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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주일] 종교개혁에 동참하십시오 / 마 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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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에 동참하십시오
마 21:12~17

 
우리는 일 년 동안 52주일을 지킵니다. 어느 주일이 더 중하고 어느 주일은 덜 중한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절기주일을 맞이하게 되면 특별한 정성을 들여서 의상을 갖추고 또
헌금을 드리면서 행사를 위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10월 마지막 주일에 세계 만방 교회가 기념하고 또 지키는 종교개혁
주일이야말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개혁 주일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교회의 정체성과 권위를 주
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로 회복시킨 일에 대하여 기념하는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종교 개혁이란 독일의 한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Wittenberg) 성당 대문에 로마 카톨릭의 부패에 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함으로 인
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그 중에도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면죄부(免罪符)라고 하는
속죄표(贖罪標) 판매행위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16세기는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회복하는 뜻 깊은 세
대였고 교회 역사의 관점에서는 신교(新敎)로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다시 제 2의 종교 개혁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점점
증폭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가 부패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시점에서 종교 개혁 484주년을 맞는 오늘 저는 우리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종교 개혁자 루터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 의식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1. 종교개혁주일이란 무엇입니까?

종교개혁(宗敎改革) 주일이란 지금으로부터 484년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루터에
의해 로마 카톨릭교가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실을 지적한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즉 루터가 비텐베르그(Wittenberg) 대성당의 대문에다 로마 카톨릭교의 부당한 일 95개 조
항을 게시하면서 이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기하였습니다. 당시 독일 비텐베르그 대학에는 매
금요일마다 신학자들이 모여 신학적 문제에 토의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1517년 10월 31일 정
오 경 젊은 수도사 루터는 또 한 사람의 수도사를 동반하고 비텐베르그 시의 대성당 정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건물은 대학 부속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던 고로 교수나 학생들의 게시판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거기에 도착한 루터는 인쇄소에서 가지고 온 라틴어로 쓰여진 한 문서를 꺼내어 나
무로 만든 문짝 위에 못질을 하여 달았습니다. 그 글 서문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
다.
"진리를 밝히고 싶은 열망에서 문학사요 신학사이며 신부인 루터의 사회로 다음의 논제들이
비텐베르그에서 토의되겠습니다. 이 구술 토의에 참석할 수 없는 분은 서신으로라도 의견을
전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바로 그 공개 토론 내용의 문서가 저 유명한 95개 조항으로서 이 문서가 공개된 지 2주만에
전 독일에 영성회복을 위한 신앙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약 4주만에 전 구라파를
변화시키고 말았는데 그 중심 내용은,
①속죄표(면죄부)는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없고 ②속죄표는 죄의 벌을 면할 수 없고 ③속죄
표는 연옥(煉獄)에 있는 영혼을 구할 수 없고 ④믿음으로 회개한 자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서 용서를 받았다 라고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서 당시 로마 카톨릭교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부패와 전통과 관습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노출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주일이란 오늘의 교회에서는 성탄절과 부활절 다음으로 매우 뜻깊고 중
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교회사적인 면에서 약 천 년 동안에 걸쳐 내려온 중세의
영적 암흑 시대가 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부패한 로마 카톨릭교의 교권 탄압으로부터 해방된 신앙의 사람들이 복음의 광명
을 되찾고 자유를 회복한 이 날에 교황 제도와 교회 의식과 면죄부 등 복음에서 이탈된 일
에 대하여 저항하기 위한 신학적 교리를 확립하는 날이었습니다.

2.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로마 카톨릭교의 상황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그 무서운 핍박을 마감하고 로마의 국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황제도 이제는 신이 아니라 교인이요 대신들도 교인이요
평민들도 동등한 교인이 되었으며 교회 예배당은 크게 건축되었고 기독교 문화도 활발하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기독교 신앙에 위기가 도래하기 시작했으니 이는 기독
교가 국교로 자리잡기 전 박해시대에 사자 밥이 되면서도 손에 손을 잡고 찬송을 부르던 그
영성이 점점 사라지고 교권과 외식과 세상의 물욕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교회가 제도화하고 권력화하면서 영적인 생명력은 메말라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현
상들이 중세시대로 접어들수록 심화되었는데 이러한 영적 기아 상태에 대하여 반발심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수도원 운동입니다.
그러나 영성을 강조하고 청빈과 고행과 복종의 삶을 실천하자는 이 운동이 너무 신비주의에
치우치다 보니 교권과 제도적으로 굳어 버린 교회를 비판만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비판은 또 하나의 악순환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만 교회의 직제와 질서까지
도 다 부정해 버리는 양상을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있어서 질서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목사와 교우들 사이에도 질서가 있
어야 하고 교우들 간에도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무질서한 교회는 추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바람직한 교회는 아무리 신비한 은혜를 많이 체
험했더라도 영성과 질서가 올바르게 조화를 이루는 교회임을 기억하십시오.

