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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찾습니다 / 눅 7: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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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람을 찾습니다 / 눅 7: 1- 10


우리가 잘 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또 사람이 잘 들어와야 잘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장을 잘못 담그면 1년을 반찬 걱정하고, 사람을 잘못 만나면 평생을 걱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잘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잘되려면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합니다. 나라가 잘되려면 좋은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직장이 잘되려면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방인의 집이지만 좋은 여종이 들어왔습니다. 저가 높은 사람이고,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문둥병으로 고생을 할 때에 이스라엘에서 데려온 계집종 하나가 저에게 살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문둥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떤 사람이 뽑히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전에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전과 몇 범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방 자치제 의원을 뽑는데 전과 8범이 있었습니다.
물론 전과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내고 온 사람은 감옥에서도 인정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계획적인 자기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갑자기 사고를 만나서 들어오는 것은 누구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감옥에서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가장 나쁘게 보는 사람은 사기범입니다. 거짓말을 해서 남을 계획적으로 망하게 하는 사람을 아주 나쁘게 봅니다. 사기범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지방자치의원이 되면 안되고, 더더욱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천하 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사람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걱정을 더 할 뿐입니다. 바람이 많은 부는 나무에 가지는 짐이 될 뿐입니다. 귀한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 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여기에 기준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 속을 잘 모릅니다. 나하고 가까우니까, 나에게 잘 대해 주니까, 내가 잘 아니까 뽑아준다면 우리나라는 발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찾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히랍의 디오니소스라는 철학자가 알랙산더 대왕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뭘 그렇게 열심히 찾더라느 것입니다. 그래서 알랙산더 대와이 이 철학자에게 뭃었습니다. "뭘 그리 찾으시오?" "나도 왕이 찾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말인 즉은 왕이 세계를 정복할 부하를 찾듯이 나도 내 철학을 승계할 제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일을 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복음에는 찾ㅇ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잃은 양 하나를 찾기 위해서 양 아흔 아홉 마리를 우리에 두고 찾아 나가시는 하나님, 또 열 드라크마가 있던 여인이 잃어버린 한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온 방을 뒤지는 모습의 하나님,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기 위해서 밤낮으로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 다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오늘 성경에는 그 기준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본문에 가버나움에 있는 백부장이 유대인도 아닌 로마 사람이었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다 죽어가는 저기 하인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다고 하니까 백부장이 "주여 우리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말씀으로만 하시옵소서. 내 하인이 나을 주로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잇습니다. 말씀만 하셔도 하인의 병은 떠나갑니다. 주니미의 명령대로 됩니다" 했습니다. 
믿음은 보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칭찬했습니다. 훌륭한 지휘관이기 때문에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인물이 잘났기 때문에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 시민 권이 있기 때문에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크게 보신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백부장의 안에 있는 믿음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인물이 아닙니다. 재력이 아닙니다. 실력이 아닙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저 안에 고칠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주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고칩니다. 믿음이 역사해야 고칩니다. 사람은 도구일 뿐입니다. "내가 고쳤다" 이것은 이단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이 고치신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이 고친 것"입니다.
믿음은 기적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 결혼을 했는데 5년째 아이가 없는 두 집을 심방을 했습니다. 똑같은 본문으로 똑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자도 아이가 없는 터이었기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집이 결혼한지 5년이 되었는데 아이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한나에게 아이를 주신 하나님, 이 여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어난 아이가 잘되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두집에 똑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아이가 없는데 같이 기도하십시다. 난 그래도 덜 급하니까 성도님이 먼저 가지고 내가 가지십시다" 똑같이 그랬더니 한 집에서는 "아이고, 목사님도 아이가 없으시군요. 그러면 제 심정을 잘 아시겠네요 나도 목사님을 위해서 꼭 기도하겠습니다" 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립니다.
그런데 다른 한집은 맹숭맹숭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속장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자기도 아이가 없으면서 어떻게 나를 위해 기도를 하느냐?" 고 그러더랍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까 정신이 바짝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래서 그전에는 아이를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그렇다! 목사가 먼저 축복을 받아야 성도가 목사를 믿지" 하고 "하나님, 제가 목회를 하려면 아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제 욕심으로라면 주님 한분만 잘 섬기면 되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주님도 들으셨잖아요. 제게 아이를 주세요. 그리고 아무개 집사님에게도 아이를 주세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하고 저하고 나란히 아이를 가졌습니다. 나중에 이 집사님과 남편이 저를 불러 식사를 하자면서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주셔서 우리 부부가 아이를 졌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집사는 아직도 아이가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기적입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불행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승리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담대해집니까?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어야 근심이 떠납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근심이 떠나 갑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많을수록 근심입니다. 있을수록 걱정입니다.
