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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의 바이러스를 믿음으로 퇴치하라 / 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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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의 바이러스를 믿음으로 퇴치하라
마태복음6장 25-34


  노오만 빈센트 피일 박사가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뉴욕 길거리에서 한 남자가 피일 박사님에게 "목사님 저는 큰 문제로 염려에 싸여 있습니다" 라고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피일 박사가 대답하기를, "그래요? 여기서 가까운 곳에 1만 5천 명의 인구가 있으나 그 중 한 사람도 문제 거리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염려에 쌓인 그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게 걱정이 없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도 그런 곳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피일 박사가 대답했습니다. "걱정 없는 곳이 한 곳 있는 데 가시겠습니까?" "어디인데요?" "이 넘어 공동묘지입니다." 근심과 걱정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염려는 무엇입니까? 염려란 "마음이 나뉜다"라는 의미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것이 염려하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찬 상태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고 있는데, 많은 무리들의 얼굴 색이 별로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25절에서 34절까지를 보면서 "염려"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가를 보십시오. 6번이나 염려가 나옵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오늘의 말씀 제목을 한 번 따라 해 볼까요? "염려의 바이러스를 믿음으로 퇴치하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염려의 바이러스에 걸려 있습니다. 삶의 대부분은 염려거리 입니다. 대학생들을 설문조사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서 불안과 걱정으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불안과 걱정으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인생을 감격하며 살 수 있을까요? 혹 염려 거리가 있을 때 어떻게 염려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며 살 수 있을까요?

  첫째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염려하는가? 입니다.

  본문 25절을 보실까요?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사람들은 무엇을 염려합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잘 입으니까 입을 것을 가지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상황은 다릅니다. 오늘날처럼 이렇게 좋은 옷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잘 먹고 있지만, 당시 예루살렘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킨 것을 보면, 얼마나 먹을 양식이 없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 땅에는 물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은 포도나무를 많이 심고 포도주스를 많이 만들어 마십니다. 마시는 물이 부족해서, 물이 풍족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님은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날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현대인들의 정신적으로 걸리기 쉬운 병에 'Anticipatory anxiety'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기 불안'이라고 하는 병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를 미리 생각하면서 병이 드는 것입니다. 지금 병이 든 것이 아닙니다. 지레 겁을 먹으면서 불안에 빠져버린 병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제명을 살지 못하고 미리 죽는다고 합니다.

  본문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해서 키가 삼 사십㎝ 클 수 있습니까? 불가능 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합니다. 키가 얼마나 작았으면 염려할까요? 짧은 다리를 뭐라고 합니까? 숏다리, 숏다리보 짧은 다리는? 장롱다리입니다. 장롱다리보다 짧은 다리는? 리모콘 다리입니다.(웃음)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쓸데없이 염려하는 것이 많습니다. 사람이 공상에 빠지면 확실치 않는 일로, 또는 쓸데없는 일로 인하여 염려하게 됩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매우 나쁜 영향을 줍니다.

  염려는 치사율이 높은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전장에서 숨진 젊은이만 30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남편이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뒤 염려하다가 심장마비나 기타 다른 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전쟁으로 숨진 30만 보다 훨씬 많은 1백만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염려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염려해서는 안될 것을 가지고 많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입니다. 세상의 재리나 욕심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습니다. 돈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육신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이방인들의 것이라고(마6:32)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염려해서 문제와 근심이 해결될 것 같으면 얼마든지 염려하십시오. 그러나 염려로 해결될 문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이방인들이 구하는 세상의 염려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지 마십시오. 이방인들이 구하는 세상 것들로 기도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염려로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기지 마십시오.

  두 번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염려는 아무 쓸데가 없다. 무익하니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25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권면이 아니라,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염려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불신입니다.

  선진국에서 자살의 이유가 가장 많은 것은 염려 때문입니다. 작은 문제를 묵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면 염려하게 되고 염려가 심하면 자살합니다.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2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아무 소득이 없는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생산성이 없습니다. 염려는 열매가 없습니다. 염려의 열매는 뼈만 상할 뿐입니다.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 나는 그분들이 걱정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으로 하면 또 모르겠어요. "자신을 염려하는 모임" 이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결혼을 걱정하는 모임" 걱정됩니다. 걱정해서 장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해서 키가 큽니까? 얼굴이 예뻐집니까? 어떤 사람은 미래 일을 가불해서 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 것까지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걱정됩니다.

