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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 마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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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 마태복음 9:35~38

지난 5개월 이상 우리는 대각성전도집회를 집회를 위해서 준비해왔습니다. 태신자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그들을 찾아 다니며, 여러가지 일에 봉사해 왔습니다. 우리가 작정하고 써낸 태신자 수만 해도 10,000명이 넘습니다. 그 중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집회에 나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많은 심령들이 이 자리에 나와 복음을 듣고 구원 받는 생명의 축제가 이어질 줄 믿습니다.
24년 동안 사랑의교회는 대각성전도집회에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전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도 될 교회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옵니다. 장소도 비좁아서 불편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마다 6개월 가까이 ‘영혼을 구원하자’, ‘지역사회를 구원하자’, ‘내 가족 식구 중에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자’고 소리 치며 애를 씁니까?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이 곳에 세운 목적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커도, 아무리 공간이 좁아도 이 목적을 잃어버리면 사랑의교회의 생명은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지만 내면에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해마다 영혼을 위해서 씨름하는 대각성전도집회가 있었고, 이 집회를 통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축제가 이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사랑의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대각성전도집회도 우리가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는 자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는 가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에서 전도하라고 하니까 냉랭한 마음을 가지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무시하듯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도해선 안됩니다. 또 교회 부흥을 위해 의무적으로 전도하서도 안됩니다. 
전도자의 마음가짐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아직 예수를 모른 채 세상 일에 푹 젖어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연민의 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로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예수님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하실 때 그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인간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불쌍히 여긴다, 민망히 여긴다’는 말씀이 약 12번 나오는데, 이 ‘스플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라는 단어는 의미가 강한 말입니다. 이 말은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뜻으로, 어원을 조사해보면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 움직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너무 심해 내장이 뒤틀리는 아픔을 느낄 정도로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동안 단순히 사람을 보고 지나치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면서 보셨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36절) 주님은 영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셨고, 그들을 목자 잃은 양으로 보셨습니다. 양은 목자 곁에 있어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목자가 없어지면 양은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양은 자기 힘으로 길을 가지 못합니다. 자기 힘으로 목초지를 찾아 가지도 못합니다. 자기 힘으로 짐승과 싸울 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목자의 보호를 받고,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그 생명을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목자가 없는 양을 생각해보십시오. 온 들과 산을 헤매고 다니는 양을 생각해보십시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죽음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사람을 보실 때 목자 잃은 양처럼 보셨습니다. 고생하고 유리하면서 헤매고 다니는 불쌍한 양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 각 촌과 각 성에 두루 다니면서 쉴 틈 없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35절) 그리고 자기가 전도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탄식하셨습니다.(38절) “아무리 해도 안되겠구나. 구원 할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목자 잃은 양처럼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데, 일손이 부족해. 그러니까 일꾼을 더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겠어.” 이렇게 애타하는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훌륭한 선교사님이 계셔서 제 설교 시간을 그분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교회 출신이지만,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칭찬과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 교회에서는 대단한 분으로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타 교회에서 그 선교사를 통해서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고는 제게 이야기를 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그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지.’ 하고는 그 선교사님에게 느닷없이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한때 우리 나라 국가대표 선수였습니다. 세계 제1인자라고 하는 중국 선수와 북한 선수를 물리치고 목에 금메달을 달았던 실력자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이사야 6장을 묵상하면서 울고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8)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 선교사의 눈에는 울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자비로우신 분, 사랑이 많으신 분, 너그러우신 분, 거룩하신 분, 그래서 항상 푸근한 웃음을 가지고 우리를 맞아주시는 아버지로 생각했는데, 그날 따라 눈물을 떨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이러한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합니다. “오늘 이 지구상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채 30억 이상의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구나. 지구상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도 그들을 찾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어찌 내가 울지 않겠느냐? 얘야, 네가 대신 가줄 수 없겠니?” 그는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전도가 양양한 탁구선수 생활을 포기해버리고 선교사로 지망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훈련을 받은 후,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몽골 국가대표 코치로 갔습니다. 