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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 눅 1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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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눅 12:13-15


요즘 의약분업으로 인한 병·의원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환자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바로 의사와 약사와의 밥 그릇 싸움이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형 동생간에 더 많은 유산을 물려받겠다고 싸우는 형제의 모습과 너무나 일치함을 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질관을 가르쳐 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탐심과 염려를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성서적인 물질관을 확립하고 분명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Ⅰ. 한 사람의 요구(13-14)

먼저 본문을 살펴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 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재산의 상속은 형에게는 두 분 깃을 주고 동생에게는 한 분 깃을 주게 되어 있었습니다.(신21:17) 그런데 저희형님이 아버지의 유산을 다 차지해 버리고 동생인 저의 몫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형님이 그럴 수 있습니까?" 하며 동생이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동생이 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냐?"고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끼리 재산 상속으로 말미암아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물질 문제로 형제끼리 싸우고 부모, 형제들이 원수같이 사는 분들을 간혹 봅니다. 형제니까 서로 요구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형님이니까!" "동생이니까!" 하며 서로 양보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불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 마치 요사히 의사와 약사가 시민들을 볼모로 「그건 원래 내 밥이다 감히 네가 뭔데 남의 밥그릇을 빼어 가느냐?」는 식으로 밥 그릇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정부에서는 9월 1일부터 재진료를 23.3%, 처방료를 62.9%인상하고, 문제의 핵심인 약사의 임의조제와 대체조제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였으며, 의약분업감시단을 구성하여 법령위반 사항을 철저히 단속해 나가겠다고 보건 복지부가 발표를 하였지만 의사들은 이미 구겨진 의사체면 이왕 문제점을 송두리째 다 관철시키고 말겠다는 식으로 총파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정부의 소신 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의료보험료에다 병원수가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정부는 국민의 호주머니 돈을 자기 멋대로 계산해서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어느 시골 마을에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나는 우산장수 아들이요, 다른 하나는 나막신 장수 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두 아들의 사업이 다 잘되기를 바랬지만 전혀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은 신이 나지만, 나막신 아들은 울상입니다. 그런가하면 비가 안 오고 날씨가 쾌청하면 나막신 아들이 신이 납니다. 반면 우산장수 아들은 울상입니다. 지금 정부는 의사와 약사 두 아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의사를 응원하면, 약사가 울고, 약사를 응원하면 의사가 울고 그 누구를 어떻게 돕고 응원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 해결책을 묻는다면 ..... 나는 이미 의사들이 폐업신고서와 의사 사직서를 썼으니 이 참에 의사로 다시 복귀하지 말고 벌칙으로 약국에서 약사의 일을 1년간 돕도록 해서 약사의 어려움이 무엇이고 의사와 약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해보았으면 합니다. 반대로 약사도 의사의 일을 도와 동일시 1년간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보면 상대방의 어려움과 고충을 서로 알아서 다시는 싸우는 일이 없이 서로의 타협안을 내어놀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제 생각이 어떠신지요.... 좋으시면 박수 한번 보내주시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개인과 집단적 이기주의와 잘못된 물질관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치고 바로잡지 않는 한 제 3의 제 4의 의료대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째 이들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의 가진 재산이나 기술이 자신의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이 두 형제는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 번에 유산을 받으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신 아버지도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내어놓았건만 두 아들들은 자신의 것으로 더 많이 만들기 위해 혈안인 것입니다. 이같은 어리석음을 깨닫기 위하여 예수님은 본문 16절서부터 21절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예를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내 곡식' '내 곡간' '내 영혼' 등 '내(my)'하는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이 부정한 방법으로 소득을 올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밭의 소출이 풍성한 결과로 얻은 곡식이요,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재산은 모두 자신의 것으로서, 응당 자신을 위해서만 써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생각이 그의 착각이었습니다.
