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께 굳게 선 인간 / 잠 12:1-3

  • 잡초 잡초
  • 376
  • 0

첨부 1



제목 : 하나님께 굳게 선 인간
본문 : 잠언 12 : 1-3절

      1 -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 -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이다
3 -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 <설 교>
⇒ 인간은 나무와 집같은 존재이다.  나무의 삶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잎이 지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도 그런 과정이 있다.  집도 사람이 살기 위해 짓지만 쓸모 있는 좋은 집이 있고 쓰지 못할 나쁜 집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무를 심고 집을 세우는 땅이다.  그리고 그 땅에 어떤 종자의 나무를 심고 어떤 내용으로 집을 짓느냐이다.  좋은 땅에 좋은 종자의 나무를 심어야 풍성한 수확을 본다.  좋은 터에 좋은 재료로 집을 쓸모 있게 지어야 집으로서 구실을 한다.  인간도 자신의 삶을 두는 근본이 중요하다.  어디에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인생의 결과를 좋게도 나쁘게도 만든다.

. 솔로몬 왕은 하나님 주신 지혜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왕상 4:32에 보면 솔로몬이 잠언 3천을 말하고 노래를 1천5편을 지어 당시 주변 나라에까지 소문이 나 유명했다.  우리가 성경으로 읽는 것 중에도 잠언. 전도서. 아가가 있고 시편에도 여러 편의 성시가 있다.  그 중에 아가는 솔로몬이 젊은 때에 여인과의 사랑을 노래한 연가이고, 잠언은 나이가 중년쯤 되어 자녀와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훈 집이다.  그리고 전도서는 솔로몬이 늙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인간 삶을 말한 일종의 참회록이다.

. 솔로몬의 잠언은 인생을 가르치는 책이지만 특징이 있다.  잠언 전체 형식이 서로 다른 상반된 것을 대조 비교하여 말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의인과 죄인. 선과 악. 삶과 죽음. 지혜와 어리석음. 지식과 우둔함. 부요와 빈곤. 남편과 아내. 상과 벌.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 말씀에서도 훈계를 좋아하는 사람과 징계를 싫어하는 사람의 인생을 비교해 말한다.  훈계(히, 무사르)는 `잘못을 고쳐 바르게 길들이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나무가 아무리 커도 바르게 크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짐승도 쓰임새에 맞게 길들여지지 않으면 난폭한 성질 그대로 자라서 주인의 걱정이 된다.

.『 제가 어릴 때 집에서 어린 새의 새끼를 길렀었는데 비둘기를 길러보면 온순해서 길이 잘 든다.  또 지혜롭기도 해서 옛날에는 소식을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비둘기는 한 가족처럼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꿩의 새끼를 키워보면 이것은 다 자랄 때까지 길이 안든다.  다 자라면 결국 집을 나가 돌아다니다가 매에 잡혀 먹히든지 사냥꾼 총에 죽는다. 』
인간도 참 인간이 되어야 사람 구실을 한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인물 좋고 돈 많고 많이 배워도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 짐승처럼 본능의 충동을 따라 자기 마음가는 대로 생각없는 인생을 산다.
. 인간을 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 성경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한다(딤후 3:15-17).  하나님 말씀을 온순하게 받으면 선과 악을 밝히 분별하는 지혜가 생긴다.  하나님께 복종하여 말씀으로 길들여져야 평탄한 인생을 산다.  날마다 하나님 은혜로 삶이 기쁘고 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인생,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이 세상에서 요동하거나 방황하지 않도록 생각이 바르고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 준다.  그래서 평생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 인간의 삶에는 수고하는 인생이 있고, 날마다 즐겁게 사는 노는 인생이 있다.  인생을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은 수고하는 괴로운 인생이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은 노는 인생이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날 때부터 사람은 사는 것이 괴로운 수고의 인생이 되었다.  수고도 제대로 된 수고나 하는가?  평생 동안 마음쓰며 살은 것이 다 쓸데없는 헛수고 인생이다.  인간은 하나님 주신 노는 것을 잃었고 즐거운 일이 없다.  몸이 어디를 구경 다니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고 노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걱정하고 생각은 고민을 하는 수고를 하고 있다.  옷을 사고 술을 먹고 춤을 춘다고 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는 것이 괴로운 고통의 몸짓일 뿐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머리 복잡하게 고민하는 생각을 쉬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편히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쉴 곳이 없다.  마음을 편히 둘 곳이 없다.  왜냐하면 마음을 두고 생각을 쉬게 할 영혼의 안식처를 잃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이 영원히 머물 안식처인데 하나님을 떠나 그 안식처를 잃었다(눅 16 : 23).

