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질그릇에 담길 보화 (출 3:13 ~ 15)

  • 잡초 잡초
  • 416
  • 0

첨부 1


질그릇에 담길 보화

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3:13 ~ 15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서신서의 말씀: 고린도전서 4:6 ~ 10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나 스스로와 아볼로에게 적용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라" 한 격언의 뜻을 우리에게서 배우게 하여, 어느 한 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얕보면서 뽐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별다르게 보아 줍니까?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인데,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놓고 왕이라도 된 듯이 다스리려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다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처럼 다스리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으나,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태 복음서 16:1 ~ 9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더불어 말을 나누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내가 여기에다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에는 주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말을 채 끝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고서 "일어나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광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하셨다.

--------------------------------------------------------------------------------




오늘 복음서 본문인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야고보의 동생인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늘 기록에 보면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입은 옷은 하얗게 빛나게 되셨고, 그리고 그 옆에 보니 모세와 엘리야가 같이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고 좋아서, 베드로가 예수께 간청을 합니다. “선생님, 아예 여기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초막 세 개를 지어서, 예수님은 수제자인 제가 모시고, 모세는 야고보가 모시고, 엘리야는 그 동생 요한이 모시겠습니다. 우리 셋이 몸종이 되겠습니다.” 하고 제안을 합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겠습니까? 이 광경은 예수께서 나중에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의 광경과 똑같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듣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세 제자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같이 산을 내려가자고 하십니다. 산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아픈 군중들, 소외당해서 울고 있는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병자들에게로 가자는 것입니다. 이 얘기가 오늘 마태복음의 이야기입니다.

산 위에는 광채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광경이 있습니다. 산 아래에는 괴롬과 아픔과 힘든 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산에 머물겠습니까? 산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저라도 당연히 산꼭대기에 궁전 하나 짓고 거기서 살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십니다.

이 대목이 아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굉장히 감동적이었나 봅니다. 이 마태복음 17장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칭송받는 화가가 있습니다. 이태리의 유명한 라파엘이라는 화가입니다. 이 화가는 15세기 말에 태어나서 16세기 초반, 그러니까 종교개혁 초반에 르네상스 문명이 한창 부흥하고 있을 때 활동한 화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서른일곱 살에 죽었는데, 재미있는 건 서른일곱 살 되던 해의 생일날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4월 달에.

그런데 라파엘은 죽기 3년 전에, 당시 교황청으로부터 마태복음 17장에 있는 변화산 상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3년이나 걸려서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라파엘은 바로 그 그림을 완성해놓고서 죽었습니다. 자기 생일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바티칸 궁에서 교황이 직접 장례식을 주관하고, 라파엘이 3년간 그린 이 그림을 관 앞에 놓고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례식에서 이 그림을 해석했습니다. 이 그림에 관한 해석은 나중에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림 제일 윗부분에는 빛나는 얼굴의 예수가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부분에는 황홀경에 빠져 초막을 짓겠다는 세 제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아래쪽에는 산 아래에 있는 군상들을 그려놓았습니다. 귀신들린 아이, 그 아이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버지, 배고픈 사람들, 수많은 군중들,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이렇게 삼등분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7장을 그대로 그려낸 그림입니다.

산위에서는 예수님이 율법을 대변하는 모세, 모든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와 대화를 합니다. 율법과 예언은 구약 전체를 상징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한 모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엘리야, 구약의 전 역사와 신약시대를 여는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대화의 내용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장면이 엄청난 태양의 빛과 은빛과 광채로 둘러싸여 있어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그 거룩함을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곳에 초막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맨션을 지어가지고 거기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을 짓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산 아래로, 고통의 현장으로 내려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 라파엘이 천주교에서는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오늘도 화가 중의 화가로 칭송을 받습니다.

이 그림을 생각하면서 출애굽기의 말씀으로 한번 가보십시다. 오늘 읽어드린 출애굽기 3장에는 비슷한 모습의 사건이 하나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호렙 산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가시떨기에 불이 활활 붙어 있는데 가시떨기는 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시떨기 나무에 이상한 불이 타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얼굴, 광채가 너무 빛나서, 너무나 거룩해서,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성서에서 읽는 ‘거룩’이란 인간의 말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상상과 표현과 사상을 뛰어넘습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곳은 진실로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신을 벗고 엎드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서 너희 백성에게로 가라.” 그때 아마 모세도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한 그 산에 머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노역과 곤고함과 위협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런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고 하시는데, 그들이 당신을 보낸 분이 누구냐고 물을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왜 내 이름을 묻느냐 그 말입니다. 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왜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만들려고 그러느냐? 인간의 이데올로기에 나를 맞추려고 하느냐? 왜 인간의 언어로 나를 규정하려고 하느냐? 나는 나다. 그런 뜻입니다.

