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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나라를 살려내는 일 / 암 5:21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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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살려내는 일 / 암 5:21 - 27

[21]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아니하리라
[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25]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26]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27]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주 쉬운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성경은 모두 몇 권이지요? 신약은 몇 권이지요? 그러면 구약은 몇 권입니까? 그렇습니다. 39권이지요.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구약이 38권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성경에서 한 권을 떼어 내거나 아예 그 곳은 읽지 낳고 건너뛰었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구약 39권 중 그 한 권은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 외면 당한 성경, 잊혀진 성경은 바로 구약의 아모스입니다.
왜정시대에는 출애굽기가 잊혀진 성경이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왕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수장시키고, 학대받던 동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들을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현대 한국교회는 한 때 아모스를 가지고 설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였습니다. 여기서 ‘부담스럽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가 다 해당됩니다. 고통받고 신음하는 쪽은 힘없는 국민(백성)이므로 선지자(설교자)가 아모스 성경을 설교한다는 것은 대상이 잘못 선정되는 것이므로 부담스럽다는 경우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아모스를 설교하면 ‘힘을 가진 자’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모스를 설교할 때입니다. 그리고 딤후 3:16에 “모든 성경은.... ”이라고 했으므로 아모스도 읽혀지고, 설교되고, 되어져야 합니다.

1. 아모스는 어떤 사람인가?

주전 760년을 전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남쪽 유다왕국의 예루살렘 근처 드고아 출신의 목자요, 농부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로 나서게 됩니다. 그런데 남쪽이 아닌 북쪽 이스라엘왕국으로 가서 예언하여야 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도 남. 북간에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정통성은 남쪽 유다에 있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나라를 나누어서 떨어져 나간 ‘분리주의자’들입니다. 이러한 북쪽 이스라엘 땅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경고성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아모스 선지자의 심정은 상당히 무겁고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언제나 기쁘고 즐겁고 아무 부담 없는 인생만을 살도록 하시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전혀 뜻 밖에 고민하게 되고, 불안하기도 하고, 매우 부담이 되는 상황이나 일을 만나도록 하실 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각오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2. 북쪽 이스라엘의 심각한 죄상(질병)이 무엇입니까?

1) 어른들(장로들/ 존경받을 만한 어른, 스승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있었음)의 책망과 충고를 무시하고 싫어함 (10절, 심지어 정당하게 충고하고 책망하는 어른들을 미워하기까지 함) 이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입니다. 젊은 세대들도 이 지적은 승복하고 고쳐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의 눈에는 어른들이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 것 같아 보인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님을 공경하고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장로들에게 찾아가서 지도를 받고 센머리 앞에 일어서라도 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왕이 왜 실패하였습니까? 왜 많은 지파들과 백성들이 실망한 끝에 등을 돌리고 떠나갔습니까? 고집스럽게 자기 코드에 맞는 젊은이들과만 국정 전반을 논의하고 장악할 뿐 경륜 많은 어른들의 조언과 충고를 원천 봉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2)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였습니다.(11절을 보세요.)

가진 자는 갈수록 더 많이 소유합니다. 힘있는 자는 더 많은 힘과 재산을 소유합니다. 빈익빈이요, 부익부현상이 극심합니다. 가난한 자를 밟고, 겨우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데 그 얼마 안 되는 식량(밀)에다 세금을 부과하여 거두어 갑니다. 부자들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어린양과 송아지’를 잡아서 먹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린양과 송아지를 키워서 젖으로 식량을 삼고 증식하여 재산으로 삼는 것이 꿈인데 부자들은 연하고 부드러운 육질을 식도락으로 즐기고자 ‘어린양과 송아지’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부자들, 힘있는 자들은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며 쾌락에 도취하여 밤새 떠들고 야단입니다.

3) 착취와 인권 유린의 죄악상(8:4-6, 2:6-8, 3:10)

궁핍한 자를 삼킵니다. 땅의 가난한 자를 거기서 더 가난하게, 완전히 착취하여 살아갈 수 없게 만들 작정을 합니다. 생활은커녕 생존마저 완전히 박탈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악랄한 소행들입니까?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인신매매),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려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악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참지 못하실 장면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찢어지게 가난한 자를 삼키고, 망하게 하고, 길거리로 나 앉게 만듭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끝없는 욕심을 위해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잿밀까지 팝니다. 잿밀이란 추수 타작 뒤 ‘마지막으로 남은 꺼북데기’를 말합니다. 흙, 돌멩이등 잡동사니 속에 어쩌다 곡식알이 몇 알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 마저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 착취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벼룩의 간을 빼어 먹는 자들이지요.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우리 나라는 어떠합니까? 전기료와 가스요금을 몇 달 체납했다고 하여 공급이 중단되어 냉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하는 가구 수가 무려 60만 가구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리가 없어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고, 석유 버너에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번져 그나마 초라한 단칸방을 불태워 버리고 어린 생명까지 화재로 잃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연들이 많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전혀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수십억, 수백 억의 뇌물과 부정한 자금을 모으고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하고 진심으로 반성할 줄 모른 채 ‘체면유지, 품위유지를 위해서 보관한 자금’이라고 당당한 듯이 해명을 하니 이런 뻔뻔스러움과 몰염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어찌 보시겠습니까?

