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설날] 고향을 찾는 나그네 / 히 11:13-16

  • 잡초 잡초
  • 478
  • 0

첨부 1


고향을 찾는 나그네 / 히 11:13-16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서로 인사 나누겠습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늘찬양교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우리가정,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내 모습" 할렐루야!!

여러분들도 잘 아는바와 같이 내일 모레가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인 구정 즉 설날입니다.
올해부터는 신정을 없이 한되다 설날이 주일까지 끼어서 4일 연휴가 되다보니 어떤 직장은 아예 일주일동안 설 연휴를 주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거의 다가 고향을 찾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일예배도 드리지 않고 습관적으로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에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입니까? 경제상황이 어렵고 주위에 밥을 굶어 배고파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바라보며 비애감도 느낍니다. 늘찬양교회 성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없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고향이 무엇입니까?.......
고향은 누구나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고향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고향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어머니의 품입니다...
고향은 부모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은 고향을 떠나 온 것입니까? 무슨 이유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서울로 이사온 것일까요?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살다보니 밥 먹고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무작정 고향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도시로 가서 성공하고자 고향을 떠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본의 아니게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고향도 나뉘어져 오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가르쳐 실향민이라 부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살면서 아픔이 많아 일부러 고향을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합니다. 두고 온 가족들과 전에 살던 때가 생각나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고향에 가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에 길거리를 떠돌고 지하도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집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생각할 때 비록 6시간 10시간이 걸려서 고향을 찾아가지만 오고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고향을 찾는 나그네입니다. 아브라함도 고향을 찾는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면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고향을 찾아 돌아가 사는 것이 꿈이요 삶의 과제인 우리 인생을 가르쳐 `나그네`라 합니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는 고향에 대한 생각을 안 하다가 자기의 육신에 병들고 아프면 고향 생각을 합니다. 또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고향 생각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 중에서도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들은 가진 돈이 있을 때, 허랑 방탕 할 때는 고향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 떨어지고 죽자살자 하던 친구들 다 떨어지고 흉년 들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에 병들자 그제야 아버지 생각하고 고향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가야할 고향이 다릅니다. 이것을 착각하면 오늘 같이 귀한 주일날 교회를 빼먹고 식구들끼리 모여서 T.V 보고 음식 만들고 고스톱 치고 떠드는 일로 아까운 시간을 소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진정 우리가 찾고 떠나야 할 고향은 어디인가? 더 나아가 성경에 있는 대로 더 나은 본향은 어디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Ⅰ. 영적인 고향을 찾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몸이 태어난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어릴적 정다운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을 등뒤로 하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가다보니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곳 가나안 땅을 육신의 정착지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영혼의 정착지로까지 삼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곳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사는 동안 그곳에 먼저 살고있던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이방인으로 취급을 당하였고 멸시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브라함은 고향으로 되돌아갈까 생각도 했고 이곳 보다 다른 지역이 더 기름지고 풍요롭다 여겨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건만 아브라함은 자기 마음대로 지역을 옮기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낸 것은 아브라함의 고향이 육신이 태어난 갈대아 '우르'가 아니라 영적으로 약속 받은 축복의 땅 '가나안 땅'임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 사는 동안 가뭄을 만납니다.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생기고 땅에 먹을 것이 없자 먹을 것을 찾아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수치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먹을 것을 잔뜩 얻어 가지고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이 결코 너희가 머무를 땅이 아니고 오로지 참 고향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임을 알게 하고자 깨달을 때까지 훈련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두 번째로 가뭄이 다가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애굽 땅이 아닌 블레셋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똑같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지만 오히려 물질을 얻어갔고 나옵니다.

고향에 대한 하나님의 숨은 비밀과 뜻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연속적인 실패와 수치를 통해 깨닫습니다.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축복의 땅 약속의 땅 영혼의 참 고향임을 깨달은 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혹시나 훗날에 후손들이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우리 땅이니 이 땅에서 나가라 하면 후손들이 고통을 받을까봐 이번에는 정식으로 돈을 주고 막멜라 굴이 있는 언덕의 조그만 땅을 삽니다. 이 땅이 확실하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영토임을 온 천하에 알리는 행위였습니다. (창23:17-20)

만일 이때에 아브라함이 아직까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임을 알지 못했다면 그 땅을 사기를 주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약속 받은 축복의 땅임을 확인 한 이후 아브라함은 아내가 죽자 그곳에다 시신을 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죽어 그곳에 묻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가나안에서 살다가 죽어 거기에 묻혔습니다. 그 아들 야곱도 잠시 가나안을 떠나 외삼춘 라반에 집에서 지냈지만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음은 물론 야곱도 죽어 막멜라 굴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셉은 애굽 땅에서 국무총리가 되어 편히 그곳에서 살 수 있었지만 내가 죽거든 내 뼈를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 막멜라 굴이 있는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400여 년이 지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에 성공하므로 요셉의 유골이 가나안 땅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수 24:32).

