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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과 함께 광야로 (눅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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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1-11
주님과 함께 광야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 성원에 힘입어 성지 순례의 일정을 잘 마치고 어제 저녁에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성지 순례 일정은 저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도전과 유익이 되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선히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귀한 기회를 주신 우리 교회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은 크게 볼 때 남쪽 광야 지대와 북쪽의 비교적 비옥한 지대로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정은 남쪽 광야 지대를 통과해 북쪽 갈릴리를 거쳐 중간의 산간 지역에 있는 예루살렘을 살펴보는 일정이었습니다. 그 중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도 지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말 그대로 사막 지대입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운 삭막한 자연 환경입니다. 그런 광야를 어떻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살 수 있었는가, 예수님은 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 가셔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야라는 히브리 단어는 “미드바르”임을 이번에 확인했습니다. 이 단어는 “말씀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여기 담겨있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란 뜻입니다. 광야에는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환경이 참으로 열악하니,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오직 말씀으로 이 유혹과 시험을 이기심으로 이 광야의 의미를 우리에게 더욱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마귀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유혹하는 자는 말하기를, 당신이 인생들을 구원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구태여 십자가가 없이도 되는 길이 있지 않느냐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돌로 떡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물질적 유혹에 대한 시험입니다.

둘째로는 온 세상 나라를 나 사단에게서 취하라고 합니다. 정치적 욕구에 대한 도전입니다. 셋째로는 놀라운 기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도록 하라고 시험합니다. 영적인 본성에 대한 호소입니다.

이런 마귀의 시험에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신명기서 8장 3절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겼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은 신명기서 6장 13절의 말씀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서 6장 16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광야같이 험하고 거친 세상 한 복판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만나는 시험과 유혹은 오직 내 수양이나 내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자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권고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요, 광야 같은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한 마을에서 들은 옛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강아지 두 마리를 가지고 랍비 앞으로 나왔습니다. 선생님, 이 검정 강아지와 흰 강아지가 싸우면 어떤 강아지가 이기겠습니까? 그러자 지혜로운 랍비는 웃으면서 대답했답니다. “그야 네가 밥을 많이 먹인 놈이 이기겠지.”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양식을 많이 먹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하물며 연약한 우리 인생들이야, 생명의 양식, 영혼의 힘과 능력이 되는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은혜를 적게 받아서가 아닙니다. 받은 은혜를 쉽게 쏟아 버리기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마귀의 시험 앞에서 자주 무릎을 꿇어버리는 습관에 젖어 있으면 영적인 빈곤과 불안은 가시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의 승리는 은혜를 더 받는데 있다기 보다는 받은 은혜를 잘 간수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뒷문 단속을 잘 하는 것, 이것이 충만한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광야와 같이 험하고 거칩니다. 그리고 사단 마귀는 유혹하는 영으로서 역사합니다. 이 마귀의 유혹은 참으로 간교하고, 우리가 이 유혹을 이겨 나가기 어렵게 역사합니다.

사람마다 그 육체 가운데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폐가 약하고, 어떤 이는 심장이 약하고, 어떤 이는 위가 약한 것 같이, 우리의 성품 가운데도 서로서로 약한 부분과 약점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은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이성의 유혹, 쾌락의 유혹, 명예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약점은 다릅니다. 에서같이 먹는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 노아처럼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 솔로몬같이 정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사람마다 지옥에 내려가는 사닥다리가 각각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돼지를 도살장까지 끌고 가는 일이 힘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쉽게 끌고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콩을 삶아서 돼지가 있는 우리에서 도살장까지 한 알 씩 한 알 씩 놓아두면 돼지가 그것을 먹으면서 갑니다. 그러나 그 돼지는 마지막 콩을 먹는 순간 위에서 내리치는 쇠망치에 얻어맞고 조금 후에는 부위별로 나뉘어서 나오게 됩니다.

