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잃은 양을 향한 집념 (눅 15:3-7)

  • 잡초 잡초
  • 404
  • 0

첨부 1



잃은 양을 향한 집념 눅15:3-7

지난 금요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온 국민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침통, 분노, 양분,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요, 국제적인 망신이요, 너무나 잃은 것이 많은 사건입니다. 더해가야 할 판국에 . . . .

여러분, 무슨 귀중한 물건이나 사랑하는 식구를 잃었던 일이 있습니까? 그때 얼마나 애간장이 타고 안타까웠습니까? 또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때의 그 기쁨이 얼마나 큽니까? 전에
텔레비젼에서 이산가족 찾기 할 때 몇 십년전에 잃었던 가족들이 찾아 만나질 때 엄마나 기쁜지 막 얼싸안고 엉엉우는 사람도 있고 너무 기쁜 나머지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으로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부모잃고, 자식잃고, 재산잃고, 신앙잃고 . . 너무 잃은 것이 많습니다. 이산가족 123만명. 작년까지 7차에 걸쳐서 만났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영상장면)

지금도 TV프로그램에 헤어진 가족 찾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족, 부모, 가출 청소년, 아버지, 어머니. . .
여러분들 자식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가끔 우리교회에서는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는 그런 이야기만 들으면 별별 생각을 다합니다. 앞이 노래지고 앞이 캄캄해집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먼저 교회앞 골목을 뛰쳐나갑니다. 혹시나 좀더 멀리 가기전에 찾을려고 미친 사람처럼 나섭니다.
저도 얼마 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막내아이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금방 있었는데. . .
엄마는 이리 저리 찾아봅니다. 이리 저리 . . . 목이 탑니다. 한참 찾다가 집에 전화해 보니 집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랬는지 아이에게 호통을 칩니다.
‘가면 간다고 했어야지. . .’

1.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요6: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잃은 자를 찾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곳에는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하나도 잃지 않으려 오셨다.
왜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인생의 영혼은 온 천하를 얻음보다 값어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걸핏하면 분신자살하고, 한강 물에 뛰어듭니다. 얼마나 속이 탓으면 그랬겠습니까마는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마가8:36“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도, 아무리 높은 권세를 얻어도,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마8:28에 예수님이 하루는 거라사라는 지역에 가셨는데 군대귀신들린 한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그 사람은 귀신들려 무덤 사이에서 살면서 쇠사슬과 고랑을 끊고 밤낮 큰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영혼이 어찌나 불쌍한지귀신들을 명하여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귀신들이 간구하기를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니까 더러운 귀신들이 그 여자에게서 나와서 돼지떼에게로 들어가서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들이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려서 바다에서 다 몰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키면서라도 한 사람의 영혼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지금도 . . .

오늘 본문에 목자가 한 마리의 어린양을 잃어버려 그 양을 찾아 헤맸다고 했는데
그 당시 이스라엘의 평민들은 양을 직접 소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나 큰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공동으로 출자를 해서 공동으로 소유한 양을 길렀고 공동 소유의 양이니까 그 마을 사람들이 목자를 고용해서 그 양을 치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삯군입니다. 삯군은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이니까 시간만 때우면 일당이 나옵니다. 늑대가 나타나면 도망갑니다. 자기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과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책임감이 다른 것입니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사업이라면 목숨을 겁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꿈도 꿉니다. 화장실에 가도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봉급쟁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이 . . .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그 양은 목자 자신의 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6절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자의 소유입니다. 그러니까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목자에게는 백이라는 숫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잃어버린 한 마리 양 한 마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양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고 합니다.
1번, 2번, 3번, 4번 이런 기호를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번호로 우리를 부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번호로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르시는 그 부르심의 구체적인 현장에는 언제나 이름이 있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마르다야, 마리아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오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인격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그 양은 바로 예수님의 어린양입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 삶의 현장에 오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아 나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잃어버린 주님의 것입니다.
찾아야 할 주님의 식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선교사를 보내셨습니다.
목회자를 보내셨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땅에 파송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찾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찾는 것은 한 번 찾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 찾을 때까지 찾는 목자.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찾고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목자는 양을 찾고야 맙니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의 가정에 아이가 길을 잃어버리고 집을 잃어버리고 나가고 없다면 처음에는 이웃들이 함께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해가지고 집안 식구들 밥차려줄 시간이 되면 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이웃들은 예의상, 인사상 찾아줍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부모는 해가졌다고 그냥 들어가겠습니까? 불을 켜들고 동네방네 찾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누구야, 누구야, 미친 여자처럼 . . . 찾을 때까지 찾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목자의 심정입니다.
목자는 낮에만 찾거나 그리고 날 좋은 날만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횃불을 들고 찾을 때까지 찾도록, 찾을 때까지 찾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찾으러 나서셨습니다. 저 멀리 술집, 행락가. . .이런 곳에만 가실 것 같습니까? 어떤 경우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목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오실지 모릅니다.
목자는 밤길에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가시에 찔려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됐을 수도 있고 구덩이에 빠져서 온 몸이 진흙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광야는 그렇게 즐겁고 여행이 쉬운 곳이 아닙니다.
좁은 유대 광야와 험한 요단 계곡, 동부의 고원지대, 그리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목자는 양에 대해서 염려하며 찾도록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어린 양들이 길을 잃으면 모두 사단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험준 한 세상입니다. 죄의 유혹의 손길이 얼마나 구석구석마다 뻗어 있는 지 모릅니다.
양은 누군가의 보호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목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빨리 도망갈 수 있는 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카멜레온처럼 주위의 색깔을 따라서 자기의 모습을 변신해서 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들이 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입니다.
죄에 약한 존재입니다. 이성에 약한 존재입니다. 권력에 약합니다. 명예에 약합니다. 칭찬에 약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약한 것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하나님이 붙잡으시지 않으시면 . . .
목자되신 하나님과 함께 할 때는 강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 없는 인간의 힘은 전원에 연결되어 있는 전자제품과 같습니다.
배터리를 계속 교환해 주면 에너지를 공급받으므로 줄기차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정된 시간이 자나면 힘이 사그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본인이 전혀 예측 못했던 순간에 모든 전원이 다 나가 버립니다.

