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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자랑의 의미 (갈 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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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자랑의 의미 (갈 6:11-16)

한 젊은이가 논산훈련소에서 늦은밤 PX에서 빵을 훔쳐먹다가 마침 시찰나온 투스타 사단장에게 들켰습니다. 사단장님이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군인이 빵을 훔쳐먹느냐?”, 잘못을 알고 있던 훈련병이 큰일이 났습니다. 잘못하면 영창에 들어갈 터인데,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 훈련병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사단장에게 물었습니다. “사단장님, 저를 아십니까?” 사단장이 알 턱이 있습니까?
많은 훈련병들이 있는데 알턱이 없습니다. “내가 자네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 말을 들은 훈련병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망을 쳤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웃자는 이야기입니다.

누군지 모른다는 말에 도망을 쳤는데, 아직도 못 잡았답니다.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똑같습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좇아다니기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 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기쁨,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없잖아 있습니다. 예수믿으면 기뻐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14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사도바울은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이적들, 얼마나 자랑할 것이 많습니까? 죽은 사람도 살렸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등 자랑할 것이 많은데 하필이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까? 그 자신을 돌아봐도 이 땅에 살면서 자랑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말도 잘하는 교수입니다. 그런 것을 자랑하지 않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도가 되어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일군을 세웠는데, 내가 세운 교회가 몇 개며 내가 세운 일군이 누구누구라고 자랑할 것도 많은데, 그것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랑’ 이라는 말은 뽐내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자랑할 수 있고, 뽐낼 수 있는 자랑거리, 인생을 살면서 자랑거리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 자랑거리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우리 삶의 용기를 주기도 하고 열심히 살기도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고, 뽐내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지 않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나 자신에게 힘을 주는 자랑거리가 무엇이냐는 말입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사도바울은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늘 항상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고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늘 이렇게 살았던 분입니다. 이유가 무엇때문이냐 물었더니, 십자가를 자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말은 십자가 전의 나의 삶, 예수님을 믿는 나의 생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말은 인간의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랑할 것이 없어 약한 것을 자랑합니까? 이 세상은 우리에게 강한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부끄러움이요 손가락질밖에 안 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약함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사도바울도 ‘나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외에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 고 했습니다.

병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낫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서 내가 교만해질까 내게 이런 시련을 같이 주시는 것이다.’ 그 때 그가 하는 말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나는 약함을 자랑하노라’, 내 약함 속에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나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강함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결코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육적으로나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번 여쭈어보겠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집니까? 약해집니까? 약해집니다. 인생의 경륜이 더 높아지는데.
모르는 것 없이 다 알 것 같은데, 왜 약해집니까? 여러분, 나이가 들면 사람이 늙어가는데, 늙어간다는 말과 낡아간다는 말은 다릅니다. 낡아지는 것은 썩어 소멸하는 것입니다. 냄새가 나고 추한 것입니다. 그러나 늙어간다는 것은 다이아몬드처럼 점점 더 단단해지고 새로워지는 것이고, 값진 것이고 참으로 향기나는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세월이 더해갈수록 무게가 더 해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늙어지는 것같지만, 낡아져 가는 우리 자신을 보며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은 원래 약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오래할 수록 강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강해집니까? 나는 약해지고, 주님이 내 안에서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 좋은 사람들은 이 신앙의 경륜이 들어갈수록 ‘내가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약해지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배를 타고 다니던 선장이 있었는데, 배를 타고 다니다 보니 6개월, 1년, 2년을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겠습니까? “아버지, 나와 같이 놀아 주세요.” 하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항상 떠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이가 또 조르는 것입니다. “아버지, 배를 타고 같이 가게 해주세요.” 마침 이번 항해는 짧은 항해라서같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가는데,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란다. 네가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갖고 가도록 해라.” 그래서 아이가 책과 장난감, 애완원숭이를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면서 책도 보고 원숭이와 놀았습니다. 하루는 원숭이가 아이의 모자를 빼앗아 도망쳤습니다. 원숭이가 마지막까지 도망치다가 돛대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못 쫓아가겠나 싶어 돛대위로 따라 올라갔습니다. 좇아가다 보니 돛대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잡힐 리가 있겠습니까? 모자를 잡은 채로 옆으로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아무리 날쌔다 한들 원숭이를 쫓아갈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모자는 두 번째 문제이고, 높은 돗대 위에 올라와 보니 아이의 무게에 돛대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떨어질 것만 같고 죽을 것 같습니다. 아이의 비명에 선원들이 와도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장을 모셔왔습니다. 선장이 와서 총을 꺼내더니, 아이에게 겨누며 “내 말을 잘 들어라. 말을 안 들으면 총을 쏠 수밖에 없다. 네 옆을 보면 바다가 있다. 바다 위로 뛰어들면 내가 건져 주겠다.” 아이가 뛰어들자, 아버지는 아이를 건져내었습니다.

