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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이한 일을 보았도다 / 눅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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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5장 16-26
*제목: “기이한 일을 보았도다”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
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
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
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
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
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
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
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서론
  우리 예수님은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26절에서
도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
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
력을 통해 나타난 기이한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시편 107편을 보아도 똑같은 말씀이
무려 4번씩이나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라는 동일한 구절이 4번이나 계속해
서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
님이십니다. 기이한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기
한 현상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
문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의 의술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육
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참으로 기이한 일을 행하셨습니
다. 이것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라고 증거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
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심정으로 듣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육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오기
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은 예
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트집을 잡기 위해서 부정적인 눈과 마음을 갖고서 일부러 찾아
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놀라운 기이한 일은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온 사람들도 놀라고 믿음을 갖고서 찾아온 사람들도 놀라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저
는 오늘 예수님의 기이한 일을 통하여 ‘과연 예수님의 어떠한 점들이 기이하였는
가?’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이 기이한
역사가 일어나려면 우리가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소유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는 것이 기이하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시면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라는 구절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루는 안식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아닌 평범한 하루에 예수님께서 말씀
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트집 잡기 위해서 유대와 예루살렘
에서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
상에 메고서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풍
병자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신기한 능력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
모를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풍병으로 말미암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이 병자
는 친구들에게 부탁하여서 침상에 누운 채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
이 없는 예수님이었지만 이분이야말로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자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본문 19절을 보시면 “무리 때
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서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몰려 왔습니다. 정상적인 한 사람도 문을 통과하기가 심히
어려운데 하물며 중풍병자가 누워 있는 침상을 들고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란 여간 어려
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와 친구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
신에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붕에 있는 기와를 하나씩 벗겨
내었습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친구가 누워 있는 침상을 줄로 매어서 예수님이 계신
방 안으로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오늘 본문 19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
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
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뜨거운 믿음을 보셨습니다. 본문 20절
을 보시면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
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상에 누워 있는 중풍병자의 믿음
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의 믿음도 동시에 보셨습니다. 이처
럼 예수님은 우리 사람의 마음에 있는 믿음을 보시는 기이한 분이십니다. 심지어 예수
님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들의 믿음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확실한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희미한 믿음이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사랑의 하
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복을 마음껏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시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
야 할찌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우
리들의 마음속에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반드시 존재하고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0장 7절에서 예
수님은 믿음이 없어 의심하는 도마에게 “---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
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믿
음을 어떻게 아실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도 우리 자신의 믿음을 잘 알고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도 볼 수
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보 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앉은뱅이가 복음을 증거
하는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9절을 보시면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
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은 앉은뱅이의 마음속에 믿음
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10절에서 이렇게 담대히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이 말씀
처럼 사도 바울을 통하여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이한 일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사도 바울처럼 성령이 충만하여서 사람의 믿음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사람이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
지고 이 어려운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모든 시험을 능히 극복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일을 하기도 전에 그 일이 조금 힘
들다고 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고 한다면 아무리 쉬운 일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을 항
상 신뢰하고 바라보는 가운데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는 육적인 생활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영적인 생활도 있습니다. 육적인 생
활이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영적인 생활에서 믿음이 충만하여 승리한다면 그 인생에게
는 참으로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사람의 생각을 읽으시는 것이 기이하다.

