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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철든 신앙인 (눅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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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눅16 : 1 - 13절
제 목 : 철든 신앙인

어떤 두 사람이 밤을 얻기 위하여 밤나무 아래 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밤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워 푸른 밤송이를 땄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껍질을 벌리고 손에 가시가 박히는 아픔 끝에
덜 익은 밤 몇 알을 얻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밤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탐스럽게 익은 밤들이 가시투성이 밤송이를 떡 벌리고
익은 밤들이 저절로 발 밑에 툭 툭 떨어졌습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철이 덜 들은 인생은 먹기에도 떫은 덜 익은 밤을 딸 수밖에 없고
철든 인생은 저절로 익은 밤을 주머니에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어령 교수의 글에 보면
사람은 50이 되어야 철이 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자로 五 자는 하늘과 땅이 바뀌는 숫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나이가 50이 되면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해도 신앙의 철이 들지 못하면
자기 중심, 물질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속에서 불의한 청지기를 통해
철든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들려준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비유의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눅16장에는 예수님의 또 하나의 유명한 비유가 나옵니다.
19절 이하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그러니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미래의 대책입니다.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 즉 내세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보다 영원한 삶, 내세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철이 들지 못하면
눈앞에 것만 볼 줄 알지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즉 내일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철새는 겨울이 다가오면 남쪽으로 날아갑니다.
다람쥐들은 겨울을 위해 식량을 비축합니다.
우리가 미련하다고 하는 곰도 겨울잠을 자기 위해 잘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동물보다 어리석게 <2>
미래에 대하여 적절한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철이 덜 들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도
신앙의 철이 덜 들은 그런 우리들에게 주는 적절한 교훈입니다.
비유의 주인공은 한 부자의 재산 관리인입니다.
그런 사람을 청지기라고 합니다.
이런 직업을 가진 모범적인 사람을 구약에서 두 번 만나는데
아브라함의 청지기 엘리에셀과 보디발의 청지기 요셉입니다.
둘 다 지혜롭고 신실한 청지기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혼사문제를 다 맡길 만큼
요셉은 보디발이 아내 외에는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맡길 만큼
신실한 청지기였습니다.
이렇게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함입니다.
아마 오늘 본문말씀 속에 청지기도 처음에는 신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 주인이 소유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실해야할 청지기가 신실하지 못하고
불충하다는 소문이 주인의 귀에 듣기워진 것입니다.
오늘 이 비유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남의 이야기로 듣기워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 성경학자 바클레이는
충성이란 삼하15:19절 이하에 나오는
다윗 휘하에 용병 출신의 가드 사람 잇대 장군의 예를 들어
충성이란 변절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청지기도 변한 것 같습니다.
이 청지기가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문이 주인의 귀에 들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말이 있는데 바로 허비라는 말입니다. 16장 1절은 "또한"이란 단어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비유와 앞서 15장의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리켜 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된 [탕자의 비유] 중에 눅15:13절의
집 떠난 탕자의 허랑 방탕한 삶의 결론을 다 허비하였더라고 합니다.
허비란 재물을 헛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꼭 재물만이 아닙니다. 재물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책 한권이 있는데
빠비용이란 책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빠삐용이란 주인공이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3>
프랑스령 기아나 란 섬의 외딴 감옥에서 탈출하는 줄거리인데
빠비용이 탈옥을 시도하다 붙잡혀서 독방에서 5년을 보내면서 탈진한 상태에서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루는 꿈 가운데 재판관이 나타나
[ 네 죄를 알겠느냐? ] 고 합니다.
그대 빠삐용이 [ 나는 무죄하다 나는 억울하다 ] 고 하소연 하니
재판관이 하는 말이 [ 생을 허비한 죄를 인정하는가? ]
그때 빠삐용이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다시 시도하여 기어코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저는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때 제 마음에 강력하게 저려오는 말이
[ 생을 허비한 죄 ] 라는 말이었습니다.
물질은 허비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시간은 허비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거기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하고 용기를 가졌던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은 지금 물질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생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샘할 날이 있다는 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청지기가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을 듣고
청지기를 불러서 샘하자고 하며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주인의 이 말 속에서
이 청지기는 현재의 문제를 바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외면해 버리고 싶은 문제들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부끄러워 눈 앞에 다시 펼쳐놓기에 부끄러운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청지기도 그런 처지입니다.
비행이 탄로가 났고 이제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 처지가 되었습니다. 더불이 자신의 직업을 잃게 될 위험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 곤란하게 되었네…고생 깨나 하게 생겼군.
하지만 쉽게 내가 무너질 수야 없지
나름대로 분식회계처리를 다 해 놓았는데…
에이 그냥 갈 때까지 가보고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보자 ]
그리고는 버티면서 시간과 기회를 낭비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 문제를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 내가 좀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한번쯤 봐 주셔야지. 내가 청지기로 있는 동안에 얼마나 재산이 늘어났어! 내가 좀 허비했기로 서니 그게 증식된 재산에 비하면 얼마나 될라구?
지금 주인이 가진 재산 다 내가 증식해 주었잖아. 주인은 한 게 뭐가 있어? ]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면 바른 말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한 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현실 판단을 할 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여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셈을 좀 해보자는 말을 듣고는 올 것이 왔음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사람이 언제 철이 드는가 하면
1) 자신의 처지를 바로 파악할 때가 철이 드는 순간인 것입니다.
3절 [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
이 청지기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힘이 없으니 막일을 할 수도 없고, 부끄러워서 빌어먹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딜레마에 빠져보면
더 철부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What shall I do? 내가 어떻해야 되겠나? 하는 신앙의 딜레마에 빠지면 그 문제 때문에 신앙의 눈이 감겨지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신앙의 눈이 뜨여져 신앙의 철이 드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지기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두 번째의 것은
미래에 대한 그의 준비입니다.
2)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 철이 드는 시간입니다.
4절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
이 청지기는 자기의 허비와 부정이 가져올 결과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이렇게 살면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주인이 한번 쯤 용서해 주시겠지 ] 하는
안이한 생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 그래 어떻다는 거냐? 무슨 일이든지 닥치라고 해. 자존심이 있지 ] 하고
호기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당장 이 직업을 읽고 나면 노동도 못하고 <5>
빌어먹지도 못할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솔직하게 보았고 인정하였고, 그 미래를 위하여 할 일을 발견하고 결단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철이 든 증거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미래에 대하여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미래를 염려함으로 저축을 하고 각종 보험을 듭니다.
얼마나 보험이 많고 보험사 직원의 말을 들으면
그 모든 보험에 가입을 해 놓아야 안심을 할 수 있습니다.
생명보험, 실직보험, 건강보험, 암보험, 치아보험,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손해보험, 상해보험, 도난보험, 여행보험 등등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가지 일에 대하여는 전혀 대책도 없고 보험도 없습니다.
반드시 일어날 일임에도 말입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어디에다 어떻게 썼는지 회계해야할 날이 반드시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선악간에 밝혀질 날이 이를 것입니다. 이 날에 그 영혼이 영원히 파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있는 지금 성도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은 경악할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앙의 철이 들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3) 그리고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결단하는 순간이 바로 철이 드는 시간입니다.
4절에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
이러면 되겠네 하고 깨닫는 순간이 바로 철이드는 순간인 것입니다.
한 청년이 미국에 살러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뭘 몰라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전문대학을 나왔는데 막상 미국에 가서 보니 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광과를 나왔기 때문에 그곳 호텔에 취직을 했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체 하고 취직을 했는데
호텔 스비스맨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러다가 안되겠다 영어를 해야 되겠다 싶어 공부를 해도
그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여기에 살려면 영어를 통달해야 되겠다 싶어서
그날부터 아예 영어를 통채로 암기하기로 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영어가 슬슬 듣기기 시작하는데
10년이 지나니 영어에는 자신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 보고 하는 말이 사는데 자신이 만만한 모습으로 <6>
목사님 ! 영어는 무조건 외우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을 해요.
그래서 제 마음 속에 [ 아하~! 이 친구가 이제야 철이 들었구나 ]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철이들면 깨닫게 되는 것이
[ 이러면 되겠구나 ] 하고 길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든지 이러면 되겠네 하고 깨닫게 될 때가
바로 철이 들 때인 것입니다.

