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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to be)과 ‘됨’(to be) / 마 7: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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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5-27 / ‘함’(to be)과 ‘됨’(to be)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아마 성공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성공을 추구하며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문제점은 이 성공이라는 개념이 점차 내면적인 요소, 즉 인격적인 측면보다 외면적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달리 말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 또는 무엇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이 성공 여부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큰 일을 이루고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반면에 그 사람의 내면적인 인격이나 삶의 동기는 별로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소위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 준다는 식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이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으로서, 동기와 과정과 방법이야 어떻든 결과만 훌륭하고 거대하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현대 교회의 내부에도 적잖게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가 훌륭한 교회이고, 대형 교회를 이룬 목회자는 당연히 성공한 목회자로 사람들의 추앙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처럼 큰 교회를 이루고 큰 일을 행할 수 있었던 방법론들이 소위 ‘교회 성장 이론’이라는 명목으로 신학교에서 가르쳐지며 인기 있는 세미나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면서 알게 모르게 이런 세속화된 성공의 개념에 이끌려 살아가면서도 우리 자신은 스스로 잘 살고 있고,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마태복음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을 가지고 살면서 나름대로 성공을 한 줄로 알았으나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22절과 23절에서 예수님은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그 날에는’ 이란 말은 종말론적인 표현으로서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서 심판을 받게 될 날을 말합니다. 그런 가운데 여기 주님 앞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말하는 이 사람들은 분명히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성공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치 못하는 큰일들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업적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흠모를 받으며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주님 앞에 나갈 때도 대단히 자랑스러운 태도로 자신만만하게 나갔습니다. 예수님마저도 자기들이 이룬 업적들을 보고 감탄하시며 반드시 큰 상을 내려 주시리라고 확신하며 주님을 부르되 “주여, 주여”하고 두 번씩이나 담대하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확신에 가득 차서 주님 앞에 나오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내리신 판결은 무엇입니까? 예. 예수님은 자기들이야말로 예수님을 가장 잘 믿었노라고 자기들의 업적과 공로를 자랑하며 나온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에 이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기 딴에는 예수님을 가장 열심히 믿었고, 주님을 위해서 가장 많이 수고를 했고 가장 많은 공을 세웠기에,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 다른 평범한 성도들은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기대하고 주님 앞에 나왔는데,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르노라”고 주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지옥으로 버림받는 이 사람들만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 왜 이런 불행한 결과가 오고 마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그들의 인생의 기초가 잘못 놓였기 때문입니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모래 위에다 터를 닦고 지은 집은 제 아무리 크고 그럴듯하게 보여도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큰 바람이 불면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터를 닦고 주초(柱礎)를 놓은 기초가 든든한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큰 바람이 불어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큰 바람이 부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에 우리가 일생 동안 지은 인생의 집이 사상누각이었는지, 아니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를 분별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래 위에 그 집을 지은 사람들은 그제야 자기가 일생에 걸쳐서 열심히 이룬 업적과 성취들이 사상누각처럼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통곡하지만 때는 늦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반석처럼 좋은 기초이며 어떤 것이 모래 위에 터를 닦은 것 같은 나쁜 기초입니까?  그것을 우리는 ‘함’과 ‘됨’이라는 삶의 원리로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함’의 원리, 즉 ‘to do’ 라는 것은 성격 윤리(性格 倫理: Personality Ethics)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됨’의 원리, 즉 ‘to be’ 란 앞서 성품 윤리(性品 倫理: Character Ethics)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추구하면서 외형적인 업적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평가와 명성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것을 갖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우리 각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했는가, 또는 얼마나 이루었는가를 먼저 보시지 않습니다. 그런 ‘함’(to do) 보다도 예수님은 우리의 ‘됨’(to be)을 더 중요하게 보실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우리의 인격에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가,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를 주님은 가장 중요하게 보실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더러는 세상에서 이름 석자를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성품(Character)을 닮게 된 사람을 예수님은 진정한 성공자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이름 석자를 알아주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또 나름대로 큰 일들을 많이 하고 큰 업적을 이루어서 자타간에 성공을 했다고 칭찬하고 자부할지라도,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일에 실패한 사람은 모래 위에 기초를 잘못 놓고 집을 지어 온 사람으로서, 그런 사람들이 일생에 쌓은 모든 수고와 업적들은 마지막 날에 일시에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집을 지어 나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만, 여러분이 짓는 그 집의 기초는 반석 위에 잘 놓여져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하고, 또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장 큰 소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가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시간을 내서 주님과의 교제를 힘쓰고, 또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기 위해서 구체적인 실천에 힘쓰고 있다면 여러분의 집은 잘 건설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 목적 의식이 분명치 않다면, 그래서 다른 인생의 목적들이 여러분에게 더 중요하게 생각이 된다면 여러분이 짓고 있는 집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고 말 불량 건축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성공하는 분이 되십시오. 그러나 세속적인 개념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잘했다 칭찬을 받는 그런 성공을 위해, ‘함’ 이전에 ‘됨’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추구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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