특히 중세 시대에 들어오면서 로마 가톨릭교는 근본적인 복음에서 멀리 떠나 교황의 절대무
오설과 성직자의 특권 그리고 교회전통 및 선행이 구원의 조건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아래서 교황 레오 10세가 자기 당대의 사업으로서 백년이 넘게 진행 된 거대한
베드로 대성당(ST. Peter's)의 완공을 이루고자 그 막대한 공사비 충당의 일환으로서 알베
르트(Albert of Brandenburg. 1490~ 1545) 대주교와 물질적인 이권 거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교황과 알베르토 사이에서 나온 것이 바로 기상천외한 속죄표 즉 그 유명한 일명 면죄
부 판매인데 두 사람이 이 속죄표 판매를 위한 일에 의견일치를 하게 된 것은 서로의 이해
관계가 맞아 뜨러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알베르트 역시 모인츠의 대주교직을 사는데 소용된 빛을 갚아야만 하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리하여 알베르트는 이 속죄표의 판매를 청부 맡아서 그 이익금을 교황과 반분하
기로 하고 도미니크 출신의 수도사로서 웅변으로 유명한 테첼(Tetzel, Johann.1450~1519)을
고용하여 신학박사의 학위를 주고는 가는 곳마다 면죄부에 대하여 웅변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테첼은 가는 곳마다 크게 외치기를 속죄표(면죄부)를 사면 살아 있는 사람은 즉시 죄
를 용서받을 것이요 심지어 부모나 형제 또한 조상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었을 때는 연옥
(煉獄)에 가 있는데 그러한 자를 위하여도 그 자녀나 가족들이 속죄표를 사기만 하면 그 돈
(은화)이 헌금함 속에 떨어져 소리가 땡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지옥 대기실에서 곧 천국으
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러자 이 유창한 웅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 웅변에 미혹되어 너도나도 거금을 들여서
속죄표를 사게 되었는데 이는 속죄표를 사기만 하면 내 지은 죄가 사함을 받아 없어진다는
일종의 심리적 면죄부(免罪符)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비 성경적이지요.
그 외에도 당시 그 성의 교회 안에는 화려한 금과 은 등의 그릇으로 꽉 차 있었는데 로마
교황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행 03:06) 라고
했는데 우리에게는 은과 금이 많다 라고 하면서 교만한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아캠피스는 말하기를 "로마 카톨릭은 은과 금은 많지만 예수의 이름이 없다"
라고 하면서 맞서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교회의 타락을 말해 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
까?

그들은 성직을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에 당시에 신부들 중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돈으로 대주교직을 샀으나 죽어서야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교회의 타락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상(聖像) 숭배 행위도 공공연하게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성자들을 숭배하고 유물 숭배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가령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뽑아 왔다는 볏 집, 예수님께서 달려 돌아가
신 십자가에서 짤라 왔다는 나무 조각, 성자의 엄지손가락, 예수님께서 쓰셨던 가시 면류관,
세례 요한의 머리카락 등과 같은 유물을 숭배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들
을 소지하면 병도 고침 받고 은혜도 것이야말로 얼마나 미신적인 일입니까? 

