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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마른 사람(요 7: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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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람(요7:37~44) 

37절과 38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아멘
요 7:34∼44의 말씀으로 "목마른 사람"이라는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쳐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막지대에 살고 있는 인디언이 뉴욕으로 초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기자가 인디언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뉴욕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아마 엄청난 빌딩에 놀랬을 것이다. 홍수처럼 밀려다니는 자동차에 감명을 받았을 거야. 아니야 세계 패션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 패션가를 보고 놀랬을 껄.
그때 인디언은 옆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수도꼭지를 틀면서 "이렇게 마시고 싶을 때면 언제나 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빌딩이 아니었고
거리를 가득 매운 자동차도, 화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원하면 얻을 수 있는 물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목마름이야말로 얼마나 뼈저린 고통인가를 잘 나타내 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밥은 며칠 굶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물은 단 하루만 마시지 못해도 큰 곤란을 당하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합니다.
다만 우리는 사막지대가 없고 물이 풍부하고 수도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물을 마시지 못하는 고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위협을 모를 뿐입니다.

야곱을 보세요!
우물 때문에 얼마나 싸웠는지 모릅니다.
물은 언제나 생존을 걸고 싸워야 하는 투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물을 애타게 찾으며,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 42:1-2 에서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 63:1 에서도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망하나이다.
시 23편에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말씀이 있죠.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예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세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저 흐르는 물일까요?
슈퍼에서 사다 마실 수 있는 정수 된 물일까요?
아닙니다.
"목이 마르다"는 것은 진실에 대한 갈증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죄라는 것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이 죄를 저지르면 이 마음이 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괴롭습니다.
얼마나 괴로웠길래 가롯유다는 자살을 하였겠습니까?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이 스물 스물 거리며 괴롭습니다.
어떤 분은 지금도 스물 거리는 것 같군요.
아직 잠자리에 들 시간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 별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줄 아십니까?

두 번째로> 죄는 반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이 죄는 계속 죄를 먹고 살아갑니다.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을 보시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다 용서해 주시면서도 딱 한가지 단서를 붙이시죠.
뭐예요?
가서! 다시는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르지 말라.
반복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같이 죄는 반복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또 저지르고 계속 저지르면 예수님께서는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겠습니까?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죄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바늘 도적이 소도적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죄가 진짜 무서운 것은 죄를 저지르고도 죄인 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주일은 뭐하라고 주셨습니까?
기억하세요.
주일은 주의 종만 지키라고 주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지키라고 주신 날이 주일인줄 믿으시면 아멘!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요 4장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갑니다! 자꾸 가요!
가세요
주일날 가정일 있다면 가세요!
주일날 운동하시려면 가세요!
주일날 놀러 가시려거든 가세요!
그러나 잊지 마세요!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 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저지르면서도 가슴아파 합니까? 괴로워하십니까?
정말 다윗처럼 잿더미 위에 앉아서 머리를 죄인처럼 풀어 해치고 죄로 인해 난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라는 자세로 베옷을 입고 가슴을 치고 옷을 찢으며 잿더미를 머리 위에 뿌리면서 눈물을 홍수를 이루며 회개해 보았느냐는 말입니다.
·배가 고파서 죽기 전에는 배고픔을 모른답니다.
·겨울에 얼어서 죽기 전에는 추위를 모른데요.
·안모라는 사람은 수억을 받고서는 무슨 장학금인줄 알았답니다.
무감각이죠!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를 괴롭게 하는 죄악들 계속 저지르고 있는 반복적인 모습들!
죄의 삯은 사망인데도 그것조차도 모른 채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이거 해결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해결하실 수 있습니까?
37절을 보세요.
"명절 끝날 곧 큰말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고 상황을 설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의 종류와 죄의 중량이 얼마나 얼마나 많고 무거웠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 다 어떤 죄든지 무슨 죄든지, 얼마를 저질렀든지 다 용서해 주시며 씻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생수다.
나는 무슨 괴로움이든지 다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다.
그래서 마 11:28에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광야와도 같습니다.
광야는 물이 없습니다. 나무도 거의 없습니다. 풀도 거의 자라지 않습니다. 그저 있다면 바위나 있고 돌덩어리들이 깔려 있고 풀이라 고야 조잡한 풀, 누리끼리하고 짧고 거친 풀입니다.
광야에는 꽃이 없습니다.
광야에는 가시가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별로 기쁨이 없습니다.
손과 발이 닿으면 찔려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병원의 간호사 중에 거의 50% 여교사들도 거의 50%가 성적인 수치심을 당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결혼한 여성 중에 70%가 남편 말고 다른 이성을 대화상대로 가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니 아예! 남자는 어떨까요?
아예! 조사 안하는게 낫겠죠?
어떤 부부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여러분!
부부가 남편, 아네 말고 다른 남자, 다른 여자를 좋아했다면 그 숫자만큼 예수님께서 바늘로 찌르실 것입니다.
남편이 묻습니다.
여보! 나 말고 다른 남자 좋아한 적 없지
그럼 그럼 그럼 아니 날 못 믿으면 이 사람 믿어주세요!
그 사람 믿으래 염려마!
홍길순 예! 안으로
잠시 있더니 아야! 아야! 두 번 들리더랍니다.
아니 저 여편네가 나 모르게 두 사람이나 좋아했단 말이야.
아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얼굴을 못 들고 어쩔 줄 모르는데 이번엔 홍길동 예! 안으로
그런데 이번엔 조용하질 뭡니까
하! 정말 우리 남편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구나 하는데 조금 있더니 호통소리가 들리면서 전기 재봉틀이 돌아가더랍니다. 두두두두두두두------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길 모르는 사람에게 웃는 낯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광야처럼 날카로워져서 그래 건드리기만 해봐 그냥 찔러버릴 꺼야 부셔버릴 꺼야