  오늘 본문 20-22절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중풍병자를 향하여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불평하며 의논하는 장면이 나
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속으로 의심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진 분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
기에는 너무나 참람하게도 예수라는 젊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가 신기한 능력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은 눈에 보
이는 현상이기에 인정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인정은 하겠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죄
를 용서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가 교법사
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분노하여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본문 21절에 나오
는 ‘참람’이라는 단어는 건방지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특별히 신약에서는 ‘하나님
의 능력과 위엄을 침해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즉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의 눈에는
예수라는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는 대역죄인으로만 생각되어졌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도 이와 똑같은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어떤 서기관들은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4절을 통하
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
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즉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
을 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고 있는 한 친구가 있는데 어떤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열심히 봉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청년시절에 한 기도원에 갔습니다. 집회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
는 것도 아니요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자신의 생각을 똑같은 말로 표현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제 친구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하여 나에게 하나님
의 존재를 알려 주시는구나! 나의 하나님의 기도에 무관심한 방관자가 아니라 항상 나
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예수님을 경멸하
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
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논리는 어떤 면에서는 정당하였습니
다.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논리
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
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
를 용서하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야말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하늘보좌의 영
광을 잠깐 버리시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교법사들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였
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세주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교회에 처음 나온 새신자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찌
해서 기독교는 족보도 없는 종교가 되었습니까? 손자도 하나님 아버지요, 아들도 하나
님 아버지요, 모두가 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모두
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세상에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래
서 저마다 다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분밖
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
여 담대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은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을 가지
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
주가 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도 예수님의 신성에 관하여 여러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5절을 보시면 “-----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
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이라고 기록하였
습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하나님하고는
다른 분이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마음을 싹
비우시기 바랍니다. 디도서 2장 13절에서도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이 된 결정적인 원인은 그들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
로 타락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외에도 수많은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
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
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중에 성자 하나님이 되심을 확신하게 믿으시기 바랍니
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모든 생각을 읽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을 잘 품으시기 원합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겉으로 잘 드러
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아무 생각이나 품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생각을 훤히 꿰뚫고 계시는 분임을 늘 기억하는 가운데에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이
고 밝은 생각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바리새인과 교법
사들의 가장 큰 문제도 역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하
나님이십니다. 오늘날의 대통령의 권세와 능력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과는
조금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 되시
며,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영원한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는 마음속에 항상 이 진리를 품으시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은혜에
대하여 늘 감사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순서도 기이하다.

  참으로 기이한 일은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육신의 질병을 먼저 고치치 않으셨습
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우선적으로 중풍병자의 죄부터 고쳐 주셨습니다. 여기에 대하
여 본문 20절은 “---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사하여 주시고 그 다음에 육신의 질병을 고쳐 주
셨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뿌리요 중풍병은 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병자
에게 있어서 육신의 질병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 병으로 인하여서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고 수많은 날들을 침상에서 한숨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
한 육신의 질병도 죄의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
한 문제는 육신의 질병도 아니요, 사업의 어려움도 아니요, 자녀들의 문제도 아닙니
다. 이것은 가지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뿌
리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면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
다. 그런데 이 나무의 뿌리가 썩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때에 아무리 좋은 약을 가지
에 뿌리고 노련한 기술자가 와서 병든 가지를 친다고 할지라도 이 나무의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 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
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의 뿌리부터 고치기를 원하셨
습니다.

  그럼, 중풍병자에게 있어서 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
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
다. 첫째는 아담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죄가 있습니
다. 둘째는 원죄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이 자범죄는 우
리 스스로가 짓는 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원죄와 자범죄의 뿌리가 아무리 크다고 할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함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
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이 모든 죄를 덮고도 능히 남음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
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모든 원죄와 자범죄를 순식간에 용서함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
리의 원죄와 자범죄가 깨끗이 용서함을 받게 되지만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얼마든
지 또 다시 자범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자범죄를 범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면 반드시 여
러 가지 시험과 환란이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을 잃지는 않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중에서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
주로 영접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을 믿고서 원죄를 용서함 받으시고 천국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믿어도 여전히 자범죄를 범하
여 삶의 가지가 병들어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범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흰눈
보다 더 깨끗이 용서함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본문 24절에서 예수님
은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
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
라 하시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서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함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에 거하는 삶을 살아
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죄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 시험에 오고, 환란이 오고,
육신의 질병도 오고, 사업도 망하게 되고, 가정도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
다 무서운 것은 죄 때문에 사람의 영혼이 파괴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
운데에 여전히 죄악을 품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에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그 모든 죄를 용서함 받으십시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먼저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우리의 죄가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
는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겸손히 고백하는 가운데에 중
풍병자에게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이한 역사가 오늘날에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능력이 없는 일을 명하시는 것이 기이하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명령하십
니다. “-----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더군
다나 그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무거운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도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명
령하셨습니다. 이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비슷한 기적이 구약성경 에
스겔서 3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마른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
리고 가셨습니다. 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담대히 명령을 하
셨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에스겔서 37장 4-5절에서는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
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
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
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것도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
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마른뼈들을 향하여 크게 외쳤을 때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7절입니
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또한 에스겔서 37장은 10절은 “이에 내
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
데 극히 큰 군대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
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가장 기이한 역사가 죄인인 우리가 회개하
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구원을 받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서 아무리 훌륭하고 선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
늘 이 시간에도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아니하
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죄를 능히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할 중
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스스로에게는 자신의 죄를 해결할 능력
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중에 그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
고서 자신의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함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
스도를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천
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죄인인 우리
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원죄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죄성의 뿌리가 너무나도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이렇게 설
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
으십시오. 회개하고 믿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의지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설교입니다.

