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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잔이 넘치나이다 / 벧전 4:7~11, 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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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
베드로전서 4:7~11, 5:8~11


오늘은 시편 23편 5절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얼른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하게 되는 말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목자 생활을 해본 다윗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시입니다. 지난 시간에 생각한 대로, 여름철이 되면 경험 있는 목자는 양무리를 이끌고 골짜기를 거쳐 산간목장으로 올라갑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올라갑니다. 그러나 경험 많은 목자가 함께 하기 때문에, 양이 목자를 온전히 의지하는 한, 두려움도 없고 절대로 안전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산간 목장에 올라가면 시원한 것은 말할 것 없고, 푸른 초장이 상을 차려 놓은 것처럼 마련되어 있습니다. 피곤하게 올라온 양들은 신선한 환경에 얼마나 좋아 날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상을 차려 놓았는데 이것이 원수 앞에 베풀어 놓은 상입니다.

산간 목장에 무슨 원수가 있습니까? 두 가지 원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이 아름다운 공해가 없는 초장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먹음직스러운 풀과 꽃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너무 신기하고, 탐스럽고, 먹음직하고, 호기심이 가서 그 풀을 뜯어먹으려 가면 목자는 미리 가서 그 풀들을 다 뽑아 버립니다. 그러면 양들은 섭섭해서 '우리 목자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하고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불평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자로서는 그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고, 번쩍거리는 풀을 미리 뽑아 버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풀은 보통 초장의 풀과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호기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풀을 먹으면 신경이 점점 마비가 되면서 몸을 쓸 수 없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풀은 풀인데 독초입니다. 양들은 외관상 먹음직스러운 것만 알지 그 풀이 어떤 풀인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목자는 그 풀이 어떤 풀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양을 사랑하는 목자는 양들의 오해를 사면서도, 불평과 원망을 들으면서도, 독초를 뽑아 버려 양들이 먹을 수 없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그 방면에서는 훌륭한 지식과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분야는 목회자가 책임진 분야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맡은 양무리를 사랑하고 그 영혼을 바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과 말씀 선포하는 일에 전무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상한 교리를 주장하는 말을 듣고 호기심을 가지고 따라가려 하면 목회자는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래도 따라가면 그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분이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심령을 바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므로 저만큼 여러분의 심령을 사랑하는 목회자는 없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의 심령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무슨 말을 해도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사랑해서 하는 것이지 손해 되게 하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목회자의 지도를 따르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원수는 바위 뒤에 숨어 있는 맹수입니다.
여름이 되면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산간목장에 올라옵니다. 양의 본성은 목자를 중심해서 뭉칩니다. 그런데 양들 가운데는 혹시 목자를 떠난 것도 아니고 뭉친 것도 아니고, 밖으로 혼자 빙빙 도는 양이 있습니다. 그러면 바위 뒤에 숨어 있던 푸마 같은 맹수가 나와서 양을 덮치고 물고 달아납니다. 목자를 중심해 뭉쳐 있는 양은 맹수가 건들지 못합니다.
신앙 생활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심령은 마귀가 손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이하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손안에 있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심령은 마귀가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손 밖에 있는 심령은 맹수 같은 마귀가 그냥 놔두지 않고 덮치고 물고 달아나 버립니다.

