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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득하신 하나님 (요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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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하신 하나님
요 1:15-18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첫 번 째는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 보다 먼저 계심이라"는 소개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보다 출생이 6개월 늦습니다. 그런데 먼저 계셨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몇 차례 언급된 것입니다만 예수님의 신성 즉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란 것을 나타내는 한 증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들의 실존적 체험으로 전환하여 묵상해봅니다.

예수님은 우리 먼저 계신 분입니다. 곧 우리의 주가 되시어 우리 각자의 삶에 임무누엘 하십니다. 당신의 피로 우리 죄인을 구속하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이제 우리를 예수님과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의 자리에 앞서 계시며 먼저 와 계십니다. 곧 우리의 주인이시요 도움이십니다. 시편의 글로 생각한다면 121편이 매우 적절한 말씀일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출애굽의 여정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 1:30-31)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6절)

2. 은혜 위에 은혜(one blessing after another)

우리 먼저 계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넘치는 은혜입니다. 까닭은 주님에게는 은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언제나 흘러 넘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열면 주님의 은혜가 흘러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자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주십니다. 은혜는 바람과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코를 열고 공기를 받아들여야 하듯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됩니다. 은혜 받는데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의 문을 열면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2) 우리들의 믿음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

'갈수록 더 큰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과 '그럴려면 더 애를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은혜에 작고 큰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말을 바꾸어 '은혜 위에 은혜를 받자'고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은혜의 줄을 놓치지 말고 계속 은혜를 사모하자'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애를 떠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와 같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으로 영접하면 됩니다.

요즘 은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시는 분들이여! 새롭게 은혜 받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단순합니다, 손들고 주님께 회개하며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손을 붙잡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넘치는 은혜를 또 다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은혜가 가득하다'는 것은 단순히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충만함(fullness) 즉 온전함(perfect)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번 임하시면 우리의 형편 따라 감하여지거나 쇠하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온전하시기에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다윗 왕 또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3. 은혜와 진리의 예수님 

하나님의 은혜는 '바보 같은 행동'만은 아닙니다. 물론 한편으론 그렇습니다. 우리 같은 못난 사람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우리를 진리에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온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는 능력이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온 은혜는 우리를 살리며 진리에로 나아가도록 잡아주시는 능력이 됩니다. 이 사실 자체가 바로 은혜입니다.

흔히 '개신교회는 은혜만 믿는 바람에 윤리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비판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의 속성은 진리를 담고 있고, 진리에로 나아가도록 끝까지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믿어보십시오. 그 은혜가 우리를 의의 길로 진리에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확실하고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다윗의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1-3절)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 사람의 의지를 보태어야 의롭게 살 수 있다'는 허망한 가르침을 좇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합니다. 모자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보탬이 필요 없습니다.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주께서 우리에게 진리까지 충만하게 주실 것입니다.

4. 마무리 하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가득한 은혜와 진리를 체험하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 체험'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는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 위에 은혜의 삶을 살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곧 전도요 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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