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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벧전 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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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구    절 : 베드로전서 1:18-21

기독교를 일컬어 ‘계시 종교’라고 부릅니다. 계시란 감추어진 비밀을 열어서 보여 준다는 뜻입니다. 이 비밀을 계시해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해 둔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들의 생각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선지자들은 대필자 노릇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신 내용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셨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내지 못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주시기 전에 우주만물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누구나 광활한 우주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숙연한 마음을 갖고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또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동식물과 수중의 물고기들을 보면서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합니다. 그뿐 입니까? 우리 인체 역시 신비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피조세계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자들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말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에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는 죄 짓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죄성이라고 하는데,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타고 납니다. 이에 대하여 다윗은 시편 51편 5절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갓난아이는 천진무구하지만 점점 자라서 지각이 생길 때부터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남의 것을 탐내고 자기만 알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하게 굽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다 죄인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3장 10절로 12절에는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내가 얼마나 선하게 살아가는데 죄인이라니…’ 기분 나빠합니다. 물론, 인간의 도덕 기준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올바른 자에 비유한다면 사람의 기준은 비뚤어진 나무 막대기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기준에 의하면 의인이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죄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누구를 죽인 적이 없으면 살인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실제로 부정한 행위를 해야 간음이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7)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준으로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킬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5)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실제로 해친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여섯 번째 계명을 다 지켰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성경에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요1서 3:15)고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수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악한 생각을 막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모처럼 병원에 가서 종합 진단을 받아보았습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러 병실에 들어갔더니 이미 세 사람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요즘은 잠자는 상태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기 때문에 고통을 모릅니다. 제가 보는데서 한 사람씩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습니다. 검사가 끝나도 이삼십 분 정도 세상모르게 잠을 잡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는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코가 막힌다고 하니까 수면 내시경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맨 정신으로 내시경을 하자고 했습니다. 좀 고통스럽긴 했지만 화면으로 위장 상태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의 위장 상태가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만일 위에 암이 생겼다고 하면 그것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고,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비유컨대, 율법은 내시경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시경을 해 보기 전에는 위에 암이 생겼어도 알 수 없듯이, 율법이 없다면 우리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까다로운 법을 만들어서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비참한 실상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멸망 받을 죄인인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살 길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알아둘 점은 죄인들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은 마치 수렁에 빠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수렁이 위험한 것은 한번 빠지면 스스로의 힘으로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려고 몸을 움직일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갈 뿐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온 몸에 힘을 빼고 바깥에서 누군가가 구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암 환자가 살려면 암세포를 제거해야 하듯이, 죄인이 살려면 죄를 없애야 합니다. 죄를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은 대속의 방법입니다. 대속이란 다른 사람의 죄 값을 대신 갚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속량(贖良)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종의 신분을 면하여 양민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 죄의 종 되었던 인생을 값 주고 사셔서 자유인이 되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대속이나 속량은 둘 다 죄인이 구원받은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죄인을 대속하고 속량하려면 값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출 21:23-25)고 했습니다. 이 원칙에 의하면, 죄인이 죽음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누군가가 대신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짐승을 제물로 바쳐서 속죄하는 길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소나 양이나 염소의 피로써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4장에 보면, 만일 백성 중 하나가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자기가 범죄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성막의 제사장에게 갑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게 합니다. 이는 그 사람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다음, 그 암염소를 잡고,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습니다. 또 제물의 모든 기름을 단 위에 불사릅니다. 그런 다음, 제사장이 그 사람을 위해 속죄하면 그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속죄제사에 바치는 제물은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서 달랐습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쳤고, 족장은 수염소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제물의 피로써 속죄 제사를 드린 것은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 전체를 위한 속죄 제사도 있었는데, 이는 일년에 한번 7월 10일 곧 대속죄일에 드렸습니다. 이 때는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 위의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피를 뿌렸습니다. 왜 짐승의 피로써 속죄 제사를 드렸느냐 하면,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레위기 17장 10절로 11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10)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11)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현대 의학은 혈액은 생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혈액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고 인정합니다. 이는 피를 많이 흘리면 죽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물의 피로써 속죄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곧 사람의 생명을 짐승의 생명으로 대신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짐승이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9장 22절에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소나 양이나 염소의 피가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짐승의 피로써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다면, 사람의 생명이나 짐승의 생명이나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생명이 짐승의 생명보다 고귀하다면 짐승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사실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무리 흠 없는 우양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죄를 속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에 짐승을 제물 삼아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0장에 그 답이 나와 있는데, 거기 보니 “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로써 속죄 제사를 드린 것은 장차 오는 좋은 일에 대한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에 보면,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모형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것의 실체가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로 속죄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은 장차 완전한 속죄의 길을 제시해 주시기 위한 사전 조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차 오는 좋은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위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기 750여 년 전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아담의 죄성과 상관없는 분으로 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죄인의 구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자기의 죄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신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의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면 곧 알게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수태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 천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 본질이 하나님과 같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태초에 계셨던 말씀을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명은 온 인류의 생명을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진리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류의 대표자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난 것은 단지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5장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주홍 같은 죄라도 흰 눈 같이 양털 같이 희고 정결하게 씻음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씻지 못할 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예수만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죄인이 구원을 받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고행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하거나, 돈을 바쳐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간단하고 쉬어서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구원은 너무나 값비싼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고 쉽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받은 구원은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벧전 1:2) 우리가 받은바 구원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혹 보면, 기독교의 진리를 오해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는 내 하고픈 대로 욕심대로 살자.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지옥 갈 염려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는 무슨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 사기를 치고, 방탕하게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라는 이단이 그들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진리를 오해한 데서 생겨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의하고, 더럽고, 사악하고, 경박한 행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 곧 망령된 행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이 같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 받은 사람이므로 더 이상 그 같은 행실을 좋아할 리가 만무합니다. 남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람은 더 이상 종처럼 살지 말고 자유하는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2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모독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이같이 경고합니다. “1)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2)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사실을 아는 성도는 지난날의 망령된 행실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고 힘씁니다. 지난날 주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는 정욕을 따라서 살았으나 이제는 세속적인 생활을 하면 신앙양심에 가책이 되고 편치 못합니다. 과거에는 방탕한 생활이 즐거웠는데 이제는 실수로라도 그런 생활을 하면 괴롭습니다. 또 세상일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는 우리 속에 임재 해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양심이 시키는 대로,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라고 하신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인즉 그들은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여러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음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제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 받은 사람으로서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심으로 주님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죄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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