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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않겠나이다 않겠나이다 / 막 14: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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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않겠나이다 않겠나이다
성경본문 :  마가복음 14장 27~32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마가복음 14장 27~32절) 
  <목회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 복된 예배의 자리에 앉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찬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과 함께 살다가
추한 모습 감추고 여기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공로로 깨끗하게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이 귀한 시간 예배 드림으로
하나님 만난 기쁨을 갖게 하시고
구원 받은 확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대로 살 결심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필요한, 은혜의, 능력의 말씀을 듣는
방언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대, 객지,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시오며
머리털 하나 상함이 없는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병상에 누운 환자들이 있습니다. 슬픔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받는 은혜를 저들도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별로 반갑지 않은 분도 있으신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기둥교회가 "반갑다"는 인사를 제일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여러 교회를 다녀보니 다른 교회에서는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습니다. 옆의 분들과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말씀입니다.
  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 베드로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②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 제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본문 중에서 베드로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전하려는 본문 말씀의 초점은 31절에 나오는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입니다.
  신학자들이 저술해 놓은 각종 서적들에도 보면 앞서 말한 대로 베드로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모든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이 행동한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저는 성경을 읽는 중에 유난히도 "모든 제자"란 단어가 눈에 띄어 여러 차례 반복해 읽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스가랴 13장 7절에 예언된 말씀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 "너희들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이것은 양들이 흩어지겠다는 예언의 말씀이다"(막14:27) 그리고 "내가 죽었다가 부활한 후에는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막14:27)
그러자 베드로는
-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하며 장담을 합니다(막14:30).
그러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4:30).
그 말씀은 들은 베드로는
-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했습니다(막14:31).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4장 31절 끝 부분에 보면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막14:31)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베드로처럼 큰소리치며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이제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베드로가 중심인물이 되어 있으니 베드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① "다 버릴지라도"하며 다른 제자들을 무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버릴 것입니다] 하는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배신할 것입니다] 하는 판단입니다.
 
②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하며 자기를 과대평가 했습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배신자가 될 수 있으나 "나는" 아닙니다. 이 "나는"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③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하며 경솔한 장담을 하였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어디 베드로뿐입니까? 우리들도 "저 사람은 안됩니다. 나는 됩니다. 죽을지라도…, 맹세하기를…, 하늘을 우러러…"라고 큰 소리치며 하나님 앞에서 다짐한 것이 하나 둘입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했던 약속들과 장담들… 여러분은 그것을 다 기억하고 사십니까?
 
 
베드로의 장담에 동조했던 모든 제자들
 
 
● 베드로의 장담에 동조했던 모든 제자들은 어땠습니까?
① 그들은 용기가 없는 무리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동안에는 아무 말 없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가 하는 경솔한 장담에 자기들도 동조했습니다.
 
② 그들은 주관이 없는 무리였습니다.
자기들의 의사 표현은 단지 베드로의 생각과 말에 동조했습니다.
 
③ 그들은 군중에 휩싸인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요, 저도 그렇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때때로 군중에 휩싸여 용기 없이, 주관도 없이 감정에 휩싸여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아멘"이라고 말할 때 그 상황에서 자기 혼자 하지 않으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 넙죽 넙죽 "아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아멘"이라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손을 들고 서원하고… 기도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작정하고… 얼마나 자연스럽게 약속하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대로 살아가는지요?
 
큰소리쳤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이 잡히시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50절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14:50)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 될 것 같고, 예수님이 왕 되면 자기들이 출세할 것 같을 때는 "죽을찌언정" 안그러겠다고 하더니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큰소리쳤던 베드로는 아예 예수님을 3번씩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① 마태복음 26장 70절 :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하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베드로에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이죠?"라고 묻자 "아니요, 나는 당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라고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② 마태복음 26장 72절 :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하더라"
"맹세코 나는 그를 몰라.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거야. 나는 예수를 몰라"라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③ 마태복음 26장 74절 :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뿐이었습니까? 모든 제자들도 다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모시고 사십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아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있게 표현하며 사십니까? 어디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하며 사십니까?
 
 
잠자고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이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을 했는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막14:27~31) 이후에 나오는 성경말씀을 계속해서 읽어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큰 소리 치고 장담을 한 후에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여기서 기도하고 있어라"라고 말씀하신 후 거기서 돌을 던질 만큼의 거리에 떨어져서 예수님이 한참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후 와서 보니 제자들은 고민하고 슬퍼하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아니하고(마26:37) 졸고 있었습니다. 아니 조는 것도 아니라 잠을 잤습니다.
 
여기 좀 보세요. 졸지 마세요. 조는 것이 문제입니다. 졸다가 자게 됩니다. 정신 차리세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답답해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시고 예수님이 기도하고 와서 보니 제자들이 또 자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와서 보니 또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고 있는 제자들을 세 번씩이나 깨우신 예수님께서 애타게 하신 말씀이 "네가 한시(잠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이 말씀은 "얘들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해야 되는데, 왜 자고 있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답답한 일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붙잡히셨고 제자들은 흩어졌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이 때에…
언제 어디에선가… 주님께 장담했던 것, 작정했던 것, 약속했던 것, 서원했던 것을 잊고… 혹시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다면서… 잠자고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  처음 믿을 때 다짐했던 그 마음 속의 다짐
≫  세례 받을 때 결심했던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생활…등을 얼마나 잘 하고 계십니까?
≫ 은혜 받고 감격하여, 부흥회에 참석해서 감동을 받고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했던 대로 그대로 살고 있습니까?
≫ 환난을 당했을 때, 어려움 당했을 때, 병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을 앞두고 "주님, 이번만 살려 주시면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라고 약속했던 그 약속, 지키며 살고 있습니까?
≫ 목사 앞에서 다짐했던 약속
≫ 집사 될 때, 권사 될 때, 장로 될 때, 교사될 때, 찬양대에 처음 설 때 마음에 결심했던 그 결심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까?
≫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 약속했던 그 수많은 다짐…
순간 순간 "아멘"했던 그 "아멘", 손들고 기도했던 그 기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삶의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에 "조영자 권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1908년생으로 94세, 우리나라 나이로 95세 이십니다.
젊을 때(?) 찍은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기억나시나요?
 
