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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십 세 때의 예수님 (눅 3:21-23) - 창립기념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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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눅3:21-23
제목: 삼십 세 때의 예수님
2004. 3. 14 (창립기념주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던 작가 중에 ‘잉게보르크 바흐만’ 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지은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삼십세’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 삼십 세의 중요성을 의미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가 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서 인생 가운데 삼십 세의 깊이를 서정적으로 소개합니다. 29세의 생일이 되는 날부터 30세에 이르는 일년간 의식의 갈등과 모험을 통해 인생에서 삼십세는 가장 깊어지는 시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생에서 '삼십세'는 결코 그냥 흘러 보낼 연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어제와 오늘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숨가쁘게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다 의미 있고 중요하겠습니다만 삼십세는 그냥 인생의 전과 후를 가름하는 전환점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나이요, 연수요, 시기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미 삼십이 넘으신 분들이 많고, 이제 다가오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도 ‘삼십’의 귀한 의미를 마음에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삼십 세 때의 어떤 일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서른 살 때에는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기억이 납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 받고, 평생 목회자로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제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이루었던 안수, 그것이 삼십 때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삼십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나이로 강조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때 나이가 삼십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도 삼십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의 나이도 삼십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삼십세는 성경에서도 중요한 나이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기를 삼십 세라고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예수님에서도 삼십은 매우 중요한 시기였음을 알려줍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삼십이 되는 주일입니다. 참 의미 있고, 좋은 날입니다. 감사하고 기쁜 날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이 날에 예수님의 삼십 세 때를 보면서 교회와 내가 어떤 삶으로 헌신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삼십 세 때의 주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과연 그때에 예수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첫째,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오늘날 우리가 받는 세례와 동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백성이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세례는 사람들이 죄의 용서와, 믿음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표시로 받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예수님에게 세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던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심을 보고 ‘어찌하여 내게로 오십니까, 어찌하여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십니까’ 라고 말렸던 것을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죄에 대한 회개의 세례는 아니었습니다. 마태가 지적한 것처럼 의를 이루시기 위한 세례였습니다. 이것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세례는 선포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신을 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잠잠하고 숨기셨으나 이제부터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도 동일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는 내가 많은 사람 앞에 나 자신을 믿는 자로, 하나님의 섬기는 백성으로 드러내고 나타내겠다는 선포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숨겼으나 이제는 드러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를 받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바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만방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교회의 존재를 알리는 것입니다. 이제 30년의 새 아침에, 우리는 세상을 향해 선포해야 합니다. 대광교회를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하나님이 다스리고,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를 나타내야 합니다. 모두 입을 열고, 마음을 열어 세상을 향해 드러내고 선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의 두 번째 의미는 ‘전환점’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사생애에서 공생애로 바뀝니다. 이제는 집에서 밖으로 나갑니다. 이제는 익숙한 것에서 생소한 것으로 나갑니다. 이제 침묵에서 입을 여십니다. 이제는 개인에게서 공동체로 나갑니다. 바로 전환점을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늘 생각해야 할 것이 ‘전환점’입니다. 주님을 만난 것이 우리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요 전환점이 되듯이, 날마다 우리는 내 삶의 전환점을 이루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바로 새로운 한 주간을 위한 전환점입니다. 부흥회는 내 삶을 하나님께 묶는 변화의 전환점입니다. 임직은 내 삶을 하나님께 향하는 전환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새로운 전환점의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새 역사, 새 비전으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의 전환점이 이루어지고, 교회를 섬기는 방법도 새로워지고, 사람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진정 우리 신앙과 삶에 전환점을 이루면서 교회를 사랑하며 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강조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났다고 말합니다. 삼십 세 때의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사역에서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한번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이것을 정말 본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역시 두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는 어떻게 성령이 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기도’라고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기도가 통로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성도들이 성령을 경험했습니다. 기도로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임해야 우리가 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늘 기도하는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떤 자리보다 기도하는 자리가 차고 넘치고, 기도하는 곳에 언제나 머물러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도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성령의 힘으로 봉사도 하고, 좋은 일꾼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님에게 임하신 성령강림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두 번째 교훈은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기 말씀에 의하면 성령이 임한 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그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 나라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찾고 그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혼란한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우리 믿는 자가 해야 할 일은 이 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찾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니까? 성령의 강림입니다.

  30년의 우리 교회가 날마다 추구할 것은 오직 성령입니다. 성령의 충만과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힘이나 지식이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교회답고, 교회는 힘이 있고, 교회는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시간 우리에게 성령이 임할 줄 믿습니다. 하늘 문이 우리에게 열릴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늘의 음성이 내 귀에 마음에 들릴 줄로 믿습니다.

  셋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삼십 세 때의 예수님은 세례도 받으셨고, 성령의 충만도 받으셨지만,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삼십 세 때에 가르치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가르쳤다’는 말은 곧 ‘사역’을 가리킵니다. 영어로 ‘ministry’입니다. 예수님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이렇게 해서 문을 엽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이어지고, 4장부터 본격적인 예수님의 사역이 소개합니다. 그것이 누가복음의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셨다는 말에서 역시 두 가지의 귀한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역을 위한 ‘준비’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셨습니다. 3년의 공생애는 30년 동안을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그 이전부터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말없이, 깊이, 은혜 가운데, 예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다가 때가 되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준비가 출발합니다.

  신앙과 삶에, 그리고 교회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모세가 40년을 위해 80년을 준비했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의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말에서 배우는 두 번째 교훈은 예수님의 사역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며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눈물을 쏟고, 땀을 흘리고, 피를 다 쏟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온 생애를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나라, 그의 영광을 위해 힘쓰시다가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30년의 획을 그으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확장해 가야 합니다. 썩어질 세상에 생명을 걸지 말고, 썩지 않고 가장 가치 있고, 보람있고, 의미 있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교회는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는 지금도 여기 이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은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매일 스치는 사람 중에..
첫 만남에서 호감이 느껴지나
날이 갈수록 실망감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다
첫 만남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으나
날이 갈수록 괜찮아지는 사람이 있다
첫 만남 전에 어떤 이에 대한 선입관이 작용하여
괜시리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첫 만남에서도 그 후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어떤 이의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흙 속에 묻힌 진주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주 만나면서도
필요할 때 일말의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가 있고
일년에 한번을 만나도
마음으로부터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냉정함과 깐깐함 뒤에 온정이 숨어 있는 이가 있고
부드러움 뒤에 칼날 같은 비정함이 숨어 있는 이가 있다

하루에 한번 만나 일상을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일주에 한번 만나 연극을 관람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한달에 한번 만나 서로를 향해 충고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계절에 한번 만나 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있고
일년에 한번 만나 가치관 점검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십년에 한번 만나 강산의 변화 느끼고픈 사람이 있고
삼십년 후에 한번만 만나 주름진 모습에서 살아온
발자취를 유추해보고픈 사람이 있다

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늘 가까이 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입니까? 여러분은 30년 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어떤 존재들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 교회가 은혜로 달려온 삼십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삼십 세 때의 예수님을 생각하며 세계와 열방을 향해 선포하고, 전환점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사역을 위해 계획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사랑하고, 더욱 견고하게 세우면서 새로운 역사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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