신앙 생활 바로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을 중심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맹수 같은 마귀 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중심, 교회 중심으로 신앙 생활 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도 양을 쳐본 사람이 아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시편 23편을 통해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라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데, 거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며 목자를 온전히 의지하게 되고, 골짜기에서 샘물을 마시고 기운을 얻고, 신선한 풀을 뜯으며 올라갑니다.
그런데 목장에서는 여름을 흔히 '파리의 계절'이라고 부릅니다. 날씨가 더우니까 양들을 해치는 여러 가지 해충들이 많이 생깁니다. 가축을 키워 본 사람이 아니면 여름철에 짐승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이 얼마나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실 것입니다. 짐승들은 이 해충 때문에 미칠 정도로 고통스러워합니다. 특히 양들은 코에 붙는 파리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모르고,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이 작은 파리들은 양의 촉촉한 코 점막에 붙어서 알을 슬려고 양의 머리 주위에 윙윙거리며 날아다닙니다. 만일에 이 파리가 양의 코에 알을 슬게 되면 2,3일이면 알이 깨서 유충이 되는데, 이 가느다란 구더기가 양의 콧구멍을 통해 뇌 속으로 들어가면 양이 미쳐 버립니다. 또 살 속으로 들어가면 유충은 심한 염증을 일으키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양들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머리를 나무나 바위에 부딪치고 땅에 머리를 문지르며 흔들고 딩군다고 합니다. 해충의 침입으로 고통이 정말 심하면 의식을 잃어버리고 허둥거리다가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 파리가 양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게 되면 어떤 양은 공포에 휩싸여서 제 정신이 나가서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합니다. 양들은 파리를 피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목장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고 합니다. 어떤 양들은 너무 달려서 기진맥진해서 쓰러지기도 합니다. 파리를 피해서 도망 다니는 양의 모습은 보기에도 처량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을 잘 보살피는 목자는 이렇게 양에게 손해를 끼치는 파리에게서 양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파리 떼가 나타나면 아마로 만든 기름을 양의 머리와 코에 발라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양에게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양들은 불안한 기색도 두려워하는 일도 없이 조용하고 안정된 자세로 풀을 뜯기 시작하며 자리에 누워서 만족하게 쉰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양의 경험이 있는 다윗은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설교하기 위하여 준비하며 연구하기 전에는 그 뜻을 분명히 몰랐었습니다. '양의 머리에 왜 기름을 바를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양을 해치는 모든 해충, 특히 파리가 코에 붙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양무리인 우리 성도들에게도 말하자면 파리 같은 마귀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안식하지 못하게 괴롭히는 파리 같은 마귀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심령에 불안을 주고 미치게 만드는 파리, 사소한 일 때문에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뛸 때도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행동이 옆에서 보기에 처량하고 민망할 정도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행동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좌절의 심연에 빠져들어 갈 때도 있습니다.

목자가 파리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양들에게 계속 새로운 기름으로 매일 발라 주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에도 주님께서 성령의 기름을 계속 발라 주어야 합니다. 양의 머리에 기름을 한 번 바른 것으로 긴 여름철을 그냥 넘길 수가 없습니다. 매일 매일 반복해서 기름을 발라야만 합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주는 것이 파리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해독 방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름 부음을 단 한 번만 받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을 바로 하려고 하면 날마다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발라 주셔야 내 상처받은 심령이 치료를 받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마귀의 파리를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 13절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심령 속에 날마다 성령의 기름을 부으려는 것은 논리적이요 합리적인 욕망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심어줄 수 있고 성령만이 우리 마음에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 파리의 도전을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이나 사건이 우리를 괴롭히려 할 때 성령이 내 마음속에 임재함으로 이 외부적인 세력을 격퇴시키고 평화와 만족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의 생활에서 사랑과 평안, 기쁨 그리고 인내와 온유, 만족과 같은 인격의 열매를 맺게 하려면 이와 같이 날마다 성령의 기름을 우리 심령에 부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성내고, 미워하고,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화를 내고,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작은 일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하고 낙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 주님, 저는 왜 이렇게 사소한 문제 때문에 짜증이 나고 마음이 평안치 못해서 나도 괴롭고 다른 사람도 가슴아프게 해야 합니까? 주님, 제 마음속에 성령의 기름을 흠뻑 발라 주세요. 그래서 제 심령에 마귀의 파리가 달려 붙지 못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세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한 번 그렇게 해 보세요. 아마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그렇게 빨리 이루어 주시는 것을 보고 놀라시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목장에서 여름철은 양들에게 있어서 파리 때문에 고생이 될 뿐만 아니라 옴 때문에 고생합니다. 옴은 양들에게 감염율이 아주 높은 전염병입니다. 더구나 양들은 서로 머리를 비비대며 애무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의 양이 옴이 오르게 되면 얼마 안 가서 다른 양들에게 그 옴이 다 전염이 됩니다. 파리의 경우와 마찬가지고 가장 효과 있는 해독 방법은 아마유를 발라 주는 일입니다. 양을 키우는 데서는 양들을 씻어 주는 탱크가 다 설치되어 있는데 양들이 머리를 세척탱크에 잠그지 않기 때문에 머리 부분만은 따로 기름을 발라 준다고 합니다.

