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인생과 믿음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라 / 눅 18:35-43

  • 잡초 잡초
  • 302
  • 0

첨부 1



인생과 믿음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라
누가복음18:35-43

  몇해전  톰 피터(Tom Peter)는 그의 책 「최고를 찾아서」(In  Search of Excellence)에서 미국에서 가장 잘 운영되는 43개 기업들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발간된 후 2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30%가 넘는 43개중 14개 기업이 재정적으로 대단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 위크지가 그 이유를 분석한 결과는 '변화에 대한 반응과 응수의 실패'라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상유지, 현실안주가 실패의 원인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켄 블랑카드(Ken Blancard)라는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 변화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즉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첫째, 지식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둘째, 자세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셋째, 행동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넷째, 조직의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현상유지, 현실안주가 좋다는 것입니다.

  현상유지는 기독교의 정신이 아닙니다. 현실안주는 성경적 인생철학이 아닙니다. 성경은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변화와 도전 추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인생을 새롭게 도전해 가는 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그는 소경거지입니다. 소경거지가 여리고 큰 광장 길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길가가 웅성거립니다.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때 소경거지가 구걸하다가 외칩니다. "한 푼 줍쇼"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칩니다. 사람들이 거지를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소경거지가 더욱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의 간청소리를 들으시고, 머물러 서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소경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41절에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때 기회다 싶어서 소경거지가 외치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곧 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경거지는 곧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기적을 본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소경거지가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 기적입니다. 소경거지는 예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인생에 대한 도전을 향해서 현실안주를 단호히 거부하고 인생의 역사를 바꾸어나갔습니다.

  오늘은 이 소경거지의 현상유지를 거부하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도 현실안주와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보다 나은 인생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자기 인생의 현상유지를 거부하십시오.

  여러분의 현실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의 상황이 좋습니까? 이 현실로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아직 과정이라고 생각됩니까? 더 이상 나아질 것을 기대합니까? 더 나은 인생을 꿈꾸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하십시오.

  본문의 소경의 인생은 무엇입니까? 거지인생입니다. 거지의 삶은 무슨 삶입니까? 구걸하는 인생입니다. 빌어먹는 인생입니다. 거지인생의 현실이 만족할까요? 거지의 현실이 감격일까요? 거지는 여전히 구걸하는 비참한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의 현실안주를 거부하십시오.

  35절에 보면, 거지가 여리고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앉아있다는 말은 현상유지입니다. 현실안주입니다. 적당히 살지 하는 것은 현실안주입니다. 그러나 소경거지는 인생의 현상유지를 거부했습니다. 이대로만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빌어먹는 인생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빌어먹는 인생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눈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는 거지인생이 싫어요. 소경이 싫어요. 현실안주가 싫어요. 현실유지가 싫어요.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어요.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하며 외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에 앉아있으면 현상유지입니다. 인생의 현상유지는 손해입니다. 더 나은 삶이 있습니다. 더 나은 인생이 있습니다. 내 삶의 위치에서 일어나 외치며 현상유지를 거부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 외치며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하십시오. 나의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나도 이대로만 안주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더 나은 인생을 거닐고 싶습니다. 외치며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인물을 한 명 소개합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십니까? 의사가 태아의 뇌를 집계로 잘못 건드려 소뇌가 손상되어 평생 뇌성마비로 지내야 하는 그녀는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합니다. 7살때까지 꼼짝못하며 누워지내야 하며,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분유 살 돈도 없습니다. 그렇게 17살 때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처음 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자 하고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응답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를 믿으라! 네가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그 사건 이후로 그의 인생은 360도로 달라집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시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의 시는 극동방송에 소개되고 "나"라는 시에 최덕신은 곡을 붙여 노래를 하여 방송에 뛰웁니다. "나"라는 찬양은 수많은 사람들의 싱금을 울리며 소망과 감격을 주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현상유지를 거부했습니다. 현실안주를 거부했습니다. 누어있어야 하는 인생이 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병상인생이 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의미 없는 인생이 이웃을 도전 주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현실안주는 퇴보입니다. 현상유지는 후퇴입니다. 현상유지는 경쟁을 포기한 것입니다. 현상유지는 결국 현실도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는 데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확신과 용기와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역사적인 농구 선주중에 행크 루이세티가 있습니다. 루이세티는 농구선수로 활약할 때 절묘한 슛 동작은 관중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루이세티가 등장할 무렵, 거의 모든 농구코치가 두 손으로 하는 슛 동작만을 고집하고 선수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그럴 때 한 손으로 하는 점프 슛을 고안해 시도했습니다. 다른 코치들이 그것을 비능률적이라고 반대했지만 루이세티의 코치만은 한 손 슛 사용을 허락하고 개발하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농구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한 손 슛으로 승부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할 때는 비난과 조소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하며 인생을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경거지가 현실유지를 거부하고 인생을 도전할 때 보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인생을 도전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인생을 펼쳐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인생 삶의 현상유지를 거부하기 위해 결단이 필요합니다. 더 나은 인생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외쳐야 합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더 나은 인생으로 도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자기 믿음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십시오.

