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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된 사람들 / 눅 19: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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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사람들

본문: 눅 19:1-10

티코미로프는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농업하기에 좀더 유망한 곳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그의 부모는 콜레라로 죽었고 그 소년도 쓰라린 고생 끝에 도적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8년 간 그들은 농사짓는 이웃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일당은 두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 버렸는데 그 중엔 두 책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약성경이었습니다. 그 날 밤 숙소에 누워 로마서 3:15, 18을 들쳐 읽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신약성경의 앞면에 씌여 진 글을 주시했습니다. “1898년 5월 15일 주님께 회개함으로 중생을 체험하다. 그 날 주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거룩한 보혈로 나를 씻어주셨다.” 그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누가복음의 십자가의 두 강도의 이야기는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고 그는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일곱 명도 그와 함께 자수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 후 이 도적들은 10년의 중노동형을 받았고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백칼 해 건너편으로 보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나 국가의 경축일에 그는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는 걸어서 소련에 돌아갔습니다. 오는 도중에 그는 많은 신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간증한 장소에서는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소스노우카에 돌아와서도 계속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 성직자들의 반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다시 구속되었고 1년간 감옥에서 감옥으로 전전했습니다. 그 후 다시 그는 이단을 믿는다는 이유로 2년간 시베리아로 귀양보내졌습니다. 여기에서도 다시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였던 사람으로부터 얻은 신약성서의 첫 페이지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가 죄 속에 빠져 있었을 때 당신을 죽게 했소. 주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시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소. 그의 죽으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영생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오. 이 성경은 나의 굳어진 마음을 생수같이 부드럽게 해주었소. 그것은 내 목마름을 달래고 계속하여 흐르면서 다른 영혼에게 생명을 주며 활기를 띠게 하고 있소. 이로 나는 그대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오 아멘.”
히틀러의 경호원 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의 인생도 붕괴되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하던 중 전도책자를 보고 집어들었다가 끝까지 다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경배대상을 찾은 그는 바로 부근의 목회자를 찾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지금 미국 교계에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탐 스키너라는부흥사가 있습니다. 그는 뉴욕 할렘가의 불량 청소년 갱단 두목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영혼과 삶이 뒤바뀌었으나 그가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옛날의 동료 하나가 탐 스키너를 시험했습니다. 지나가는 탐 스키너의 뺨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탐 스키너가 일어나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친구여 나는 너를 용서하노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생명의 자리에 둔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본능은 "복수하라"고 말합니다. 본능은 나에게 보복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본능은 편리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에 대해 자신을 죽은 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만이, 겸허하게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의 원리에 의해서가 아닌 생명의 원리에 의해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톨 위고는 20세 때부터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작가로, 사상가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그 명성과 달랐습니다. 그는 심한 주벽이 있었고, 탐욕에 빠졌고, 타락했고, 허탄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온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자녀들도 그에게 시달렸습니다. 1841년 여름, 사랑하는 딸 레오프딘느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시체가 센느 강에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놓고 그는 유고(遺稿)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비극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심판이다. 나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은 것이다."
그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을 합니다. 깨끗한 생활, 경건한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쓴 소설이 바로 '레 미제라블'입니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변화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들 합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성공의 길에 들어선 영국의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국 의사당 앞에서 비중 높은 변호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많은 긴장과 부담감을 가진 나머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더럽고 추한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학함으로써 자살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쓸모 없다고 여기며 자살하려 했던 그가 죽음의 쇠사슬로부터 풀려 나오는데는... 10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더럽고 추한 자신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삶의 모습과 그 사랑의 감격을 시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 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찬송가 190 장이 바로 그의 간증의 노래입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카우퍼 (William Cowper) 로서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고전 문학가로 손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가랴서 13장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로새서 3장 10 절)
1990년대 초에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열차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기관사는 큰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사고 원인을 조사하려는 경찰의 대답에 응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한 충격으로 인한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실에 있는 그에게 어느 날 펜실베니아 철도 사장인 에토베리씨가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생각과 시선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그에게 에토베리 사장은 손을 잡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나이가 들어서 고생이 많군요. 이게 웬 고생이요. 당신이 느끼는 아픔과 고통이 곧 나의 것이요.” 하고 병원을 떠났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기관사의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고, 사고가 일어난 상황을 또박또박 자세히 설명함으로 인해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기관사는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충격과 고통을 직면하고, 또한 이겨내며 더 큰 어려움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관사가 이겨낸 경험과 그 용기를 우리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기관사가 다시금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함께 울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 사장은 자기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기에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 걸음이 고달프십니까?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지금 하고 있는 대화는 어떤 대화입니까? 또 표정은 어떤 표정입니까?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며"(잠16:24)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대하고 있습니까?
1997년도 6월 21일 조선일보에 서울 신남성 초등학교 조순재 선생님에 대한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산수 문제를 풀다가 자기 반에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우인 박성준 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서 칠판에 있는 산수 문제를 풀어 보라.” 그 때,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 성준이는 못해요.”, “ 쟤는 못해요. 할 수가 없어요.”
그 때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왜 성준이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성준이는 할 수 있어.”