  염려는 성격 탓도 있습니다. 저희 집에 큰애가 중학교 1학년 딸이 있습니다. 지 생일이라고 외식을 나갔습니다. 큰 딸은 식당가도 걱정이 많아요, 아빠 돈 있어? 둘째 놈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아빠 돈줘, 걱정이 없어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걱정도 팔자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을 일삼아 하는 사람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염려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염려한다는 것은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혹시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시집 못 가면 어쩌나, 혹시 실업자가 되면 어떡하나? 혹시 노총각으로 늙으면 어떡하나? 이런 식으로 아직도 오지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가득 채우는 것이 염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왜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인생에 도움 될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익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염려하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아멘?(아멘)

  세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염려의 바이러스를 어떻게 퇴치할 수 있을까요?

  염려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길은 한마디입니다. "하나님이 아심을 믿고 기도하라"

  염려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아심을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문제를 아신다. 믿으십니까? (아멘)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나리" 다함께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은 아신다.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26절에 어떻게 하십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먹이신다. 믿습니까?

  34절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내일 것까지 가불해서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일 일은 주님이 아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 거리가 있어서 기도할 때 어쩔 때는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먼저 다가와 염려가 되는 때도 있습니다. 기도도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이 문제를 다 알고 계시지' 이런 확신이 올 때 이미 기도 응답은 반절은 받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평온이 찾아오고 기도가 다시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의 문제를 아시는 하나님, 내가 문제를 알고 있는 것보다도 더 정확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 문제 해결의 방법과 결과까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에게는 그 하나님이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워주십니다.

  염려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길은 하나님이 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분 3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염려합니까? 믿음이 적으니까. 내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고, 공주의 새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거든, 너희들은 왜 염려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를 궁핍하게 하거나 굼기시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십니다.

  마르틴 루터가 사랑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약한 것과 근심하는 것은 문제가 크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입니다. 사건이 커서 걱정과 근심으로 염려가 많은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문제는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염려는 죄가 됩니다. 염려는 하나의 죄악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지 못하는 죄가 됩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죄입니다.

  왜 염려 한다구요? 한번 따라 합니다.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세상은 문제 거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문제로 근심과 걱정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사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갖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더욱이 염려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염려 대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를 놓고 근심과 걱정만 하면 절망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기대가 생깁니다. 걱정을 기도하면 비전이 되고, 근심을 기도하면 소망이 됩니다. 염려를 기도하면 확신이 됩니다.

  저의 이전에 봉사하던 교회에 유명도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구역예배를 드리는데 자녀양육 문제를 서로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든 보험을 다 취소해 버렸답니다. 보험을 들어놨더니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이 약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보험은 오늘날 사회에서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보험을 믿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험을 다 해제하고 기도를 더하기로 했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준 아들 딸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맡기고 기도하고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이 믿음 갖고 해제해 버리고 기도를 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집에 가서 다 보험해제하지 마십시오. 좌우지간, 제가 배웠어요, 자녀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 대신 기도하십시오.

  생에 대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십시오. 모든 문제의 해결자 이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와 근심을 맡기십시오. 맡겼으면 하나님께 문제의 과정도 맡기고 결과도 맡기십시오,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달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맡기십시오, 기도한다는 것은 맡긴다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김으로 염려가 기도로 바뀌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맺는 말>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도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계십니까? 무슨 문제로 걱정하고 계십니까? 무엇 때문에 염려하고 있습니까? 이미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의 앞 길까지 알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 문제와 사건을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제 그 하나님을 믿고 새롭게 시작해 보세요. 기도의 사람, 죠지 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이 시작되는 순간 염려는 끝나고, 염려가 시작되는 순간 신앙이 끝이 난다" 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염려의 종지부를 찍고 신앙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문제와 걱정 앞에서 신앙의 시작은 기도의 시작입니다. 나를 구속하셨고, 지금까지 내 생을 주관해오신 신실하신 그 하나님께 염려 대신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염려해야 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기도하라고 주신 기회이지 염려하라고 주신 기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지 염려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걱정 대신 믿을 때입니다. 염려 대신 기도할 때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 7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주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우리의 염려의 문제를 기도하면, 이젠 그것은 우리의 염려 거리가 아니요, 하나님이 해결해야하실 과제가 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 삶의 모든 부분까지 속속히 알고 계신 그 하나님께 내 문제를 전폭적으로 맡기고, 이제부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놀랍게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이제 내 마음과 입술에서 염려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염려가 비전과 꿈과 소망으로 바뀌어지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염려의 바이러스를 믿음으로 완전히 퇴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과 기도>

찬송가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너를 지키리

  나에게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놓고 이 염려 대신에 기도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만 주님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근심과 걱정의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기도하십시오. 먼저 문제를 놓고 염려했던 것을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내 문제를 알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문제를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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