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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눅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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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설교본문 : 누가복음 13장 24절-30절


기억에서 아득합니다 만, 우리는 옛 날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름답게 생각되던 소설이었습니다. 알리사와 쥴리엣 두 자매가 사촌 동생 제롬을 사랑하면서 쥴리엣은 언니에게 사랑을 양보하고, 언니는 현세적 욕구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지향하며 병으로 죽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이 소설의 영향으로 성경에 기록된 좁은 문이라는 말씀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지 않았을 까 생각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신자된 자 마다 추구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이 시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가지고 증거 할 때 성령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좁은 문은 열려있는 문입니다.
본문 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우리는 본문에서 좁은 문은 열려있는 문임을 알게됩니다.
문이 열려있다 함은 아무나 원하는 자마다 들어갈 수 있는 문임을 의미합니다. 좁은 문이지만 열려있는 문, 누구나 원하는 자마다 들어갈 수 있는 문, 이 문이 바로 좁은 문입니다.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의 기도하던 곳이 있는데, 그 곳에 있는 집의 문들은 모두가 낮고 폭이 좁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못 들어갑니다. 머리를 낮게 숙이고 몸을 옆으로 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말씀하신 좁은 문을 연상하여 만든게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만, 아무튼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과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요? 또한 나의 좁은 문, 이 시간 들어가야 할 신앙의 좁은 문은 어디에 있는지요? 바라옵기는 여러분 모두 자신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좁은문 들어가기를 힘 쓰라고 말씀합니다.
힘 쓰라는 말씀은, 아고니조마이란 단어로,
* 열심을 다하여 봉사함을 의미합니다.
* 경기에 나갈 선수를 뽑기 위한 시합을 의미합니다. 시합에서 선수로 선발되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바울이 고백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란 말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검 투사들의 경기를 가끔 보면 내가 이기지 않으면 상대방의 무기에 찔립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경기입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이 바로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과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죽느냐 사느냐의 비장한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영적 전쟁과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적 전쟁은 차원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결단이 요구됩니다. 지금 열려있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결단 말입니다.

2, 좁은 문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마7;13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여기서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의 특징을 배우게 됩니다.
그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보다 폭이 매우 좁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쉬운 길 편한 길을 선호합니다.
리빙 바이불에는 넓은 길을 하이웨이, 고속도로로 번역합니다.
고속도로는 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입니다.

거칠게 없는 길로 시간을 많이 단축합니다.
빠르게 도착할 수있습니다. 엇 그제 북쪽에서 모임이 있어 다녀왔는데, 파르마 근처에서 사고가나서 줄이 6K나 된다고 전광판에 써있는데도 머뭇거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괜찮겠지 하고 모두다 그냥갑니다. 국도로 빠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국도로 들어가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조금 정체되어도 뚫리면 빨리 달려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속도로는 빠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의 군사도로는 빠른 이동을 위하여 만들어진 길로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아주 유익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습니다. 쉽습니다. 여러분이여, 신앙생활을 쉽게만 하려는 사람은 넓은길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돌아서야지 그런 어간에 주님 오시면 큰일납니다.
병원에 있던 분이 말하기를 지금 가면 한게 너무없어서 큰일났더랍니다. 이게 걱정이더랍니다.

그런데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합니다.
협착하다는 말은 고통이 많고, 무거운 압력을 또는 장애물이 많음을 의미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손해를 많이 보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복덕방에서 택시 기사와 복덕방 아저씨가 침을 튀기며 교인들을 성토합니다. 택시기사는 교인들에 대해 말하기를,택시타자마자 에어컨 불평을 한다고 합니다. 왜 시원하지 안느냐고, 더 틀으라고, 그리고는 돌아나오기 어려운 골목길까지 가서는 거스름 돈은 단돈 100원까지 악착같이 받아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릴 때 " 예수 믿으세요" 한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들을 때마다 당신 같은 사람들 꼴 보기가 싫어서 안 나가겠다고 말하고 싶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러자 복덕방 아저씨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교인들은 매입하기 전까지는 간을 빼먹을 것처럼 부탁해 놓고는 흥정이 되어 구매가 끝난 다음에는 뒷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복 비 깍는데는 도사들이라고 말합니다.

