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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명 받았습니까(삿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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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프리카 선교사님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프리카에서는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김교수가 기도하면서 개발한 슈퍼 옥수수가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서는 톡톡한 재미를 본다고 합니다. 그 땅에 재배가 잘 되고  슈퍼 옥수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은 굶는 문제를 해결했기에 좋아한다고 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한 사람은 중요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는 한 사람은 금과 은보다 중요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기아를 해결하는 사람은 구세주입니다. 폭설이 내릴 때 눈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중요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위기를 극복할 하나님께서 세우는 지혜는 사람은 귀합니다.

6장에서 이스라엘은 위기의 시대입니다. 절망의 시대입니다.
1절에 여호와 목적에 악을 행할 때 유목민인 미디안의 손에 붙입니다. 미디안 족속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미디안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생활에 기본이 되는 주거 생활이 박탈당하고 식생활이 해결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2절에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해 만들었더라. 미디안이 공비처럼 매일 와서 괴롭히니 견디다 못해 집을 버리고 산에 가사 굴을 파고 거하는 것입니다. 발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빼앗긴 것입니다.
주거가 불안한 것입니다. 내일 잘 곳이 없습니다. 하루 하루 산에서 굴을 파고 지내는 합니다.

3-4절은 파종할 때 미디안과 여러 족속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진을 치고 식물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짐승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모든 식물과 짐승을 다 빼앗아 갑니다. 짐승은 고대의 재산입니다.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가니 식생활을 걱정해야 합니다. 문화생활을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절망의 시대입니다.
이런 초죽음의 상태가 온 것은 1절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주는 미디안만 보입니다. 미디안이 원수입니다. 그런데 미디안이 이렇게 못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욥을 시험하도록 사탄에게 허락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이 미디안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사스가 지나가면 조류 독감이 오고, 조류독감이 지나가니 폭설로 언제나 위기가 앞에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입니다.

참된 영적 지도자가 있었다면 고통을 주는 보이는 미디안을 원망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있는 악을 보고 참회운동을 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나름대로 방법을 동원했겠지요. 이웃 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었겠고, 미디안과 협상을 벌이기도 하고 뇌물을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거듭 회의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자. 마지막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6절에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7절에 부르짖은 고로... 2번이나 나옵니다.

사실 미약함이 심하기 전에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가장 먼저 했어야 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고생하기 전에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집을 잃고 산으로 도망가기 전에, 양식이 없어 라면을 먹기 전에 먼저 부르짖어 기도하는 지혜가 있어야 했습니다.

8절에 이스라엘이 만신창이가 되어 부르짖었더니 선지자를 보내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짖고 사모하면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 앞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면 말씀이 들립니다. 참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면 환경이 해결되기 전에 먼저 말씀이 들립니다.

사방에서 말씀이 들립니다. 예배 중의 목사님 말씀도 나에게 하는 말씀 같습니다. 찬송 가사도 나에게 하는 말씀 같습니다. 우연히 방송을 들어도 나에게 하는 말씀 같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던진 말이 나를 향한 말씀 같습니다.

사모하고 참회하고 부르짖으면 말씀이 들립니다.  그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닫게 합니다.
8-10절에서 무엇이 문제여습니까?
내가 너희를 종 되었던 애굽에서 인도하고, 나오게 하고, 건져내고,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주었다. 그리고 아모리 사람의 신들을 두려워 말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말을 할 때 듣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말로 할 때 듣지 않아 고생을 한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실려 갈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말로 할 때 듣지 않고 고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르짖는 것, 말로 할 때 듣는 것이 복 받는 자의 특징입니다.

왜 말로 하지 고난을 줍니까?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희가 말로 할 때 알아듣지 못해 수치스럽지만 고난을 당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말로 해서 알아듣는 못할 때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합니다.

고난당함의 핵심이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았다가 압니다. 무기를 모아놓지 않음이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주님으로 섬기라는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 신을 왕으로 심기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람말보다 가볍게 여긴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당장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요, 경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경제의 불안과 정치의 혼돈은 하나님의 허락 속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왜 미디안을 붙여 고생하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왜 정치 불안과 경제 불안을 허락했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의 죄와 연관이 없을까요?
지금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성도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도 하나님 말씀에 떨지 않습니다. 십계명을 버린 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주님의 이중 계명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을 가슴치는 성도들이 별로 없습니다.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의 고통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듯 합니다.

