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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요삼 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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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본문- 요한삼서 1: 9- 11

지난 2월20일 서울지역을 비롯한 중부권의 기온이 영상 18.8도를 기록함으로써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후 2월 기후로는 100년만에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는 발표를 들었습니다만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 쏟아진 전국적인 폭설, 특별히 충청권에는 49㎝의 적설량을 기록하여 3월의 적설량으로 또다시 100년만의 기록을 하는 등 최근 우리나라는 심각한 기상이변을 자주 겪고 있습니다.

기상청 예보국장은 이번 이변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와 관련이 큽니다. 지구의 에너지 균형이 깨지면서 열순환이 빨리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특별히 중부권 고속도로상에서는 폭설로 모든 도로가 차단이 되어 2.200 여대의 차량과 4.000여명의 시민들이 차안에서 추위와 어두움과 배고픔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정부의 재해대책본부는 헬기를 동원하여 빵 15.000개, 우유 16.500통, 컵라면 2.500개를 공수해 주었지만, 배고픔과 어둠에서 떨어야 했던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작금의 정부가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정말로 위기관리능력이 있는가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추위와 두려움과 배고픔에 떨었던 그 많은 시민들과 그들의 안위를 묻느라 밤을 지새운 가족들이 받은 마음의 고통과 상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하면서 다시금 안정과 평안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한서신의 세 번째인 요한삼서입니다. 장로로 표현된 사도요한은 충성된 지도자 가이오에게 편지를 통하여 그와 그의 가정이 진리 안에서 행함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특별히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를 경계하면서 강력히 치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도요한과 디오드레베는 대립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에 의해서 초대교회가 말씀으로 양육되고 성장하는 가운데 그 공동체 중에 지도자였던 디오드레베는 이제 사도요한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디오드레베는 세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장로인 사도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서 헌신적인 주의 종 사도요한을 중상모략한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도요한이 보낸 순회전도자들을 접대하지 아니할 뿐만아니라 , 오히려 접대하고자 하는 성도들 까지 내어쫓은 일입니다.

이제 더 이상 디오드레베는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필요없는 존재,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없어야 할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새롭게 각성과 도전을 받아야합니다. 바로 초대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의 그 모습이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1968년에 아버님께서 새로 시무를 하실 때 사실은 모든 교역자들이 그 교회는 거부하고, 기뻐하지 않았던 곳을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한 30명 되는 교회가 반으로 나뉘어서 반은 목사님편, 반은 장로님 한 분 계신데 장로님편, 이렇게 나뉘어서 피터지게 싸웠습니다. 서로 보기도 싫다고 해서 절반은 11시 에배를 드리고, 절반은 2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온 중부지방 연회에 싸우는 교회로 소문이 나서 모든 교역자들이 그 곳을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감독님께서 아버님에게 ‘황목사님이 가셔야 되겠습니다’ 바보 같이 아버님은 순종하고 그 곳을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목사님을 반대하는 그룹은 환영하는 그룹이 되어 버렸고, 그리고 목사님을 환영하던 그룹은 반대하는 그룹이 되어버렸습니다. 갑자기 적이 생겨버린 것이지요. 1년 가까이 그 나누어진 분열된 교회를 치료하기 위해서 화목과 일치에목표를 두고 사역한 결과 교회가 하나가 된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고 나니까 교회는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왔습니다. 전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교회로 교회가 건강해지고 부흥해 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70년대에 그 교회는 한국감리교회에 성장하는 교회, 건강한 교회, 모델이 되었습니다. 서울 시내에 100년이 넘은 교회들이 찾아와서 교회성장비결을 듣고 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분열되고, 어떤 여러 사람들의 이해와 관계 때문에 갈라지면, 교회는 하나님 주신 에너지들을 분열과 시기와 다툼과 분쟁으로 그 힘을 쓰기 때문에 교회는 본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되고, 화목하게 되고, 일치를 이루게 되니까 그들에게 주신 파워가 전도를 위해서, 기도를 위해서, 하나됨을 위해서, 섬김을 위해서 사용하게 되었고, 결국 열매는 교회 성장이라고 하는 부흥이라고 하는 열매로 허락되어 주신 줄 믿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일취월장 성장하는 중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 동안 교회가 성장할 때에는 목사님과 장로님 성도들 간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한 분 밖에 없는 장로님과 늘 목사님은 대화합니다. ‘장로님 소풍은 어디로 갈까요?’ ‘글쎄요. 목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는 서울대공원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휴 그러면 그렇게 하시지요’

