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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일생 / 대하 3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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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도의 일생
성  경 :  대하32:20-33

우리의 일생을 A4 용지 한 장 정도로 요약해서 정리한다면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살아서 유서를 쓴다거나 자기의 장례식장에 사용할 조사를 자기가 직접 써본다고 하면 우리의 남은 생애에 대한 애착심이나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인간관계 훈련을 시키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살아서 유서를 쓴다든지, 자기의 조사를 쓴다든지, 아니면 비문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도 어차피 죽을 것이니 그런 것을 쓴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은 더욱 없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는 조사도 없고 비문도 없는 죽음이 하도 많기 때문에 지금 자기가 쓴 조사 정도만 다른 사람이 써 준다고 하면 그래도 중간치의 삶은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오, 성홍모며.  그대는 이제 갔는가!  그렇게도 이 세상이 그대를 필요로 하였고, 정성스럽게 살더니..... 지난날 그대를 추억하며 간단한 조사에 임하노라.  그대는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아들이었고,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였으며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였으며, 참으로 가까이 두고 싶은 친구였노라"  이렇게 썼다고 해보세요, 나는 과연 효성을 다한 자식이었고, 아내에게 좋은 남편으로 기억되며, 자식들에게도 두고두고 추모할 수 있는 아버지였으며, 친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반성해볼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대는 사회인으로 성실하였으며,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당신을 따를 사람이 없었고, 그대는 특별히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의 지도자로 모든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그대만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받을 사람이었구려" 구구절절이 이런 귀한 말씀으로 조사를 쓸 것이며, 비문에 남겨줄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5월초에 구약 성경을 읽어가면서 한 사람 히스기야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의 뒤를 이어 남왕국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아주 나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스라는 왕은 바알의 우상을 섬기고 흰놈의 골짜기에서 분향하였으며 이방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자식을 불에 사르는 악행을 범하였습니다.  산당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허용하였고, 작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 드리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아하스 당시에 아람나라 즉 시리아가 쳐들어와서 크게 패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쳐들어와서 유다에서 하루동안 용사 십이만 명을 죽이고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습니다.  20만명을 포로로 잡아가지고 가는데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가로막은 덕분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에돔의 족속이 쳐들어와서 수많은 백성을 사로잡아갔으며,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였고, 앗수르 제국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물리치고, 에돔을 물리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제국은 오히려 유다를 무너뜨리고 세계 대제국을 건설하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해도 너무한 아주 나쁜 왕이 바로 아하스였습니다.  아람 나라의 신을 섬기고, 아람의 신전을 본 따서 제단을 만들고, 예루살렘 구석구석마다 이방 제단을 쌓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형편없는 왕이 세상을 떠날 때 백성들은 그를 예루살렘에는 장사를 지냈지만, 왕들의 묘실에는 들이지 않았습니다.  왕이면서도 왕의 묘실에 장사지내지 못한 사람, 인생을 실패하고, 왕으로서도 실패한 사람입니다. 

이런 왕에게 히스기야라는 걸출한 아들이 나왔습니다.  그는 25살에 왕위에 올랐는데 어머니의 이름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였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격려하면서 우상 숭배하던 백성들의 신앙을 성전과 제사중심의 신앙으로 되돌려놓았습니다. 아버지 아하스 때에 세운 성전의 모든 이방적인 잔재를 다 깨끗하게 치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성전에 나아가면서 제사드리는 것을 힘썼습니다.  그동안 지키지 않은 유월절을 국가적으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을 위하여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밭의 소산을 드리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당시 국제 정서는 유아에게 매우 불리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호세아왕 9년, 남왕국 히스기야왕 제 6년, 주전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당하였으며, 앗수르 군대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남왕국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밖에 흐르는 모든 물 근원을 막아 버리고, 터널을 파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성밖에 있던 기혼샘은 수량이 풍부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성 밖에 있다는 것으로 이 샘의 입구를 막아버리고 성 안으로 긴 터널을 파서 물을 끌어들였는데 성 안에 이르는데는 533m의 길이였습니다. 이 터널을 S자 형으로 만들어졌는데 일설에 의하면 다윗왕가의 무덤을 피하기 위하여 그랬다는 설도 있고, 이미 바위의 균열을 따라 조금씩 물이 흐르는 것을 따라 파다보니 굽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측량술도 대단하였다고 봅니다.  양쪽에서 파고 들어갔는데 중간에서 서로 만났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안에 있는 못이 실로암 못을 만든 것입니다.

앗수르 제국의 왕 산헤립은 히스기야 쯤이야 하고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히스기야와 백성들 간에 이간질하면서 항복을 유도하였습니다.  산혜립은 편지를 써서 히스기야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비방하며 장군을 시켜서 소리소리 지르며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히스기야 왕은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당시 앗수르 군대는 18만5천명이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왕만 남겨놓고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습니다. 

하루아침에 18만5천명이 송장이 되었습니다. 왕이 자기의 고국으로 돌아갈 때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산혜립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유다가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구원받은 것처럼 자기도 자기 신에게 빌어보자고 하였는데 그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들에게 칼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참으로 훌륭한 성품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도 좋았지만, 회개하면서 마지막도 좋았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다 살고 우리의 지나온 과거를 정리하면서 어떠한 신앙과 인격으로 살았다고 정리해야만 할 것입니다. 