3. 그 목자의 마음을 배우십시오.

4절에 보면 “어느 사람의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곧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 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소중함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고후 5:14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한 분의 희생 때문에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사람에 대한 집념을 오늘 본문에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은 ‘한 사람!, 한 마리의 양!, 한 아들!’ 잃어버린 하나에 대해서 집요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양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한 마리 양이 그토록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해 대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실 때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수십억의 인류를 구하는 일을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르치고 다듬으시고 훈련하시는 일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 이삭을 낳고, 이삭이 믿음의 사람 야곱을 낳습니다. 한 시대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런 일이 반복 된 후 다윗이 탄생하고 그 후손 중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슈테른 베르그가 그린 그림- “이 사람을 보라”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빌라도와 군병들 앞에서 조롱을 당하는 모습의 그림입니다. 그 그림 밑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주었건만 넌 날 위해 무얼 주느냐?” 이 그림을 본 청년 진센도르프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젠돌프는 아버지에게 받은 그의 재산과 자신의 삶을하나님께 모두 바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른 후트 공동체를 만들어 세계선교에 힘을 썼고 독일의 근대 과학기술을 선도했습니다. 그 후대들이 모라비안 교도들입니다.

그 모라비안 교도들의 뜨거운 믿음에 감동된 사람이 있습니다. 존 웨슬레입니다.
존 웨슬 리가 북미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와서 절망과 낙심에 빠져 올더스케잍 거리를 걷다가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고 일어나 거리의 전도자가 됨으로 부패하고 앞을 한치도 내다 볼 수 없는 영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힘은 놀랍도록 큰 것입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그 사회가 변화됩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그 가정이 변화됩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그 교회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토록 귀한 것입니다.
전라남도 남해 바다의 한 작은 섬에 소박맞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났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살을 하려다가 예수 믿고는 곧 전도자가 되어서 섬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평생을 바쳐서 섬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녀가 가르친 섬 아이들 가운데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를 지내신 이만신 목사님이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한국 대학생 선교를 이끌어 많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한국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지대한 역할을 하신 CCC총재인 김준곤 목사님이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한신대 상담학 교수로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준 정태기 박사님 . . . 이런 분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구원의 힘이 이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 할 한 영혼도 이런 놀라운 인물들이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잃어버린 하나님의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목자의 집념을 가지고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목자의 사명입니다.

오늘은 새 생명 운동(태신자 전도)의 7단게 중에 오늘은 준비단계(2주째)입니다.
오늘은 태신자 선포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 예배 후에는 모든 기관장(기획위원, 각 선교회 회장, 속장, 인도자 . . .)들 기되회를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에는 태신자 삼행시를 지어서 다음 주일에 제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시상도 있습니다. 개인별 시상 , 속별 시상.
앞으로 다음 두 주간은 예비작정 단계입니다. 기도하며 마음으로 태신자를 작정 할 사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전교인 기도 스티커를 성경책애 붙이고. . .
분명히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들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의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여 기록하십시요. 가족들, 친척들, 이웃들, 지역 사람들, 친구들, 낙심자들, 직장동료들, 기타. . . .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매일 식사때마다 . . .

오늘 교회가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전도할 마음이 없다면 주님의 마음을 바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죽은 아이가 돌아오듯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습니까? 영혼을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자신이 삽니다. 그리고 남도 살립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는 교인은 시험에 빠집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겐 문제가 있어도 문제를 이길 힘이 생깁니다. 시험을 극복할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늘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