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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견고한 교회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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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16:13-20
제목: 견고한 교회


  미국의 동부와 서부는 떨어진 거리만큼 두 사이에 문화와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특히 도로와 건물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동부를 대표하는 뉴욕과 서부를 상징하는 로스엔젤레스를 비교해 보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LA의 도

로는 아주 시원하게 넓게 되어 있지만 뉴욕은 우리나라처럼 매우 좁고 답답합니다. LA의 건물은 고층이 별로 없고 옆으로 길지만 뉴욕 맨하탄의 건물은 위로 빡빡하게 서 있습니다. 건물 밑에서 위를 보면 현기증이 납니다. 강 건너편에서 맨하탄을 보면, 도시의 아주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하여, 지난번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타, 그리고 그 외에 비슷한 높은 빌딩이 우뚝 서 있습니다. 왜 서부와 동부에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땅’입니다. 서부의 땅은 바닥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지진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높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부의 땅은 그 지반이 모두 암석입니다. 단단한 바위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문제가 없습니다. 부실공사만 아니면, 폭격만 없다면, 아무리 비바람이 불어도 무너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든든하게 하고, 그 안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도 평온한 가운데 안심하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잘 믿다가도 조금만 환경의 변화가 오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평온할 때보다 어려울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어쩌면 어려울 때를 위해 축적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 불안해서 사람들이 찾지 않습니다. 결국 견고한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꿈꾸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견고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견고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오늘 이것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본문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우선, 이 말씀은 최초로 ‘교회’를 언급한 말씀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입에서 처음 ‘교회’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에서 놀라운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에 전환을 이루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매우 큽니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을 계기로 주님은 모든 사람 앞에 자신을 나타냈고, 점점 십자가로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또 이 말씀은 교리적으로 기독교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역사의 양대 산맥인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라짐은 바로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를 초대교황으로 시작된 천주교의 전통과 성경적인 근거는 바로 이 말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씀은 당대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의미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본문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초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말도 많고, 실수도 많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고백을 통해 믿음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입니다. 본문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중심입니다. 신앙고백을 듣고 주님은 그를 칭찬했고, 교회를 언급하셨습니다. 바로 그 고백 속에 교회가 세워지게 됨을 암시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16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의 고백은 한마디로 예수님에 대한 고백,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런 고백 속에 믿음이 서게 됩니다. 또 공동체적으로도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이런 고백을 기반으로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기독교역사에서 교회를 흔들었던 끊임없는 논쟁은 바로 예수님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냐, 아니냐, 예수님이 인간이냐 아니냐, 예수님이 하신 병자를 고치는 것이냐 가르치는 것이냐, 모두 이런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해석으로 문제를 야기 시켰습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가 지금까지 거짓선지자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 현혹되고 잘못되어 많은 이단과 사이비가 나온 것입니다. 이단은 성경 밖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교회나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잘 압니다. 교묘하게 침투하여 우리를 흔들고, 교회를 흔드는 것이 이단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보다 교회의 교패를 보면서 방문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젠 안에서부터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도 교리와 성경을 이용하여 접근합니다.