  인생의 현상안주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의 현상유지도 거부해야 합니다. 믿음생활의 현상유지는 영적인 궁핍이요, 영적 나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새로운 믿음으로 도전하십시오.

  본문 42절에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었습니다. 소경거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메시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경거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이 나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믿고 일어났습니다. 믿음을 마음속으로만 가지지 않고 믿음을 표출시켜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믿는 것으로만 안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만 받고 구원만 유지하고 있지,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경거지는 구원의 믿음에서만 안주하지 않고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청년여러분, 단지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 믿고 세례 혹은 침례만 받고 믿음생활의 현상유지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현상유지를 단호히 거부하고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을 소망하십시오. 천국만 가면 되지 하는 현상유지 신앙에서 벗어나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경거지는 경배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했습니다. 소경거지는 소경으로써 주님을 믿고는 있었지만 경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안주를 박차고 현상유지를 박차고 일어나 주님을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43절에 "곧 보게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는 경건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했습니다. 이젠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경건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일어나 찬양하며 거룩하게 경배했습니다.

  우리 청년 여러분, 올해에는 경건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십시오. 이제 현실안주 의 신앙생활을 단호히 거부하고 한 단계 뛰어 넘는 경건 생활을 영위하십시오. 경건 생활은 자신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거룩은 형식뿐입니다. 

  유명한 안소니 멜로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켜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켜 주십사고 기도를 드렸다. 70이 된 오늘은 난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매우 마음에 다가오는 말입니다.

  이젠 경건 생활의 현상유지를 거부하기 위해 경건 생활에 변화를 시도하십시오. 예배생활의 변화를 시도하십시오. 이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인생은 놀랍게도 하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미완성이기 때문에 중단 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우화적 단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시고 은혜를 베푸셨는데, 하루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시고자 몸소 방문하셨습니다. 어떤 곳에 갔더니 말도 못하며 늘어진 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주정뱅이가 되었나?"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원래 절름발이에다 거지였소, 그 때에는 손만 내밀면 얻어먹을 수도 있어서 편했지요, 아 그런데 두 발이 다 성하고 보니 아무도 안 도와줍디다. 스스로 벌어먹고 살다보니 힘들어서 술을 먹게 되어 주정뱅이가 됐지요." 또 한 곳에 가니까 아주 추한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시 본 것 같아서 "너는 어떻게 이렇듯 비참해졌느냐?"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본래 창녀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게 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고 새 사람이 되었지요. 하지만 막상 새 사람이 되어서 깨끗이 살아보니까 너무도 따분하고, 재미도 없고, 행복도 없고, 영 진저리가 나서 도대체 살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 다시 창녀가 되어 지내다보니 이 꼴이 되었지요, 뭐" 또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 가보니 불량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치고 받는 깡패지요.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본래 장님이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제 눈을 뜨게 해주셨지요. 그 때는 너무도 감사했지요. 하지만 막상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어떻게나 더러운지 몰라요. 못된 놈들도 많고, 부조리한 것도 많고, 내 신경을 건드려 화나게 하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 어쩌다 보니 그만 깡패가 됐습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변화했지만, 또 현상유지 하기가 쉽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현실안주 속에서 퇴보하고 말 것입니다. 현상유지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그 날 까지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아멘)

<맺는 말 >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의 변화는 타락의 길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그 속도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보다 더 빨리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물살을 역류하려면 물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역류해야 합니다. 세상은 에스컬레이터처럼 타락의 길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하며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올라가는 역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꾸로 올라가려면 내려오는 속도보다 빨리 뛰어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내려갑니다. 평범하게 걷고 있으면 현상유지입니다. 인생의 현상유지는 퇴보입니다. 인생의 현상유지는 낙오자입니다. 믿음의 현상유지는 타락입니다. 믿음의 현상유지는 죄에 물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우리 인생은 더 나은 삶이 있습니다. 지금의 현상유지와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보다 낳은 인생을 기대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시고 현실을 변화시키십시오.

  거지 인생이 인류의 소망되는 나사렛 예수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보는 인생, 섬기는 인생이 된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함께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놀라운 인생으로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현상유지를 박차고 일어나 더 나은 인생을 창조하려 할 때는 가로막는 장애들이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마세요. 현실유지를 거부하기 위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현상유지를 박차고 더 낳은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도우시며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현상유지 본능을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주님이 오실 때까지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의 인생을 창조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