임원회를 모여서 장소를 정합니다. ‘이번 소풍 장소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요?’ ‘목사님 기도하신대로 하시지요’ 그러면 이하동문, 이하생략, 그리고 박수치고 끝났습니다. 참 좋았어요. 모든 것이 은혜로웠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성장되고, 새가족들이 많이 들어오고, 교회는 일취월장 부흥의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십대, 오십대 젊은이들이 장로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사람의 장로가 세워지고, 그리고 나서는 저는 기획위원회가 구성되고, 목사님은 그들과 같이 의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소풍은 어디로 갈까요? 여러분들 의견을 말씀해 보기 바랍니다’ 제일 원로 수석장로님은 ‘나는 서울대공원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젊은 장로님들이 말합니다. ‘요즘은 에버랜드가 좋답니다. 에버랜드로 가시지요’ 결국 의견이 갈려지니까 목사님은 ‘그러면 한 번 다수결로 해 보시십다. 에버랜드 가고 싶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그랬더니 대부분이 다 에버랜드예요. 그러면서 서울대공원은 한 분 밖에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올해 소풍은 에버랜드로 갑니다.

이렇게 되면서 그 한 분은 점점 비뚤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결국은 그 당시에는 교회 바닥이 마루였는데,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교회 임원회를 할 때에 전체적인 교인의 중지를 모아서 일을 결정하다 보니까, 여러 장로님들의 의견을 듣다 보니까 이제는 자기의 생각은 잘 채택이 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회의 중에 그는 마루바닥에다가 성경, 찬송가를 집어 던지면서 ‘다 해 먹어라’ 그러면서 퇴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다음에 임원회에서는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그 때는 성경 찬송을 집어던지면서 그렇게 말합니다. ‘니들이 장로냐? 내가 장로일 때 니들은 집사였는데....’ 이러면서 막 화를 냈습니다. 결국 그 분은 그 교회에서 정상적인 지도자로서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1960년대 후반에 그 교회의 상황을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어요. 이 디오드레베도 처음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일꾼이었고,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주의 종 사도요한의 오른팔과 같이 쓰임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점점 교회 공동체가 커지고, 일꾼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권위를 가지고, 이제는 부정적인 것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사도요한을 도전하고, 심지어는 헌신적인 사람들을 교회에서 내어 쫓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여러분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도전을 제가 드렸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로 혹은 가능성이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대단히 강력한 메시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권위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씀하면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의 권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화평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오셨어요. 그래서 말씀합니다. 하나님도 하나요, 성령님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교회도 하나요, 교회는 하나일 때 힘을 발휘한다 그 말입니다. 분열되고 나면 좋아하는 것은 사탄마귀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 마음 속에 사탄의 마음이 들어간 것입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헌신적인 사람들을 내어 쫓으면서 자신의 기득권만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교회, 요한사도는 그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 교회가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일서, 이서, 그리고 삼서를 통해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리, 신약성경에 109번이나 언급된 진리의 표현이 요한서신에 절반 가량 나온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사도요한이 강조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께 믿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주님이 대답합니다. 내가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 내가 지금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느냐? 이것처럼 모욕적인 것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 공동체 속에 디오드레베와 같은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새로운 권면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몇 년전에 강화지역에 부흥회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부흥회를 가면 강사를 정성을 다해서 대접합니다. 마치 주님을 대접하듯이, 천사를 대접하듯이 대접합니다. 이제 다음주간에 있을 교회 부흥회를 위해서도 여러분들은 점심과 저녁대접을 자원하셔야 합니다. 한 가정이 하기 어려우면 두 가정이 하시고, 두 가정이 하기 어려우면 속회가 하시고, 속회가 어려우면 선교회가 할 수 있습니다. 점심은 가능하면 모든 교역자와 수고한 이들이 같이 하면 좋겠고, 저녁은 목사와 강사만 하면 좋겠습니다.

강사대접은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서 하는 겻입니다. 요즘은 교회 분위기가 이제는 식당에 가서 대접해도 괜찮은 분위기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집에서 준비해야 정성된 것이라는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장로가 그 교회 권사님 가정에 대접을 받았습니다. 정성껏 차렸습니다. 4-5명의 권사님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식사시간에 갔더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어제 식사에 참여했던 권사님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상해서 ‘어제 온 분들은 왜 안옵니까?’ 그랬더니 대답들을 하지 않고 그 분위기가 좀 이상해요.

