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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위한 고난 /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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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교회를 위한 고난
  본문: 골로새서 1:24-29

1. 부모의 희생

부모된 우리들이 오늘까지 우리의 자녀를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있습니까? 없는 가운데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노동하며 번 돈으로 자식들을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내 가진 것 아무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다 주어도 오히려 부족한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자식을 위하여 일생 수고하며 희생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자녀를 위하여 좋은 것 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배에서 나온 자식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내 마음 먹은대로 못하는데, 어찌 내 자식을 내가 원하는대로 키울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악합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 자식을 맡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자식이 하나님을 잘 믿는 자식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의 영혼이 잘 되면, 모든 일이 잘 되고, 강건하며 형통하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못 입히고, 남들처럼 학원을 여러 군데 못 보내고, 자식들 해달라는 것 충분하게 해주지 못하여도, 새벽마다, 밤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가 우리 부모들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양식이요, 무기요, 힘이요, 도움입니다.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가난했습니다. 남들 입는 좋은 옷 못 입었고, 남들 배우는 과외 한 번 못하였고, 남들 먹는 맛있는 고기 별로 못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기도의 양식을 먹고, 기도의 옷을 입고, 기도의 힘을 입고 자랐습니다. 오늘의 제가 된 것은 돈으로 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의 희생 위에 제가 여기 서 있는 것입니다.

2. 교회를 위한 고난

이렇게 한 가정을 세우는데에도 부모의 희생이 필요하듯, 한 교회를 튼튼한 교회, 건강한 교회, 생명이 충만한 교회로 세우는데에도 교인들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위에서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친구교회는 여기 모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친구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이렇게 이 교회는 예수의 피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천주교회는 교회당을 세울 때, 그 기초에 성인의 뼈를 묻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희생의 피를 흘린 성인, 그분의 희생 위에 이 교회가 세워졌노라고요. 그리고, 우리들도 당신의 뒤를 따라 이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는 수고를 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진 친구교회, 우리도 친구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는 데까지 수고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24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 괴로움이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11:24-28절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자매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엄청난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하여 괴로움을 당해보셨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섬기다가, 마음 고생을 해보셨다면,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영광입니다. 하늘의 상이 큽니다. 그러나, 보통 성도들은 교회를 섬기다가 다른 집사님께 오해를 받거나, 미움을 받거나, 시기 질투를 당하면, 못 참습니다. 직장에서는 좋은 일 하다가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열심히 일하는 것 때문에 시기와 미움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것도 직분을 가진 분들이, 집사님이, 전도사님이, 목사님이 내게 이럴 수 있느냐? 고 생각하면 참으로 슬프고,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교회만 하나님의 교회냐, 차라리 다른 교회로 옮기면 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흠없이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죄많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모두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고,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다른 집단에서처럼 오해도 있고, 시기도 있고, 다툼도 있고, 미움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고 시기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수고하고 봉사하는 분들이 누구나 고난을 당합니다. 심적인 고통이 말이 아닙니다. 이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면, 어느 교회에 가서도 주님을 잘 섬길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도 여전히 고통이 있으니까요.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 교회를 섬기다가 당하는 마음의 고통은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십자가입니다. 이것을 잘 감당하면 부활의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남겨주신 고난, 이것은 바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친구교회를 위하여 우리 육체에 채웁시다. 교회를 위하여 육체적으로 괴롭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합시다.

바울은 "내가 교회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26절에는 "비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비밀은 27절에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곧 말씀입니다.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이방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8절에 "교회에 나온 그리스도인들을 권하고 가르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골로새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으로 세워주는 것이 교회의 일꾼된 바울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일꾼된 집사 여러분, 교사 여러분, 그리고 성가대원 여러분,
각 사람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로 세워주는 일, 다시 말하여, 친구교회를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생명력이 풍성한 교회로 세우는 일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일꾼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바울처럼 고난을 감수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일꾼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 교회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할 일꾼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내 몸처럼 아끼고 섬길 바울같은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원유값이 오르면서 다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IMF 때, 할 일 없이 길거리를 방황하는 젊은 인력들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습니까? 경제가 좀 회복되면서 실업률이 좀 떨어지나 싶더니 다시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란 불길한 징조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실업자들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맡은 일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의 실업자들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교회 안에 실업자가 적은 교회입니다. 세례를 받은 교인들은 모두 어떤 일이든지 한 가지 이상은 봉사해야 합니다. 청소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식사봉사를 하든, 주소발송을 돕든, 전도지를 나눠주는 일이든지. 교회에서 실업자가 되지 맙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합시다. 목회자에게 부탁하면 할 일을 잘 안내해드립니다. 바울같은 충성된 일꾼이 많은 교회, 그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요, 생명력이 있는 교회입니다.