  어떻게 죄인인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있단 말
입니까? 죄 사함을 받지도 않은 죄인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죄를 먼저 회개할 수
가 있단 말입니까? 어떤 신학자들은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하여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
고 스스로의 죄를 해결하 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타락했지만 아직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에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예수님
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경험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말하는 학설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는 참으로 기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을 행하시는 기이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택
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기이한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인
간들로 하여금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기이한 능력이 된다는 진리를 확신하시기 바랍니
다. 구원에 관한한 인간의 공로는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오직 전적으로 우리로 하여
금 회개를 하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이요 은혜
인줄로 믿습니다.

결론

  우리교회에도 긍정적인 분들도 계시고 부정적인 분들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
을 하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역을 트집잡기 위
해서 부단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하물며 연약한 우리가 사역을 할 때에도 긍정적인 사
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존
재하는 교회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만 합
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이한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기만 한다면 그 어떠한 생각을 가
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우리교회가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님들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
만 합니다.

  첫째는, 개인기도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면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우리 예
수님도 기이한 일을 행하시기에 앞서서 먼저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능
력이 우리교회에 임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님처
럼 개인기도의 삶을 날마다 신실하게 행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는 끊임없이 우리교회에 일
어날 줄로 믿습니다. 개인기도를 무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 담겨 있는 영적인 능
력을 무시하는 것이요, 그 기이한 능력을 상실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심지어 자신
이 속한 교회의 신비한 능력을 빼앗아가는 실로 어리석은 태도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
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는 예수님처럼 늘 개인기도를 힘쓰
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의 역사가 우리교회에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생활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런 개인기도의 삶을 우리가 힘써 행할
때에 우리교회에도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임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시면서 하루에 단 1분이라도 기도하지 않은 분들은 오늘부터 최
소한 10분 정도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하루에 10분을 기도하신 분들은 기도
의 분량을 30분으로 늘리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30분 기도하신 분들은 오늘부터 기도
의 분량을 1시간으로 늘리시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기도의 분량만큼 각자에게 임
하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도 비례하여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모두가 협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기이한 일의
역사는 중풍병자를 돕는 친구들의 협력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
로 고통당하고 있는 중풍병자를 돕기 위해서 친구들이 침상을 메고 예수님께로 나아
온 결과 중풍병자가 죄 사함과 치유함을 얻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되었습니
다. 만약에 중풍병자를 도운 친구들의 협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기
이한 일은 성경에 기록되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
회의 네 모퉁이에서 각각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협력할 때에 하나님의 기
이한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직분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각자가
맡은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은 반드시 나
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로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중풍병자
의 친구들은 각자가 맡은 모퉁이를 서로 잘 협력하여 들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
로 올수가 있었고, 그 협력으로 인하여서 예수님의 기이한 일을 직접 경험하는 축복
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한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곳이 아
닙니다. 우리 각자가 침상의 한 모퉁이를 메고 협력하여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럴 때
에 하나님의 기이한 일의 역사는 우리교회에 틀림없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
가 바라고 믿고 원하기는 우리교회에 속한 모든 분들이 무시로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
아가시고,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옆에 있는 동역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성실하게 감
당할 때에 우리교회에도 하나님의 기이한 일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기를 예
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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