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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마 16: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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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마 16: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보면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때는 중세시대였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중세에는 수도원이나 성당에 성유물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도 가끔 해외 토픽에 나와 성모 마리아가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성모마리아상 밑에 가서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믿고 구름떼같이 몰려옵니다.

그런것처럼  중세 시대에는 성인의 유골이나 그의 유품에서 신비한 능력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여 성유물 유치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사 중에는 성유물만 전문적으로 훔치는 도둑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둑의 문화사]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세시대의 유골 도둑이 소개되는데 당시 사람들은 성인의 유물이나 유골 등을 성유물이라 해서 신통력이 있어 갖가지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어 숭배하였습니다. 유명한 성유물을 안치하고 있는 수도원은 순례자가 쇄도하고 순례자의 수만큼 헌금이 쌓이게 되었고 존귀한 유골이 있던 곳에 신자들이 모이면서 저절로 영지가 생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지를 원하거나 수도원을 부흥시키려면 유명한 성자의 유골을 모아 두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험한 유골을 훔치기 위해 스파이가 된 수도사도 생겼고, 전문적인 성유물 산업이 생겨나 성유물이 거래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성유물을 위해 살아 있는 성인을 죽이려는 음모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스콜라 철학의 집성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그가 성인이 될 것으로 예상을 했다고 합니다. 1274년 그가 포사노바 수도원에서 병사하자 시체를 큰 가마에 끓여서 분해하고 성유물로 분배했다고 합니다.  1000년경, 성 롬알도스는 움브리아 산중에서 고행하다가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다고도 합니다. 그의 덕행을 사모하는 마을 주민들이 그의 성유물을 다른 마을에 빼앗길 것을 염려해서 살아 있는 동안에 손쉽게 성유물로 만들어 버리자며 덮쳤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본질을 잃어버리면 이처럼 어리석게 되고 무서운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주시고 교회를 세운 하나님의 참뜻을 알려하기 보다는 오직 신앙을 통하여 복을 받는데만 관심이 있고 탐욕적인 목적으로 신앙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본래의 목적을 알지 못한채 신앙생활을 하면 이처럼 어리석은 짓을 자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참뜻과 거리가 먼 불행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인생의 목표가 분명치 않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어야 될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곧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왜 아직 이 땅에 남겨두셨는지 확실하게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 새생명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여러분의 인생을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훌륭한 믿음의 고백한 베드로를 향하여 구원과 교회의 기초가 되는 귀한 고백임을 인정하시며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통해 참 자유를 얻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늘 추구해야할  핵심적 진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안에는 많은 이들이 절대시하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신앙의 고백만 줄줄 외우는 것으로 좋은 믿음을 소유한 줄 압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그 자리에서 도전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왜 그렇게 말슴하십니까?  신앙고백이 전부가 아니란 말입니다.  구원받고 새생명을 얻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구원은 신앙의 시작입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단순히 막연하게 따라다니지 말고 확실하게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그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니까 기적을 구경하는 재미로 예수님이 가시는대로 따라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하고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자 몰려오니까 분명한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무슨 좋은 일이 안있겠나? 하는 기대감만 가지고 따라다녔습니다.

우리중에도 당시 열 두 제자들처럼 몸만 열심히 따라다닐 뿐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참된 제자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려면 확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려면 의미있는 인생을 살려면 예수님이 강조한 세 가지를 꼭 붙들어야 합니다.

1.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기본이 자기 부인에 있습니다. 출발이 자기 부인에 있습니다. 자기 성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왕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을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현대어 번역이나 공동번역에는 "버리고"라고 번역했습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버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아지경이 되는 것을 말할까요? 신비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 학대를 말하는 말씀일까요? 도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음의 도를 닦는 것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자기 부인은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하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의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재권이 주님께 있고 소유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라는 고백과 함께 매순간 자아를 죽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생명도, 명예도, 재물도, 재능도, 학식도, 건강도, 자녀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출발이 신앙인에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기본이 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기초가 되어 있을 때 신앙인은 어떤 경우도 행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맥스웰 몰츠 가 쓴 [맥스웰 몰츠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성형외과 의사입니다. 마음의 성형 수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와 자아 혁명은 마음의 성형 수술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데 그 첫 번째가 자아 이미지부터 바꿔라는 것입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 자아 이미지를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자아 이미지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아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진정 신앙 생활에서 성공하려면 이제까지 나를 지배해오던 옛 사람,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올려 놓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감정과 욕심에 끌려 내 기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이것이 존귀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총을 크게 받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이렇게 살면 실패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성공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존재가 되면 참으로 인생은 멋지고 아름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초가 삼간도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고대광실도 교만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온갖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의 불행을 딛고 행복해 지고 싶은 욕망,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싶은 욕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여 역사의 중앙에 서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죄의 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사랑과 희락,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로 가득 찬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를 비우고 남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빈 내 마음에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갑니까? 자존심도 부인합니까? 이기적인 욕심도 부인합니까?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부인합니까?  사소한 일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운 감정, 섭섭한 감정도 부인합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인정하고 예수님만 나타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기분과 욕심과 자아를 부인해야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십니다. 여러분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축원합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빈 손으로 맨 몸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는 더 이상 질 십자가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는 아무 공로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가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남은 인생을 통해 계획하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빈손으로 따라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짊어질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십자가는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희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를 정확하게 알지못하는 오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걸핏하면 "내가 십자가를 지지."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명입니다.  우리가 질머질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대신 죄와 형벌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맡겨주신 주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각각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믿음이 어린 영혼을 돌보고 보살필 사명도 있습니다. 누군가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줄 사명도 있습니다.  고난받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사명을 안고 사는 이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명이 있습니다. 직장을 복음화할 사명도 있고 어떤 지역이나 나라 또는 종족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할 사명도 잇습니다.  어떤 가정을 복음으로 변화시킬 사명을 받은 이도 있습니다. 