그리고는, 그 아이를 안아다가 칠판 앞에 세웠습니다. 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다음 학기에 성준이라는 친구가 반장으로 출마해서 53명중에 47표를 득표해서 회장에 당선됩니다. 장애우인 성준이라는 학생은 동국대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의 신문 보도였습니다. ‘성준이는 왜 안 돼. 성준이는 풀 수 있어.’ 반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대화는 생명의 대화였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소망과 기쁨을 주며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하는 그런 대화였습니다.
로이 로버트슨이라는 미 해군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1941년 12월 6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한 함정 ‘웨스트버지니아’ 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 배와 다른 여러 종류의 배는 360대의 일본 비행기에 의해서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일본군 비행기가 날아올 때, 로버트슨은 재빨리 기관포가 있는 쪽으로 갔습니다. 기관포를 들고, 저들이 기총 소사와 포탄을 가지고 옆에 있는 형제들을 죽이는 현장에서, 공포탄 밖에 없는 기관포를 잡고 절규합니다. “따따따따.......” 자기 입으로 소리를 냅니다.
소리를 내는데도 지나가는 비행기를 격추시키지 못하고, 격추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시 죽어야 되는 형제들을 바라보며 울분을 터뜨립니다. 빈 실탄, 공포탄을 가지고 쏘아야하는 자기의 신세를 분명히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연습용 탄환만을 가지고 15분간 그는 처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후 어느 날 그는 성경공부 그룹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10명쯤 둘러앉았는데, 인도자가 성경 한 구절씩 서로 돌아가면서 외우도록 하였습니다. 로버트슨 병사가 암송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도 자기 앞에 사람이 외워버렸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외울 말씀이 없어, 할 수 없이 같은 구절을 암송하고 화끈거리는 얼굴로 성경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 날 밤 교회에 혼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친구들이 죽어 가던 그 현장, 실탄 없이 공포탄으로 비행기를 맞서서 싸우던 처참한 모습. 그리고 또 다시 복음의 핵심과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 말씀이 자신의 삶 속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나는 가짜야. 나는 빈깡통이야. 나는 가짜야“
그리고 하나님 앞에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 동안 건성으로 들었던 복음, 오늘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 하나님 복음이 왜 생명이 되고, 어떻게 구원 얻는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알기를 원합니다. 실탄을 가지고 총을 쏠 수 있는 병사처럼,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말씀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빌리 그레함 전도단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훗날, ‘트로트 맨’이라는 사람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비게이토”라는 선교 단체를 만들게 됩니다. 많은 선교 단체가 있지만, 네비게이토의 훈련 방법은 독특합니다. 복음의 핵심과 구원의 확신에 대한 부분은 어느 성경 공부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훈련시키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듣고, 신앙 생활할 때 그 말씀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까?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 말씀이 어떻게 다가올까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말씀이여 들려라 나는 나대로 살겠다하는 태도라면 이 말씀은 여러분 삶 속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빈깡통」입니다. 「가짜」입니다. 말씀이 약속하는 희망을 우리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지 마십시오. 내 경험과 들은 지식 그리고, 단편적으로 본 성경 몇 구절, 욕구와 함께 뭉쳐진 그 하나님 모습이 진짜 하나님인줄 알고 믿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본래의 하나님 되도록 성경 말씀 속에서 진지하게 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구원의 소식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변화된 사람은 베드로와 삭개오 그리고 사도 바울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죄인 고백(눅5장)과 신앙 고백(마16장)과 사랑 고백(요21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신앙고백 후에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다시 회개하고 주님을 만남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섬기고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으로 변모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받는 사람과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 종교적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자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소외된 계층은 창녀들과 세무공무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무서를 부정 비리의 온상으로 취급했고, 세무서의 서장은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리고 성의 세무서장인 삭개오를 각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그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유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7절) 유대인이 보는 삭개오관과 예수님이 보시는 삭개오관은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정죄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세상의 명예와 물질에 사로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를 축적하면 할수록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허와 허무감으로 가득찼습니다. 반면에 나사렛예수라는 청년은 가난한 선지자에 불과한데도 그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생의 사명감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그의 음성을 듣기 원했고, 그의 손길을 사모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가 여리고성으로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의 모든 업무를 중단한 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세무서장이라는 사회적 체면에도 불구하고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뽕나무 위에서 몸을 숨기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예수님이 뽕나무아래 멈추어 서서 "삭개오야"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집에 모시는 영광까지 얻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시선은 누구에게 집중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 임합니까? 삭개오 처럼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며 주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간절히 주님을 찾는 성도는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단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며, 죄인과 함께 거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삭개오와 같은 죄인이었지만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고 만나주셨고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삭개오는 돈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돈을 부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은혜를 받고 난 이후에는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재물도 주와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기꺼이 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 앞에 내 몸과 마음과 물질까지도 드릴 수 있는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죄악이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죄악의 웅덩이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여전히 주를 고백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물질과 권력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굳은 심령을 녹여 주소서. 성령께서 백성들의 발길을 친히 인도해 주시는 곳마다 새 바람이 일어나 우리의 삶이 변화되길 원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마다 거룩한 곳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소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입술이 아니라 성령의 불로 힘없는 자들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을 세워주소서. 이웃을 격려하며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살맛을 느끼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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