이일 저일 다 해보지만 안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살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버리는 길 밖에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늘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첫째날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둘째날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을 나누는 궁창을 만드실 때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셋째날 하나님이 땅을 만들고 채소를 만들때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늘의 별과 달과 해를 만들었던 넷째날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섯째날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만들었을 때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날 땅의 짐승을 만들 때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을 다 만들어 놓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는 데 사람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입니다. 이 사람이 이 사실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인해서 에덴동산에서 좇겨났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지옥갔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이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제가 교도소에 가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여러분, 죄 짓지 마십시요.”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 짓는 게 나쁜 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기도하면 좋은 줄 알면서도 기도 안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성경대로 살면 복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안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알면서도 못하는 것, 약한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육체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자랑하면 안됩니다.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우리의 본성은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성도의 자세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얼마나 일을 많이 한 왕입니까? 그래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은 목자시고, 나는 양같은 미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수많은 짐승 가운데 하필이면 양입니까? 양처럼 약한 짐승이 없습니다. 제일 약한 존재입니다. 모든 짐승은 집으로 돌아 옵니다. 그러나 양만은 아무리 오래동안 키워도 집으로 돌아 오지 못합니다. 눈이 근시입니다. 먹는 것은 얼마나 미련하게 먹는지, 내버려 두면 뿌리채 다 먹습니다. 주인이 조절을 해 주지 못하면 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눈도 나쁘고, 코도 나쁘고, 물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습니다. 양은 내버려 두면, 풀은 뿌리까지 뜯어먹고, 물을 못 찾으면 이리 저리 헤매다가 죽는 것이 양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양이라고 했습니다. 용맹스러운 군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자라 하지 아니하고 양이라고 했습니다. 약함을 자랑하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이런 사람을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강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14-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은 약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하다는 것은 15절 말씀인데,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하나님은 강한 존재이고, 창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도 약한 존재, 허물많은 존재지만 새롭게 만드시는 능력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롭게 지으심을 받는 것은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고려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고려장은 나이 많은 부모님을 그냥 갖다 묻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았을 때에 나이가 많아서 일 못하는 부모님을 깊은 산속에 버리거나, 땅에 파서 묻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려장이 사라진 동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 아들이 나이 많은 어머지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속을 향해 가는데, 뒤에서 나뭇가지를 꺽는 소리가 ‘딱, 딱’ 하고 들리는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 뒤를 돌아보아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나뭇가지를 꺽습니까? 안 그래도 으스스한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네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서 길을 헤맬까 봐 돌아갈 길을 표시 해 놓은 거란다.” 지금 자신을 버리는 아들이 무엇이 이쁘다고 아들의 돌아갈 길을 표시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꺽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들의 입장이 된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아들이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 후로는 고려장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하나님을 고려장 시키는 일은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천국자녀 되고 천국백성 되고 성령받아 사는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과연 하나님의 강함, 사랑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반대로 먹고 살기 힘든데 나이 많은 부모님을 갖다 버리자 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합니까?

