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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나무 좋은 열매 / 눅 6: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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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좋은 나무 좋은 열매
  성경귀절 : 누가복음 6:43~45
 

“농산물 품평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농부는 일년동안 농사를 지어 가장 좋은 농작물을 출품하여 다른 농산물과 비교하며 정당한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우수한 농산물을 출품한 사람에게는 상당한 상을 수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힌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열매는 바로 한 사람의 실천적 삶을 의미합니다. 품평회에서 고구마 한 포기에 6관을 생산한 농업대학 교수는 품질이 좋은 곡식을 내기 위해서는 부단히 개종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도 바르고 훌륭한 실천을 행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혁과 갱신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종교 개혁 485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기독교는 항상 새로워지는 종교입니다. 특히 개신교는 사상적으로는 개방하고 정신적으로는 개혁하며, 생활면에서는 보수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1. 못된 나무는 못된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셋이 있다고 합니다. 한 분은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통치하시는 삼위일체 유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낸 신입니다. 이는 바알신입니다. 이름은 달라도 많은 바알신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든 신이요, 참 신이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사탄이 있습니다. 이는 천사가 타락해서 하나님을 대항하고 인간을 유혹하는 신입니다. 못된 나무는 바로 이 사탄의 지배를 받는 인간입니다. 이들은 그 악한 것에서 악한 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열매가 곧 죄입니다. 죄는 반드시 하나님이 벌하십니다. 범죄에 대한 벌은 빨리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벌은 언젠가는 오고야 맙니다. 때로는 부모의 죄에 대한 벌을 자손의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출20:5).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나 민족의 흥망성쇠도 예외가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 제국, 바벨론 제국, 앗시리아 제국, 그리스도 제국, 로마 제국 등 수 많은 제국들이 흥하고 몰락했습니다. 그들의 몰락 원인이 물질의 빈곤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풍요로웠음에도 그 풍요가 오히려 나태와 허영과 도덕적인 부패를 불러왔습니다. 그들의 부도덕과 방탕이 공동체 전체를 부패시키고 몰락케 한 것입니다. 토스토예브스키의 죄와 벌에서도 이같은 교훈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릅니다. 죄는 사탄의 지배 하에 만들어진 삶의 열매입니다.

2.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어집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이란 그 영광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같고, 그의 더러움에 있어서는 동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위해선 반드시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고, 타락한 인간에게도 그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미래에서 오시는 하나님의 성령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회상치유라고 합니다. 또한 좋은 나무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시련을 이겨야 합니다. 곡식 경우에도 태풍이 불고, 비가 오고, 벌레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이겨야만 좋은 추수를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고 모든 시련을 이기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힘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좋은 나무는 뿌리가 깊이 박히고, 공기가 소통되며, 햇볕이 비추이며, 습기가 알맞아야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신앙이 바로 서고 말씀의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고, 성경의 단비가 이슬같이 내려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좋은 나무를 기르는 농부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한 아담이 어두운 나무 그늘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 가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실성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결코 잊지 않습니다. 몰트만 교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속하며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있는 한 하나님은 인간을 잊지 않으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칼빈은 “성도의 견인”교리라고 하였습니다. 동물연구가들은 연구하는 동물의 몸의 어느 곳에 통신기를 부착해 둡니다. 그리고 그 동물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살핍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마치 그 통신기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살피시고 익히 알고 계십니다. 지금은 온 세상에 테러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듯합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세계 곳곳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때의 기독자의 모습은 무엇이며, 책임을 어떤 것입니까?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적 모습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기독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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