광야에는 이 외에도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언제 모래 폭풍에 밀려 닥칠 줄 모릅니다.
눈뜨기가 어렵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비록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너무나도 똑같습니다.
심경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언제나 피곤을 느낍니다. 우리의 미래도 예측불허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서로 모여 살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얼마나 커다란 문제들이 쌓여지겠습니까?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그런데 죽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사는데 세월 가고, 낙엽은 지고 청춘도 사라지고 기력을 쇠해지며 인생을 탄식 속에서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세계적인 작가 괴테도 "나는 전 생에 중에 내가 진짜로 즐거웠고, 행복하고, 만족하다고 생각했던 날은 사실 하루도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돈을 모아봅니다. 정말 한번만이라도 여한 없이 써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돈에 목이 마르면 돈을 벌어도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지식에 목이 마르면 많은 지식을 쌓아도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권력에 목이 마르면 권력을 소유했어도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그러나 아시아 선지자는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기억하세요!
·돈을 쫓아가면 잡을 수도 있습니다.
·지혜와 학문을 쫓아가도 잡을 수 있습니다.
·명예와 권세를 쫓아가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기루가 호수인줄 알고 달려가 보면 거기엔 물 한 모금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물물물물 돈돈돈돈 지혜지혜지혜 명예 출세 권세 하다가 탱크로 전국을 휘어잡았던 사람도 이제는 젊은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아야 할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같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예수님의 이 초청장! 의 내용을 다시 들어보세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주님의 초청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를 범했든지 누구든지 입니다.
어떤 종류의 목마름이라도 상관치 않습니다. 왜 누구든지 이기 때문입니다.
아! 나는 부족이 없어. 난 목마르지 않는데 하신다면 고건 어떤 사람이에요? 가기 직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괴로우십니까? 어려우십니까? 힘이 드십니까?
고통입니까?
슬픔입니까?
실패와 고민입니까?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외쳐보세요. 주여! 나는 힘이 듭니다.
회사와 회사는 계약에 의해 관계를 맺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으로 부부의 관계를 정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믿음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그를 찾는 사람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짐 벗어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므로 새 힘을 얻어 우리의 삶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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