이러한 고향의 원리를 알지 못하는 나오미와 그의 가족들은 가뭄으로 인해 모압 땅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두 자부들을 얻어가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려 하였지만 그곳은 약속의 땅이 아닌 고로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 마저 잃어버리는 혹독한 아픔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약속의 고향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이렇듯 우리는 고향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담긴 참 고향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을 잃듯이 조상 아브라함과 그 믿음의 자손들이 만든 고향을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 땅에서 포로로 이방인으로 살면서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행한 죄악을 뉘우치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맹세하고 마음으로 잊혀진 고향을 찾아 돌아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고향은 아브라함도 그 자손도 앞으로 올 미래도 돌아갈 과거도 하나님 약속으로 주시는 가나안 땅 뿐입니다.
반대로 이 땅에 소망을 둔 사람은 자신의 몸이 태어난 과거의 고향을 찾습니다.. 거기에서 사는 기쁨을 얻고 삶의 슬픔을 달래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당하였던 부끄러움과 애굽의 고통과 바벨론 포로의 슬픔만이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인은 모든 인간의 고향 되신 하나님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Ⅱ. 고향을 만드는 나그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 영적 고향 참 고향을 만들 듯이 예수 믿는 사람들도 저 하늘에 고향 즉 본향(本鄕)을 만드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품에 내가 영원히 사는 고향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고향을 잃어 이방 땅에 살던 이스라엘이 죄를 회개하고 가나안에 돌아오는 것처럼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탕자로 살던 죄인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인간의 참 고향은 흙으로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 있고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게 해준 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도 주일이면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형제 자매를 만날 때 삶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반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잃고 교회를 떠나서 세상 속에서 살 때 참 평안이 없고 참 기쁨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해도 그것이 복이 되지 않습니다(요 15:4,5).

집을 떠나 사는 나그네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를 못합니다. 자신의 볼 일 때문에 혹은 어려운 사정으로 여기 저기를 다니며 머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에 가진 것이 많으면 다니기가 불편하므로 언제나 그날 그날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머무는 곳에서 주어진 일이 있으면 열심히 일을 합니다. 하지만 재산은 자신이 앞으로 영구히 살을 집이 있는 곳에 모읍니다. 귀하고 값진 보물도 앞으로 만드는 고향집에 가서 살려고 준비합니다.

임시 머무는 곳에는 어떤 삶의 기반도 많은 인간관계도 만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앞으로 나그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무거운 짐이요, 얽매이는 사슬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당시 나그네는 본토 사람들에게 의심과 미움과 오해를 받았습니다. 본토 사람들에게 외국인이나 나그네의 사회적인 지위는 노예보다 조금 나은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게 살면 본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부자로 살면 트집을 잡아 수모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나 이방 사람들은 자기 나라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소망하며 기다림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은 언제나 나그네일 뿐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세상을 사랑해서 그 삶이 좋으면 안됩니다. 죄를 먹고 세상을 즐기는 이 땅의 삶이 언제나 낯 설은 나그네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들은 까닭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과 맞지 않는다고 차별을 당하고 여러 면에서 손해를 본다. 그래서 교회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와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필요한 말씀으로 축복해주십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저 하늘 나라에 준비하신 상급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가난하게 살고 무시 받고 살고 부족함이 많은 모습가운데 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귀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할 수 만 있다면 물질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 이 믿음은 성도들이 만드는 하늘 고향에 보물을 쌓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차원의 성도 생활입니다.

사람들은 설과 추석 명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찾습니다. 복잡한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탑니다. 승용차를 타고 몇 시간, 어떤 곳은 하루 진종일 고속도로에서 고생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향을 찾는 웃음이 있고 무엇인가 기대를 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손과 손에 든 것이 있는데 그 물건이 고향 계신 부모 형제들에게 나누어 드릴 선물들입니다.

고향에는 산과 들이나 집 건물을 보려고 가지 않습니다. 나를 낳아 사랑으로 길러주신 그리운 부모님을 뵈오려고 갑니다. 그 동안 보고싶었던 형제들을 만나러 갑니다. 고향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모님이 이날을 기다리셨습니다 아들딸들이 올 것을 생각하고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돌아갈 때는 그들 손에 들려 보낼 이것저것 땀흘려 농사한 것을 챙기십니다


Ⅲ.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고향 길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집에 가는 것도 사람이 좋아서 가고 집을 나가는 것도 사람이 싫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부모 형제가 있지 않으면 가도 명절이 즐겁지 않고 명절이 되어도 사는데서 보내고 맙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모든 이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 되어 하나님을 고향 삼고 찾아오는 믿음의 자녀들을 위해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믿음의 자녀가 하나님을 찾아오는 명절이요, 예배는 하나님 준비하신 은혜의 천국잔치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하나님께서 챙겨 주시는 풍성한 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땅에서 나그네 되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아브라함과 그 믿음의 자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한 성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늘 본향 되신 하나님께 가는 사람은 아버지가 기뻐하실 선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선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예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 기뻐하실 영광스런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때를 준비하십니다.

명절에 고향을 가시거나 집에서 계실 늘찬양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부모와 자식을 만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들을 보면서 예수의 피 값으로 형제 자매가 된 교회 가족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교회당 건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뵈오러 나왔습니다. 절대 떠나거나 끊어질 수 없는 교회 가족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때문에 오늘을 복되게 사십시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으로 이 날을 즐겁게 만듭시다. 고향에서 만난 오랜 친구처럼 한없이 사랑하고 이뻐하고 껴안아 줍시다. 고향의 기쁨을 아는 자는 나눔의 기쁨을 아는 자들입니다.

오늘 이 귀한 주님의 전에서 믿음으로 하나된 형제 자매들이 함께 주의 사랑을 나누며 "새해의 덕담"을 원 없이 나누는 귀한 시간들을 갖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 : 48~50)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