그곳은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나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구선수를 지도하는 코치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를 통해서 7년 동안 엄청난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그곳 사역을 접고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중동의 어느 나라 탁구코치로 가기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울고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왜 우십니까?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답답해서 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려면 우리도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려면 길은 매우 험합니다. 대낮에도 강도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을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혼자서는 그 길을 여행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급한 사정이 있었던 모양인지, 혼자서 짐을 나귀에 싣고는 그 험한 길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강도가 그를 사로잡아 입었던 옷을 전부 벗기고는 가지고 있던 짐조차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죽을 만큼 때려서 길가에 내던졌습니다. 강도 만난 자는 피투성이가 되어 길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때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피해갔습니다. 얼마 후 레위 사람이 지나가다가 보았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이 사람 때문에 길을 멈출 순 없지.” 하고는 그냥 못 본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은 성직자입니다. 날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얼마 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강도 만난 자를 보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대로 두면 죽겠다. 오늘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저 사람은 살아날 수가 없을 거야. 내가 안 도와주면 저 사람은 죽어.” 가던 길을 계속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길을 멈추고 짐을 내려 포도주와 기름으로 상처를 씻고 싸매어 옷을 입히고는 나귀에 실어 주막에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주막 주인에게 맡기면서 경비는 생각지 말고 이 사람을 잘 돌봐달라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전도하는 자는 바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죽게 될지 모른다고 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문 밖으로 나가 둘러 보십시오. 나름대로 다 건강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어도, 예수님 없어도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성취하고, 즐기고 싶은 것은 하고 마는 사람들입니다. 국내에서 안되면 국외를 다니면서 자신의 생을 즐기며 젊음을 과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강도 만난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들의 진면모를 보지 못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눈을 가지고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이라는 안경을 쓰고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얼마나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말씀으로 조명해 보면 그들은 지금 사탄이 조종하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충동질해서 자기 욕심대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 값을 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심판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죽음과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의 눈으로 보면 마치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그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보는 눈은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맥도날드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쓴 글에 의하면 세상 사람을 일컬어 ‘뱀의 눈빛 아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는 간단한 실화 하나를 덧붙여 놓았습니다. 빌라스라는 수도사가 인도의 시골에 있는 좁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연의 모든 소리와 동작이 멎어 버린 듯한 이상한 정적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는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얼마쯤 떨어진 곳에 코브라가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는 흔들거리면서 무언가를 뚫어지게 쏘아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옆에 있는 나무 가지 제일 아래 부분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는 뱀의 눈빛에 최면이 걸려 꼼짝 못하고 가만히 앉아 뱀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도사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금 있으면 잡아 먹히게 되는데….저 불쌍한 놈, 자기 힘으로 지금 날라가지도 못하는구나. 어떻게 살릴 수 없을까? 만약 내가 저 새를 살리려고 무슨 행동이라도 하면 저 코브라가 나를 보고 달려올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하면 좋지?’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놈아!”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두르면서 뱀을 행해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뱀이 한번 쳐다보더니 그 다음에는 고개를 숙이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린 새는 창공을 향해 다시 푸드득거리며 날라 올라갔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은 뱀으로 상징되는 마귀의 눈빛에 전부 최면이 걸려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꼼짝 못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뱀의 눈빛을 깨뜨리고 우리를 구원하실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구원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수도사가 달려가면서 “이놈아!” 하고 소리를 지르자 뱀이 도망간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사람들에게 나아가면 그들을 최면 시켰던 사탄의 권세가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기고 나아가서 전도하면 그들이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잘 보십시오. 아직도 뱀의 눈빛에 최면이 걸린 채 세상을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무심코 넘기면 안됩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영국에서 선교사로 활발하게 활동한 찰스 웨슬레가 작시한 한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찬송을 보면 예수를 안 믿는 형제에 대한 가슴 아픈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로 찬송가 269장을 통해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웬 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좇다가 저 마귀들 지옥 갈 때 너도 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제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보겠구나.