3. 종교개혁자 루터의 인적사항과 그 신앙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483년 11월 10일에 독일 북부의 아이스레벤
(Eisleben)에서 광부였던 한스와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 마가레트 사이에서 태어나 1546년
02월 18일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성실한 부인 가트린과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
었습니다.
루터는 어린 시절을 만스펠드(Mansfeld)에서 보내면서 1497년까지 농촌 학교에서 공부하였
는데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강한 교육열을 배경으로 18세인
1501년에 에르푸르트(Erfurt: 유명론의 보루로 명성을 떨치던) 대학에 들어가 법률학을 전공
하고 1502년에 그 곳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3년 뒤에는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 때 루터의 아버지는 그에게 비싼
법령집(Corpus iuris)을 졸업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부와 권세와 영화가 보장된 법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가
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루터 역시 그런 꿈에 부풀어 있었던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소
원대로 세상의 죄악도 다스리고 부귀영화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505년 7월 2일 어느날 친구와 함께 고향집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
가 치면서 소낙비를 만나게 되어 비를 피하러 나무 밑에 들어갔다가 곁에 섰던 친구가 그만
벼락에 맞아 숯덩어리처럼 변하여 죽는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이때 루터는 친구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며
기도하기를 "하나님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법학을 그만두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겠
습니다 라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어거스틴파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가족들은 모두가 놀랐습니다. 왜냐
하면 법관의 푸른 꿈을 가지고 모두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1507년에 신부 안수를 받게 되고 1512년에 신학 박사가 된 그는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주석을 집필하면서 시편(1513~15) 로마서(1515~16) 갈라디아서(1516~17) 히브리서(1517~18)
그리고 1519년에 다시 시편 주석을 썼습니다.
이때는 벌써 루터의 마음속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을 때였는데 그 시절에 루터가 영의 눈
을 뜨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율법만 행사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뿐 아니라 자신이 보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자로서 일할 수 있도록 루터를 일깨운 말씀은 로마서 01장 17절이었습니
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
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루터는 이 성경을 로마 여행 중에 깨달았는데 151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수도사들의
순례 여행 코스 중에 하나가 성 계단 성당(Scala Santa) 내부에 "빌라도의 계단, 또는 거룩
한 계단" 이라는 이름의 28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그 계단에는 유리 조각을 깔아 놓
고 무릎으로 기어올라갔다가 무릎으로 내려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왜 무릎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겁니까? 그렇게 함으로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시하고
구원받고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그릇된 고행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돌계단은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러 밟고 올라가신
계단으로서 죄인 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다고 여겨 그 계단을 로마로 옮겨와 그대로 축조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예배당을 지어 보존해 오고 있는 것으로서 지금도 수많은 순례
객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지한 행동의 소산이 아니겠습니
까?

그래서 루터도 로마를 방문하여 스칼라 산타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면서 고통스런
고행을 체험하고 있는데 갑자기 로마서 01장 17절 성경이 떠오르면서 자신을 지배하는 것입
니다.
루터는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이렇게 고행을 하고
자기 노력으로 의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는 벌떡 일어나서 그 계단을 뛰어 내려왔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515년 11월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던 중 이 구절의 참 뜻이 무엇인지
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록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만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시다 는 그런 의미인 줄로
생각하였다....
나는 주야로 생각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은혜와 긍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
는 의(예수=복음)를 의미하는 것이요 또 우리가 그 의를 믿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의로 말
미암아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음! 곧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의
구원을 받는 것을 말한다......내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았으며
천국 문이 내 앞에 활짝 열려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이 진리를 비텐베르그의 어거스틴 수도원 탑 안에서 깨닫게 되었음으로 후세 사람들
은 이것을 가리켜 "탑의 경험" 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루터는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교황청에서 시키는 대로 법령과 전통에 매여 그것들
이 제일 옳은 줄 알고 그것들을 지키려고 애썼으며 내가 멸망 받게 되는 것은 이 육체 때문
이라고 생각해서 내 몸을 괴롭게 하고 학대하고 증오하였다고 루터가 1531년 쓴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루터로 하여금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들도록 하였던 것은 능력의 말씀이 바로 로
마서 01장 17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빛이 로마의 루터를 살리고 독일과 구라파와 세계를 살리고 은총의 세계로 인도
하였으며 행함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 천년이 넘는 로마 카톨릭교의 이단 사상에서 모
든 영혼을 해방시킨 자유의 복음이었습니다.

4.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루터는 어떠한 일을 겪었습니까?

