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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마 21: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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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마태복음21:33-41)

우리 옛말에 ‘굴러 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사람에게는 적용되지마는 하나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고 놀고 있는 땅에 하우스라도 치고 생활하라고 허용해 놓으면 나중에는 내가 오래 살았다고 내 땅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혹 있습니다. 빈 집이니까 당분간 쓰다가 비워달라고 했을 때에 자기 집이라고 소송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은 것 같습니다.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포도원에 들어오는 종들과 농부들을 보면 이 포도원이 굉장히 큰 포도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큰 포도원을 만들고 그 주위로 울타리를 쳐서 짐승이 포도를 따 먹지 못하게 하고, 도적들이 들어와서 포도를 따 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포도즙을 짜는 틀을 만들었습니다. 도둑이 들어올까봐 망을 보는 망대까지 세웠습니다. 완벽한 포도밭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주인은 포도나무에 소출이 있을 때 쯤 되어서 세를 받기 위해서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들, 소작인들은 소작료를 주기는커녕 한 종은 심히 때렸습니다. 한 종은 돌로 쳐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 온 것 같습니다. 또 한 종은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주인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다음에는 처음보다 더 많은 종들을 보내었더니 이번에도 심히 때리고 돌로 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주인은 그것까지 참았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을 보내야 되겠다, 내 아들은 나와 같은 위치니까 내 아들은 공경하고 소작료를 주겠지’ 하고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소작인들은 주인과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야! 저기 상속자가 온다. 저 상속자를 죽이면 그 모든 유산이 우리 것이 되겠구나. 자, 아들을 죽이자’하고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둘러 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 둘러 선 사람들이 말합니다. “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에게 세로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도 같은 대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악하고 배은망덕한 농부를 다 없애버리고 주인의 주임됨을 인정하고 제 때에 소작료를 잘 낼 수 있는 사람에게 그 포도원을 주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짧은 비유이지만 신구약 성경을 요약하는 아주 중요한 비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 짧은 말씀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흘러 갈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예수님을 보내셨는가, 역사의 종말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사실들을 이 짧은 비유 속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주인의 주인됨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악한 농부가 아니라 소작료를 잘 내므로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해서 언제나 포도원에서 일하고 포도원을 통해서 주어지는 풍성함을 늘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포도원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포도원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포도원은 주인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그리고 주인의 아들을 죽여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부인합니다. 창조주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됨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죄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여기에서 파생(派生)됩니다. 하나님의 주인됨을 거부하는 여기에서 모든 죄가 파생되고 모든 인간의 불행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8절에 보면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 째 축복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서 땅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정복하고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물건, 물건마다 <이것은 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꼬리표를 붙여 놓으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포도원입니다.

우리교회의 예배성구(禮拜聖句)로 종종 듣게 되는 시편 100편 3절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는 <그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인데 내 자신의 것인양,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서 내가 가진 것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포도원의 축복을 계속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악한 농부는 주인의 것을 주인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내 것으로 취하려고 하다가 진멸당하고 말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내가 쓰는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시편 89편 11절에 보면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도다 하늘도 하나님의 것이요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보면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모든 인간의 권세와 주권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24편 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소유물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0편 10절 이하에는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다 등기(登記)해 놓으시고 꼬리표를 붙여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어느 것도 내 것이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농부들의 악이요, 또한 우리의 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적신으로 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발가벗은 몸으로 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잠시 내게 맡겨 놓으신 물건들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재물을 소유하고 있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다면 재물을 소유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때문에 내 자식, 내 새끼 하면서 자식까지 전부 자기의 소유화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낳았다고 내 것으로 생각하는데서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식과 동반자살도 하고 한강 물에 자식을 던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자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상급이요 기업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했습니다. 자식을 내가 낳은 것만은 사실이지만 내 소유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라고 나에게 보낸 귀한 손님입니다. 그 자녀를 잘 양육하여서 경건한 자녀로 양육하여서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내라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신묘막측합니까? 우리가 죄로 인해서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라는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면서 우리를 집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피값으로 사셨으니 우리가 예수님의 소유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는 성령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중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내 자식, 내 물질, 내 자신마저도 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주인인 것처럼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주인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악한 농의 마음이요 우리가가 저지를 수 있는 무서운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농부가 지은 악한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포도원의 농부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잠시관리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포도원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 포도원의 포도를 마음대로 따 먹고 포도즙을 마음대로 마시고 포도를 팔아서 먹기도 하고 입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자식키우고 집짓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의 주인됨을 인정하지 않을 때 포도원을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의 소유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손해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축복이요 이것이 행복이요 이것이 성공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소작료를 내는 것이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때가 되어서 세를 받기 위해서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 세를 내어야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온 세상을 만들고 에덴동산을 만들고 그 동산 안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라고 <동산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은 내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 소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먹은 것이 아담과 하와의 죄 아닙니까?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는 행위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악한 농부와 같은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온갖 핍절과 불행이 그들에게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행복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선악과를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의 온갖 행복을 다 누리며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악한 농부처럼 진멸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계의 소유주임을 인정하는 한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여서 큰 민족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소유주임을 인정하라고 소작료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한 안식일이요, 십일조요, 장자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담에게 선악과와 같은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생명의 주인인 것을 인정하라고 시간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바로 생명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레 중의 하루는 하나님께 드리라, 내 것이다, 다른 날은 너희 마음대로 써도 좋다, 그러나 이레 중의 하루는 내게 드리라, 이것은 내 날이다, 이날 예배드리고 쉬고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내 날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대로 써도 되는 날이 아니라 바로 말 그대로 주님의 날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 58장 13절 이하에 보면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오락하지 말고, 네 기쁨을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존귀한 날이라고 이 날을 드리라, 그때 진정한 너희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지, 너희 자신을 위해서, 너희 오락을 위해서 살면 진정한 즐거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높아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주일을 정말 귀하게 여겨서 하나님께 바쳐보아라.  정말 내가 너를 높여주마. 돈 벌기 위해서 이 날을 네 마음대로 사용해 봐라.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고 이 날을 나를 위해서 쓰게 되면 정말 야곱이 누린 그 놀라운 축복을 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서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성수는 마치 삼손의 머리카락과 같습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잘려지자 힘이 빠지고, 눈이 빠지고, 짐승처럼 맷돌 돌리다가 죽고 만 것 아닙니까?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하늘의 능력을 받습니다. 새 힘을 공급받습니다.
