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깨든지 자든지 (살전 5:9-11)

  • 잡초 잡초
  • 477
  • 0

첨부 1



본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장 9-11절
제  목 : 깨든지 자든지


옛날 희랍얘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신으로부터 죽을 때에는 지붕에 깔려 죽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그 사람은 절대로 어느 지붕 밑에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잠을 자더라도 바닷가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잤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던 이 사람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주름이 들고 머리카락은 빠져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잠을 자기 위해서 바닷가를 찾았고, 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때 마침 큰 독수리 한 마리가 거북이를 낡아 채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독수리는 거북이를 내리쳐 죽게 한 다음 쉽게 먹으려고 생각하던 차에 저 밑에 번쩍거리는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독수리는 큰 다이아몬드나 수정이 빛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 거북이를 내쳤습니다.
그러나 독수리가 다이아몬드나 수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늙어 벗겨진 그 사람의 머리였기에 결국 그는 거북이 벽락을 맞고 즉사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인생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체념적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운명론을 거부합니다.

◈ 예수님은 인생을 바꾸시고

◈ 예수님을 향한 성도의 믿음은 오히려 운명을 개척하여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십시오.

◈ 인생이 바꾸어진 것을 의미하고 있잖습니까?

  9절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음을 보장하고 있잖습니까?

  10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였느니라”


1) 이것만큼은,

하나님은 내가 꼭 믿기를 원하는 사안들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② 내 죄악이 용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히 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③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④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모든 사안들을 보면,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사안들이 있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안들이 있으며,
앞으로 이루어질 사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가 문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제는 지나갔기에
또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내 시간이 아닙니다만,
현재는 오늘인 만큼 분명한 내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오늘을 통해서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재조명하여
내일의 희망을 가꿀 수가 있습니다.

현재 무엇을 하느냐?
어디에 있느냐?
누구와 있느냐? 는 내일의 희비를 엇갈리게 합니다.

2) 항시 동거

주님은 내가 깨든지 자든지 함께 계시마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믿음은 오늘과 내일을 만듭니다.
주님은 나와 항상 계시고자 위대한 이을 이룩하셨는데

① 나를 성전 삼으셨습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구약 시대에는 성전이 특별한 곳에만 있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그곳을 향해서 나아가야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이방나라에는 성전이 없었고,
이스라엘 일지라도 예루살렘 외에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돌아가신 이후 이 모든 율법은 폐하여졌고,
완성되었기에

◈ 주님이 완전한 성전이요
◈ 그 지체된 성도가 성전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배하는 이곳은 무엇이냐? 할 때 역시 성전이긴 합니다만,

◈ 성도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무형의 성전이라면
◈ 예배당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유형의 성전인 것입니다.

② 보혜사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때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로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영」으로 오셔서 모든 성도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이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오신 날이 오순절인 것입니다.
이때부터 성령님은 각 성도와 함께 계십니다.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간병하는 젊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소변을 갖고 검사실에 가다가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핀잔을 듣기 싫은 며느리는 자기 소변을 받아다 주었습니다.

얼마 후 의사가 시어머니에게 오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병이 나았다는 말로 알아듣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곧 기절했습니다.
의사가 「임신했습니다」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며느리의 거짓이 탄로 났습니다.

왜 이 얘기를 할까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함께 거하시고자 성전 삼으시고,
성령님으로 오신 것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말씀입니다.
「구원하셨고,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 모든 사안들이 사실임이 증거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②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랜 권위의 정확무오한 책은 오직 성경입니다.

③ 거짓이라고 탄로가 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거니와」하여 수천 년 동안 증명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진리인 냥 믿고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욱 믿고 따릅니다.
그리고 성경보다는 각 정보 매체의 뉴스를 더 권위 있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일 때문에
항시 주 안에서 주와 함께 행복자로 혹은 희망자로 살아야 할 성도조차도 우는 자가 됩니다.
슬픈 자가 되곤 합니다.

◈ 신문과 방송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 통계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 점쟁이의 말은 더욱 믿지 마십시오.

그러나 성경은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인격과 다른 세상을 만듭니다.

존, 템풀경은 마음속에서 일어난 생각은 그 속성상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은 우리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못하고,
좋은 생각과 행동은 결코 나쁜 결과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고! 지금의 생각!
무엇으로 채울 것입니까?

◈ 하나님의 은혜로 구언 받았다
◈ 예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는 착각이나 거짓이 아닐진대

참 용기와 참 희망과 참 경건과 참 행복을 만듭니다.

마틴 루터는 일찍 종교개혁을 추진했지만,
무서운 교권의 억압과 박해에 직면했습니다.
그때마다 루터는 책상위에다 「그는 살아계시다 그는 살아계시다」를 반복해서 쓰므로 자신의 믿음을 키웠습니다.

결국 마틴 루터는 한 나야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주는 내편이시다! 는 믿음을 통해서 종교개혁이라는 위대한 진가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연세 드신 분이 일제의 식민지와 6․25의 포화 속에서 그리고 격변의 시대에서도 살 수 있어 오늘이 이르게 된 것은,
주님께서 「깨든지 자든지 저와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보장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여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할 것」입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그럼에도 혼란 중에,
잊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유감 되지만,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그렇질 않으십니다.

  사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과연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과연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3) 믿음의 사람

이 약속을 믿는 성도에게는 몇 가지 남다른 면모가 있습니다.
이것이 곧 구원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① 구원의 은혜에 감사 찬양합니다.

  시 30:3-4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② 담대함이 있습니다.

  시 28:1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어린 날 밤길을 걷는 것이 무서울 때 찬송가를 부르며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용기백배하였습니다.

살면서 두려워 떨고
미래에 절망 중일 때 얼마나 많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역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와 희망과
      웃을 수 있는 희망을 먼 곳에서 찾지 마십시오.

주님은 구원하셨고,
지금도 함께 계십니다.
이 믿음, 잊지 마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