제가 친구교회에 부임하기 전에, 노동자로서의 훈련을 받을 때입니다. 33세 때, 처음으로 질통을 메고, 시멘트 부대를 등에 메고 나르고, 사모래도 해보았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기쁘게 했습니다. 왜요?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서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잘 한다고 오야지가 칭찬도 했습니다. 자기와 계속 일하자고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같은 고생을 하더라도 기쁘게 하면 고생이 덜 합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잡부들은 이래 저래 불평이 참 많았습니다. 마지못해, 죽지 못해, 억지로 일했습니다.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잡부나 대모도 일을 하면,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배워서 나도 빨리 기술자가 되어야 하겠다, 정식 미장이 대우 받고, 1급 목수 대우받고, 나도 오야지가 되어 돈 좀 벌어야 하겠다, 라는 꿈이 없더라고요. 똑같이 고생을 하더라도 저는 꿈이 있었습니다. 이 노동을 배우면서, 노동자들의 힘든 현실을 배워야 하겠다고요. 그리고, 이 기술을 조금이라도 익히면 앞으로 제 인생에서 사소한 일은 내가 할 수 있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전기 기술을 조금 익혀서 달동네에 있을 때, 공부방의 형광등 다는 일을 제가 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섬기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괜히 오해받고 시기당할 때, 좋은 일 하고도 남의 비난을 받을 때, 기뻐하며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천국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의 길을 걷고 있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십자가 후에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될 축복이 있을 것이다, 이런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3. 괴로움을 이기는 에너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에너지

그러나, 아무리 비전을 가져도 고통을 감당해낼만한 에너지가 없으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봉사하고 싶어도 몸이 아프면 몸으로 하는 봉사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며칠만 굶으면 힘이 없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싶어도, 영적인 에너지가 없으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해야 하겠는데, 하지 못하니 늘 기도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아닙니까?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에너지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럼,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이런 영적인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습니까?
29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했습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는 곧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all his energy, which so powerfully works in me.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의 에너지가 내 속에서 아주 강력하게 일한다."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일하다가 괴로운 일을 당하게 될 때, 그 고통을 이길 힘은 내 의지나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에너지입니다. 날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에너지를 공급받아 그 에너지로 교회를 섬깁시다.

우리는 지금 목회자의 이동과 성전 건축이라는 중대한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괴로움이 따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친구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누구나 이 고통의 짐을 함께 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 짐을 어떻게 감당하렵니까?

첫째는,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새로 오실 목사님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할 것이라는 비전, 그리고 온 교우들이 한 마음이 되어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임받는 교회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그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찾게 되고, 그 비전을 이루어갈 영적인 에너지가 내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북 삼례 성결교회에 문형일 집사란 분이 계십니다. 그가 섬기는 교회가 예배당을 짓다가 완공을 못본 채 불신자들의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문집사는 예수님께 욕을 돌리고 불신자들의 비난을 받게 된 것이 늘 마음 아파하던 어느 날, 신문에서 전주 예수병원에서 사람의 눈을 사겠다는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광고를 본 문집사는 주님의 도우심이라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자기 부인에게 자기 눈을 팔아 건축헌금을 하겠다고 알렸으나 부인은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눈이라도 바쳐서 주의 전을 건축한다면 얼마나 영광이겠는가> 하고 결심한 후 병원에 찾아가서 자기 눈을 팔겠다고 했습니다. 원장은 예배당 완공을 위해서 눈을 팔겠다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 눈을 뽑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병원에서 헌금을 해주었고, 교단 본부로 이 소식을 알려서 미국 신문에 보도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신문기사를 본 어느 미국인이 그 교회의 부족한 헌금을 해 주어서 교회건축을 완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문집사님의 마음이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까? 자기를 희생하여서라도 교회를 세우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 결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다가 괴로움을 당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거룩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의 길이 우리를 영광스런 천국으로 이르게하는 영광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피하려하지 맙시다.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모든 축복은 고난을 통하여 옵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당하시는 여러분께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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