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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부터 변화되자 / 행 2: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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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변화되자

본문: 사도행전 2장 1-7절

알콜 중독자와 결혼한 한 아내가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수 년 동안 저는 제 자신의 노력으로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천성적으로 저는 의지가 강했고 제가 원하는 바를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포기하고 말았어요. 목욕탕 속에서 울면서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주님, 저는 제 생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저를 맡아 주시옵소서. 제가 아무 것도 조정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지요. 그것이 제 결혼 생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둘이 다 변하게 된 것이지요! 변화는 천천히 되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저의 마음을 남편에게 쏟아 놓은 기회를 가졌고 제가 그의 사랑을 얼마나 필요로 하며 그의 생활에서 첫째 우선이 되기를 얼마나 원하는 가를 말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더군요. 그는 술을 끊을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그를 금주단체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제 그가 술을 끊은 지 7년이 되는군요. 저는 날마다 우리가 이제 서로에 대해 갖게 된 사랑과 존경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저를 바꾸어 놓으셔야 했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나의 작은 습관과 태도에서부터 언어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를 바꾸자 놀랍게도 가족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바꾸어 놓으려 할 때는 그렇게도 힘들더니 나를 바꾸었을 때는 상대방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놀라운 변화의 원리입니다.
다음의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가지도 변화되었을지!"
어느 돈 많은 사장이 전속 요리사를 불러놓고 그동안의 과오를 용서해 달라며 "앞으로 자네에게 좀더 친절하도록 노력하겠네. 그동안 참으로 미안하이"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 말에 놀란 요리사가 그게 정말이냐고 확인을 한 다음 난데없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사장님, 다소 늦어지더라도 제게 야단을 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물론일세." "그렇다면 커피가 다소 식었더라도 제 얼굴을 향해 끼얹는 일을 안 하시겠다는 뜻이지요?" "그럼 그렇고 말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고기가 너무 설익었다고 제 월급을 공제하는 일도 안 하실 겁니까?" "자네 지금 나를 뭘로 알고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약속을 하잖나."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다면 저도 한가지 드릴 약속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사장님의 수프에 침 뱉던 일을 중단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도우시지만 몽땅 다 처리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변화를 위한 몸부림입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지체 없이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기도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믿음 좋은 젊은이가 그의 아버지를 몹시 미워하고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오랫동안 그 젊은이는 아버지의 술버릇 때문에 받는 굴욕감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와 부자관계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점점 성숙해지면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그릇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아무 조건 없이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도록 명령하고 있음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빌 브라이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 믿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이해하게 되고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아버지께 찾아가게 됩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으로는 도저히 내키지 않았지만 믿음의 의지적인 행동으로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그 동안 비록 자신의 술버릇으로 인한 결과라 할지라도 자식의 멸시와 증오로 입은 상처가 깊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된 젊은이는 크게 회개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구한 후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켰을 때 그의 아버지 역시 크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먼저 변화되어야 그 따르는 무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변화되어야 교인들이 변화됩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 내 가정이 변화됩니다.
얼마 전 저희 집 TV 화면이 몹시 선명하지 못했습니다. 산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영상이 흐리고, 흔들리고, 화면이 겹쳐서 나오기도 하고, 제멋대로 겹쳐서 올라가기도 하고... 그래서 TV 제조회사를 원망하면서 새 TV로 교체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교체는 안 된다며 서비스 쎈터 기술자가 와서 수선만 해 주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고장신고를 하고 이런 일이 몇 차례에 걸쳐 되풀이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TV 화면이 좋지 않은 것은 저희 집 안테나가 고장이 나 있었던 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생활이 엉클어지고, 내 마음 속에 평안이 없는 것은 남들이 나에게 나쁜 일을 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할 때, 내 생활과 내 마음 속이 TV 화면처럼 흐려지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나의 안테나는 어떠한지,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시5:1) 여호와께 향한 나의 안테나는 과연 고장이 나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함께 자신의 안테나를 먼저 점검해 봅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1-5)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요, 존재론적 변화요, 영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변화여 바울됨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루터 한사람이 변화됨으로 독일의 영적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고, 요한 웨슬러 한사람이 변화됨으로 영국의 영적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나 한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주위의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나 한사람의 변화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죄인 고백(눅5장)과 신앙 고백(마16장)과 사랑 고백(요21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신앙고백 후에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다시 회개하고 주님을 만남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사울은 어려울 때 점쟁이를 찾았지만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신약의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고 난 후 회개하지 않고 주님을 멀리했지만 베드로는 회개하고 주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삭개오와 그 가정이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100년이 10년에 10년이 1년에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고, 실패자가 됩니다. 개인도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이름 있던 기업들 중에 지금 자취를 감춘 기업들도 많습니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는데 새로운 방법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되는데 옛날 방식, 옛날 하던 것을 그대로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가장 소극적으로 변화에 대처하지 않는 집단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게 바로 교회입니다. 교인들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내가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변화시켜버립니다. 어떻게? 세속적인 사람으로...
