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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에 중심을 둔 사람은? (느 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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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에 중심을 둔 사람은?
느헤미야 5:14-19


1912년 4월 12일 1,517명의 고귀한 생명과 함께 대서양에 침몰한 타이타닉은 그 크기와 호화로움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배였습니다. 거대한 빙산에 부딪힌 것이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빙산이라는 외부 원인보다 내부적으로 스미스 선장의 자만심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는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큰 배를 이끌어가는 리더, 스미스 선장은 성공 정체감 속에서 자신의 노련함만을 믿고 수 차례의 빙산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항해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이타닉은 배의 규모에 비해 방향키가 너무 작았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빙산을 발견하고 나서 일등항해사 머독은 배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방향키가 너무 작아 원하는 만큼 돌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리더십을 이야기 할 때, 타이타닉호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지도자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구조와 조직을 갖고 있는 공동체는 침몰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보는 국민들의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빙산을 향해 나아가는, 아니 이미 빙산과 부딪혀서 침몰 중인 타이타닉호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대외적인 것이라기보다 외부 문제 앞에서 내부적으로 대처방안 없이 분열과 부패, 부정이 가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혼란 가운데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각자 자기 이익을 위해 바쁘다는 사실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자란 글자를 읽지 못하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며 배우지 않는 사람들이며 다시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무능력한 문맹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기 앞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배운 것으로 삶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 보면 내면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바로 잡혀 있으면 어떤 문제든 극복할 수 있는데, 내면에 갈등이 클 때는 어려움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만날 수 있지만 가정 안에서 잘 수습하고 함께 대처해 나간다면 가정이 오히려 견실해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내부의 갈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느헤미야는 민족 부흥, 민족 재건이라는 사명을 띠고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다 극복하고, 이제는 성 건축이 중반쯤 이루어졌을 때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성을 건축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내부에 불신과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나누어지고, 믿지 못하고 궁핍한 삶을 이유로 서로 원망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성 쌓기를 중단하지 않던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회의를 열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내부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위기와 또 가정과 교회의 위기 그리고 개인적으로 맡고 있는 위기 속에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와 받은 사명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는 삶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여전히 갈등하고 있는 여러분, 방황하고 있는 가정들, 그리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이 민족에게 느헤미야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느헤미야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5장 6, 7절 앞 부분을 보면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중심에 계획하고”라고 나옵니다. ‘계획하다’는 아람어 ‘말라크’에서 온 단어로 ‘심사 숙고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I consulted with myself(NIV)’ 또 다른 성경에는 ‘I took counsel with myself(RSV)’ 즉, 내가 내 자신과 상담하고, 의논하며, 깊이 생각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6절 ‘크게 노하여’ 와 7절 ‘중심에 계획하고’는 서로 상반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차분히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표현은 자신을 잘 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즉각적으로 내보이는 잘못된 반응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분노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좌절감과 자기 중심적인 속성에서 표출됩니다. 이런 자기 중심적이고 불안정한 좌절감은 주로 혼란스럽고 죄악된 영혼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노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도리어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장하고 묻어두면서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숨어 있는 분노는 본인의 정신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인간 관계를 왜곡시키고 사리를 잘못 판단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성경은 분노 자체를 정죄의 대상으로 삼지 않되 오히려 무절제하거나 파괴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직면 하는 데서 오는 감정의 표현을 장려합니다. 그리고 분노 자체를 책망하기보다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 분노가 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창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 원인을 살피는데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지 않으면 죄로 이어지기가 너무나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등을 보면서 느헤미야가 굉장히 분노했음에 우리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성을 쌓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한 형제자매 의식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답게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그 일환으로 성을 쌓고 있는데, 백성들 간에 분란과 나누어지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먹지도 못하고 굶고 있으며, 빚을 지고, 세금을 내기 위해 집과 포도원을 팔았다고 호소합니다. ‘부자와 귀족의 자식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갖는데, 왜 우리 자식들은 종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닌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은 물론 흉년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경제를 잘못 관리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좀더 본질적인 원인을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공동체 의식’에 이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호소 뒤에는 같은 민족으로서 누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역을 하고 헌신하는 동안 부자들과 귀인들은 오히려 고리대금 업자가 되어 이자를 착취하고, 갚지 못하면 자식까지도 종으로 챙겨가는 악한 일을 같은 동족끼리 행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박탈감이 있었습니다. 