다윗이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라고 말씀했는데, 이제는 그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옴을 제거하기 위한 유일의 치료제입니다. 옛날 유대 지방에서는 병을 치료하는 데 주로 향유가 섞인 감람유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외부에 상처가 생기면 감람유를 발랐습니다. 속이 불편해도 감람유를 먹었습니다. 길르앗의 유향이란 말이 성경에 나오는데, 바로 그것을 말했습니다. 가정에서 만든 이 원시적인 약은 양을 괴롭히는 파리나 옴에게 아주 특효약이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우리를 오염시키고 타락시키며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 요소는 대부분 우리 마음에서부터 생깁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심령을 병들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령이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에 보면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날마다 시시때때로 성령으로 가득 채우고 내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목자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양들은 온순한 것 같으면서도 자리다툼을 잘합니다. 내 자리에 다른 양이 오는 것을 봐주지 못합니다. 짐승들이 대개 자기 영역을 정해 놓고 다른 짐승의 침범을 막아냅니다. 그래서 양은 자기가 잡아 놓은 자리에 다른 양이 오면 머리로 밀어 버립니다. 그런데 양의 머리에 기름을 흠뻑 발라 주면 머리를 밀고 싸운다 해도 기름 때문에 미끄러워서 빗나가니까 양들이 싸울 의욕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인 우리 그리스도인의 형편도 그렇습니다. 교인끼리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인데 서로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도 생깁니다.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입니다.

가령 어느 분이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목사님의 지도를 받으며 가까이 하면, 먼저 있던 사람이 "저 사람 언제부터 우리 교회에 나와서 저렇게 설치지?" 하면서 받아 버립니다. 교회 역사가 긴 교회일수록 더욱 이런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만 안 계시면 "우리 가운데 누가 더 높으냐?" 하는 것 때문에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성령이 임하시면 화평이 무엇임을 알게 될 것이고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면 충돌과 싸움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될 때 화평과 기쁨, 인내와 관용의 마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전에 자기 주장만 고집했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사람과 부딪치고, 저 사람과 다투고, 자기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직도 그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흠뻑 바르지 못해서 그럽니다.

전에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제자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지요? 그 마음이 아주 강퍅했습니다. 날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기와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살라 버리게 하자고 예수님께 제의할 정도였습니다. 벼락같은 사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오순절 때 그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흠뻑 바르고 나니까, 성령 충만하니까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전에 그의 어리석은 주장의 동기가 되었던 모든 사소한 질시와 경쟁의 악의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삶의 잔이 만족하게 넘치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양 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도 가장 만족하게 사는 사람으로 알려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부족해하고 불만스러워하고 마음에 기쁨도 만족도 없이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산다면 그런 예수 믿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지식과 지혜를 소유하고 계시며 내 모든 일과 경영하는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알고 계신 분이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보살핌에 대해서 만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의 삶 전체를 의탁할 때 나의 잔은 모든 종류의 은혜로 가득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우리는 목자에게서 잊혀진 것으로 생각해서 실망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주님도 이 일에 있어서만은 실패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절대로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은 결코 부주의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실수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능력이 부족하신 분도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우리를 고난의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 처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간증처럼 하나님은 이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그만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가 있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잔이 넘치는 만족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잔은 선으로 가득 흘러 넘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가득 흘러 넘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흘러 넘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언제나 화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승리입니다.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으로 바르심으로 마귀의 파리와 옴에서 건져주시고, 서로 다투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나의 잔이 그리스도로 넘치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 하나 하나 위에 성령이 충만함으로 잔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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