1.  히스기야 왕의 생애는 기도하면서 보냈습니다.  (20-23)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과 함께 기도하였고, 백성들을 이끌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보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국가적인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앗수르의 강한 군대 앞에 자기의 힘이 나약함을 알 때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내 가정은 끝났다, 내 사업을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 내 인생을 끝났다'고 할 때에 기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한 기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혜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면으로 보호"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린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할 때 얼마나 경사스런 일입니까?  그러나 아이를 낳은 것도 중요하지만, 보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린 핏덩이를 두고 버린다면 낳지 아니한 것이 훨씬 좋은 일입니다.  우리 사람은 어머니의 따뜻한 보호 속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마치 육지와 같이 건넜습니다.  그리고 나서 광야를 지나야 했는데, 더욱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 보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힘입었다고 하는 것은 더욱 귀한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힘입어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이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23절입니다.
(대하32: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자, 여기에 보면 '존귀하게 되었더라', '존대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웃의 열강들이 히스기야 왕을 깔보지 못하게 하나님은 그를 존귀하여 만드셨습니다.  앗수르 군대라고 하면 잔인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 수가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모래와 같은 수가 쳐들어 왔습니다.  지금도 약 20만명의 사람을 풀어놓아 보세요, 대단한 수입니다.  그런데 전에는 군대의 수가 많은 앗수르가 존귀하게 보였는데, 아닙니다.  열국의 어떤 왕보다 히스기야를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도함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하)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니까 하나님이 그를 높이 들어 사용하시는데 하나님이 존귀한 자리에 세워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렇습니다.  "된다, 안된다" 토를 달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가는 곳마다 존귀하게 보이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생애를 살면 이런 은총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2.  히스기야는 회개하면서 살았습니다. (24-26)

히스기야도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도 귀한 신앙이 있는가 하면 본받아서는 안 되는 좋지 못한 성품도 있었습니다.  초지일관하여 평생 잘 믿으면 얼만 좋을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조금만 점검해보면 회개해야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24절입니다.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매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찾아와서 "당신 죽을 터이니, 가족들에게 유언이나 하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왕위를 이어 줄 왕자도 없었습니다. 나라는 앗수르의 침입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는 선지자의 말을 듣자 말자 얼굴을 벽을 향하여 돌이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는 심한 통곡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에 이사야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증거로 그의 아버지 때에 만든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는 뒤로 물러가는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교만하였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당연히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데, 보답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왕 한 사람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26절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그래도 히스기야는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잘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입니까? 

여러분, 은혜는 감사함으로 흘러 넘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4: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설교 듣는 심정으로 회의를 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 아파트 35평 사는 사람과 25평 사는 사람을 한 구역으로 묶어주면 35평 사는 사람이 25평 사는 집에 예배드리러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좀 넓은 곳에 산다는 교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7-80평 아파트에 살면 기고만장합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은 좀 가졌다고 교만해지고, 조금 배웠다고 교만해지고, 상식수준이지만 좀 아는 것이 많다고 교만합니다.  지식의 교만, 소유로 인한 교만, 조금 얼굴이 균형이 잡히고, 예쁘다는 교만이 있습니다. 

저는 부목사 시절에 모시고 있던 목사님이 "믿음의 교만 믿음의 교만"그렇게 말씀하시기에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음의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교만한 교인은 한 3년 믿었다고 1년 되신 사람을 무시하고 , 한 3대를 걸쳐 믿었다고 10년 정도 믿은 사람을 우습게 알고, 그런 것이 믿음의 교만입니다.  여집사 때에는 겸손하더니, 권사가 되면서 교만해진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안수집사 때에는 겸손하더니 장로되더니 교만해졌다는 말을 절대로 들어서는 장로 안되느니만 못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마음의 문을 열고 교인들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주려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더니 앉아 있기에 얼굴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한 여집사가 겸손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더라고 합니다.  이런 자리여서 그러려니, 접어주고 들어주고 싶어도 사람 잘못 본 것 같아서 앞으로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 성실한 사람 같아서 두고두고 오래 같이 있으려고 했는데, 믿음의 교만이 꽉 들어 있어 큰 걱정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요, 너나 할 것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로 넘길 수 없습니다.  옛날 그렇게 기도 잘 하던 히스기야가 교만해졌다고 하면 우리는 더 할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만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이끌고 함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지고 있을 때 그는 문제의 해결은 자기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잘못을 인정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3.  히스기야는 일하기 위하여 살았고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27-31)

왕으로 히스기야는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경제를 활성화하였습니다.  전쟁도 예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계획하는 일마다 형통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내가 앞으로 15년만 더 산다는 것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기와 죽음의 거리는 15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무슨 일이든지 계획성 있게 규모 있게 시간을 사용하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4.  히스기야는 선한 일을 추구하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32-33)

32절 말씀에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선한 업적이 기록되어야지, 악한 일들이 기록된다고 하면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 기록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의 선한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면 하늘 나라에도 기록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와 이사야서에 그의 자세한 업적이 기록되어 있으니, 아주 훌륭한 생애를 살아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언제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선한 사람이 될 때에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15년을 더 살고 죽었습니다.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았을 때에도 중요하지만, 죽은 다음에 어떻게 기록되고 어떤 모습으로 추모되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대개 죽은 다음에는 좋게 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히스기야는 아주 최고의 존경으로 그를 높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모두 얼마 남지 않은 생애지만,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기도하면서, 더욱 회개의 기도로, 그리고 할 일을 찾아하는 삶으로, 모든 일에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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