다시 말하면 내가 믿음으로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변화시켜 사탄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솔직하게 여러분 스스로가 잘 아니까 스스로 대답해보세요! 나는 변화를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며 노력했는가? 내 모습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믿음의 모습이 똑같지 않은가? 그 대답은 여러분이 스스로 해보세요! 이번에 신문에서 감동적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70이 넘은 할머니가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려고 몇 번을 도전했는고 하니 206번입니다. 206번만에 자동차 면허를 땄습니다. 운전면허를.. 대단한 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70넘은 할머니가 면허를 따서 돈을 벌려고 따려고 했겠습니까? 아니면 면허를 따서 놀러 다닐려고 했겠습니까? 비록 나이는 70이 넘었지만 한번 해보겠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206번만에 면허를 따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모습이 대단한 것입니다. 대단한 설교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국민훈장 받아야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쉽게 포기할 수 있는데 206번씩이나 시험을 봐서 면허에 합격을 했습니다. 노력하는 자만이 변화되고, 변화된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겉만 변화되는 것! 이것을 물리적 변화라고 합니다. 내용이 변화되는 것은 화학적 변화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어야 할 것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내용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자가 됩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운데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똑같이 제자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사실 베드로보다 가룟 유다가 똑똑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껍데기만 변했지 속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비린내 풍기면서 고기를 잡아서 생활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의 위대한 제자가 되고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이 자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가룟 유다 처럼 껍데기만 변화되었다가 실패하는 자가 생길 수도 있구요 비록 세상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속이 변화되어서 베드로처럼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의 사건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뛰쳐나가 외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난리가 났는고 하니 저들이 나가서 외치는데 당시에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세계에 흩어져있던 경건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제자들이 외치는데 각각 자기나라 말로 듣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방언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깜짝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또 이들이 나가서 기도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게 되는 역사들이 일어나니까 이 경건한 사람들이 깜짝 놀래서 하는 말이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보니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갈릴리 사람들이 당시 무시당하던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보라 지금 말하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이게 웬일이냐? 이 촌놈들이 ....이 무식한 사람들이 ....” 바로 이 말입니다.
여러분!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들이 깜짝 놀랬습니다. 전에는 촌놈이라고 무식하다고 어부라고 놀렸지만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동은 백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딱 보여주면 그것이 더 강합니다. 그러니까 전도도 보여주는 전도가 힘이 있습니다. 내가 영희 엄마한테 전도를 한다고 가정하면 “영희 엄마! 예수 믿어.. 예수 믿어야 복 받아..” 그러면 영희 엄마가 내 말만 듣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활도 지켜봅니다. 그런데 내 생활에서 보여줄게 없으면 그 말의 진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족전도가 어려운 것이고 친구를 전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직장동료를 전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나를 모르는 동네에 가서 전도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보다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인들의 변화는 어디서 왔는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말씀에서 왔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그러니까 그 말씀 믿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속하신 것! 성령충만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진정으로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내 삶을 변화시켜줍니다.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나를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합니다. 사람의 심혼 골수까지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내 삶속에 들어오면 내가 바뀌어집니다. 움직이게 되고, 죽었던 삶이 살아 역사하게 되고 내 속에 잘못된 것들이 말씀의 칼로 수술을 받게 됩니다. 말씀 없는 신앙생활은 가짜입니다. 솔직하게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의 삶을 아니까...
여러분 중에 지금 교회에 나와 앉아있지만 한 주간 동안 내내 성경 한 장 안 보고 와서 앉아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한번 펼쳐보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 장도 안보고 앉아있으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찬양대원들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성경 한 장도 안보면서 나는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삶 속에 없으니까 10년 전 내 모습이나, 20년 전 내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쭉쭉 자랐습니다. 참 잘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안타깝게도 퇴보했습니다. 그 때는 꽤 열심히 하고 그 때는 믿음생활을 잘 하는 것 같더니 요즘은 완전히 뒷걸음질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학교를 가는데 가방만 들고 다니지 한 주간 동안 책 한번도 안 펴봅니다. 학교가야 선생님 말씀을 건성으로 듣고 엉뚱한 생각만 하고 집에 와서도 책 한번도 펼쳐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학생노릇 제대로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삶 속에 말씀이 있어야하는데 한 주간 동안 성경책 한번도 펴보지 않고, 성경 한 장 안 읽고 옵니다. 주일날 와서 앉아있는데 졸다가 가고, 오래 믿은 사람이 꼭 좁니다. 눈감고 잘 듣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리입니다.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죽을병이 들었는데 의사한테 가서 진찰을 받고, 처방을 받고, 약을 먹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 사람이 그냥 병원에만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들어갔다가 나오고.. 그러면 병이 낫습니까? 의사도 안보고 고치지도 않고 병원만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입니다.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해야되는데 말씀이 없습니다. 주일날 와서 그냥 졸다가 앉았다가 가는 것입니다. 이러면 되는 줄 압니다. 내 속이 병들어 있는데...