8절에서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을 쌓아도 이스라엘 백성이 본질적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의식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분노할 일들에 쌓여있습니다. 행복하고자 버는 돈이 정작 사람을 죽이고 가정을 깨어버리는 일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우리 가정과 교회, 이 민족이 이토록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단 말입니까?  이런 세상을 보고도 거룩한 분노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영혼은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로 끝나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분노를 통해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살필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차량봉사안내와 예배 안내, 교사나 성가대 그리고 여러 직분을 맡아서 맡은 대로 봉사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 본질인 구원의 소식을 증거하고 전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하늘로부터 임하는 은혜와 축복으로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가기 위해 이렇게 모여 예배 드리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직분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직분자가 담당하고 있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을 잃고 있다면 직분도 교회건물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혼란과 어려움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동안 자칫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본질을 찾을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와 민족이 지금 헤매고 있다면,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정과 개인의 위기 앞에서 여러분 자신들은 무엇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났으며,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허락하셨는지, 이 민족이 더불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등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공동체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을 때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본문의 마지막에 나오고 있는 것처럼 백성들 마음은 하나가 되어 역사를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내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 동기가 되고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것을 위해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기분 좋은 역사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직분을 맡고 있는 분들은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 앞에서 복음을 가진 우리가 본질을 다시 찾지 못하고 헤맨다면 세상의 세파와 함께 가정과 교회, 민족 그리고 나 자신조차 묻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 속에 갈등이 있습니까?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가정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한 곳인가? 이 민족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본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또 다른 기회는 주어집니다. 본질을 찾지 못하면 갈등은 곧 불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갈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갈 기회로 삼았습니다. 13절 말씀 느헤미야는 갈등을 통해서 백성들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찌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찌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그랬을 때 온 회중이 ‘아멘’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뜻을 행하는 변화가 생깁니다.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자기 것, 자기 가족 등 이해 관계에 민감해 집니다. 제가 미국에서 설교 목사로 처음 섬겼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로 부임해가면서 후임 목사님이 왔지만, 교회의 갈등 때문에 그 목사님도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문제로 제게 상담하러 온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교인들이 각각 자신이 낸 헌금을 돌려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뭔지, 헌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중심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 말씀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돌아 올 때는 많은 것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다들 부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흉년도 들고, 성 쌓는 일에 나가면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니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가운데, 돈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빌려 줍니다. 담보를 잡고 없을 때는 자식까지 노예로 삼아가며 챙기니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급기야 같은 민족이면서 귀족들과 관리들은 사역에 동참하지도 않고, 고리대금업이나 하면서 어려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반란까지 일으킬 정도가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귀족과 부자들에게 이자도 받지 말고 7년이 되면 돌려 보내라고 이야기합니다. 율법을 백성들에게 다시금 들려주고 말씀이 회복되도록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삶 속에 새롭게 세워지면서 백성들은 회개하고 잘못 취하였던 것을 돌려주는 등 고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 때면 사람들이 얼마나 더욱 이기적이 되는지 모릅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장애인 보호시설에 돕는 손길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삶의 부담을 나누려 하지 않고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흐름을 따라 갈 것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은 우리 속에 하나님 말씀이 없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을 때에 말씀이 약속하시는 축복을 다시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등과 어려움이 오면 본능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피차 물고 뜯고 먹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돌이켜 갈등의 원인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서 있는지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민족의 아픔 앞에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다윗은 실수도 어려움도 많았던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끝까지 쓰신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늘 자기를 살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잘못을 지적할 때 왕좌에서 내려와 옷을 찢으며, 재를 뿌리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기도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시고 주님 앞에서 쫓아 내지 말라며 회개했습니다. 말씀을 다시 되새기며, 말씀 따라 살아가는 기회로 삼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끝까지 쓰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아 큰 물고기 뱃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에서라도 하나님 말씀을 붙잡았을 때 다시 사명을 이룰 기회를 얻었습니다. 위기와 갈등이 올 때 여러분의 행동 원칙은 무엇입니까? 본능입니까 아니면 말씀을 다시 세울 기회로 삼고 신앙적으로 돌아보는 것입니까?