나라의 위기를 두 눈으로 보는 지금은 부르짖을 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참회할 때요, 말씀대로 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가슴을 찢을 때입니다. 지금은 청빈을 실천할 때입니다. 없어서 못쓰는 것은 가난이지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선한 일을 위해 안쓰는 것은 청빈입니다.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살 것을 사지 않고 청빈하여 선한 일을 할 때입니다.

정치의 혼돈과 경제의 불안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조류 독감과 3월 폭설 등 자연 재해를 보고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누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청종할 때 몸으로 고생하지 않습니다. 말로 할 때 들으면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말로 할 때 듣지 못한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은 몸으로 고생하고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청종함이 우리의 복이 됩니다.

부르짖을 때 중병의 원인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서 대책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대책은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부르짖을 때 모세를 세워 구원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부르짖을 때 사사를 세워 구원하십니다. 교회에서 엎드려 부르짖을 때 역시 인간 천사 같은 사람을 세워 문제를 해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대책은 사람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영적 전쟁에 헌신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소명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기도온을 소명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으로 반응하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할 때 큰 용사가 됩니다.
11절에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옵니다. 기도온을 통해 미디안 용사 13만 5천을 물리치십니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은 “나무 베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자가 12절에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의 사자는 기도온을 향해 위기를 해결할 큰 용사라고 지목합니다.
그런데 정말 기도온은 큰 용사였을까요? 아닙니다. 기드온은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의심이 많았습니다. 기드온은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이 3가지는 기도온의 약점입니다. 큰 용사의 치명적 약점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기도온입니다.
11절에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틀에서 타작하더니.
포도주 틀은 바위를 둥글게 깎아서 만든 돌 통으로 마치 모양이 여물통처럼 생겼습니다. 그 안에 포도를 넣고 올라서서 발로 밟으면 포도가 터져 생긴 즙이 관을 통해 약간 아래에 놓은 또 다른 돌 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포도주는 포도주 틀에서 짜야 하지만 밀은 밖에서 도리깨로 타작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기도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합니다. 밖에서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미디안 사람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갈 것이 두려워 감히 백주에 밖에서 추수를 못합니다. 알리지 아니하려고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합니다. 자기 문제도 하나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기드온 역시 두려움이 사로잡혀 있습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하지 못합니다. 안될 것을 미리 생각하기에 감히 하지 못합니다. 이런 두려움이 있는 기도온을 향하여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기도온은 의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사랑도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약속도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능력도 의심하였습니다.
13절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우리에게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이 모양 이 꼴이 무엇입니까? 정치는 난리이고, 매일 정치인들이 구속이 되고, 경제는 내일이 암담하고 왠 3월에 폭설이 내려 전국이 난리가 되게 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성경에 나타난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 나라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랑도, 능력도, 약속도 의심합니다. 도마처럼 의심이 많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기드온은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14절 너의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합니다.

누군가 나타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지 않을까? 생각할 때 너가 하라고 합니다. 로또복권이 맞춰 지기를 기대하지 말고 너의 힘으로 싸우라고 합니다. 미디안과 싸울 용사는 바로 너다. 너의 힘으로 싸우라. 그 힘이 미약한 것을 알지만 너희 힘으로 싸우라 합니다. 마치 물매돌로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처럼, 오병이어를 드려 5천명의 문제를 해결한 소년처럼 너의 작은 힘으로 일하라고 합니다. 너가 시작하면 내가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결과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반응은 15절입니다.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이니다. 철저한 열등감입니다.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열등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능력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사실 27절에 종이 10명이 있는 집안이지만 자기는 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의심과 열등감이 있는 기드온을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과 의심과 열등감등 치명적 약점이 많지만 큰 용사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약점이 많은 우리를 큰 용사로 부르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본몬을 통해 턱없이 부족한 우리지만 큰 용사로 부르시는 주님의 소명을 발견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불렀으니 큰 용사이지 기드온이 잘 나서 큰 용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부르시던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름에 순종한 자에게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은사도 주셔서 큰 용사로 사용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80세의 모세를 불러 큰 용사로 사용하지만 어린 나이의 예루미야를 불러 선지자로 사용하시고 열등감을 가진 기도온을 부르시고, 어부 출신의 베드로를 부리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명에 순종하여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큰 용사가 아니라 큰 용사가 될 꿈을 가지시고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은 두려움, 의심, 열등감이 있지만 훈련하여 큰 용사로 쓰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을 보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약점이 있어도 주님이 부르심에 무조건 순종하고 말씀을 무조건 청종하겠다는 믿음만 있으면 주님은 오늘도 불러서 쓰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약점을 보는 것은 사람들의 눈이고 하나님께 함께 하시어서 큰 용사가 될 것을 보는 눈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지만 하나님은 가능성을 보십니다.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처음 예수 믿는 분을 볼 때 많은 약점을 보지 말고 1년 후 2년후에 큰 용사로 쓰임 받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격려하고 기도하고 인정합니다.
현재 남편, 아내의 모습을 보지 말고, 훈련받아 쓰임 받게 될 남편과 아내를 모습을 보십시오,
자녀를 볼 때도 훈련하고 준비하여 앞으로 큰 용사가 될 것을 보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많은 약점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됩니다.