그럼 오늘 청지기에게 떠오른 묘안이 무엇입니까?
청지기는 자신의 불의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앞날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해고당하면,
땅을 파는 노동을 하려해도 그에게는 힘이 없음을 깨달았고
더구나 얻어먹는 일은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일이라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궁리 끝에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살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을 낱낱이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그 빚진 자들에게
기름 백 말을 오십 이라 쓰게 하고 밀 백 석을 팔 십이라 쓰게 했습니다.
그들의 빚들을 20%~50%까지 삭감해주었습니다.
그가 고안해 낸 묘책이란 주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을
이렇게 도와주므로 그들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해고를 당해도
자신이 도움을 준 이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청지기의 묘안이란,
주인에게 빚진 자에게 탕감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주인에게 결코 잘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8절에
[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의미를 바로 알아야한다.
청지기의 행위가 옳아서 주인이 칭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했다고 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주님께서 이 청지기의 교활한 사기수법을 칭찬하며, <7>
그의 속임수를 본 받으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께서는 본문의 비유에서
청지기의 사기수법을 칭찬하며 그것을 배우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단지 이 불의한 청지기가
미래를 대비한 이 지혜를 칭찬하고 이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앞날을 대비한 그 지혜를 칭찬했지 그 방법을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청지기가 할 일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대단히 신속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깨달았으면 행동에 옮기는데 신속해야 합니다.
6절에 보니 기름 백말 빚 진 자에게 네 증서를 가지고 와
빨리~! 백말을 지우고 오십이라고 쓰라고 합니다.