저의 십자가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말슴으로 양육하며 기도로 섬기고 영적으로 훈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무장시켜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십자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무장하고 있습니까?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것을 사명을 이루기 위해 쏟아붓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제자들의 강권으로 네로의 박해를 잠시 피해 불타는 로마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둠속에서 누군가 그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보고 베드로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가 피하고 지기 싫어하는 네 십자가를 대신 지기 위해 로마로 간다." 하시는 주님의 말슴에 베드로는 발걸음을 돌이켜 로마로 되돌아가 십자가를 지고 순교합니다. 예수님과 똑같이 바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고 하며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베드로처럼 힘들다고, 고생스럽다고, 두렵다고 자신의 십자가를 피하여 달아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슬그머니 떠 넘기지는 않고 잇습니까? 오로지 편안하고 쉬운 삶만을 찾아서 도망다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 목적도 없이 목표도 없이 사는 인생을 초라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마음껏 누린다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사명을 잃어버린 인생은 불행합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는 인생은 고난을 통과해도 행복합니다. 그 사명이 크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인생이 의미가 있고 생기로 넘칩니다. 기도를 해도 힘차고 무슨 일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명감에 불타며 모든 일을 사명과 연관시켜 집중력있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기 십자가를 찾아 냅시다. 사명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자신의 십자가를 보여달라고 부르짖읍시다.  자기의 은사와 어울리는 자기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해 일생을 거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일생동안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앞에 서는 날 수고했다고 크게 칭찬듣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교회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좇지 않고 다른 것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아닌 어떤 사상이나 사람을 좇아가느라고 예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좇아가기에 바빠서 예수님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는 유행을 좇아 사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또 어떤 이는 세상의 쾌락을 좇기에 바빠서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무엇을 지향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합니다.  인생에 있어 참으로 목표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표는 바로 삶에 대한 가치의 표현입니다. 그 목적을 가변적인 것, 상대적인 것에 두는 사람이 있고 본질적인 것, 절대적인 것에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좇는데 언제나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명예을 얻고 돈을 벌고 권력을 쥐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파생적으로 은혜로 주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영원하지도 않고 잠시 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구원주, 메시야,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좇는데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어느때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가난할 때도 부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건강할 때도 잘될 때도 잘못될 때도 목표는 오직 하나 예수님을 좇으면 그것이 성공이고 그것이 형통이며 그것이 복인 것입니다.  제자는 오직 주님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든 주님만을 쫓아야 하겠다고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를 때 나를 따르라고 불렀습니다. 전심 전력하여 끊임없이 계속해서 좇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제자된 본분입니다. 예수님을 좇으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려고 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용서하신것처럼 용서하는 삶을 살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겸손하신것처럼 겸손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온유하신 것처럼 온유한 삶을 흉내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심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마음을 다해 섬기는 삶을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갈 때 천국이 우리안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정말로 변화된 증거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께 영광돌리는 가치있는 삶으로 존귀하게 바뀌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좇으려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본받아 따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하시던 사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악한 마귀,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를 삼아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훈련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아서 우리는 주님이 남겨 두신 거룩한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된 사역에 예수님의 뒤를 이어 감당하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맺으신 열매를 본받아 따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따라가면 좋아 보여도 종국에는 후회와 허무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면 결국에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상과 보람과 감격스런 칭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좇아가다보면 참된 평안과 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만족을 주는 영생의 꼴이 가득한 푸른 초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생수 샘물이 넘쳐 흐르는 잔잔한 시냇가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을 유혹하는 헛된 것, 위험한 것, 거짓된 것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켜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겠노라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에서 인도하시는 예수님만을 따르는 복된 삶을 시작하므로 헛된 방황을 종식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헛된 방황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스스로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스스로 보기에 더 만족한 삶,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삶, 더 자신을 과시하며 뽐내는 삶을 얻고자 죽어라고 뛰고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얻는 것이 아니라 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풍요롭고 좋아보이는 목숨을 얻기를 포기하고 많은 것을 잃어버릴 것처럼 여겨지는 삶, 다시말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마음을 다해 따르는 사람은 풍성하고 복된 목숨, 즉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찾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방황은 지금까지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지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방황을 종식하고 예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잘못 지배해온 자아를 부인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십자가 즉 사명을 짊어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예수님만을 따르기로 결단하십시오. 새롭고 아름다운 삶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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