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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삶 (요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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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새로운 삶
본문:요 3:5-8

영국의 극작가 엘리어트는 인간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다섯 가지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사랑입니다. 이기주의의 감옥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밖에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이기주의의 감옥에 빠지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도 아니도 자식도 사회도 자신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모든 사람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고 결국 자신을 다른 사람과 마음의 장벽을 만들게 됩니다. 누구든지 이기주의의 감옥에서 나오려면 반드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사랑의 감옥에서 나오는 문입니다.

둘째는 근심입니다. 사람은 걱정과 근심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 마음이 불필요한 일에 갇혀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걱정하기 때문에 마음에 쉼을 얻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어사전에 근심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속을 태우는 일 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속을 태우고 있으니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근심은 인생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누구든지 근심의 감옥에서 나오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과거에 대한 생각입니다. 인생은 과거라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과거의 일과 과거의 상황에 대해서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라는 감옥은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고 우리의 생각을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사람은 과거라는 공간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라는 공간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라는 공간이 그 영혼의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들의 의식은 과거라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누구든지 과거라는 감옥에서 나오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가나안을 보아야 합니다.

넷째는 비교에 대한 생각입니다. 인생은 타인의 삶에 대하여 비교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타인의 상황에 마음 뺏기고 자신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타인과 비교하므로 자신이 낫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교만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타인과 비교할 때에 자신이 못하다고 생각할 때는 불평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비교의 감옥에서 나오려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인생이 자기 사명을 발견하게 되면 타인과 비교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시기와 질투입니다. 인생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미움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 시기가 들어오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의 마음은 바로 감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울은 한 나라를 지배한 왕이었지만 시기가 그 마음에 들어올 때 그는 평생을 그 감옥에 갇혀서 지냈던 사람입니다. 시기는 타인의 장점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는 사람이 자신의 장점이 개발이 됩니다. 누구든지 시기의 감옥에서 나오려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강한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면에서 인정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세인이었고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주님이 지적하신대로 지식으로도 갖추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부유했던 사람이었고 매우 인격적이고 매우 신중하게 자기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이 볼 때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모양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타인이 보는 내 자신과 내가 보는 내 자신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정직한 사람이 위선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 위선의 감옥에 갇혀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울면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성자의 모습이나 속으로는 창기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나 속으로는 불행의 노예로 사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조건이 영적인 것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삶을 대신할 수 없고 조건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듯이 육신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육신적인 지식이 영적인 지식을 대신하지 못하고 육신적인 경험이 영적인 경험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도 영적인 일에는 완전 초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 사람이 어머니로부터 출생한다는 육신적인 경험이 영적으로 거듭남을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영적인 세계를 아는 출발점이 됩니다.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육신의 세계에 얽매여 있기 때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것을 인식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그 자신이 육체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있었던 니고데모에게 전혀 새로운 지식인 영적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영적 세계를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너에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적 세계는 성령으로만 깨달아진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지만 교회의 성격은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 세계를 깨닫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교회가 다른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어도 성령님의 임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님의 임재 위에 세워졌습니다.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시기까지 너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경력 가지고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지식 가지고 일하는 곳도 아닙니다. 주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했습니다. 오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거역하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님을 거역하면 금생과 내생에 사유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을 외면하고는 결코 하나님 영적 세계를 얻을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컨대 성령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영적 생명과 같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있어도 생명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생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 전에는 영적으로 보면 죽어 있습니다. 마치 에스겔 골짜기에 죽어서 흩어져 있는 매마른 뼈들과 같습니다.

교회에 새신자가 등록하면 목사의 관심은 이들이 얼마나 오래 신앙생활을 했느냐는 관심보다도, 이들이 어떤 직분을 가졌느냐 하는 관심보다도, 이들이 성령님의 역사를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에 대해서 항상 마음에 가지는 간절한 소원은 내가 이들에게 복음을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으면 나는 이들에게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는 한계입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바른 신앙고백을 한 사람을 볼 때 태산같은 든든함으로 그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가 하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님이 한 사람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실 때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님의 역사는 바람과 같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그 존재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영적 세계를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방편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도우시는 방편은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령님은 기도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셋째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바로 신앙생활에 본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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