<존 거스트너>라는 선교사가
인도 카시미르 지방에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작은 배를 탔는데 옆에는 큰 정크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작은 배가 스쳐 지나가면서 물을 튀겼습니다.
이 때 정크배의 사공이
크게 당황을 하면서 어서 그 배에서 나오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표시하면서
[ 약간 물에 젖었을 뿐인데 왜 저리 호들갑을 떨지?
마치 물속에 빠져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공은 더욱 손짓을 하며 고함을 지릅니다.
그래서 선교사도 [ no ploblem ! okey ] 하니
그러자 그 사공은 자기나라말로 소리를 치다가 이렇게 고함을 쳤습니다. [ 노~! 오 케이! ]
그제사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보트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동시에 그 사공도 물에 뛰어 들어 선교사님을 건져주었습니다.
강가로 나와서 돌아보니 보트는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하구로 거세게 역류한 바닷물이 그들의 배를 삼켜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약 조금만 더 지체를 하였더면 그들은 배와 함께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우리도 이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냥 지금 아무 문제가 없다고 [ 노오, 프라브럼, 오케이 ] 가 아닙니다.
깨달았으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을수록, 더 빨리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노오 오케이 ]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오늘밤에 내 영혼을 도로 불러들이신다 하여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를 하되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옥에 가면 사람들이끙끙 거리며 신음하는 소리가 있는데
가만히 들어 보면 매일매일 고통 중에 이를 갈면서 하는 말이
Too Late!-너무 늦어다, 너무 늦었다 한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삶을 허비하다가 부끄러움 당하지 말고
삶의 부실 경영을 흑자 경영으로 돌려놓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두고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이 비유를 영적으로 적용을 하였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재물에 대하여 적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준비, 반드시 다가올 하나님 앞에서는 날에 대한 준비를 가장 방해하는 것이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영혼의 준비는 놀랍게도 삶의 가장 현실적인 요체인
재물, 돈의 사용에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신앙에 영향을 미칩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이, 재물에 대한 태도와 사용이 영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영혼의 준비를 정말 잘 하려면,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이 돈에 대하여 바른 물질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재물과 영혼을 비교하면서 교훈을 주십니다.
9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 이 말은 돈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산다거나 천국을 산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재물이라는 것은 때가 되면 다 없어질 것이지만
주님의 뜻대로 사용한 재물은
그 영혼을 위하여 영원히 상급으로 남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며 어디에 저축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통장에 넣어두고 집을 사두고 보험을 들어놓으면
저축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은 그 재물을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사용할 때
하나님 나라의 안전한 은행에 저축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불의한 재물이란?
재물 자체가 부정하다거나 부정하게 모은 재물이란 말이 아니고
오늘 불의한 청지기의 입장에서 보면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재물에 대한 말이 아니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말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9>
[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두 가지 보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어떻게 쓰다가 왔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어떻게 쓰다 왔는지를 말해야 한다. ] 고 했습니다.

참신앙이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좌우됩니다.
10-12절 말씀을 보면 바른 물질관이 바른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1) 10절에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영혼에 비교하면 돈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이 언제 철이 듭니까?
돈보다 영혼이 더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인 것입니다.
2) 11절에 재물은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질관이 바로 안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을 거둘 수 있는 다른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12절 물질에 충성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재물에 비하여 영혼이 훨씬 큰 것이고,
재물에 비하여 영혼이 참된 것이고,
재물에 비하여 영혼이 진정으로 내 것입니다.
청지기에게만 돈이 남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진 돈이 남의 것인데, 긍극적으로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재물로
영원히 내 것인 내 영혼을 위하여 사용하는 지혜에 눈이 뜨여질 때
비로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철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 그렇기에 재물을 무시하고 관심을 갖지 말라 ]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재물에 있어서도 충성을 하라는 것인데,
주지할 것은 재물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뜻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결론이 무엇이겠습니까?
13절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10>
실제로 사람의 영혼 내부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갈등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겨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붙잡고 세상도 붙잡고…둘 다 놓치기가 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세상만 붙잡으려니 오히려 단순하고 솔직한 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함께 섬기지 못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섬기려고 하니 외식적이고 역겨운 행동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돈을 한꺼번에 움켜쥐려고 달려들고 있는 것은 불행입니다.
함께 잡으려고 하면 반드시 재물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에게 더 큰 신은 맘몬 즉 돈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재물을 설 줄 알며
하늘나라 창고에 보물을 쌓아둘 줄 아는
철든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아빠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꼭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신앙에 철이 들어야 합니다.

내 미래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미래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언제요? 오늘입니다.
무엇으로요?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입니다.
구체적인 돈으로, 시간으로, 건강으로 …
현재로 영원을 사십시요. 현실로 영혼을 사십시요.
그래서 땅의 장막집이 무너질 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얻기를 바랍니다.

< 결론 >

사람은 철이 들어야 사람 구실 하듯이
신앙인도 철이 들어야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철든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1)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고 할 일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2) 바른 물질관을 가지고
그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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