I am that I am. 나는 나다. 인간의 역사와 상관없이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모세가 청합니다. “그래도 백성들이 물을 것 아닙니까? 당신의 하나님은 누구냐고.”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에서 경험한 하나님, 그들의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신 하나님, 그분을 만났던 민족과 가정과 인간 개개인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만 말하라는 것입니다.

저 하늘에서 휘황찬란하게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땅에 내려와서 우리와 만난 하나님을 말해야 합니다. 구약의 하나님도 이스라엘 가운데 스스로를 나타내셨고, 예수도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제가 아까 변화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변화산 사건이 있기 바로 전인 16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 고백을 하고서 그 뜻을 모른 채 변화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라파엘은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산 아래로 내려가신 하나님.”

그로부터 250년이 지난 뒤에 우리에게도 아주 유명한 음악가가 한 명 등장했습니다. 그 음악가를 유명한 한 신학자가 소개한 적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종교개혁의 신학적 지도자라고 하면 마르틴 루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20세기에 전 세계의 신학을 이끌었던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여러 사람 중에서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칼 바르트를 들게 됩니다. 바르트가 1956년, 70회 생일을 맞았을 때, 마침 그해에 프랑스 파리에서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음악회에서 당대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 헌사를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바르트는 이런 헌사를 드립니다. 제가 헌사 내용 중 몇 개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신학을 하는 나를 이끌어준 안내자는 다른 어느 신학자가 아니고 모차르트 당신입니다. 당신의 음악은 강요하지 않고서도 나를 감동시켜서 당신 안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당신은 하늘과 더불어 재미있게 노래하는 어린아이처럼 노래를 하는데, 나는 그 노래에 흠뻑 빠져듭니다.” 바르트의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자기의 신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총과 은혜의 바다, 엄청난 바다 속에 푹 빠져서 기쁨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희열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모차르트 당신은 지금 하늘에 있겠지요?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찬양을 드릴 텐데 틀림없이 바흐의 곡을 연주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게 유럽의 정통입니다. 경건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성가, 교회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만든 성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찬양이 끝나고 나면 천사들끼리 모여서 신나고 기쁜 마음으로 자기들끼리 노래하고 춤출 텐데 그때는 분명히 모차르트 당신의 곡을 연주하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 연주를 듣고 오셔서 함께 어울리시겠지요. 하늘나라에 가서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 당신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느낍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태양은 장렬히 빛납니다. 그 태양을 쳐다봐도 제 눈이 부시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둥근 모양을 하고 온 땅을 비취고 있지만, 땅을 누르지도 않고 짓밟지도 않습니다. 땅은 하늘 아래 있지만 하늘에 저항하거나 반란할 일 없이 편안합니다. 하늘도 평안하고, 땅도 평안합니다. 땅 속에는 암흑과 혼란과 죽음과 지옥이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평안을 깨지 못합니다. 좌와 우와, 상과 하가 서로간의 경계를 지키면서,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경계를 지키면서 서로 만나니, 이 자유와 평안이 하늘과 땅에 넘쳐납니다. 당신은 그것을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면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으로 서로 자유하면서 만나는 은총의 바다, 이 바다를 당신을 음악을 통해 봅니다.” 이렇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까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트도 이 이야기를 합니다. “모차르트여, 당신은 광채 가운데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산꼭대기에 서 있었던 예수의 이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지요? 아뉴스 데이(Agnus Dei). 그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주님, 세상 죄를 없애주시는 주님이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당신은, ‘종교개혁을 한 지 2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개신교 신자들’이라며 욕한 일이 있으시죠. 산 위에서 광채에 휩싸여 부활의 영광을 보이셨던 그분, 그분은 세상 죄를 대신 지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라 했던 당신의 말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고 헌사를 바쳤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광채로 뒤덮인 산에 머물고 싶어 했지만,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늘의 영광은 땅 속에서 빛나야 하며, 하늘의 자유는 땅 속에서 꽃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생명은 죽어가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피워낸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진리입니다.

오늘 라파엘이 그렸던 마태복음 이야기, 모차르트가 노래했던 하나님의 어린양 이야기와 오늘 서신서 본문인 고린도후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것은 하나로 관통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셔서 인간은 알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분이지만, 그러나 그분은 썩어빠진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스스로 모든 죄악을 걸머지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질그릇처럼 깨질 수밖에 없는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우리의 보잘것없는 가정과 역사 속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보화가 담깁니다. 하늘의 보화는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하늘까지 가지 않아도 땅 위에 널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질그릇이라도 좋습니다. 이 보화를 담으십시오! 그것이 구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따라 고통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음악도, 미술도 신학도 그것을 증언합니다.

하늘의 영광은 땅에 임하고 싶어 하십니다. 땅을 구원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질그릇 된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하늘을 너희 그릇에 담아라. 우리 함께 구원의 길을 가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