴로 13호의 무사 귀환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확률 0.001%밖에 되지 않았는데 3일후에 기적적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닉슨대통령은 미국 국민에게 "이번 주에 우리 주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예배를 드리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휴스턴 우주기지의 과학자들이 우주선이 발사된 후에 합심 기도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최첨단의 과학이라는 것도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기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심을 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기도하는 믿음이 있으십니까?

이 세대에 필요한 믿음은 최첨단의 과학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저녁에 우리의 믿음의 현실을 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은혜도 체험하고, 십자가 보혈의 능력도 알지만
우리 삶에 작은 문제 앞에 굴복하는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찾아 나온 모든 백성들에게
홀로 설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 외에 그 어떤 능력도 없음을 알게 하시어
과학을 의지하거나 물질을 의지하는 자 한명도 없게 하시고
기도의 위력을 알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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