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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을 회복합시다
누가복음 15:8-10. 디모데전서 4:6-8
 
70년대까지만 해도 엿장수의 가위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엿을 가득 싣고 흥겹게 박자를 맞추며 엿장수가 지나가면 떨어진 고무신, 양은냄비 깨어진 것, 우산대 부서진 것들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값대로 쳐서 주는 엿 맛이 참 좋았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소풍가면 늘 따라오던 아이스께기 장사 소리도 이제는 다 사라졌습니다. 어릴 때 하던 놀이도 없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방과 후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딱지치기 같은 것들을 손등이 터지도록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그리고 돌의 편편한 곳을 발로 밀어가지고 한 바퀴 돌아오는 게임도 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 중학생도 더 이상 그런 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부수고, 싸워서 점령하는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데, 10% 정도가 컴퓨터놀이에 중독 되어 있어 정신과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몸이 부딪치며 어떤 때는 양보도 하고 어떤 때는 심하게 싸우기도 했는데, 그런 놀이를 통해 인간성을 키워 나갔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게임에만 정신 팔려 있는 오늘의 세대에는 더 이상 인간됨이 없습니다. 폭력과 파괴로 이어지는 문화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재미있느냐 없느냐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있으면 옳다고 판단하여 타인의 고통, 불행, 심지어 생명도 개의치 않는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의 특이한 현상은 사람됨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있으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웁니다. 양보도 타협도 없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딸까지 윤락행위를 시키는 파렴치한 어른들의 행동은 용돈을 위해서 몸 파는 아이들에게 충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 권위를 실추하고 있습니다. 이익 집단들은 강력한 투쟁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는지 집단행동과 아우성에 세상은 시끄럽기만 합니다.

이제는 교회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다움의 영성을 잃어버린 지금, 교인이 교인다움의 희생과 도덕적 수준을 잃어버린 지금, 그 어떤 목소리도 사회를 선도해갈 권위를 교회는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교회는 교회다움, 성도다움의 영성회복에 사활이 걸려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들

(눅15:) 열 드라크마 가진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을 때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쓸면서, 샅샅이 뒤져 찾았습니다. 찾았을 때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 여인에게 한 드라크마가 단순히 화폐 가치만 있었다면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으면 한 드라크마 이상의 돈이 들어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는 여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의 징표와 약속으로 열  드라크마를 꾄 목걸이를 선물하는 결혼 문화가 있었습니다. 열 드라크마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목걸이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사랑의 약속은 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한 드라크마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동네 사람들을 모아다가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개인마다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사기를 당한 한 여인이 ‘안 입고 안 먹고 모은 돈인데……’ 울부짖으면서 여기저기 호소하는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재산이나 권력 그리고 지위를 잃을 때가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식음도 전폐하고 직장도 포기하고 길거리로 미아보호소 혹은 위탁시설로 미친 듯 찾아다닙니다. 반드시 찾아야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여인처럼 결정적인 것, 어머니에게 자녀가 생명이듯, 우리 신앙생활에도 잃어버리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기독교 영성입니다. 기독교인이 ‘영성’을 잃어 버렸다면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던져주는 사료나 받아먹는 늙은 호랑이에 불과합니다. 동물원의 호랑이는 생김새가 무섭고 큰 몸집을 과시하지만 구경거리, 조롱거리일 뿐입니다. 왕족에게 품위가 있다면, 군인에게는 군기가 있듯이, 구원받은 신앙인에게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성을 잃는 것은 종이호랑이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생명 같은 영성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온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인은 하나님께 근심거리만 됩니다. 교회 시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백성,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왕 같은 사역과 제사장 같은 섬김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것이 영성입니다. 이 영성을 찾아 회복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2. 왜 영성을 회복하여야 하는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성경에 영성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영성과 가까운 단어를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경건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습니다. 영성은 훈련한다고 말하고 경건은 연습한다고 표현합니다. 본문에 “경건을 연습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습하라는 말을 ‘김나조’라고 합니다. 여기에 김나지음, 체육관과 운동장이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강한 힘이 미덕이던 바울 당시의 중요한 과목은 체육이었습니다. 고대헬라 청소년들이 김나지움에서 달리기와 레슬링으로 몸을 단련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은 체육 하듯이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성이란 하나님 쓰시기에 몸과 생각과 영혼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가장 완벽한 상태로 준비하는 삶을 말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영광스런 단계를 말합니다. 영성은 신앙인이 가지는 최고의 목표이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경건한 사람, 영성적인 사람’입니다. 이 단계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삶을 영성훈련이라고 부릅니다. 영성훈련은 고된 훈련이거나 지루한 여행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행복한 걸음입니다.