사실 우리 삶에 있어서 유혹과 핍박 중 어느 것이 견디기 쉽습니까? 핍박은 육체를 괴롭히고, 유혹은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핍박은 밖에서 오고 유혹은 안에서 옵니다. 그런데 핍박의 상처는 영광이요, 유혹의 흔적은 부끄러움입니다. 그러므로 핍박보다 유혹이 견디기 어렵습니다. 핍박은 불가항력으로 오기 때문에 견딜 수밖에 없지만, 유혹은 피할 수 있으니 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유혹을 피할 길은 있게 마련입니다.

불은 철을 시험하고 유혹은 올바른 사람을 시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힘써 영적 전쟁을 싸워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님은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 유혹을 당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든지, 돌들이 떡 덩어리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이 인간의 연약함을 이용해 마귀가 시험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 덩어리가 되게 하시오.”

사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만,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사람이 사는 것이 바로 물질을 위해서, 물질을 벌어들이고, 먹고 쓰고 즐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처럼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오늘날 주위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말하는 소리를 얼마든지 듣습니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그들의 배가 그들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인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라고, 육체적인 것이 최고라고 말하고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부자연스럽고 불순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어쨌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돌이 떡이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은 신적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적으로 굶주림을 해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을 부정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의 종교가 아닙니다. 돈과 물질과 경제생활의 중요성을 긍정적이요,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종교가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떡으로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필요만 채워 졌다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보면 이 문장의 완성형이 나와 있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합니다.

사람은 떡이 있어야 살며, 경제적인 공의는 기독교의 중요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떡은 삶의 방법이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떡 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물질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의 기근, 영혼의 갈증, 심령의 메마름, 죄의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워질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오직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고,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떡만 강조해서 우리 재능과 능력을 오직 이 떡을 만드는데만 집중하라는 현대 맘몬신, 돈 귀신의 유혹을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떡과 말씀의 조화를 이루며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시험을 통해 가르치신 교훈대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에 힘쓰는 우리 신앙인들이 모두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마귀는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이 모든 것이 내 것인데, 네가 만일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면 이 사단의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는 분이라 하지만, 실제는 악한 자가 득세하고, 불의한 자가 형통하며, 때로는 바르게 살려는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천하만국은 하나님의 것이지 마귀의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누구에게도 모든 권세와 영광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통치권을 갖고 있는 듯 속이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그럴듯한 유혹인지 모릅니다. 이런 시험은 오늘 우리에게도 걸어옵니다. 말하자면, 출세시켜 줄 테니, 신앙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줄 테니 불법적인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신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면 손을 내밀어 선악과를 따먹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이 제안을 물리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우리 인생의 경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또 우리 인생이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단호한 말씀으로 이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러자 세 번째로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천사들이 너를 받쳐준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 엄청난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너를 구주로 믿을 것이다. 앞으로 3년 후 십자가를 질 필요가 어디 있는가? 지금 당장 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면 이를 통해 사람들이 너를 믿지 않겠는가? 사탄이 시험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시험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 아니라, 지름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명예를 원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당한 순서와 절차 없이 명예만을 얻으려고 할 때는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시면서 이 유혹을 이겼던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기적과 표적을 추구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언제나 기적으로 증명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기적이 있고, 기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날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기적을 원하고, 깜짝 놀랄만한 사건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세상에 아무리 큰 기적이 있다고 해도, 우리들이 예수 믿고 거듭나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이 용서받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이 더러운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거하실 수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 놀라운 기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이루어 놓으신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 우리 속에 이렇게 크고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놓았는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다른 기적을 찾아 헤멜 수는 없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이 말씀으로 사단의 시험을 주님은 물리치시고 말없이 골고다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당하신 것은 우리 인류의 시험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모든 시험의 근원은 돈과 명예와 영적인 문제에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시험을 주님이 이기심으로 오늘 우리 인생도 시험에서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길을 주님은 열어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계절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먼저 예수님과 함께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으셨지만, 이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올바로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매일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당하셨던 유혹과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광야로 나아가 시험을 이기며,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 승리를 거두어들이는 우리 모두 되기 위해 힘쓰는 사순절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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