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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 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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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오직 여호와께(시3:1-8)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시편 3편의 말씀은 이스라엘과 아랍제국들 사이에 육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던 말씀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67년 6월 5일이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과 아랍의 연합국 사이에 시나이반도를 놓고서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주변에 아랍제국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 인구수를 보더라도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수는 불과 250만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아랍국가들의 인구수를 모두 합치면 1억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여론은 그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고 예견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임박했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애꾸눈 모세 다얀 장군은 방송을 통해 전세계를 향해서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2,534년만에 되찾은 우리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 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최단기간 내에 반드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군 전 장병은 이미 최신식 무기로 무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방의 첩보원들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보다도 훨씬 더 위력이 있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모세 다얀 장군은 이스라엘 장병들을 일선에 투입하고 난 뒤에 자신은 방송국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천히 또박또박 봉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오늘 본문인 시편 3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확신에 찬 그의 음성은 전파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전 장병들에게까지 전달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병사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들의 발걸음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6일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서방 첩보원들은 과연 모세 다얀 장군이 말했던 최신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새로운 무기가 전쟁에서 사용되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모세 다얀 장군은 다시금 승전을 기념하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최신 무기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군 전 장병의 마음 속에 불타고 있는 뜨거운 애국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조국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불타는 애국심이 바로 그들이 갖춘 최신식 무기였다는 뜻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심과 불타는 애국심,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그들은 최단기간 만에 육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 어린 소년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니라."
다윗은 담대하게 나아가서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병사의 수가 많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미디안의 대군을 무찔렀습니다. 수가 많아서 승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기 위해서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때 블레셋이 철병기를 가지고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 진영에 뇌성벽력을 발하셨습니다.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다 달아났습니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6·25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북괴는 250대에 이르는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면서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전쟁이 터진 지 불과 사흘만인 6월 28일, 수도 서울이 어이없게도 함락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달이 지난 7월말에는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습니다. 그 때 인민군의 최전선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이 전쟁은 마치 방망이를 가지고 솜뭉치를 치는 것과 같았다."
북한은 방망이였고, 남한은 솜뭉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쉽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함석헌씨는 그가 쓴 책 「뜻으로 본 조선역사」에서 그 때 일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 때 어찌하여 인민군이 그 큰 세력으로 낙동강을 넘지 못하였는지는 의문지사 중 의문지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장로는 전국 교회를 향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주간 동안 금식을 선포하면서 울며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기도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 때 각 교단의 대표되는 목사님 네 분이 밤이면 밤마다 골방에 모여서 함께 나라를 위해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네 분 중 한 목사님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천사가 천검을 들고서 낙동강 상공을 지키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이 민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6·25의 5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시편 3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의 마음 속에 나라에 대한 사랑을 더욱더 불태우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다윗에게는 대적이 많았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많다"라는 말이 몇 번 사용되었는지 한 번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모두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윗을 둘러싸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그를 조롱했습니다. 다윗을 쳐서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언제나 의롭게 살려고 하면 핍박이 많은 법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도 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때가 가까운지라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계속해서 찾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십시다. 먼저 눈을 구라파로 한 번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은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그들의 주식은 소고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나라의 사람들의 주식이 밥과 김치인데 그것을 못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들은 구제역과 광우병이라는 예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병들 때문에 몸서리를 앓고 있습니다. 구제역은 전염성이 강해서 그 병에 걸린 양이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그 주위에 있는 양들을 모두 불태워 죽여야 합니다. 또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사람이 먹으면 사람도 광우병에 걸려 죽습니다.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의 수가 1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 90%가 모두 영국 사람들입니다. 왜 영국이 전쟁보다 더 엄청난 이런 재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까?
1997년 2월 23일 영국의 로잘린 연구소에서 윌머트 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들이 최초의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암양의 젖에서 단 하나의 세포를 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암양과 유전적으로 똑같은 새끼 양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는 수컷의 역할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 각국이 동물들을 복제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송아지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사람까지 복제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도전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우리의 신앙을 비웃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구제역과 광우병으로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을 치셨습니다. 영국이 제일 먼저 복제 양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영국이 그 재앙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또 북한 땅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북한의 보위부 출신의 한 사람이 탈북을 했습니다. 그가 밝힌 내용 가운데 소위 말하는 "황해도 사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황해남도 안악군의 한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지켜 나오던 기독교인 86명이 무더기로 체포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개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습니다. 신문에 난 기사를 제가 잠시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당시 보위부에서는 남한의 '악질' 목사들이 성경책을 밀반입시켜 북한 내부를 끊임없이 파고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해 혈안이 됐다. 수십년 보위부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 보위원이 다리 관절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27세의 딸을 정보원으로 끌어들여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안악군에서 의심이 가는 지하교인에게 접근해 그에게 전도당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침투했다. 교인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그는 김일성 배지도 잘 달지 않았다.
보위원의 딸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끝에 지하교인들의 예배장소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교인들은 어두운 지하실에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예배 전에 차례로 자기 소개를 했다. 어디 사는 누구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등등. 이 이야기를 비밀 보위원은 모두 머릿속에 담았다. 86명의 신상명세를 전부 외울 만큼 그녀의 기억력은 비상했다.
그녀의 보고로 비밀교회는 무너졌다. 그녀는 비밀정보원에서 정식 보위부지도원으로 승격되었고 최고훈장인 노력영웅메달까지 받게 되었다(조선일보 2001년 6월 18일자 신문 43면)."

