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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지상명령 / 마 28:19 - 20 / 요 15:4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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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지상명령
성경 : 마 28 : 19 - 20 ,  요 15 : 4 - 16


1.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 직전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향해 주신 최후의 분부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지상명령입니다. 명령의 내용은 한마디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참된 힘은 교인의 숫자가 아니라 제자의 수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중심 과제인 제자 삼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 두가지를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를 주라'는 말씀과 관련된 복음의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새 계명인 '사랑'(신6:4, 레19:18)입니다.
2. "진리와 사랑"이 제자됨의 필수 요소임을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다시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옛말에 "아침에 도(道)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이 찾아 나서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위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여 주시는 길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인간에게 보여주신 길을 진리로 믿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했습니다.(요1:14) 진리의 본체로(요14:6) 오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길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고 하셨습니다. 제자됨의 출발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곧 믿음에서 비롯됩니다.(롬10:17) 여기 진리란 추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구체적인 인격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는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는 생명을 살리는 진리요,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을 풍성케 하는 진리요, 자유케 하는 온전한 진리입니다. 십자가의 진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되고 그 삶은 우리를 자유케 해 줍니다.(눅4:18)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는 진리는 두 가지 차원의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 으로부터의 자유" 이고, 다른 하나는 "....을 위한 자유" 입니다. 전자는 인간이 얽매고 있는 내적, 외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복음으로 받아드릴 때 죄와 죽음에서 오는 두려움으로부터, 그리고 사방으로 우겨삼을 당하는 현실적인 고통과 절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탄의 지배(속박)로부터 온전히 자유함을 얻습니다. 후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유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 자유는 예수의 제자에게 주어지는 값비싼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그의 저서 서문에서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속박한 모든 것(금욕, 편견, 독선, 권세욕 등)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신학자 캐니온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최소한 다섯 가지 속박들(죄, 사망, 고통, 절망, 사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제자의 삶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케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고전 3:7)
하나님께서 우리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선택하신 목적은 "과실을 맺기 위함"(요15:16)이라고 밝히면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과실'이란 사랑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가르쳐 지켜야 할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신6:4, 레19:18)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 역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고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주님께서 새 계명으로 주시는 "사랑"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즉, 이성간에 느끼는 연정(에로스)이나, 친구간의 우정(필리아)이나, 부모 자녀간의 오가는 사랑(스톨게)을 뛰어 넘어서 '아가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아가페는 독생자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몸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요3:16, 요일4:9-10)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먼저 다가 오셔서 부르신 사랑이요, 가장 값비싼 대가(독생자)를 치루시고 몸소 고통을 감수하신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3.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지상 명령 속에서 먼저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찾으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찾으시는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요3:17)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피해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베르쟈에프의 말대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도 크겠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그리움, 하나님의 사랑은 더 큽니다." 잃은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눅15:20)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마땅히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잃은 자를 찾았을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습3:17)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님의 3가지 비유가 소개되고 있는데 공통점은 "잃은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의 3가지 비유 속에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중심 메시지는 '찾았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에서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을 인해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15) 잃은 드라크마 비유에서 "이와 같이 죄인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되느니라"(눅15:9-10) 잃은 아들의 비유에서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얻었기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눅15:32)
4.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제자 되기 위해 응답해야 할 주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하라"는 명령입니다. "거한다"는 말은 "산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 받는 것으로 제자 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삶의 다이알을 예수님께 맞추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세 가지 우리가 지켜야 할 명령이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능력을 믿는다면 "내 안에 거하라"(요15:4)고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제자되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씀은 생명(요14:6)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의 관계에서 필수 요건인 '믿음'이 요구됩니다.(고후13:5)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고"(요6:5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겠다"(요6:56-57)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둘째, 주님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라"(요15:7)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믿음을 생성시키는 생명의 말씀이요(롬10:17), 지속적으로 생명을 강화하는 능력이 있고(히4:12),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엡5:26, 마5:8)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날마다 범사에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고(잠3:6) 우리의 생각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리할 때 우리는 진리 가운데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셋째, 주님은 제자의 삶을 위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고 말씀합니다. 말씀과 더불어 날마다 성령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질 때 성령께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갈 5:22)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예수님의 세가지 비유(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속에 공통분모인 "잃은 것"이란 바른위치(관계)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양은 주인의 울타리안에 있어야 하고 돈은 주인의 손이나 주머니안에 있어야 하고 그리고 아들은 마땅히 아버지의 집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관계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규정된 인간의 위치는 관계성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인간·자연만물과의 관계의 질서) 죄란 이들 관계의 단점을 의미하고 타락이란 관계의 단절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증언하는 구원이란 곧 단절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도로 찾는 관계의 회복이요 신앙생활이란 매일의 삶 속에서 삶의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인간, 자연 만물과의 관계에서 책임 있게 응답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넷째, 장신대 100주년기념 행사의 하나로 국제학술선교대회 강사로 참석하신 마펫박사께서 지난 수요일 채플에서 "선교"를 주제로 행한 설교중 그는 말하길 "선교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임을 강조했습니다. 세계선교역사를 살필 때 어떤때는 선교활동이 복음전도(구령사업)만 강조한 반면 사회적 관심을 소홀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선교 행위의 초점을 사회봉사에 두고 왕이 없는 왕국 건설을 주장하여 양쪽 다 통전적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선교를 위해 "진리와 사랑"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그는 강조했습니다. 다섯째,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면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진리)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로 말씀합니다. 교회를 하나의 유기체(몸)로 비유할 때 "진리와 사랑"은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에 해당됩니다. 두 다리(진리와 사랑)가 균형 있는 전진을 위해서는 항상 머리를 중심으로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mind)을 품으라" (빌2:5)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요 1:14). 모든 신성(진리, 사랑, 거룩)의 충만 예수안에 육체로 거하셨습니다. (골 2:9)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매있는 제자 형성을 위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상에 속죄의 제물로 주셨지만, 그의 공생애 사역의 대부분의 시간은 12제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형성에 자신의 삶을 투자했습니다. 예수께서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를 삼으로"는 지상 명령과 함께 이 과제 수행을 위해 성육신의 연장선상에서 당신의 몸을 남기시고 성령 강림과 때를 같이해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지상에 탄생시켰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한 몸의 지체로서 상호간의 관계와 삶을 나눔의 구조속에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고(요15:7),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함께 사랑 할 때(요 13:34-35)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제자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을 향해 증인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하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확인됩니다.
여섯째, 장로교의 창설자 칼뱅은 교회를 "모든 신도들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면서 교회란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그의 품안으로 모으시고 그들이 아직 미성년자요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어머니 같이 돌봄으로 다스리고 양육하고 이를 통해 신앙으로 이끌어 가는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간교육의 통로입니다. 칼뱅은 교회를 "학교"라 부를 정도로 교육의 기능을 교회의 기능을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로 이해했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신앙의 산실"이요,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의 다양한 신앙경험을 표현하고 생활화하여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꽃피우는 신앙-문화화 양육체입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육성하는 훈련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좋은 열매를 맺기에 앞서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사과나무는 사과열매를 맺고 사람은 사람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생명동산에 심기워진 나무의 지체들로서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기대하는 외적 열매(제자)를 맺기에 앞서 우리자신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들로 먼저 세움 받는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연습, 그리스도의 말씀안에 거하는 생활,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실천적 삶의 훈련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켰던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연습", "그리스도의 말씀안에 거하는 생활습관",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실천적 삶의 훈련"이 요구됩니다. 이같이 믿음의 주로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이 지속될 때 진리와 사랑이라는 두 다리가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좇아 튼튼하게 전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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