16절에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르 한 사람 치듯하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는 미디앙ㄴ 13만 5천 군대를 섬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믿어지면 담대해 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빽이 있는 사람은 빽을 의지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의지합니다. 빽도 없고 돈도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큰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멸망해 가는 나라도 구합니다. 꺼져가는 교회도 살려냅니다. 힘을 잃은 가정도 살려냅니다. 살리는 큰 용사를 하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자녀도, 가정도, 교회도, 지역도 살려내는 하나님이 함께 한 큰 용사가 되는 부름에 아멘으로 순종하길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5-29)

바울은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이 말은 나는 아무것도(nothing)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everything)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많은 약점이 있지만 부름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큰 용사로 훈련시켜 큰 용사가 되게 하십니다. 필요한 능력, 은사, 지혜는 주십니다.

치명적 약점을 가진 기드온이지만 하나님 백성의 최대 위기를 해결할 용사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기드온처럼 순종하면 큰 용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인생이 변화됩니다.
기드온은 패배 의식 속에서 자유도 빼앗기고 산으로 도망가서 동굴에서 밀타작하며 적당히 살다 끝날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고 인생이 변화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갈릴리 어부들이었지만 땅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사를 삼으라는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였기에 초대 교회의 기둥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면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큰 용사가 될 것입니다.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증거자가 될 것이고, 넘어진 자를 일으키며 낙심된 자를 세워주며, 망가진 삶을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용사가 될 것입니다. 나만 위해 사는 생애에서 남을 위해 사는 용사로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복을 받도록 합시다. 아멘

2. 능력의 근원을 바로 알아야 평화의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한 기드온은 표징을 구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여 미디안 사람을 한 사람 치듯 하리라 할 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징을 구합니다.

17절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예물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옵소서.
19절 가서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누룩 없는 떡인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와 국을 가지고 옵니다. 한 10명 이상이 먹을 음식입니다. 예물을 크게 드립니다. 표징을 얻기 위해 큰 예물을 드립니다.

20절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떡을 반석 위에 두고 국을 쏟으라 합니다.


21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떡을 살라버립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 보이지 않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불은 지팡이 끝에서 나와야 하는데 반석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상징입니다.

불은 능력입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도구인 기드온입니다. 우리들입니다. 반석은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은 기드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온다는 표징입니다. 생수도 반석에서 나오고 불도 반석에서 나오고 능력도 반석에서 나옵니다.

능력이 반석이신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 때 열등감도 해소합니다. 두려움도 이깁니다. 의심도 사라집니다.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확신이  강할 때 능력이 강합니다. powerful합니다.

소명을 받고 확신을 얻기 위해 표징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나를 이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신은 능력을 배나 증가시킵니다.

소명을 받았지만 우리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오는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반석이신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힘입어 일하는 것이고, 반석이신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불을 받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명 받은 일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순절에 주님께 엎드로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구할 때 성령의 생수와 성령의 불을 주시어 능히 일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22절에 반석에서 불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분은 사자인줄 압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출애굽을 인도한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슬퍼합니다.

23절에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제단을 쌓고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 샬롬이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죄인인 자신이 하나님을 뵈었는데도 죽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 샬롬’이란 이름으로 단을 쌓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을 화해하시는 분으로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믿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크신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신분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자로서 진정한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의 삶을 통하여 이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위대한 인물인 것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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