. 하나님을 떠나 죄에 사는 인간은 수고하는 자 되어 어쩔 수 없는 인생을 산다.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내 삶이 되도록 배워 길들여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복음이 오늘도 온 땅에 울려 퍼진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서도 쉬지를 못한다.  인간을 쉬게 하시는 주님께 가지를 못한다.  왜 그런가?  길이 않들고 내 멋대로 살며 자란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인간 억지로는 예수 믿는 것이 잘 안된다.  인간 노력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이 죄악되어 교만하고 거칠기 때문이다.  이 교만하고 거친 인간 모습이 가시가 되어 스스로 자신을 계속 찔러 아프게 한다.  삶을 힘들게 한다.  그러면서도 주님께 가는 이 삶이 안된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 11:28-30).  주님의 멍에를 매고 배우는 것은 `주님과 발을 맞추며 함께 사는 인생` 을 의미한다.  우리 앞서 사신 주님의 인생, 그 발자국을 나도 그대로 밟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인간의 살길이 있고 나로 안되던 것이 주님으로 되는 구원의 역사가 있다.

. 그런데 이 복된 소식을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주님의 음성을 싫어하고 외면하더니 이제는 핍박을 한다.  그 사람이 오늘 말씀 2절의 징계를 싫어하는 자요, 악을 꾀하는 사람이다.  왜 그런가?  그 심령 속 상태가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마음에 두고 사랑하는 우상이 있어서이다.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아닌 다른데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씀한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예수 믿는 성도는 이런 것에서 구별되어야 한다.  이 삶은 죄요,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 의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그는 선한 사람으로 하는 일에서 하나님 칭찬과 주시는 복을 받는다.  의인이 되는 기준은 도덕적으로 바른 의가 아니다.  하나님께 삶의 뿌리를 둔 그 의다.  의로우신 하나님께 삶의 뿌리를 두면 그에게서 올바른 생활이 나오는 열매를 맺는다.  선도 똑같다.  윤리 도덕적으로 착한 선이 아니다.  선하신 하나님께 근본을 두면 그는 선한 생활이 나온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된 길을 간다.  그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과 주시는 은혜에 목말라 있다.  이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 시편 1편에 보면 복이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 고 말씀했다.  시냇가는 이런 시내가 아니고 둑을 쌓아 물이 계속 흘러가도록 만든 수로를 말한다.  이런 물길은 사시사철 마르지를 않는데 가나안 땅에는 없고 애굽과 바벨론 사람들이 만들어 썼다.  다른 땅이 아무리 메말라 갈라져도 이 물길은 마르지 않고 항상 흘러 넘친다.  이런 땅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그 나무는 언제나 싱싱하다.  이 나무는 열매의 때가 되면 언제나 굵고 알찬 것을 많이 맺는다.  하나님은 영원히 마르지 않은 생명의 샘이요, 언제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름진 옥토이다.  하나님께 뿌리를 둔 사람은 그 속에서 하나님 의가 나올 수밖에 없고 선한 삶의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 그 진리의 말씀에 삶을 두면 삶이 마르지 않다.  인생이 평탄하다.  하나님 말씀 듣는 대로 그것이 삶이 되어 복된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이 영원한 반석이신 것처럼 하나님을 모신 사람도 반석 위에 굳게 선 믿음의 사람으로 산다.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를 받아 내 삶이 되면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내게 이루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내게 이룬다.  하나님의 아름답고 진실하심이 내게서 나타난다.

. 불신의 사람은 그 속에 죄가 있다.  그래서 삶에 악이 나온다.  사단이 그의 귀를 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그는 진리에 서지 못하고 사단의 거짓에 속는다(요 8:44).
홉니와 비느하스는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의 아들이었다.  제사장의 아들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이 두려운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할 성물을 더럽혔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여인과 간음을 했다.  제사장 엘리가 아무리 간곡하게 권면을 해도 그들은 자신 앞에 다가온 죽음의 위기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결국 비참하게 죽었다(삼상 2:22-25).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있다.  그를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신임하셔서 돈을 관리하는 재정을 맡기셨다.  그런데 유다는 어리석어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을 팔아 은 30개 받을 생각만 할 뿐 그 욕심 때문에 자신이 죽는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예수님의 가슴아파 흘리시는 눈물의 권면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결국 유다는 자살하는 것으로 인생이 끝났다(마 26:21-25, 요 13:21).

. 죄는 인간을 파먹는 벌레요, 악한 일은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기계이다.  하나님께 뿌리를 둔 인생은 영원한 보배로 남는 알곡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죄에 뿌리를 두고 악의 열매를 맺는 인생은 이미 사형이 선고되어 지옥 불에 떨어질 잡초의 운명이다(마 13:30, 3:12).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으로 사는 복된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 없이 헛되게 사느냐" 하는 인생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