마치 요즘 의사들이 인술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공들여 7년에서 10년 이상 그것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은 몰론 많은 돈을 들여 병원을 세웠는데 그 쌓은 모든 수고와 노력에 대하여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 작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각종 이권과 권한 마저도 빼앗긴채 나아가 약사에게 의사의 고유권한인 대체 조제 임의조제 까지 하게했으니 의사의 고유권한과 책임이 무시된 시점에서 굳이 우리 의사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착각입니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얻기까지 하나님이 돌보시고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혼자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분이 오신 목적을 이 땅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없는자 가난한자 병든자 들을 치료하며 도와주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의사와 약사는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라는 계급층으로서의 기득권과 부와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의사나 판사 변호사에게 시집가려면 키가 세 개가 있어야 된다할 정도로 얼마나 잘나 가는 직업이었습니까? 이것만 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기득관과 상류계급 사회의 엘리트라는 칭호를 받기만 했지 이들이 사회를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클리닉 황성주 박사처럼 사랑의 집짓기 운동 그런 것 한번 해봤습니까? 이들은 인술과 환자가 그저 돈으로 밖에 자기의 부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큰 착각 속에 빠져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환자들을 저렇게 볼모로 잡아놓고 정부와 그렇게 기나긴 협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유괴법에게 잡혀가 죽기 일보 직전인데 돈이 많다 적다 가지고 싸우고 있겠습니까? 돈이 얼마나 들어가든지 우선 살려놓고 보지 않겠습니까?
의사와 정부는 자신들의 가진 권한과 기술 지식들을 가지고 제멋대로 결정하고 자기의 배만 채우려는 이기주의와 권위주의를 버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잃고 희생하며 섬길 줄 아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둘째: 많은 재산이 영혼을 더욱 평안케 하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그동안 약사는 구멍가게라면 병원은 큰 기업체와 같았습니다. 약사와 의사의 환경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약국이 병원보다 큰 곳도 생겨났습니다. 병원이나 은행에서만 번호표를 들고 서있는 것이 아니라 대형 약국에서도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 의사들은 거지가 될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그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드려 의사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의무와 책임은 막중하되 권한은 전혀 없는... 더욱이 휴일 없이 밤낮으로 근무를 하는 의사들에게 의료사고라도 나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되는데 이에 대한 처우와 대우가 너무 미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료수가를 현실화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거 의료수가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미안한지 그 올린 금액예산과 처리문제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짚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미8군에서 방부제에 쓰이는 독극물 '포름 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하여 한강물을 오염시켜놓고 그보다 오염도가 약한 한강변 쓰레기를 줍기 위해 군인들을 풀어놓아 미안한 감을 감추려는 것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저는 의사가 약사보다 가난하게 산다고 해서 결코 의사가 약사보다 못하다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목사가 가난하면서도 많은 성도님들이 목회자를 귀하게 여기며 존경하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인 것처럼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동반자가 되어 일하는 이 일을 맡은 것만으로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고 의사직에 대한 소명감을 회복하지 않는 한 언제나 더 많은 재산이 자신의 신분과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며 나아가 자신의 영혼을 평안케 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찐 부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 봅니다. 유산 상속 문제로 형과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동생은 형님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으로 많은 괴로움을 겪다가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와 재판해 주기를 요구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예수님은 자기 형님과의 재산의 분배를 요구하고 나온 사람에게 책망하시고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15a)
예수님께서는 형제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근본 원인이 탐심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남을 변화시켜 주기를 바라는 탐심 자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종류의 탐심도 용납치 않으셨습니다.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그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탐심이 있습니다.
탐심은 문자적으로 "더 많이, 더욱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더 많이, 더 좋은 것, 하여튼 "더"입니다. 자기 아내보다 이웃의 아내가 더 예뻐 보입니다. 또, 자기 남편보다 이웃의 남편이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래서 "남의 밥의 콩이 더 커 보인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탐심을 말라 했는데... 왜, 사람들은 자꾸만 탐심을 가지며 탐심을 부립니까? "탐심을 물리 치라"고 엄히 계명에 명령을 했는데, 왜 자꾸 탐심을 가집니까?