4) 가장 심각한 병폐는 ‘종교적 타락’입니다.(5:21-23, 2:4,12, 8:5, 5:26)

종교적 타락은 다른 어떤 분야의 타락보다 더 심각한 타락이요, 위험합니다. 종교는 그 시대와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종교마저 심각하게 부패하고 타락해 있습니다. 남북 공히 동일합니다.

* 2:4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 2:12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
라 하였느니라.
* 8: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이유가 무엇일까요? 월삭(new moon; 새 달, 매 월 1일)과 안식일은 하루씩임에도 왜 이렇게 시간이 지루하지? 빨리 지나가 버리면 사업도 하고, 장사도 하고 신나게 놀러도 다니고 할 것인데.. 그런 뜻입니다. 안식일을 얼른 얼른 대충 대충 지키고 그 다음날부터 내 하고 싶은 일 신나게 하겠다는 속셈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섬기는 종교행위, 신앙생활이 귀찮아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가장 심각한 병입니다. 앞의 어떠한 물질적 탐욕, 윤리적 죄악보다 더 두려운 병폐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싫어하는 것, 부담스러워 하는 것... 혹시 이런 면이 요즘 여러분에게 없습니까?

그들의 조상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시편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안식일과 월삭) 성전으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나올꼬?”
너무나 아름다운 신앙 아닙니까? 그렇게 자랑하는 그들의 조상 다윗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지금 월삭과 안식일을 지루하게 여기고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한국교회)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예배’를 후다닥 해치워 버리듯 너무 조급하고, 서두르고, 해치워 버리는 모습은 아닙니까? 아름답지 못한 풍습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헛된 예배를 거부하겠다고 하십니다.(5:21-23) 절기와 성회와 제사를 거부하겠다고 하십니다. 찬양을 거부하겠다고 하십니다. 절차와 방법과 제물의 수효, 크기 등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5:25을 보십시오)

* 5:26 거기다가 정말 유치한 우상숭배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참으로 유치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엄청 화가 나 있습니다. “ 나 지금 엄청 화 나있다. (5:21-2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크게 혼내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응징하겠다고 하십니다.

3. 우리 나라를 살려내는 길

1) 온 국민이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5:4,6,8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살리라! 살 것이다!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에까지 처한 것은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4:6,8,9,10,11)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엊그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고 나서 국회의사당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애국가가 울려 퍼지더군요. 어느 쪽에서 누가 불렀든 저는 참 반가웠습니다. 이쪽 저쪽 다 모여서(취지가 어떠하든) 함께 우렁차게 불렀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살아 계시고, 스스로 계시고, 전지전능하십니다. 인류의 창조주시오, 주인이십니다. 우리 온 인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이요, 성공하는 길이요, 축복 받는 길임을 굳건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 내려야 합니다.(하나님의 법을, 사회의 법을 끊임없이 지켜라)

특히 여기 하수라는 단어를 잠깐 묵상합시다. NIV에서는 a never failing stream(결코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 NRSV에서는 ever flowing stream(언제나 흐르는 시냇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땅에서 쉽게 발견되는 와디의 정반대의 시냇물입니다. 본문에서의 하수는 아주 거세면서도 일년 내내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이요, 언제나 흘러내리는 시냇물입니다.

하나님의 법, 세상의 공법, 신앙생활, 신앙의 규칙(약속, 서약, 선서) 맡은 책임(사명).. 우리는 이 모두를 stream으로 만듭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지키고, 안하고, 돌아 서 버리고, 이러지 맙시다. 구역책임, 교사의 직무, 찬양대의 직무, 제자훈련, 부모의 책임.... 와디처럼 하지 말고 하수와 같은 섬김, 멈춤이 없는 책임감, 일년 내내, 평생토록 지각, 결석 없이 부서를 책임지고 반을 책임지고, 생명들을 돌보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십시다.

3) 깨끗하고 당당한 아모스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7:10-17)

4) 우리 나라의 각종 지도자들 특히 ‘국정 최고 책임자’가 진정으로 각성되어야 합니다. (남쪽 유다왕국의 르호보암이나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같은 사람이 왕이 되니 나라가, 백성들이 너무 고달팠습니다. 그들은 앞장서서 패역과 범죄와 우상숭배와 방종으로 기울어져서 온 나라를 오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들였고, 마침내 북쪽 이스라엘은 아모스선지자의 경고의 예언 후 40년만에 앗수르제국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지도자들이 겸손과 덕과 지혜와 기도의 사람이 되어질 때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아모스 성경을 지도자들이 가까이 두고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4가지야말로 우리 나라가 사는 길입니다. 함께 명심하고 기도하고 순종 실천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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