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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민족을 향한 주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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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태화 교수

8·15 광복절이 벌써 61주년 되었다. 우리 한민족의 해방이 반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게 되면서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이제 그 의미를 공고히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세계화,국제화 시대에 민족이란 개념이 과거 시대의 유산인 것처럼 또는 박물관에 진열될 전시물처럼 퇴색되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민족에게 부여된 위상은 작지 않다. 세계 열강 사이에서 동북아,나아가 환태평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등으로 국제평화에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자국민을 기아에 몰아넣으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한은 어떠한가. 화려한 경제발전의 그늘에는 양극화가,참여정부의 코드 뒤안길에서는 아마추어리즘적 실험과 난장(亂場)에 가까운 해프닝이 끊이질 않는다. 과연 61년된 광복의 연륜에 부끄럽지 않은 성장이요 성숙일까.

우리는 그동안 민족의 이름을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해 왔다. 민족이란 개념이 소위 착취를 당한 것이다. 이기적인 정권 창출과 유지를 위하여 민족을 팔아온 것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세계사에 엄청난 과오를 자행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나치는 게르만-아리안족의 영광을 회복한다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일본은 대일본제국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대동아전쟁을,유고슬라비아는 해체되는 과정에서 민족청소란 명분으로 가공할 살상과 민족전쟁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죽음의 카니발이었던 것이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 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점검해야 할 때이다. 역사 안으로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국토에 거하는 한민족에게 어떤 이상을 보여주셨는지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안정과 성장,변화와 개혁,상생과 평화,참여와 통합 등 멋진 슬로건들을 만났었다. 잠시 행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과 지속적인 평화는 어떻게 오는가 다시 물어야 한다. 방법은 한 가지. 복음의 근원에 충실해야 한다. 래디컬(Radical)해져야 한다. 우리 자신을 쳐서 진리에 복종시키고 민족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히4:12)시는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폭로시켜야 한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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