지금도 북한 도처에는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999년 한 해 동안 4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개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1/3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 있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수많은 대적들에 둘러싸여서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속히 김일성 동상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들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남한 땅을 한 번 바라보십시다. 우리 민족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신사참배의 중심이었던 평양에 사탄의 앞잡이로 불려지는 공산정권이 들어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이 민족이 신사참배의 죄도 부족해서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단군교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단군 신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전국에 있는 공립학교 교정에 360개나 세웠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지난 2년 동안 끈질기게 그것을 철거해 달라고 행정당부에 계속해서 요청을 했습니다. 총리실에 진정을 했습니다. 대통령실에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우리를 비웃는 듯이 우리의 요청을 무시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3년 6개월 동안 하늘 창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 때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1대 850으로 싸웠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승리했습니다. 그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창을 여셔서 이스라엘 전역에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왜 우리 나라가 100년만에 처음 찾아오는 가뭄 때문에 논밭이 타들어 가고 저수지에 물이 말라버렸습니까?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몇몇 목사님과 장로님이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단군상을 직접 철거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행정당국에서는 공공기물을 파손했다는 죄로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나라 이 민족이 신사참배의 죄를 지은 것도 부족해서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영적으로 보면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대적에게 둘러싸여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대적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3절에 "여호와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할 때 그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 안에서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울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때문에 이스라엘 병사들은 쥐죽은듯이 떨고만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골리앗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어린 소년은 달랐습니다. 물론 그의 눈에도 골리앗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시선을 골리앗에게로 맞추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까짓 골리앗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다윗은 3∼4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지켜주시는지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주는 나의 방패시요"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방패가 되셔서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둘째로, "나의 영광이시요"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을 다윗은 확신했습니다. 셋째로,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입니다. 지금 다윗은 수많은 대적들에 빙 둘러싸여서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다윗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서 그것을 믿었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이 둘러싸여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승리를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5∼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면 발을 쭉 펴고서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다윗에게 있는 담대한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였습니다. 독일군의 폭격기들이 날이면 날마다 영국 런던의 상공에 올라가서는 계속해서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런던 시민들은 방공호 속에 들어가서 폭격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공습은 더욱더 심해졌습니다. 런던 시민들은 먼지가 떨어지는 방공호 속에서 벌벌 떨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 날 따라 독일군의 공습이 심했습니다. 모두가 방공호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한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초저녁이 되어서 방공호 속으로 들어온 이 아이는 무릎을 꿇고 쫑알쫑알 거리면서 하나님께 잠자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더니 곧바로 쓰러져서 쌔근쌔근 거리며 깊이 잠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엄청난 폭격 속에서도 꼼짝도 하지 않고 밤새도록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깨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놀라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무섭지도 않니? 우리는 무서워서 밤새 잠 한 숨 못 잤는데 너는 어떻게 그리도 평안히 잘 수 있느냐?"
그랬더니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요?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깨어서 나를 지켜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깨어서 나를 지켜주시는데 하나님과 나, 둘 다 깨어있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어요?"
얼마나 예쁜 대답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의지한다면서, 작은 일에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일 것입니다. 딤후1:7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두려워하는 마음은 세상이 준 것입니다. 마귀가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대적들 앞에서도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던 다윗의 담대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다윗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확신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망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자세입니까? 7∼8절의 말씀을 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하루는 어떤 방문객이 화가의 화실에 찾아왔습니다. 화가가 그린 수많은 그림들이 화실의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방문객은 그것을 둘러보고 난 뒤에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많은 그림들 가운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최고의 걸작품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그것을 사려고 그렇게 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자 화가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의 최고 걸작품은 제가 다음에 그릴 그림입니다."
언제나 다음이 더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는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까? 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속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습니다.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열 두 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탐지하고 돌아왔습니다. 똑같은 기간에 똑같은 땅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서는 백성들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보고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은 축복의 땅입니다. 어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십시다."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은 달랐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똑같은 땅인데도 보고가 달랐습니다. 문제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시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까 그 땅은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눈으로 보니까 그 땅은 형편없는 땅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백성들은 그 보고를 받고서 밤새도록 울면서 원망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 망했다! 다 죽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민14: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그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 망했다! 다 죽었다!" 이렇게 말했던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를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자기들 말대로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귀에 그들의 말이 들린 그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좋은 말을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말 그대로 축복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지금 내가 말하는 그대로 앞으로 40년간의 내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좋은 말을 하고, 이 나라에 대해서도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도책을 한 번 펴 보시면 우리 나라 가운데로 38도선이 지나갑니다. 겨울이 되면 우리 나라는 삼한사온의 차가 뚜렷합니다. 이런 나라들이 모두 세계사의 한 때를 담당했습니다. 우리 나라 옆의 중국이 그렇습니다. 얼마나 대국이었습니까? 또 서쪽으로 가면 이란과 이라크가 나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성경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사 왕 고레스도 한 때 역사를 주름잡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란과 이라크의 조상입니다. 그 옆에 나오는 터키도 한 때는 오스만 터키제국으로 날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중해를 건너서 그리스가 나옵니다.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때 그 나라가 세계를 주름잡았습니다. 그 옆에 이탈리아가 나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렇게 얘기할 만큼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또 그 서쪽에 보면 스페인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라고 하면 천하가 벌벌 떨 정도였습니다.
대서양을 지나면 미국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의 중심은 미국입니다. 왜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셨습니까? 복음 위에 기초를 세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제 유독 한 나라만 남았습니다. 38도선에 위치한 딱 한 나라입니다. 영광의 빛은 이제 태평양을 지나서 서서히 우리에게로 비추어지고 있는 줄 압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두번째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바로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왜 우리 나라를 축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21세기 세계 중심이 되는 주역국가는 대한민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마지막 때까지 아껴 놓으셨겠습니까? 주인공은 언제나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입니다. 예수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아껴 놓으신 것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6·25의 51주년을 기념하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 각자가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더욱더 열심내는 삶의 자세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늘 나라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하십시다. 또 좋은 말을 하십시다.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 속에 더욱더 불타오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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