나중에 담임목사에게 물어보니까 목사님께서 ‘이 교회는요, 아니 이 지역은요. 이상한게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죄송한 표현이지만, 이 섬사람들은요. 굉장히 배타적인 것이 있어요. 그래서 이 강화사람들은 강화사람이라는 말과 또 하나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육지에서 들어온 사람을 외지사람이라고 말하는데요. 그 강화사람과 이 외지사람이라는 간격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까 어저께 대접하던 집은 강화사람의 집이었구요. 오늘 대접한 집은 외지사람, 타지사람의 집이었어요. 타지사람이 대접하면 강화사람들은 오지 않았구요. 강화사람이 대접하면 타지사람이 오지 않았어요. 타지사람 권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강화에 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 ‘9년 됐어요’ 세상에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그들은 쫙 줄을 꽉 그어 놓고, 동네사람, 타지사람, 이 동네사람, 외지사람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 날 그런 결심을 했습니다. 이번 부흥회는 이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 일치를 위해서 성회가 진행되어야 하겠구나. 그리고 하나됨으로 온 교회가 눈물로 하나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 교회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놀랍습니다. 교회가 함석으로 지붕이 되어있는데, 오래 되었는데 비가 오면 비가 교회 안으로 떨어집니다. 비가 새는 거지요. 외지에서 온 성도가 그걸 보고서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서 읍내를 가서 자기돈으로 함석을 사다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함석을 새로 덧대고 페인트를 칠하고, 못질을 하고 수고의 땀을 흘렸습니다.
그 다음주일에 교인들이 와서 보니까 거기가 잘 마무리가 되었어요. 그러면 그것을 누가 했는가 찾아서 격려하고 칭찬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누가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손을 댔느냐고 소리를 질러요, 결국은 수고한 그 분이 쥐구멍을 찾는 것처럼 어쩔줄 몰라하고, 그 분은 그 지역사람에게 심각한 모욕을 겪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게 그 교회의 분위기였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그 교회는 동맥경화의 심각하게 걸려 있는 거예요. 먼저 온 교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는 전도하지 못하면서 새로온 사람이 전도하면, 그거 칭찬하면, 목사가 한번 칭찬하고 박수라도 쳐 줄 량이면 얼마나 심사가 뒤틀리는지, 지가 온지가 얼마나 됐다고 목사에게 인정받은 것 그렇게 싫어가지고 그리고 ‘나도 정신차리고 전도해야지. 나도 정신 차리고 은혜 받고 성령충만해서 충성해야지’ 아렇게 도전이 되지 않고, 역기능이 생기게 된 거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디오드레베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으뜸일 때는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됩니다. 자기가 주장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함께 헌신하고 충성의 자리에 서면 그건 꼴을 못 보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교회학교 소풍을 간다니까, ‘그러면 100명 김밥 내가 다 하겠습니다’ ‘아유, 고맙지요’ 목사님이 소개하고 박수까지 쳐줬습니다. 따라가서 음료수도 해 주고, 모든 걸 다 뒷바라지 해 줬습니다. 어쩌면 더 헌신적이고, 희생적일 수 있냐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교회학교 소풍 가는데, ‘다른 분이 이번엔 제가 김밥을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은 소풍에 따라오지도 않았어요. 우리의 헌신은 으뜸일 때만 할 수 있는 헌신이라면 진정한 헌신은 아닙니다.

이름 없어도, 빛이 없어도 우리의 헌신은 지속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성도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결국 최종적으로는 누구하고 부딪칩니까? 주의 종하고 부딪치지요. 결국 디오드레베는 사도요한, 주의 종과 부딪치게 되구요. 주의 종을 악한 말로 평론하게 되었습니다. 평론하는게 뭐예요? 헐뜯는다는 거예요. 결국은 주의 종들을 헐뜯는 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저를 포함해서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꾼이 되기를 원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육체의 자랑, 인간의 자랑, 공로 이런 것들이 앞서서,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의 충성된 사람들을 오히려 가로막고 내어 쫓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각성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 부서에 부흥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가? 내가 오히려 디오드레베와 같은 존재로 지금 활약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속회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가 내 선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들여다 보면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일치가 되지 않으면 교회는 건강할 수 없고, 건강하지 않은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모든 주님이 주신 에너지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힘을 다해서 나아갈 때 교회는 주의 뜻을 이루어 갈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가 지향했던 하나됨의 모습, 그러나 때떄로 초대교회 안에도 원치 않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고통을 받으며, 사도요한도 사랑의 사도이지만, 이런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아니하고, 강하게 가이오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에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분명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 온유함으로, 그리고 하나됨을 위해서 새로워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위해서 새롭게 도전받는 귀하고 복된 시간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도 못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열심을 가졌으나, 사울의 열심 같이 오히려 예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사울의 열심,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것이 잘 못됨을 깨닫고, 이제는 바울되어 주를 위해 생명을 다했던 것처럼 주님 저희들에게도 새로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교회에 거침돌 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겸손의 자리에 서서, 언제나 섬김의 자리에 서서, 언제나 주의 뜻을 분별하는 자가 되어 성전에 디딤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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