당시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는 데는 비록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모든 일들이 그렇게 수
월하다거나 평탄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루터에게 주위의 환경이 호
전적으로 되어 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로마 카톨릭교의 권세는 말로 형언할 수 없
을 만큼 거대하였으며 이에 따라 루터의 일상적인 생활은 한시라도 숨을 죽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로 인해 일어난 종교개혁의 발단은 로마 카톨릭교에서는 처음에는 철모르는 어
린 신부의 생각 없는 장난인 줄 알고 가볍게 여겼습니다만 그러나 그 파문은 겉잡을 수가
없이 파급되어 나갔습니다.
이미 루터로 인해 면죄부 판매는 망쳐졌고 그들의 정체가 들어 나기 시작하자 다음 해인
1518년 7월 당황한 교황은 루터를 소환하기에 이르렀고 추기경인 카제타누스(Cajetanus)를
시켜 루터의 주장을 철회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루터의 마음을 돌리려고 회유 정책을 쓰기도 했는데 1518년 12월에 교황은 그
의 시종 밀티쯔(Miltitz)를 시켜 루터에게 황금의 장미(Golden Rose)와 교황의 교서를 보내
기도 했습니다.
황금의 장미는 교황에 의한 축복으로 알고 누구나 받기를 바라는 명예인데 그러나 불의를
향해 싸움을 시작한 루터는 이러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신자들은 다 복음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교황 권이 일반 사람들 보다 우월할 수는 없
으며 일반 성도들도 다 제사장이기 때문에 교황만 성경 해석 권이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라고 지적하면서 종교 개혁의 싸움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520년 6월 15일 루터에게 파문장이 발행되었고 국회를 통해서 화형을 시키도록 압
력이 가해졌습니다. 이때 로마 제국의 황제인 찰스 5세가 제국회의를 소집하고 루터를 소환
했습니다.
그리고 1921년 4월 17일 독일의 보름스(Worms)에서 소집되는 국회는 루터에게 출두 할 것
을 명했습니다. 이때 루터의 친구들이 그를 만류하자 루터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보름스의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가리라" 하면서 국회로 들어갈 때에 100여
명의 기병들이 그를 둘러 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스투트 가르트라고 하는 곳에서 그가
재판정에 서게 되었는데 그가 거기서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Oh, God! Here I stand I have no choice. 하나님 나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선택이 없습
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의 용기요 정신입니다. 그때 루터는 국민들로부터 황제 이상의 환영
을 받았으며 국민의 ¾이 지지했는데 이것은 교황청으로부터 착취 받고 억압받은 민중들의
울분을 대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1529년 로마제국 황제 카알 5세가 독일 제후국들의 종교적 분열을 저지하고자 전 제후
국들에게 로마 카톨릭 식으로 예배를 드릴 것을 강요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루터의 종교개혁은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이때 루터는 독일 개혁주의
제후국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 싸울 것을 독려하기 위하여 불후의 찬송가를 시편 46
편의 내용에 기초하여 만들었습니다.


384  [시 46:0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①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②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
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③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

루터의 모습은 마치 요단강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를 외치는 세례 요한과도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마 03:0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
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0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0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
리라.

루터는 마치 세례 요한과도 같이 외로운 투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행위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 아래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루터의 외친 말씀 중에 유명한 세 가지가 있
습니다.
①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라면 천국이라도 살 수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
면 비록 그곳이 지옥이라도 살아갈 자신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②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패한 날이다. 나는 평소에 아침마다 두
시간을 기도하나 그러나 일이 많고 바쁠 때에는 세 시간 이상의 기도를 갖는다 라고 했습니
다. 
③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목회자가 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고 말함으로써 찬양이 얼마
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개혁을 외치는데 개혁되는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개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개혁이 없다는 것은 신앙의 문제로서 이것은 하나님 앞에 정
직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제 마지막 말씀으로서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 작업을 통
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①예수님은 성전을 예배드리는 곳으로 청결케 하는 개혁을 하셨습니다.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
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②예수님은 성전을 기도하는 곳으로 청결케 하는 개혁을 하셨습니다.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
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③예수님은 성전을 축복 받는 곳으로 청결케 하는 개혁을 하셨습니다.
14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루터는 종교 개혁의 3대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공하였습니다.
①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②오직 믿음으로(Sola Fide) ③오직 은혜(Sola Gratia)로입
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주장은 우리의 신앙의 표준이 성경뿐이니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구
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지며 모든 신자는 다 제사장이라는 만인 제사장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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