여러분! 영성은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고 은혜 받은 소중한 감격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게 합니다. 영성은 비전을 향하여 나아갈 때 넘어지면 일어나도록 힘을 공급해 줍니다. 영성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다른, 섬김과 순종의 삶이 가능하도록 도와줍니다. 영성은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줍니다.

영성이 분명한 교회, 영성이 건강한 교회는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성장합니다. 영성이 살아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영성이 건강한 교인이 좋은 교인입니다. 세상은 자기네와는 다른 고품질의 교회, 고품질의 신앙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건강한 영성이 있어야 교회가 교회다워지는데 필요한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교회 직분이 무거울수록 영성이 빨리 쇠약해집니다. 만약 점검을 게을리 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물이 되어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영성회복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할 과제입니다.

(출17:)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한판 전쟁이 나옵니다. 모세는 언덕 위에 올라가 바위에 앉아 손을 들고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칼을 휘두르고 피를 흘리는 여호수아가 피곤했다는 얘기는 없고, 정작 모세는 피곤하고 지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 옆에는 왼팔 오른팔을 붙들어 주는 아론과 훌이 있었습니다.

영성적인 사람일수록, 영적인 사역을 크게 감당하는 사람일수록 탈진할 수 있고 사탄의 활에 맞아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성도들도 작은 눈빛이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받는 상처는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지도자일수록 영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은혜 받는 생활에 성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영성회복을 위하여 해야 하는 것들

1) 영성훈련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합시다.
삶의 목표와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는 것이 영성훈련의 목표입니다. 영성이 쇠약해지는 이유, 그리고 성경에 대한 관심이나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치할 때 그것들이 우리 인생을 지배하고, 그것들이 내게 좋은 것을 줄 수 있으리라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영적인 식욕, 영적인 관심은 쇠퇴하고 맙니다.

영성 훈련의 목표는 ‘기독교인다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움을 잃어버린 시대, 여성이 여성다움의 부드러움을 수치로 생각하는 시대, 가장이 가장다움을 짐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포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도의 성도다움은, 청기지 정신, 희생과 섬김, 능동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닮기를 원하는 초대교회는 성찬식을 할 때 마다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 갈 때는 가벼운 포옹인 ‘아부라조’를 했다고 합니다. 다음 모임에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부라조’는 언제 덮칠지 모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가는 교우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이별의 인사였던 것입니다.

그 때 성도들을 핍박하던 사단은 아직도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지뢰밭과 같은 세상을 향해 나가는 성도들입니다.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영적 전투장에 투입되어야 하는 십자가 군사들입니다. 영적 부상을 치료하는 것을 우리는 영성회복이라고 부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힘, 성도다움의 영성을 회복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영성이 회복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상대조차 할 수 없는 골리앗에게로 다윗이 담대히 나아갔던 이유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무섭습니다. 그러나 영성을 회복하면 세상은 우리 선교지로 보일 것입니다.

2) 영성훈련을 위해 시간을 투자합시다.
프로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2군에 가서 모진 회복훈련을 통과해야 1군으로 올라 올 수 있습니다. 부상을 입은 선수는 수술 후에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재활훈련을 이겨야 재기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가장 위험하고 기름도 많이 소모된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영성이 회복되길 원한다면 강한 에너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투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어도 미래를 위한 저축입니다. 영성회복도 그렇습니다. 충만한 영성으로 기쁨으로 헌신하는 수준까지 올라가길 원한다면, 찬송과 기도가 뜨겁기를 원한다면, 침체된 영성이 그 야성을 회복하길 원한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강한 기도, 뜨거운 찬양을 위한 시간을 배려해야 합니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는 “내가 나무를 잘라야 한다면 먼저 도끼날을 다듬겠다. 도끼를 가는데 사용하는 시간은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의 시간이다.” 라고 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전에는 조율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피아노 음에 맞춰 바이올린 현을 조율합니다. 내가 섬기고자 할 때, 부흥을 꿈꾸고자 할 때,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할 때, 바이올린이 피아노 음에 맞춰 조율하듯이 하나님 말씀에 맞춰 조율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조율하고, 신앙지도자에 따라 영성을 조율하고, 교회 비전에 조율해서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다음에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만큼 살았으면 이제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옛말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잘생긴 나무는 일찍 베어져 산을 떠나지만 못생긴 나무는 눈에 띄지 않아 산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얼굴 신자가 되려하지 말고 뿌리 신자가 되십시오.