  저는 지금도 생각하면 충격적인 한 청년이 떠오릅니다. 제가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 그 청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마당에서 저를 보더니만 멍이 든 자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니, 자고 일어났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어 고통을 받으신 고난받는 종 메시야에 관한 부분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메시야, 그러니까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놀래서 성경의 처음부터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불과 6개월이 지난 뒤, 그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유서에 그는 예수님처럼 자기도 사람에게 버림받아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은 신앙인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우리를 흔듭니다. 교회의 잘못된 교리나 신앙도 안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교회를 지켜야 하고, 우리 신앙이 잘못되지 말아야 합니다. 잘 모르면 우리교회가 속한 교단이 어디인지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단이 따르는 모든 교리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한쪽 부분만 믿고, 잘못되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교회를 흔들고, 교인을 흔드는 이런 이단과 사이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날마다 고백하고 배우면서, 흔들림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18절의 말씀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18절이 가장 논쟁이 많은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바로 주님께서 교회를 언급하실 때 ‘내 교회’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 교회, 바로 주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도하고, 주님이 다스리고,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 바로 그 교회를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것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심을 강조했습니다.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 그 교회가 견고하게 섭니다. 그 자리를 어느 사람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주도권’의 문제입니다. 누가 교회의 주인이 되느냐로 교회가 사분오열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 하면서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는 있습니다. 즉, 교회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내 집, 내 일터, 내 삶의 터전과 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처럼 ‘주인의식’은 필요하지만 ‘주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 끊임없는 싸움이 바로 주도권에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으로 문제와 갈등이 있는 것을 압니다. 교회는 기업과 다릅니다. 교회의 모든 소유와 주도권은 오직 주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위탁을 받은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접하여 아는 어느 목사님은 이것을 철저히 실행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교회를 세울 때 처음부터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 교회 이름부터 ‘주님의 교회’라고 지었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요 주도한다는 뜻으로 가장 귀한 자리를 주님을 위해 비워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시작하면서 그 목사님은 10년을 목회하고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 뒤 그 목사님은 정확히 10년이 되던 해 교회를 떠났습니다. 말이 10년이지 정말 꿈같은 세월이었습니다. 열과 성의로 쏟아 부은 날들이었습니다. 교회가 어려우면 미련이 없었겠지만, 그 교회는 10년이 지났을 때 아주 견실한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분이 떠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다시 접어도 아무도 의의를 달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교인들은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내심 그냥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지금은 아주 작은 교회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참 목회자의 모델이 되어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시라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한국교회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결코 될 수 없고 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기득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자랑이 아니라 섬김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견고해 집니다. 늘 주님의 교회임을 잊지 말고,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입니다. 주님은 계속되는 말씀에서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 음부의 권세는 바로 사탄의 세력입니다. 사탄의 하는 일은 성도를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참되게 살지 못하게 막고, 헛점을 노려 몹시 성도를 흔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의 편지에서 강조한 것처럼 사탄은 지금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라도 넘어트리려고 갖은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사탄은 동일한 수법으로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집요하게 교회를 흔듭니다.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하고, 약하게 하고, 교회를 무너트리려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민감해야 합니다. 모든 악한 일의 뒤에는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 조정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쁜 일에 마치 유다처럼 쓰임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음부의 권세는 성경을 기록할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다르게 나타납니다. 당시 사탄의 전략은 교회와 성도를 향한 핍박과 환란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까? 초대교회를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흔들었습니까? 네로황제 때의 핍박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교회의 씨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부의 세력 앞에서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음부의 세력은 시련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계획은 외부적인 핍박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양의 탈을 쓴 이리로 접근합니다.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적어도 지금 교회를 향한 음부의 세력은 두 가지 형태로 접근합니다. 우선, 세속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속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정말 필요하지만 성경은 다수의 원리보다 성경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뒤 보고한 사람들의 사건에서 그것을 잘 봅니다. 열 두명 가운데 열 명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두 명만이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모세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열 명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가나안의 꿈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따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수보다 오직 성경의 원리를 따릅니다. 하나님제일주의가 교회를 견고히 세워 가는 것입니다.

  또 지금 교회를 향한 사탄의 전략은 물질주의, 물량주의입니다. 황금만능주의가 온 세상에 팽배해 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돈으로 권력도 사고, 돈으로 학교도 가고, 돈으로 사람도 파고 삽니다. 돈이 없으면 세상에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세상은 가진 자를 대접하고, 없는 자를 멸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또 세상은 지금 큰 것은 다 좋고, 많은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것이 버려지고, 소홀히 취급을 당합니다. 너무도 많고 흔하니까 세상에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상이 교회에도 많이 접근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을 주도해야 할 교회가 세상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교회를 거룩한 곳으로, 하나님이 임하는 곳으로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세상과 같은 곳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는 교회여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여야 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따라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논리로 결코 변질되지 말아야 합니다. 잘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교회가 음부의 권세 앞에, 세상의 논리 앞에 견고히 설 줄로 믿습니다.

  창립3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난 한달 동안 우리가 꿈꾸는 교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고싶은 교회, 건강한 교회, 소문이 좋은 교회, 아름다운 교회, 그리고 견고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충성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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