미국 실업가로 장관까지 지냈던 존 워너 메이커는 백화점 왕으로 불립니다. 존 워너 메이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판단력과 뛰어난 경영 능력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메이커가 투자해서 구입한 물건은 매번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한번은 신문기자가 메이커에게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 가장 성공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메이커는 열두 살 때에 2불50센트를 투자해서 산 성경책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 성경책이 오늘날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갈등과 나눔 그리고 방황의 시간 동안 감정대로 따라가지 마십시오. 오히려 역으로 하나님 말씀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민족 공동체 속에 바로 세워지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느헤미야처럼 새롭게 결단하는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을 드린 적이 있습니까? 위기와 어려움의 때에 ‘이제는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한번이라도 이런 서원을 드린 적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 말씀의 원칙을 다시 세울 때입니다. 가정에서 말씀을 다시 세우고, 교회에서 말씀을 다시 세우고, 내 삶의 여정 속에 무너진 말씀의 단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대단한 존재 같이 느껴도 하나님께서 손 놓아버리시면 쓸모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마지막까지 붙들린 바 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심령 속에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셋째 갈등과 고난이 올 때 느헤미야는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19절 말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에서 알 수 있듯이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돌아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총독으로서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는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총독으로서 활동하는 활동비를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었고 세금을 통해 활동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한끼에 백오십 명이나 되는 사람과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이방인들도 있었고 관리들도 있었습니다. 총독으로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십 년 동안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학자들 말에 따르면, 느헤미야는 바사 왕의 신하로서 받을 월급과 사유재산까지 털어 백성들을 섬겼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다시 세우리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백성 되게 하리라. 저들 가운데 하나님이 진정 하나님으로 높임 받게 되리라.’ 하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서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희생하며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큰 은혜 받은 여러분,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내 자녀 잘 되는 것입니까? 내 사업 잘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정말 하나님 자녀답게 살고자 하는 꿈은 없습니까?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녀를 하나님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겠다는 결심은 없습니까? 허락하신 사업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업체로 만들겠다는 그 열정과 꿈이 없다면 우리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불과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만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미래를 열어가는데 내가 거름이 되고 뿌리가 되는 헌신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바로 오늘 느헤미야가 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생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로버트 로빈슨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20살 때 놀라운 회심의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심한 이후 많은 시를 지었는데 이 시가 당시 영국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청년은 좋은 시로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세상 유혹 앞에 빠져 깊이 방황하고 갈등을 겪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마차를 합승해서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부인이 두툼한 시집을 꺼내더니 이 시에 대해 아느냐고 묻습니다. 자기가 옛날에 지었던 시였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라는 시였습니다. 청년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인은 ‘이 사람은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삶에 찾아온 변화와 받은 감동이 인생의 방황을 끝내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뒤이어 시를 읽어드리겠다며,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 할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 합니다.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

3절에 이르렀을 때 로버트 로빈슨은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찬송시를 읽어 준 여인에게 자신이 바로 수년 전에 이 찬송시를 작시한 사람임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로빈슨은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캠브릿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시련과 어려운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문제는, 우리 내면이 시련과 어려움, 갈등 앞에 준비되어 있느냐 입니다. 외부적인 문제보다 내부적인 문제가 우리 자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민족을 무너뜨립니다. 지금 내부적인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것이 기회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투자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먼저 본질을 찾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지금까지 살려 두셨는가? 왜 이 가정과 교회를 허락하셨는가? 왜 이 한반도로 나를 부르셨는가?’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님께 던지는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원인을 다른 데서 찾지 말고 느헤미야처럼 마음속에 잃어버린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과 주님 말씀을 다시 세우고, 로버트 로빈슨처럼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메소서’ 찬송하며, 주의 은혜로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는 모든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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