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냉랭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이런 찬송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옆에서 죽어가는 영혼이 있는데도 무심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런 찬송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나만을 위해 기도하고, 나만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나만이 복 받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런 찬송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심정을 가진 자만이 이런 찬송을 부르면서 이웃을 놓고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희생해주고 봉사해주면 그들의 영혼은 반드시 구원 받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예수 믿는 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대학부를 지도하고 있는 교역자 가운데 이남정 강도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대각성전도집회를 앞두고 제 설교에 도움이 될까 싶어 팩스를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아주 큰 집안의 장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와 집안 행사에 정신 없이 바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는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간 똑똑한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남정 강도사입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차마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해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컴퓨터를 전공하던 아들이 갑자기 신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그 아버지는 너무나 마음이 상했습니다. 안 믿는 아버지이기에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드디어 이제 신학을 마치고는 이 강도사님이 99년도에 사랑의교회로 부임해서 대학부를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 대각성전도집회 때입니다. 지방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서 이 강도사 부부는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자기는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기로 마음 먹을 정도로 인생을 걸었는데, 예수님의 존재는 물론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집안 장손으로서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되는 줄 아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번 대각성전도집회 때 꼭 모셔와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여러 가지 전도지를 보내주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드디어 대각성전도집회가 시작되던 때 아버지,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이 강도사님 부부는 부모님을 모시고 좋은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대접하고, 백화점에 가서 좋은 옷을 사 입혔습니다. 그리고 첫날 저녁에 교회로 모시고 왔습니다. 그 강도사님 내외분은 부모님 양쪽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
그런데 한참 설교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꾸벅꾸벅 조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저녁까지 잘 먹었으니 얼마나 졸리셨겠습니까? 게다가 교회에 오면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스럽습니까? ‘어이구, 이거 야단났는데…’ 아버지 손을 꽉 쥐었다 놨다 하면서, 그것도 안되자 헛기침을 하면서 아버지를 깨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드디어 설교가 끝나자 옥 목사가 초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시고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으려고 마음에 결심하시는 분은 일어나주십시오.” 이 강도사님 내외분이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하나님께 기도했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일어서기를 얼마나 고대했겠습니까? 그런데 끝까지 일어나지 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만 이 강도사님 아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가는 동안 차 안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와 아내가 먼저 내린 후 아버지와 자기만 차 안에 남았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오늘 들은 말씀에 다 동감한다. 그리고 내가 일어서 주는 것이 너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내가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년까지 조상 일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것을 다 끝내면 내가 너와 함께 교회에 나가마.”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해 대각성전도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다 참석하셨습니다. 그러나 일어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방에 내려가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지만 아들 집으로 올라오면 함께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시골에 있는 주말 농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야생 벌에 쏘여 4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을 쓸 틈이 없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강도사 내외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구원 받았을까’를 생각하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감사한 것은 그 사건이 있기 3주 전에 이 강도사가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이 환한 웃음을 웃으면서 자기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아버지의 구원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장례식을 다 치렀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떼를 쓰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아버지 구원 받았을까요? 우리 아버지 구원 받았으면 지난 번 꿈에 나타나신 것처럼 저에게 한번 더 나타나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마음을 놓겠습니다.” 목사 될 사람이 꿈을 가지고 씨름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너무 다급했기에 그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장례식을 치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환하게 웃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꿈을 본 후로는 강도사님이 마음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덧붙였습니다. 비록 대각성전도집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었지만 안 일어나는 사람이 많이 있더라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중에는 예수 믿는다는 것을 믿고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주고, 눈물을 흘려주고, 정성을 쏟으면 그 시간 당장 예수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영혼을 부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결국 눈물의 기도가 씨앗이 되어서 그 생명에 꽃이 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을 건지는 일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갑시다. 그리고 그들을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인도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줍시다. 십자가의 복음이 그들의 심정에 화살처럼 꼽힐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준다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반드시 그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이런 아름다운 생명의 기적이 이번 기회에 계속 되도록 우리 모두가 전심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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