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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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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본문  마 28:16-20   


--작년 1월 새해가 되면서 한겨레신문 에서는 우리나라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15인에게 유언장을 써서 공개할 것을 부탁했는데, 부탁에 응한 10명의 유언장이 공개된 일이 있었습니다. 전부 읽어보았는데 그중 제가 잘 모르는 낯선 분의 유언장이 저에게는 가장 큰 감명을 남겼습니다. 직함은 한국 수양 부모 협회장, 박영숙씨라는 분이 아들에게 쓴 유언장이었는데 이분의 치열한 정신을 느끼게 한 대목은 유산을 한푼도 안 남기겠다는 선언과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의무라고 강변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분이 재산보다 중요한 가치를 그의 아들에게 남기고자한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유언장인데 유언의 핵심은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나아가 제자를 만들어 내라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열한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나아왔을 때 그들을 떠나 승천할 것을 선언하시면서 마지막 부탁으로 19절에서 '이 세상 모든 족속가운데 나아가 내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상은 불과11명이었으나 그들 안에서 주님은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붙들고 사는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이 세상은 반드시 변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비전이셨습니다.

--오늘 본문 19-20절에는 동사가 모두 4개나오는데 가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입니다.--그 중에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 주 동사입니다. 나머지 단어들은 제자를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르쳐 선교학자들은 '주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탄생 8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교회의 존재이유와 비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우리교회 안에 참 예수의 제자들을 일으켜 그들을 통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1.가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당을 건축할 때 교회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 기대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기대와는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중에 누구도 교회건물의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모여서 예배하고 모여서 교제하고 모여서 훈련받기 위해 건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의 제자가 되게 하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도를 위해서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오라'고 하는 구조가 아닌 '가라'고 하는 구조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흥의 시대가 아닌 이상 교회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대로 지옥 가도록 버려 두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합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직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학자들은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가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만 솔직히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모이는 교회만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가진 지금까지의 한계였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교회당에 와서는 그리스도인척 하지만 더 중요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별로 신앙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살아 왔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얻고 삶의 변화를 경험한 것이 사실이라면 동일한 가치가 세상 한 복판에서 나누어지도록 가야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건물은 필요 없습니다.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예배가 있고, 복음의 선포가 있는 그리하여 우리의 이웃들이 쉽게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목장교회를 출범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건물 세우는 것을 목적 삼지 말아야 합니다.-그보다는 가서! 라는 명령에 구체적으로 순종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Sunday Christian이 아닌 Everyday Christian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2.침례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침례나 세례 같은 성례는 목회자만의 고유한 책임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라는 명령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명령이라면 침례를 주라는 명령도 동일하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명령이라고 보는 것이 본문에 대한 일관성 있는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에 너희 그리스도인 모두가 가서 복음을 증거 하되 목사는 침례를 주어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오늘 성례의 의식집행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교회의 공적 질서를 위해서는 목회자가 이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보편적인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진정한 교훈은 침례가 신앙고백의 외적인 표현이라면 우리가 전도할 때 그냥 지나치듯이 "예수 믿으세요"에서 끝나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분에게 전도했을 때 그가 신앙을 고백할 때까지 도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년부터 우리교회에선 어떤 분이 예수 믿고 침례를 받게되면 목장원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그를 전도한 사람이나 그의 신앙을 양육하는 일에 도움을 준 목자가 목사님을 보조하여 침례조에 들어가 침례를 베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 우리가 기도하고 영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는 일보다 세상에 더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이 일에 모범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이 요단강에 들어갔다 나오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기억하시나요?--"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금년한해 저는 우리 교회 안에 이런 간증이 풍성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3.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주님의 유언적인 명령은 침례를 베푸는데서 끝나지도 않습니다. 침례는 엄격히 말하면 신앙고백의 시작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교훈을 그로 하여금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이 땅에서의 인격적인 성장을 위해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이 학습은 학교에서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생 학습이 이루어지는 곳은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가르침은 아카데믹한 가르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의 가르침은 지킴을 전제로 한 생활 속에서의 순종인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역할 모범(role-model)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은 부모들이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행동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지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그들은 보고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전체의 상황에서 가능? 이 많은 사람가운데 누구를 보고 배우란 말입니까? 그래서 목장교회 곧 셀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12명 정도 내외의 구성원이 공동체를 이룬 곳이라면 거기서 한사람 한사람을 돌보고 역할 모범이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전략이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12명의 제자들을 불러 그들과 함께 하시며 자연스럽게 전도하고 가르치심을 보여 주셨고 따라서 제자들은 그가 하심을 보고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기회 있으신 대로 많은 무리에게도 전도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의 핵심은 제자훈련에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자의 배가증식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배운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만들어갈 때, 12명 한 제자 한 제자가 또 다른 12명 제자를 키울 비전을 가질 때 이 세상은 그가 가르치신 대로 살아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그것만이 이 세상의 소망이라고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의 마지막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교회가 목장교회 곧 셀교회를 출범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지난 8년간 하나님의 은혜로 숫자적으로 급성장하는 축복을 누려 왔습니다. 아마도 세계 교회사상 그 유례가 별로 많지 않을 손꼽히는 성장 사례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교회가 탄생 5년을 지나면서 저는 이런 성장에 대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늘 나누는 이야기입니다만 잠실 체육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그들을 통한 세상의 변화는 기대할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구경꾼에 불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교회가 구경꾼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 가족이 된 우리들이 구경꾼이 아닌 일꾼으로 양육될 수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우리교회는 성경공부를 많이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대답은 하나 이었습니다. 우리교회 가족전체가 다시 소가족 구조속으로 돌아가 진솔한 삶을 나누고 예수님의 참 제자로 훈련되는 자리--거기에서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년부터 우리 교회 가족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크지만 작은 교회 목장교회 안에 들어가 진지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작은 일에 헌신 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일이 작은 일이라도 우리 모두가 사역에 헌신하는--바로 그런 작은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대안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엘리사벳 노벨의 조금(A Little)이라는 시를 새해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설탕을 조금 가지고도/음식 맛이 달게 되네/비누를 조금 가지고도/내 몸이 깨끗이 되네/햇볕을 조금 가지고도/새 싹이 자라네/조금 남은 몽땅 연필로/책 한 권을 다 쓰네/조금 남은 양초/하늘하늘 춤추는 불빛/아무리 작더라도 불빛은 귀하지-- 저와 여러분이 그 작고 귀한 불빛-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빛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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