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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혁하십니까? (왕하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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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십니까? 

왕하 18:5~8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구 593)

표준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개혁을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라고 나옵디다. 비슷한 단어로 개신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제도나 관습 따위를 새롭게 고침」이라고 합니다.

1517년 10월 31일 Martin Luther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부패한 구교 캐톨릭을 개혁하면서 개신교가 탄생되었고, 우리 감리교회는 그 개혁 교회의 정신을 이어받은 세계 최대의 교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에 종교 개혁주일로 지키며 교회 갱신의  뜻을 되새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개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인터넷에 들어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문화개혁, 행정규제 개혁, 생활개혁, 공공부문 개혁등이 나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머리를 스치는 것은 정치 개혁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특별히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후보자들마다 많은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약들을 살펴보면, 거품 공약에다 재탕 삼탕이 많다고 합니다.

매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공약도 부지기수랍니다.

지역 감정 해소, 남북관계 개선, 정의사회 구현, 복지 사회 건설 등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단골로 등장한다는 것은 그 이전 시대에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끊임없이 개혁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지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개혁의 기치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삶의 개혁을 이루어 칭송받는 몇 몇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히스기야 왕만큼 개혁의 훌륭한 성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던 사람이 없을 만큼, 그의 인생은, 혼란스러운 우리 시대에, 그리고 개혁하길 원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 줍니다.

히스기야는 구약 성경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는 하나님께 사랑 받던 한 왕의 면모를 성경에서 배우게 됩니다.

왕으로서, 한 나라를, 신앙적인 삶을, 그리고 미래를 바꾸어 가던 그 사람, 히스기야, 그를 통해 오늘 나와 신앙 공동체, 그리고 우리 삶의 미래를 개혁해갈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가 25세에 유다의 왕이 된 때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왕 통치 3년이었습니다.

호세아의 통치 9년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 시기는 앗수르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가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사마리아를 거의 손아귀에 넣은 앗수르는 자연 다음 목표를 유다로 정하고 유다를 삼키기 위하여 유다를 침략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황은 아주 나빴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였던 아하스 왕은 수년 전에 앗수르와 약조를 맺었던 것입니다.

왕하 16:7~9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8)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이런 비굴한 약조 아래에서 앗수르는 수 년 동안 유다를 착취했던 것입니다. 이제 앗수르의 기세는 더욱 높아지고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아버지와는 아주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힘있는 이웃 나라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당시에 가장 떠오르는 세계의 강대국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앗수르와 맺은 조약은 어쩌면 히스기야에게 보장된 안전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가 맺은 조약을 무시했습니다. 오직 모든 도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으려 했다면 히스기야는 내부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외부의 군사력을 의지하지 않았고, 내부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주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히스기야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온 나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함



왕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어쩌면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이런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교회에 가서 기도나 하고 있으면 다냐?”

이런 불평이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히스기야의 첫 번째 관점은 먼저 온 나라를 영적으로 부흥시켜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흔히 철새 정치인, 기회주의자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그러했었습니다.

신라와 백제가 삼국을 통일하려 할 때, 신라가 통일을 이룹니다. 그렇게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의 중국은 당나라가 있었는데, 소위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멸망합니다.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백제에 비하여 변방국이었던 신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힘과 정치의 논리를 안 결과라고 이야기 합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신라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민족 통일을 위하여 외세를 끌어들인 불행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 역사의 슬픈 현실이었고, 이후로 유리하고, 강하고, 권세를 잡기에 유리한 쪽으로 사람들은 움직여 갑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처세술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자기의 힘 앞에 굴복하지 않음을 보고 유다의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왕하 18: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왕하 18: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산헤립은 유다가 의존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도 유다를 돕지 않으실 것이라고 참소했습니다. 그러한 때에 히스기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하 18: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입을 다물라”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이 입을 열어 가타부타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만 호소하고 기도하도록 명령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경제적인 위협이 다가오고, 자녀의 문제가 생기고, 사업상의 문제가 생긴다면, 여러분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기가 다가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먼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사람의 도움을 먼저 구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입으로 불평과 원망을 하고 한숨 섞인 탄식으로 불신앙의 말들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히스기야 왕처럼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할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때에 그것이 완전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의지가 되시며,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피할 바위시오, 구원의 뿔이십니다.

아십니까?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 북 이스라엘은 수명이 다했습니다. 앗수르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왕으로 섬기는 이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두 번째 비결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2. 연합하여 떠나지 않음



왕하 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그들이 성할 수 있었던 이유, 그들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한 몸으로, 붙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대구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명이신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흥하게 하실 줄 믿습니까? 그러한 능력이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으시나요?

봉헌 찬송으로 500장 찬송을 불렀습니다.

3절에 우리는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다윗은 비록 어린 목동이었지만, 여호와와 함께 삽니다.

모세는 80세의 고령에, 쇠잔해져가는 인생의 황혼녘에 들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바울은 세상적으로 자랑할 수많은 것들을 가졌지만, 예수님 외에는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려 주님께 자신의 삶을 맡깁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승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살 때, 그것이 성공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3. 명하신 계명을 지킴



왕하 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모습,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개혁을 단행하여, 먼저 우상을 제거합니다.

히스기야가 유다에 만연되어 있던 우상들을 제거하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 뱀이 나옵니다.

민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할 때에 불 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었습니다. 이 불 뱀들은 심각한 독을 품고 있었고 이 뱀에 물린 사람들은 곧 죽어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놋 뱀을 만들어 이스라엘의 진중에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낳음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삶을 선언하십니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만든 놋 뱀이 진 중에 높이 달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 낸 것을 비유하시어, 주님의 십자가 달리심을 통해 만 백성이 구원받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모세의 이 놋 뱀은 이스라엘의 진중 가운데 높이 달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캠프에 300만 여명의 백성들이 있었지만 뱀은 오직 하나로 족했습니다.

예수님도 한 분으로 족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몇 분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놋 뱀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뱀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얼마나 불행한 일을 초래하는지 생각나게 해 주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놋 뱀을 그들의 성소에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은 점점 그 용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로 이 뱀에게 분향하고 숭배하는 행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도구로 씌여진 것이지,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교회마다 십자가가 있는데, 이것 역시 주님의 희생과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이지, 십자가는 거룩한 것도, 경배의 대상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바로 이 놋 뱀을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왕하 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 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그리고 그것의 이름을 “느후스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놋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놋조각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신 순간동안만 그것은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또 다른 우상 중의 하나는 지난날의 기억을 우상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에 행했던 일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요? 지금은 어떻게 하시나요? 어떻게 되었지요? 지금은 쓰임받지 않고 있으신가요? 그러면 지금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시는군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의 경험에 영광을 드리고 있는지요. 여러분이 지난날을 잊어 버려야 하나님께서 새롭게 여러분을 쓰실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가지고 있던 지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난날의 감격스런 회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지식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감격이 여러분을 전률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영광을 취하는 모든 것에 떠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형통함



히스기야가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고, 연합하여 떠나지 않으며,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을 지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왕하 18:7~8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외세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내부의 군사력도 확장하지 않은 히스기야, 이 땅의 법칙으로 보면 당연히 앗수르의 먹이가 되고도 남음직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칙은 우리의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움직이십니다.

왕하 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룻 밤에 앗수르 군대가 사라집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어찌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한 것입니다.

개혁은 표어가 아닙니다. 개혁은 사상도 아닙니다. 개혁은 무엇보다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입니다.

485주년, 거듭된 종교 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생각과 의식, 신앙을 개혁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형통하신 복락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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