영생을 추구하는 분들의 삶의 질은 달라져야합니다.
우리 앞에는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에 대해 눈을 크게 뜨고 위압적이고, 강압적입니다. 그리고 한푼이라도 깍으려고 발 버둥칩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조금 넉넉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기에 삶의 내용이 어렵습니다. 장애가 많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이나 절제가 요구됩니다.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얼마전 교우가 자기 앞 수표를 주웠습니다. 싸인까지 완벽하게 한 수표입니다. 금액만 적어 넣으면 백만리라도 가능하고, 천만리라도 가능한 수표입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이게 웬 횡재냐고,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생을 신자기에 끝까지 주인을 찾아서 전달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입니까? 그러나 이런것도 좁은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바보 천치라고 말할꺼예요. 그러나 영생을 추구하는 자들은 다릅니다. 좁은 길로 들어갑니다. 오늘 즐거운 것보다는 영원한 즐거움을 찾아야하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가치관을 더 두고 계시는지요? 좁은 길,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을 추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좁은 문은 은혜를 입은 자가 들어가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합니다. 찾는 이가 적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흥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관심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좁은 문은 기가막힌 문이요, 누구나 들어가야 하는 전무후무한 문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도외시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주심이 아니고서는 이 문을 찾을 수 없음을 말입니다. 본문,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영생의 필요성을 알고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 곳을 알지 못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보여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세계를 우리가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로 저는 예수를 핍박하는 자의 자리에서 찬송하는 자의 자리로 돌아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나에게 주신 은혜를 부어 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는 이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혜를 부어 주셨다면 저보다 훨씬 많은 열매를 맺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경성하여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열심을 다 하여야합니다.

4, 좁은 문은 닫히는 문입니다.
본문25절에, 집주인이 일어나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우리는 본문에서 좁은 문은 열려있는 문이지만 반드시 언젠가 주인이 그 문을 닫아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문을 닫아 버리면 다시는 열려지지 않습니다.
문을 닫아 버린다 함은 기회를 막아 버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기회를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막아 버리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한다해도 실패할 뿐입니다.
우리는 노력만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들의 노력은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축복의 기회를 붙잡도록 섭리하여 주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공의 문을 열고 닫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하나님 보시기에 인정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나는 지금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우리 앞의 가능성 있는 문은 닫힙니다.
건강의 문도 닫힙니다. /재능의 문도 닫힙니다.
구원의 문도 닫힙니다. /기회의 문도 닫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닫힌 후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한번 닫힌 후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게 됩니다.

5, 좁은 문에 들어가려면 주인이 아셔야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지방으로 영화가 들어옵니다. 넓은 마당에 둥그렇게 천으로 둘러치고 활동기로 영화를 상영합니다. 그 며칠간은 시골동네에 경사가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듭니다. 그런데 돈 몇 푼이면 들어가는데 들어가기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직이가 있는데 그 문직이 아저씨를 알게 될 때 그 냥 들어갈 수있습니다. 그 기분이란 굉장합니다.
친구들에게 한껏 폼을 재며 들어갑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문이 닫힌 후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때 주인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 줄 알지 못하노라".
이 말씀은 너의 근본을 모르겠다, 너의 출신 성분을 모르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양을 안다고 하셨는데 "너는 나의 양이 아니기에 모르겠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주님을 아는데 주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모른다고 선언하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일입니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기회를 남용하는 일, 문이 열려있을 때 방관하는 모든 일들을 주님은 행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행악이란 악한 일이란 말씀입니다. 행악이란 악한 일이요, 주님이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심하여야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했는데 주님은 그 일을 악한 일이라고 선언하실 수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하는 일은 주님이 무엇이라고 선언하실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도전을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나타한 신앙생활은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취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셨고, 여건을 주셨는데, 우리는 한없이 게을러서 행악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 보아야합니다.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성악가가 발성의 오묘한 것 하나를 깨달을 때 대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소원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여러분 되심으로 신앙의 성공자, 인생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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