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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에 의지하여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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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11
말씀에 의지하여

“성지 순례를 다녀오느라고 그동안 회의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제가 어느 모임에서 말씀을 드렸더니, 참석한 이웃 교회 장로님이 얼른 말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성지 순례 얘기는 하지도 마십시오. 지난 해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 성지 순례 보내드렸더니, 성지 순례를 가보니, 성지 순례를 다녀오니, 성지에서 느낀 점은, 하면서 6개월을 설교하십니다. 이젠 성지라는 말만 들어도 피곤합니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이 될지 몰라도, 성지 순례 일정이 저 개인에게 크나큰 은혜와 도전으로 다가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딱 한 달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지 순례 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는 시내산을 정점으로 한 이스라엘 남부의 광야체험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의 경험입니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중부에 위치한 예루살렘 방문입니다.

그 모두가 신앙의 유적과 유물로 가득한 땅이지만, 특별히 갈릴리 체험은 영혼 깊은 감동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바람결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들판에 예수님의 발자국이 서려있는 듯, 갈릴리 호수에는 예수님의 해맑은 눈빛이 담겨있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처음만난 베드로, 예수님을 만나 그 인생 자체가 극적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인물인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기진맥진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고기잡기에 기술과 정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오랜 노력이 성과 없이 끝난 피로한 아침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아침을 맞이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살면 그만한 성과가 나올 것을 믿으면서, 오늘을 참고 이겨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니만큼 고생이 헛것으로 끝났을 때에는 큰 절망을 맛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오늘 내 수고가 내일 헛수고로 끝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무의미를 견딜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 자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헛수고로 간밤을 지새운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가가서 다시 바다로 나가서 그물을 쳐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뜻하시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다시 한번 새 출발을 하겠다는 그 결심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했을 때, 그물을 내렸을 때에 베드로는 놀라운 역사와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빈 배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텅텅 비어있는 베드로의 빈 배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찾아 오셨을 때에 베드로의 배가 생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베드로는 마음이 분주해서, 이 고기를 팔고,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빈 배를 안고 허탈해 있을 때 진정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삶이 빈 배와 같은 그런 허전한 때가 종종 휘몰아쳐 옵니다. 어떤 때는 내 건강이 완전히 무너져 빈 배처럼 될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텅 빈 빈 배가 될 때도 있습니다. 내 가정이 문제를 만나 허탈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가 주님이 찾아오시는 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을 만나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빈 배 인생이 지닌 축복입니다.

우리가 성공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비극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이것은 사실 영적 의미에 있어서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실패자가 되어야 합니까? 내 건강이 상해야 합니까? 아니죠. 그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내 심령을 빈 배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갈급한 심령, 비어있는 내 영혼을 만들어야 예수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많은 것을 가졌지만, 물질, 권세, 학문의 교만으로 내 마음을 채우지 아니하고, 완전히 빈 배로 만들어 놓으면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님을 사모하는 빈 배, 빈 영혼의 자세로 산다는 것이 신앙인의 우선되는 자세임을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깊은 곳으로 나아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때 시몬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순종했습니다. 사실 이 순종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평생을 이 게네사렛 호수,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자신은 어부로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물고기는 밤에 잡지, 환한 대낮에는 숨어 버리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습니다. 또 게네사렛 호수는 깊은데로 가면 물이 차서 고기가 없습니다. 어두울 때 얕은 곳에 그물을 쳐야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몬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과 상식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씻어 놓은 그물을 다시 챙겨드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순종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평생에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자연까지도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순종하는 것, 그것은 시몬 베드로가 이제껏 쌓아온 경험과 상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이란 상식 밖의 일은 아닙니다. 비이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은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며,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입니다. 

사실 어찌 이 짧은 인간의 한계로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잴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이 땅에서의 인간의 체험만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는 주의 말씀에 의지해 순종하는 생활을 함으로만 주님을 알고 체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구약의 이사야서는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을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을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 55:8)

우리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씀을 다 이해하고, 알아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철이 들어 그 가르침과 사랑을 이해할 때가 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경험, 상식, 이성으로 다 알고 깨달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시몬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순종 하겠습니다 하는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초월한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시몬은 자기가 태어난 이 후 이렇게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동무의 배까지 불러서 두 배가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순종하는 이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의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며, 범사에 형통함이 따르고, 영생의 복락과 천국의 기업까지 얻게 됩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축복은 순종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넷째, 시몬 베드로는 놀라운 경험을 했을 때,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실 기적 중의 기적은 고기가 그물의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했다는데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서 낚아 올린 것은 많은 고기보다 더 귀한 것,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많은 수확보다도 자기 자신을 찾고 발견했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허구와 허세, 과장과 위장으로 마치 내가 뭐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거짓과 허세로 치장하고 사는 것이 연약한 우리 인생들 아닙니까?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난한 사람입니까? 건강을 잃은 사람입니까? 친구를 잃은 사람입니까? 아니지요.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실제로는 참 쉽지 않습니다.

전에 전직 대법원판사이셨던 분의 간증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판사가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대법원판사가 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자기 자신이 잘났고, 내가 의롭고, 나만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는데, 예수를 믿고 보니 내가 죄인이더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남을 정죄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을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똑똑하고, 잘났고, 지혜로웠지만, 우리 예수님은 한 사람도 바리새인을 제자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덧입고 사는데, 내가 주님 위해 한 일은 없구나, 내가 참 죄인이구나, 내게 이렇게 건강을 주셨는데, 그 건강으로 내가 한 일은 뭔가? 내가 참 부족하구나, 내게 그동안 먹고 입고 행복하게 살도록 축복해 주셨는데, 내게 주신 물질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했구나, 내가 죄인이구나, 이렇게 죄인 됨을 깨달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쓰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사람 낚은 어부로서 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누구나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은 뚜렷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명이 각각 모습이 다를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생산하는 사명, 경영자는 운영하는 사명, 교육가는 가르치는 사명, 학생은 바르게 배우는 사명 등등 사람은 누구나 각기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가장 비참한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왜 사는지,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목적 없이, 무의미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거꾸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사명을 바르게 찾고, 그 주어진 사명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부르셔서,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고귀한 사명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당신의 제자로서의 귀중한 사명을 위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꼭 기억할 것은, 말씀에 의지하여 베드로가 순종했을 때, 모든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기적은 함부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도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의 순종에 문제가 있을런지 모릅니다. 순종만이 기적의 축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전적으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귀퉁이 저 귀퉁이 짤라버리고, 내가 편리하게 만든 그런 순종으로는 안 됩니다. 문자 그대로 말씀대로의 순종, 말씀에 의지하여 하는 순종만이 순종의 산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은 없는데서도 천지를 지으신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위에 오신 성육신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장님을 보게 하고, 병든 이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한 마디 말씀으로 살려내신 생명과 기적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바로 여러 성도님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게 하고 천국의 영생과 기업을 상속케 하는 약속과 소망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는 지금도 분명 베드로에게처럼 놀라운 축복과 약속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순종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바라기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고,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새생명 전도 축제 선포주일로 지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나에게 영원한 생명의 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이 무엇입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나누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위탁된 사명이 많되, 전도하는 일만큼 귀한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든 이들이 알도록 힘써 전하는 일이 가장 소중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제 4월 18일이 결실 주일입니다. 한 달 반 가량의 귀한 시간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생명 전도하여 주님께로 이끄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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