그 대답이 15절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끌어 모으고자 하는가 봅니다. 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 넉넉한데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돈만 많이 벌면 얼마든지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몇 해전에는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일더니 요사이는 세금 포탈 사건에, 보험금을 노리는 가족 살인 상해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과 행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며 자족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빌4:11) 우리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까?
① 탐욕은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약1;14,15)
탐심을 물리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불효도, 살인도, 도적질도, 간음도, 거짓 증거도 모두 탐심을 물리치지 못한데서 비롯됩니다.
② 또, 골로새서 3:5절 탐심은 우상 숭배라 했습니다.
사람이 탐욕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고 물질과 육신의 노예가 됩니다. 결국 썩어 없어질 사람과 금수와 벌레 형상의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롬1:23)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탐심은 문자적으로 더 많이, 더욱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더 가지려고 하다 보니 온갖 욕심과 사단의 유혹에 빠져 믿음을 떠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실제로 탐심 하나 물리치지 못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이 성경에는 많습니다. 아간은 외투 한 벌 숨겼다가 저주를 받아서 죽었습니다.(수7;21)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물질에 대한 탐심과 명예심에 성령을 속이다가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행5:5,10)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탐심은 이처럼 하나님이 보실 때, 무서운 죄악입니다. 가롯 유다도 물질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지 못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요12:6)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탐심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이 시간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는 주님의 음성을 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복 받을 일 (15,21)

여러분, 물질을 많이 쌓아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쌓은 물질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사용하여 복을 받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형제의 가장 큰 잘못은 서로가 자기의 권한을 찾을려고만 했지 서로의 고통과 어려움을 나눌려고 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의사와 약사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당과 야당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15절)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6절부터 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의 핵심도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놓았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부자에게 물질의 많고 적음에 영혼과 마음의 평안이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쌓은 물질을 어떻께 잘 쓰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영원히 복 받는 일에 투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을 때! 그 때는 복 받을 일을 행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책임추궁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세월을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것과 둘째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다가 왔느냐?"하는 책임 추궁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앞에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왔습니다.는 보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마지막 때 복 받을 성도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1)눅6:38입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면서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적게라도 시작해 보세요. 줄 것이 있을 때 해 보세요. 없으면 못 주지 않습니까? 우리로 예수 믿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엡2:10에 보면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37:21-26에 보면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 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의인의 자손이 걸식하는 법이 없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줍니다. ...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 받을 행위를 많이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행10장에 보면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 늘 경건하게 살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특별히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 되는데 그 기억되는 일들 중에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만한 일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개의 구제를 기억하노라!"라고 하는 일들이 있다면 그는 복 받을 일을 만든 사람일 것입니다.

2) 막10:29입니다. 즉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무엇인가 희생하면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백배나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금세에 백 배나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드리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한번 살아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의 행함의 근거를 보시고 안심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이제 끝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 받는 비결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풍성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근거를 행위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28:1 이하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라고 하셨으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왕하 20장 1절 이하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당신은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히스기야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로 금식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회개하면서 기도하는 내용 중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기에 소개합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하20:2,3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번영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은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만날 때에라도 우리가 히스기야처럼 기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내가 오늘날까지 진실하게 살고, 주님 앞에 전심으로 섬기며, 주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보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의 삶 속에는 복 받을 행위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 받는 축복을 받고 말았습니다.

결 론 :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보실 때, 그 사람이 마음에 탐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결국 파멸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며 우상숭배 하는 사람이나 탐색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골 3:5, 고전 6:9,10)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의약분업으로 의사와 약사 한 형제가 싸우고 있겠습니까? 우물쭈물 하다가는 모두가 멸망당합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쌓아 둘 생각이나 하고, 평안하기나 바라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일에 취하여 살기 보다는 내가 가진 인술과 기술 그리고 물질을 선용하여 사람을 살리는 일에 희생하십시다. 이런 일을 많이할 때 저와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앞에 섰을 때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내가 이렇게 진실하게 행한 것을 보십시오!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하며, 주님 보시기에 선한 행위를 보시옵소서! 내가 주님 한 분 바라보고 오늘날까지 달려 온 것을 기억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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