말씀을 만나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밥입니다.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안 먹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안 먹으면 병이 듭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하나님의 법칙은 똑같습니다. 동물도 안 먹으면 병들고, 안 먹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식물도 먹어야 꽃피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영적 삶은 더 그렇습니다. 천하장사 이만기 씨도 한 달만 밥을 굶으면 꼼짝 못합니다.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읽어야 영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한 주일에 성경 한 장도 안 읽고 신앙생활을 하겠다는데 그것이 무슨 신앙생활입니까? 그것은 장난이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글을 모르는 분들은 이해합니다. 한 주일에 밥 한 그릇 먹고 어떻게 삽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신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크게 따라합시다! 성경을 읽읍시다 하루 세 장씩! 그렇게만 읽으면 1년엔 신구약성경 딱 한번 읽습니다. 그것도 못 읽으면 아무소리도 하지 마세요!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예루살렘교인들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자기 인생을 걸었습니다.
두 번째, 기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열흘동안 간절하게 기도하니까 홀연히 하늘에서 역사가 일어나는데 성령님이 강림하시는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면서 불에 혀같이 갈라지는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각 사람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해야됩니다. 내가 변화되려면 내 노력만 가지고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 안 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 안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가짜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숨 안 쉬고 살 수 있다면 기도 안하고도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시고, 교회 나와서 기도하면 제일 좋고, 못하면 집에서라도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루하루 시작할 때마다 꼭 기도하고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시작하실 때 40일 금식기도먼저 하시고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333 외우기 쉽습니다. 예레미아 33장 3절 말씀! 거기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내게 보이리라' 우리는 아는 것이 아주 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왜 이만큼 밖에 모르는가? 기도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네가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여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야합니다. 불신자들이 우리를 볼 때 어떻게 보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어떻게 보냐하면 “별 것 아니네”라고 합니다. 왜 그런 말이 나올까요?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데 저 사람들 아버지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래 그런데 보면 별것 아니네.. 나랑 똑같네....” 라고 비웃습니다.
“축복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별것 아니라고 너나 나나 똑같네 그러니까 별것 아니네.......”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응답된다고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 보니까 별것 아니네..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병이 들었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중병에 걸려 앓아 누우셨나요?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를 안 해서 입니다. 우리 삶 속에 말씀이 없고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야고보서 5장 16절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아는 갈멜산에서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 오지 않던 땅에 비가 내렸습니다. 히스기아 왕은 기도할 때 죽을 병에 걸렸는데 15년을 연장 받았고, 에스더는 기도하고 민족을 살렸고, 한나는 기도하고 사무엘을 얻었고, 여호수아는 기도하고 “태양아 머물러라!!” 외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사자의 입도 막았습니다. 기도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입니다. 이 변화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됩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가만히 서있으면 내가 제자리를 지킨다! 아닙니다. 가만히 서있는 자체가 후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큰 꿈을 가지고 지금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있으면 안됩니다. 학교 교육은 날마다 바뀌어가는데 교회는 20년, 30년전 방법 그대로 계속 이끌어 갑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다 떨어지고 주일학교가 이렇게 됩니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빨리빨리 변화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변화되어서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야! 저 갈릴리 촌놈들이 ..내가 무시했었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구나 놀랍다!”
주위사람들이 깜짝 놀랠만한 변화의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의 지금의 모습과 10년 전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20년 전의 내 모습하고 지금의 내 모습하고 비교할 때 내가 얼마만큼 변화되었는가? 똑같은 분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은혜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축복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겨우 120명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변화되니까 예루살렘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변화되기만 하면 믿음으로 말씀과 기도로 변화되기만 하면 서울을, 대한민국을 우리가 완전히 복음으로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삭개오처럼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주여! 나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가정이 변화되고, 우리 직장이 변화되고, 우리 교회가 변화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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