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늘의 시민권 자 (빌 3:17~4:1)

  • 잡초 잡초
  • 768
  • 0

첨부 1


 
2004년3월7일 말씀  제목 : 하늘의 시민권 자  본문 : 빌립보서 3:17~4:1   

기원전 4000-5000년 전만 해도 장거리 수단인 낙타가 시속12킬로로 달렸고, 1784년 영국에서 가동된 최초의 우편마차가 시속 약 16킬로로 조금 빨라졌고, 1825년 발명된 증기 기관차가 시속 약 23킬로로 달렸다. 1880년 증기 기관차가 시속 100마일을 돌파했다. 시속 160킬로이다. 1938년 비행기가 시속 400마일을 날기 시작했고 1958년에는 800마일, 1960년대가 되어서 로켓이 발명되면서 시속 4000마일까지 날아간다. 음속,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의 25배까지 속도를 낸다. 4시간이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갈 수 있는 세대가 머지 않아 온다. 이제 4월이면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우리는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빨라졌으면 좀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점점 더 바쁜가? 참으로 이상하다. 모든 것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이 있는데 왜 이렇게 점점 바쁘게 살아가는지 참으로 이상하다. 컴퓨터의 속도가 결국은 컴퓨터의 가격을 결정한다.

특별히 우리 나라 사람은 더욱 조급함을 많이 느낀다. 외국인의 경우에 자판기의 커피가 다 나온 후, 불이 꺼지면 컵을 꺼낸다. 우리 나라 사람은 자판기 커피 눌러놓고, 컵 나오는 곳에 손 넣고 기다린다. 가끔 튀는 커피에 손을 데기도 한다. 외국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은 혀로 핥으며 천천히 먹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한입에 왕창 먹다가 순간적인 두통에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 할 때도 있다.
이같이 바쁜 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시간을 생각해 보라. 과연 나는 어디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서 살아가는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결국은 “땅의 일”을 생각하고 땅의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바쁘게 지나갈 것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말씀을 전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얼마나 사도 바울의 마음이 간절했으면 눈물을 흘리며 권고 했겠는가? 어떻게 살아가면서 땅의 일만 생각하고 땅의 일로 바쁘게 살아가느냐? “그들의 신은 배요”라는 말씀이 있다.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배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욕심이다. 우리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좋은 곳에 살고 싶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싶고, 더 편하게 살고 싶고, 이것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에서에게는 장자권이 있었다. 장남으로서 아버지로부터 장자권의 축복을 누릴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하고 돌아왔더니 너무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동생 야곱이 팥죽을 너무나도 맛있게 끓이고 있다. 배가 고파서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하니 야곱이 거저 주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형의 장자권을 나에게 팔면 내가 팥죽을 맛있게 곱빼기로 드리겠다. 형 에서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 장자권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우선 내 빈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팔아 넘긴다. 에서에게는 장자권보다는 우선 빈 배를 채우는 것이 더욱 소중했다. 땅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우선 자기의 빈 배를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은 자신의 빈 배가 곧 하나님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가셨다. 귀한 손님 예수님이 오셨기에 마르다는 바쁘게 음식을 준비한다. 예수님이 오셨기에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이고, 콩나물도 무치고, 두부 전도 만들고, 북어구이도 만들고 하면서 열심히 음식을 마련하고 있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 지라.” 마음이 아주 바빴다. 그런데 마리아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치 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다. 마르다가 화가 나서 예수님을 향하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하고 나를 도와 주지 않습니다. 나를 도와 주라고 하세요.” 예수님의 대답이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편은 무엇인가? 땅의 일로 너무 분주하게 사는 것 보다는 하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에서는 자신의 빈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 귀한 장자권을 팔아 넘겼다. 자신의 빈 배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빈 배를 채우는 일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주님과의 관계이다.
바울은 이러한 내용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한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나는 하늘의 시민권자이다.” “나는 하늘의 시민권자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간다. 비행기에는 일등석이 있고, 이등석이 있고 삼등석이 있다. 일등석에 타면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아주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삼등석에 타면 일등석이나 이등석보다 좁은 자리에서 간단한 기내식을 먹으면서 여행을 한다. 열시간이 넘어 로스엔젤레스 공항에 도착하면 입국 수속을 한다. 지난 1월에 갔을 때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 대해서 얼마나 조사가 심한지 모른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무려 한시간 반을 기다렸다. 내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은 일등칸을 타고 온 사람이었다. 입국 수속을 위해서 섞여 있는데 일등칸을 타고 온 사람이나 삼등칸을 타고온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미국 시민권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간다. 삼등칸을 타고 온 사람이라도 미국 시민권을 보여주기만 하면 즉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비행기를 타고올 때에 일등칸을 타고 왔어도 미국 시민권이 없으면 입국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이 불편하지만, 삼등칸을 타고 왔어도 시민권이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이 이렇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땅의 일을 생각하며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 살고, 편안하게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며 살아간다. 마치 이 땅에서의 인생은 퍼스트 클래스, 일등석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하늘의 시민권이 없으면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삼등칸의 생을 보낸다고 할지라도 하늘의 시민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챙겨주신다.
이같이 하늘의 시민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다. 멸망에서 영광으로 옮기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줄로 믿는다.

뿐만 아니라 시민권자는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바울이 빌립보서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다. 당시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 자이었는데 재판의 과정도 없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였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는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 문이 열렸다. 간수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옥의 문이 열린 것을 보니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간수가 스스로 자살하려고 한다. 그때에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여기에 있느니라.” 결국 다음 날 바울이 석방하게 된다. 바울이 그들을 향하여 “내가 로마 사람인데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마구 구타하고 옥에 가두고 가만히 내보내려고 하느냐?” 상관들이 이 말을 듣고 바울이 로마 사람인 것으로 인하여 몹시 두려워하였다.

왜 그런가? 시민권이 있으면 법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동의 어느 나라가 전쟁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그러자 그곳에 흩어져 있던 미국 시민들이 대사관으로 몰려든다. 대사관에서는 미국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헬리콥터를 준비해 놓고서 기다린다. 시민권을 보여주자 그 헬리콥터를 타고서 구조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호 받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마치 하늘 나라의 대사관과 같은 곳이다. 대사관에는 본국의 지침을 받아서 교민들에게 잘 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늘 나라의 지침이다.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자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곳이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를 지닌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땅의 일만 생각하면서 우리의 배를 채우는 일에 전념하며 살아야 하겠는가? 이 일의 마지막은 결국 멸망이요, 그 영광은 결국 부끄러움으로 끝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주변의 뉴스를 보라.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꿀꺽 꿀꺽 한 사람들의 결국은 얼마나 부끄럽게 끝이 나는가?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고린도 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부른다. 부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장의 마지막 절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하늘의 시민권자는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땅의 일 만을 위해서 살다가 마무리 해서는 않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도 역시 하늘 나라의 세금을 바치는 것이다. 십일조를 바치면서 나는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자인 것을 확인한다. 우리는 지금 성전을 짓고 있다. 성전 짓는 일도 역시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자로서의 감당해야할 몫이다.

요즈음에 은행 금리가 낮아서 어디에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신문에 보면 여러 종류의 상가를 지어 놓고 이곳에 투자하라는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로는 사기 광고에 현혹되어 투자했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땅의 일에 바쁜 사람은 땅에 투자하여 수입을 늘리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자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야 한다.

내일부터 부흥회가 열린다. 하늘의 시민권자로서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어떻게 하늘의 대사관인 교회를 섬기며 살아야 하는가? 천국 잔치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