돈이 있으면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믿는 사람이 모세 같이 민족을 위해서, 다윗같이 나라를 위해서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에 재물이 힘을 발휘합니다. 믿음이 있을 때에 권세가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칭찬을 듣고,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랫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자기가 아픈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식구가 아픈 것도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부리던 종이었습니다. 자기가 아파도 주님게 나오기가 어려운데 하인이 아픈 것 때문에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이웃이 얼마나 어려울까?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외로우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귀한 마음입니다.
애국이 무엇입니까?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애국입니다. 효도가 무엇입니까? 나보다 내 자식보다 부모님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효도입니다. 사랑은 그렇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서라면 어미가 자식을 버리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로마군대의 채찍보다는 나의 상처가 낫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픔보다는 죄악으로 죽을수 밖에 없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는 나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백부장은 남의 아픔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종이 아프지만은, 하인이 아프지만은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예수님을 놀라게한 것입니다. 이 사랑이 예수님으로 칭찬을 받게한 것입니다.
요즘에 경기가 어려우니까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는 발길이 없어졌다는 소리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에 어려운 사람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때 자기 어려운 것만 생각하면,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처럼 자기는 호의호식해도 거지 나사로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는 부자처럼 되고마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가 남을 돌아볼 때입니다. 내가 힘이 들 때가 다른 이도 따듯한 위로의 한마디가 필요한 때입니다.
내가 배부르다고 마음이 달라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배고프던 때를 생각하며 남의 배고픔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다고 마음이 높아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아프던 때를 생각하며 남의 아픈 것을 위로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권사님이 동수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많이 아프냐고 묻더랍니다 이전에 아프던 것에 비하면 아픈 것이 아니라고 말했더니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느냐고 그러더랍니다. 얼마나 섭섭한지 당신이 스트레스 정도라면 나는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아느냐고 쏘아 붙이고 싶은 것을 꿀꺽 참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잘 참으신 것이지요. 의사가 나의 아픈 것을 압니까? 내가 아파봐야 압니다. 그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권사님의 아픔도 아시고, 간호하신 최장로님의 아픔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그 의사가 자기도 많이 걱정했다는 의미로 말을 한 것입니다만은 그래도 "많이 아프셨지요? 나도 알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의 아픔만 아픔으로 아는 시대에 남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매년 절기헌금이나, 특별헌금의 10 분의 1을 떼어서 가난한 삶, 소외된 사람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게서 기뻐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사랑의 마을에 갑니다만은 내년에는 더 많은 도움을 가지고 갈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담임목사의 마음입니다. 내년에는 100만원, 아니 천만원을 가지고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들도 그만큼 헌금할 축복을 받는 것이니까요.
교회는 부흥해야 합니다. 날마다 수를 더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도 늘어야 합니다. 그래야 큰일을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열심있는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열심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앉아서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뛰어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기도 남더러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게하는 권세가 있지만 직접 예수님께 나와서 이리저리 길을 찾아다녔습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부지런한 국민이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열심있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충성되어야 합니다. "맡긴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고 햇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런 사람을 찾아 다니십니다. 이번에 임권택 감독 이야기가 TV에 나왔습니만 이분이 우리나라 영화감독입니다. 그런데 중학교도 제데로 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분이 영화를 만드는 것마다 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분이 처음부터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겟꾼에다가 술에 찌들어 19살 나이에 수전증까지 가졌던 폐인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미군구두를 수선해서 파는 사람이 되었지만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영화계에서 일했다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유명배우 화장통이나 들어다 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한 단계, 한단계 올라가더니 일약 명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성실, 열심 그 하나로 일약 명감독이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든지 따라 잡습니다. 이 사람은 결국 정상에 서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끝을 보듯이 기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끝을 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실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끝을 봅니다. 축복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열심히 사는 민족이 복을 받습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복이 오지 않습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세계가 열심히 뛰는데 우리가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머리에 끈을 매고, 허리를 졸라매면서 다시 한번, 미군 밀가루 포대로 만든 운동회복을 생각하면서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국민이 이런 마음으로 뛰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힘들게 일하는 것이 싫어서 유흥업소엔 들어 가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데, 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쉬운 것은 다 함정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신앙생활도, 기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뒤지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손해가 아닙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은 시간을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하는 것은 잠을 손해보는 일이 아닙니다. 주를 믿는 사람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은 나의 일을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주님은 내일을 열심히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일지도, 해바라기 해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 갈래요"
교회학교 노래처럼 평생을 주님을 믿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면 주님의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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