주일성수의 머리카락이 잘려지면 맥이 빠집니다. 힘이 빠집니다. 영안(靈眼)이 어두워집니다. 마귀에게 눈을 뽑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 주일을 지키고 예배에 성공할 수 있는 성공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소작료를 내는 것이요 생명을 주신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신앙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킴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주님, 주님은 나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내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하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주님 앞에 서는 그 시간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작료를 이 농부들에게 내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물질의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 모든 물질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물질을 주셨습니다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내가 물질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하는 신앙의 고백이 바로 십일조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일조는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전리품(戰利品)을 가지고 왔을 때에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으면서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아, 내가 잘해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구나, 이 물질 내가 얻은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리면서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신앙의 고백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면 돈내라고 한다고 시험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물질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농부가 소작료를 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분이 십일조에 대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자기는 십일조를 낼 때 정확하게 낸다고 몇 백원, 몇 십원까지 돈을 바꾸어서 계산해서 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고 때밀이를 하는 사람에게 팁을 줄때 몇 십원, 몇 백원까지 정확하게 잘라서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때밀어주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주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내가 그렇게 드릴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예를 들어 말하면 천 원, 백 원을 다 잘라버리고 반올림해서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십일조를 시험해 보라고 하셨으니까 제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을 들어 말하면 이번 달에 수입이 어느 정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준이 있으면 지금은 수입이 그렇게 안되지만 주실 줄 믿고 십일조를 그렇게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주 정확하게 수입을 채워주시면서 응답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설교하시면 사람들이 시험들 수도 있는데 내가 십일조 응답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간증을 좀 했으면 좋겠노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또 한 분은 너무 가난한 사람이라 십일조 때문에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일조는 복받는 비결입니다. 포도원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비결인데 목사인 제가 이 십일조를 가르치지 않아서, 복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리면, 소작료를 내면 하나님께서 하늘문을 여시고 부어주시고, 채워주시고 황충을 금하시고, 기한 전에 떨어지는 열매가 없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축복의 길인데 이것을 가르치지 않아서 교인들이 가난에 허덕이게 한다면 저는 목사의 직무(職務)를 유기(遺棄)한 못된 목사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더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됩니다. 왜냐하면 복받는 비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목사의 양심으로서 이것을 가르쳐야만 성도들이 복을 받는 비결이 됩니다. 록펠러는 열 두 살 되었을 때 20센트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 제가 세계에서 가장 십일조 많이 내는 사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대로 응답해 주셔서 역사상 가장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십일조를 계산하는 사람만 해도 40 명이었습니다. 지금 부산은행의 창구에 가서 보면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창구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댓 명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십일조만 계산하는 사람이 40 명이 되었다니 그의 전 재산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의 가훈이 뭔지 아십니까? <십일조를 드리라.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할지라도 마음대로 돈을 쓰지 말라. 예배드릴 때는 제일 앞 좌석에서 드리라.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처럼 섬기라.> 이것이 그의 가훈이고 또한 그의 유언이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가진 것입니다.’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풍요를 누리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가르치기 위하여서 주인은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소작료를 내라고 고백하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내가 이 포도원의 주인이 아니고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농부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들까지 죽여서 그 포도원을 자기들이 차지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물질의 주인되심을 가르치기 위하여서 오늘 저를 이 부산영락교회의 강단에 소작료를 받아내라고 세워 놓으셨습니다. 소작료를 냄으로 하나님께서 주인되심을 인정하라고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도 저를 향해서 돌을 던질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저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돌을 던지지 말고, 때리지 말고,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알게하기 위하여서 끝내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이제까지 다른 종들을 돌로 치고 띠리고 죽였을지라도 예수님만은 주인으로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 물질의 주인으로, 내 가정의 주인으로 모셔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고, 포도원에서 오는 영육간의 축복을 다 누릴 수가 있는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포도원으로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생명도, 건강도, 자식도, 물질도, 내 자신도 그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위탁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인정하라고 우리에게 소작료를 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농부와 같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말하면 국제시장에 좋은 요지에 점포를 가진 주인이 있는데 어느 사람에게 점포를 빌려 주었습니다. 매월 얼마씩 세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때가 되어서 세를 내라고 하니까 세를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 받으러 간 사람을 구타하였습니다. 또 다시 다른 사람을 보내니까 이것은 내 것이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한다면 만일 여러분이 임금(王)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오늘 소작인으로서 소작인의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것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취급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주되심을 늘 인정하고 신중해서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성도들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내 생명도, 내 건강도, 내 몸도, 내 물질도, 내 권세도,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우리 생명을 주님 앞에 드림으로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 것 아닙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영원히 영원히 생활하고 영육간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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