 
 
약 1년 전쯤에 권사님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지. 내가 죽을 준비를 하려고 왔어."라고 하시며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살만큼 사셨지요. 그래… 언제 가실 건데요?"라고 하자 권사님이 "나는 토요일날 갈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아니, 당신 마음대로 가나, 하나님이 불러가셔야 가는 거지."라고 했더니 "나는 토요일날 갈거야. 토요일날 가야 주일 잘 지내고 주일에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목사님들 목회에 지장 없도록 월요일에 장례를 지낼거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속으로 "참, 별난 할머니 다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권사님은 그때 봉투 다섯 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봉투들을 제게 주시면서;
① "물론 우리 자식들이 하겠지만 이건 내가 준비한 [장례 감사 헌금]이야"라고
  하시며 당신이 장례 감사헌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② "목사님, 나 죽으면 와 볼 건가?"라고 하시기에
    제가 "가야죠."라고 했습니다. [담임목사님 감사합니다] 라고 쓴 봉투.
③ "우리 담당목사님이 장례 치뤄줄 거잖아?"하시면서
  [장례 집례 목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쓴 봉투.
④ "내가 죽으면 산에 누가 따라와 주겠지? 그때 왔던 사람 배 안고프게
  간식값" [장례 때 동행해 주심 감사합니다]라고 쓴 봉투.
⑤ "교회에서 버스 보내 줄 거야?" 그래서 제가 "당연하지요"했더니
  [버스 운전하는 기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쓴 봉투.
이렇게 봉투 다섯 개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죽거들랑, 입관할 때… 그 때가 되면 우리 자손들이
다 올텐데 그때 내 유언을 목사님이 꼭 전해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예수 잘 믿어라. 천국서 만나자.
둘째, 신앙 안에서 온 가족이 화목해라.
세번째, 열심히들 살아라.
 
  지난 목요일 쯤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 강의에 가고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가 뵙지 못하고 어제 토요일 아침 10시쯤에 권사님이 제게 주셨던 봉투들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권사님은 이미 때가 된 듯 싶었습니다.
  가족들을 불러 방에 들여 놓고 "1년 전에 권사님이 제게 봉투 다섯 개를 가져 오셔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참 멋있는 분입니다. 권사님이 이렇게 믿음 안에서 봉투를 준비하시고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살기 원하시고 유언을 내게 남기셨는데, 권사님의 요구대로 입관 할 때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권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460장을 함께 불렀습니다. 3절은 두 번 불렀습니다.
          "주님 다시 뵈올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제가 권사님의 손을 꼭 잡고 요한계시록 21장 1절부터 4절까지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멋있게 죽음을 준비했으니 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기도를 다 마치고 눈을 떴는데, 그때 권사님이 운명하셨습니다.
  참 멋있었습니다. 목사인 제가 봐도 멋있었습니다. 여기, 나이드신 분들… 유언과 함께 이런 봉투 가져 오세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유언과 장례 준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오세요. 제가 잘 보관했다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정신 못차리고 있습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큰 소리 치며…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오는 것을 모릅니다. 이제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벧전5:8).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언약한 후에 자던 잠에서 이제 우리 깨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 베드로와 같이 "나는 아닙니다. 나는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 생각 없이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다른 모든 제자 같이 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주님 앞에서는 '개인적으로 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웃과 더불어 있을 때는 '화평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아니에요. 저 사람은 틀렸어요.", "나는… 나는…"이라는 엉터리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한 가난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을 휘두르며 열심히 지휘를 하느라 지휘자의 낡은 예복이 그만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지휘자는 1악장을 끝내고 2악장을 할 때는 도저히 그 찢어진 옷을 입고 할 수가 없어서 얼른 예복을 벗어 버리고 셔츠 바람으로 지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킬킬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앞좌석에 앉아 있던 귀족 한 사람이 입고 있던 자기의 웃옷을 소리 없이 벗고 셔츠 바람으로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웃옷을 벗었고 그날 음악회가 감격적이고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킬킬거릴 줄 알았지, 그 자리를 평화의 자리로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입니까? 예수 이름으로 평안을 만드는 사람입니까? 예수 이름으로 져주고 용서하는 사람입니까? 이제 주님이 달리셨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나는

1.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교만한 나의 마음이여
 
2.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후렴)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채로.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채로.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큰소리치고 대단한 사람처럼, 큰 일 할 것처럼
떠들어대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간교한 입술, 교만한 마음, 추악한 욕심, 서글픈 자존심을 회개합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화해를 말하면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었고,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을 주님 앞에 내놓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평생을 살면서 멋있게 마무리를 했던 한 권사님을 생각해 보며
우리들의 삶도 다시 한번 방향을 정하는 오늘 되기 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장래를 계획하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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