교회 나오고 봉사하자고 하면 “먹고 살기 힘든데 어찌 합니까?”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가 과연 그렇게 믿어서 하나님의 강함과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복받는 인생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로 지음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회에 무엇을 했다고 하면 그것을 자랑하고 뽐내고 하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 내좇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해도 나는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하고 하나님은 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남이 못하는 봉사를 한다 할지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게 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약함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대 했는데, 선물도 안 준다?”, 선물 때문에 봉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충성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나같은 사람 세워서 일군 세워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 따라 살아갈 때에 더 큰 은혜 주실줄로 믿습니다.
요즈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 절대 믿지 마십시오. 남편 절대 믿지 마시고, 부인 절대 믿지 마십시오. 자식도 믿지 마십시오.” 아내나, 남편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하다못해 국회의원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약한 존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남편 사랑하고 아내사랑해야지, 믿으면 안됩니다. 배신했다 이런 이야기 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해하고 더 줄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오늘부터 집에 들어가서 바가지 긁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까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단 한분입니다. 하나님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변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가 사람 믿다가 실망합니다. 사람 믿다가 낙심하고 상처받는 일이 많습니까?
사람은 사랑의 존재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믿었다가 상처 많이 받지 않습니까? 목사님도 믿지 마십시오. 장로님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약함이 있고, 허물이 있다고 찔러대면 되겠습니까? 믿을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이고,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계에서 ‘민족과 나라’라는 말을 많이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민족이라는 말을 한 것은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독립하고 잘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보수파들은 우리끼리 살아야 된다고 했고, 진보주의자들은 외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100년이 지나고 그것이 바뀌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미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하고, 진보주의자들은 우리끼리 살자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할 것은 우리끼리 힘을 합쳐 살아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 즉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다 망했습니다. 바벨탑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안타까운 것은 북한이 주체사상50년을 해서 망하지 않았습니까? 이들이 국면전환을 위해서 만든 것이 단군능입니다.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도 한민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세계적으로 보게 되면 민족주의를 부르짖던 나라들은 다 망했습니다. 2차대전에 게르만 민족이 전쟁을 일으켰다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이라크 전쟁은 민족간의 싸움입니다. 아프리카 싸움도 민족간, 종족간의 싸움입니다. 민족을 앞세우고 우리끼리를 앞세우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100년전 보수파가 이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이 민족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가 제대로 서야 합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가 중요한 것입니다. 베트남처럼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공산당을 선택해서 잘 살고 있습니까? 못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어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육체를 자랑하고 육체를 합치는 나라 치고 잘 사는 나라가 없고 결국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나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하는데 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을 좋아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의 신앙만은 귀하게 여깁니다. 제가 지난번 타코마에 갔을 때, 그곳은 미국 서북쪽의 시골입니다. 블록마다 교회가 있는데, 얼마나 많은지 이 정도로 많은가 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십자가가 있다고 하지요? 비교도 안 됩니다. 블록마다 아름답게 교회가 세워져 있고 밤에도 조명이 비추어져 있고, 누구나 가서 기도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감동받았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큰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많고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이 ‘세상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시사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수많은 나라 가운데,미국은 기독교가 정치 및 경제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영국시립대 대학센터에서 학생들이 2001년도 조사를 했습니다. ‘종교가 어느정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미국사람의 10명 가운데 6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캐나다가 2위로 28%, 영국이 17%, 우리나라는 몇%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종교가 우리 생활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나 될 것 같습니까? 미국 ABC 여론조사에서 보면 85%가 신앙을 갖고 있고, 미국인60%가 창세기의 창조를 믿고, 노아홍수와 방주사건을 믿고, 모세의 홍해바다사건을 믿고, 예수님의 성육신사건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교만해져 있습니까? 우리 속에 그렇게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말입니다.

시애틀에 잠시 들러서 시애틀의 역사를 봤는데, 시애틀의 구 도시가 불이 났습니다. 그것을 어찌 할까 하다가 불난 곳을 흙으로 메운 후 새로운 도시를 세웠습니다. 구 도시는 4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10달러를 내면 시애틀 관광을 시켜주는 것이 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관광이라고 지하실을 찾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하두 가자고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친구도 17년 만에 처음 가고, 저도 처음 가 보았습니다. 지하실 방 몇군데를 보여 주는데 10달러를 받습니다. 그런데, 방을 들어가면 우리 본당의 1/3 정도 크기인데 퀘퀘한 냄새가 나고 답답한데, 거기서 20분 정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인즉슨, 과거에 불이 난 것을 가르켜 ‘화재는 변장된 축복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때에 왜 불이 나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이다. 뒤돌아 보니,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폼페이처럼 유흥과 향락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아의 홍수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처럼 불로 태우신 것이다. 그러면서 지나간 역사지만 사람들이 돈까지 내면서 미국사람들이 시애틀에 가서 그것을 구경합니다. 사람들을 보니 어떤 사람은 뉴욕에서 왔다고 하고, 워싱턴에서 왔다고 하며 그것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변장된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에 너무나 바쁩니다. 국회의원이 어떻게 했다 하고 들썩거리는 것,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통하여 새롭게 만들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약한 존재를 강한 것처럼 이야기해봤자 소용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이 우리를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칠까 합니다. LA의 한 안경점에서 광고를 해서 광고상도 받았고, 매상을 많이 올리게 한 광고가 있습니다. 한 지방TV 방송에서 한 노인이 미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눌한 표현으로 안경점을 소개 하며 하는 말이 “나는 안경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 그 한마디였습니다.
안경점이 큰 것도 아니고, 화려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술이나 학위를 드러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안경점을 찾아 갔던지,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약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능력을 높일 때만 우리가 높임받고 사랑 받을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더 하나님께 믿고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잘 할 것처럼 생각지 말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부부가 손잡고 기도하고 부모자식간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승리케 하실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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