교회에 헌신하다가 언제 탈진 되는지 아십니까? 새가족이 늘어난다고 지치겠습니까? 설교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교인들이 설교 시간에 아멘 아멘 화답 하는데 지치겠습니까? 기계가 마모되는 것은 기계를 많이 사용해서가 아닙니다. 기름을 치지 않아서입니다. 일의 기쁨과 보람을 잃어 버려서 그렇습니다.

3) 중단 없는 훈련을 받읍시다.
모든 기적은 훈련의 작품입니다. 좋은 훈련을 꾸준히 하면 새 역사가 나타납니다.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훈련을 받은 후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 기다려 보십시오! 기다리는 것 자체가 위대한 용기입니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위대한 영성 훈련의 일부분입니다.

현대 도시인의 최대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그래서 건강식 판매가 호황을 이루고 스포츠 센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건강에 좋다고 하면 뿌리든 벌레든 보약이든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절대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악과는 따먹지 않고 뱀을 잡아 먹었을 테니 말입니다. 뱀도 굼벵이도 남기지 않습니다.

영성생활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처럼 좋은 설교 찾아다니는 교인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고 좋은 말씀 듣고 싶은 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영성은 들은 말씀을 실천함에 있습니다. 좋은 말씀을 들었으면 말씀을 붙들고 실천하는데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유익합니다. 아무리 공을 잘 차는 축구선수라 해도 열흘 훈련을 쉬면 중요한 경기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중요한 하나의 연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 즉 영성훈련입니다.
(딤전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영적인 성장은 하루아침 기도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요술방망이를 받듯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끝없는 훈련이며 연습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체질화에서 주어집니다. 찬송을 멀리하고서야 강퍅한 마음이 좀처럼 열릴 수 없습니다. 기도를 게을리 하는 사람이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등한히 하는 자에게 경건한 생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교회는 영성이 회복되지 않은 사람, 영성이 메마른 사람이 헌신하겠다고 나설 때 시끄러워집니다. 영성적인 사람은 조용히 그리나 열심히 봉사합니다. 영적인 성도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신앙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식생활을 영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재적인 변화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흉내 가지고는 영성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세계가 낳은 가장 유명한 희극배우로 알려진 찰리 채플린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가 있었는데 진짜 찰리 채플린이 신분을 감추고 이 대회에 참여했더랍니다. 모두들 분장을 하고 얼마나 꼭 같이 흉내를 내는지 진짜 찰리 채플린은 3등 안에도 못 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연극이 아닙니다. 경건, 영성을 흉내 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를 진실로 믿어야지 흉내만 내어서는 안 됩니다. 무당도 강신 무당과 학습 무당은 다릅니다. 신앙인도 흉내 신앙인과 영적 신앙인은 다릅니다.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섬기는 운동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세상이 변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열매는 자연히 좋은 것이 맺히게 됩니다. 영성이 건강해야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바른 영성을 가져야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잘 섬기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영성이 강화될수록 치열한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의 개가는 더 크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공헌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리처드 백스터의 말은 제 가슴을 예리하게 도전해 옵니다.
‘남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공하면서 당신에게는 결핍하는 일들이 없도록 하십시오.
남들에게는 경계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멸망하는 일들이 없도록 하십시오.
남들에게는 밥상을 차려 주면서 자신들은 굶어죽는 일들이 없도록 하십시오.
남들에게는 믿으라고 타이르면서 자신들은 불신하는 일들이 없도록 하십시오.
남들에게는 성령님을 다정하게 모셔 드려라 타이르면서 자신은 성령님을 거절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개인과 사회를 구원하는 사명을 수행하려면 먼저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성이 회복된 개인과 교회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맡겨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성도, 그 복된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는 여러분 가는 곳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그 강력한 오른 팔로 인도해 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삶의 법칙을 실천하려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이 교회에 오는 성도들은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영과 육의 온전한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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