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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한자를 돌보라 (마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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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문말씀 : 마25:31-46
설교제목 : 약한자를 돌보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교회의 사명 중 하나가 섬김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요람을 참조하시면, 섬김 가운데서도 특별히 나눔과 구제를 따로 떼어 하나의 항목으로 해놓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전에는 구제라는 말을 많이 썼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해 전에 나눔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기로 했습니다. 구제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주고,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라 불편한 마음이 생길 수 있지만, 나눔은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이 서로 함께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나누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도 각자 가진 것을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그 날부터 매일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하는 일이 바로 섬김입니다.

오늘 분문은 특별히 약한 자를 돌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영광 가운데 모든 천사들과 함께 심판자로 오실 것인데, 그 때에 모든 인간을 두 그룹으로 나누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 그룹은 양이요, 다른 한 그룹은 염소입니다. 과연 인류 역사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인류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양의 그룹에 속한 오른 편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염소의 그룹에 속한 왼 편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 두 그룹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룹은 약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었지만, 둘째 그룹은 약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오히려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의 것들에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첫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34절). 복 받을 사람이 한 명은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되는군요.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예수님을 닮아가며 성장하는 사람들은 섬기는 삶을 사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복 받을 복된 사람들입니다. 반면 둘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있는지 봅시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41절).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과 저주를 받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입니다. 할렐루야 교회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부활하게 하신 이래로 오늘까지 하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누구든지 죄의 길에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향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고 성장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점점 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 것입니다. 그 사람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34절)는 심판주의 축복선언을 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기에 못가는 것이 하나님 잘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도록 하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열어놓은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밥상을 잘 차려놓았는데 배고픈 사람이 먹지 않으면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는 책임이 없습니다.

첫째 그룹에 속한 복 받은 사람들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째서 복된 사람들이요, 하늘의 상속을 받을 사람들일까요? 그것이 바로 그 사람들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살펴보면, 약한 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돕는 것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반면 저주를 받은 사람들은 남들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이용해먹으려는 생각뿐입니다. 명함을 교환해도 “이 사람을 어디에 써먹지?”하는 생각부터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돈을 더 벌려 하고, 권력과 명예를 더 유지하고, 권세와 쾌락을 더 추구하려고 합니다. 즉 사람을 위하고 도우고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치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어느 신문 사설에 좋은 표현이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정치는 섬김의 정치요 나쁜 정치는 권력의 정치이다.” 사설을 쓴 분이 크리스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에 대해서만은 예수님과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권력의 정치는 있지만 섬김의 정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 정치 평론가가 마태복음을 읽고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여러분, 앞으로 잘 관찰해보십시오. “그 말 참 옳다. 말 참 잘했다” 하는 내용이면 어김없이 성경에 나와 있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는 보편적이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진리를 발견했다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요즘 기업경영의 원리도 얼마나 성경에 가까워지고 있습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구를 하면 할수록, 세계는 점점 성경에 진리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고 천국을 상속할 사람들은 사람을 최고로 여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 목마른 사람, 지나가는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 모두 사람입니다. 물건이나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돈이나 쾌락이나 이생의 자랑이 아닙니다. 구원 받아 성장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를 다 합한 것보다 한 사람의 생명이 더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일평생 나의 돈과 물건과 명예와 권세로 궁핍한 자, 약한 자, 억압당하는 자들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돌본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이것저것 약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먹고 살게 한 것을 보면 참 감사합니다. 옛날에 비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저희 교회에도 동장님들이 있습니다. 제가 한 집사님을 방문하고는 아주 놀랐습니다. 그 동네에는 5만 가구 정도가 있는데, 누구든지 굶다가 동장에게 들키면 그날부터는 못 굶어요. 동네를 샅샅이 뒤져서, 굶는 사람이 있으면 동에서 돌봐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나라에서는 동장들이 예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들을 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다 하니까 우리는 별로 할 것이 없어요.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됐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물론 아직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있습니다. 조금밖에 없다고 자살하는 사람들 빼고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죽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하지요. 같은 민족인데도 38선 북쪽에 산다는 이유로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북한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일을 했습니다. 한 번에 15트럭씩 여러 번 전했는데 지난번 마지막 방문했을 때는 북한의 관리가 “김 선생, 이렇게 물건을 가져오는 게 귀찮지 않습니까? 사느라고 힘들고, 차로 보내느라 힘들고, 받았는지 확인하느라 힘들고... 그러니 달러로 주십시오” 하더군요. 돈을 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핵무기 만드는 곳으로 가겠지요. 밀가루도 좋은 것을 주면 서민들은 구경도 못합니다. 빵을 만들면 까맣게 되는 나쁜 것을 주어야 그들에게 갑니다. 사실은 까만 것이 영양분이 많지요. 앞으로 북한에 생필품을 보내줄 때는 윗사람이 못 먹는 것, 그러나 영양분이 많은 것을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느 회사처럼 북한에 현금을 갖다 주면 무기 만들고 윗사람들만 사치하고 그러지요. 지금은 달러를 줄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체육관 가서 돈 내고 체중 빼느라 얼마나 고민이 많습니까? 남과 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육신을 위해 먹고 마실 것은 풍성해도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나 갈급하면 잠깐 사이에 한국이 세계 2위의 이혼율을 기록했겠습니까! 몸은 먹을 것이 있어도 영혼과 마음이 고달파 방황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주위에 많이 있는 것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관심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물건이나 돈이나 권세나 명예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갖고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자, 약한 자, 헐벗은 자, 나그네와 병들어 고통당하는 자, 감옥에 갇힌 자를 돕자는 것입니다. 감옥에는 죄를 범했거나 실수로 간 사람이 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간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무슨 이유로 감옥에 갔는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무슨 이유로 감옥에 갔든 돌봐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자업자득이지, 가서 혼 좀 나야 돼”라고 할 텐데, 예수님은 감옥에 가 있다는 그 자체--가족과 격리된 채 자유를 잃고 외롭게 고생하고 있다는 그것을--불쌍히 여기시지, 그 사람이 왜 거기 갔는지는 묻지 않으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도 “그 남자가 누구냐?” 묻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며 그녀에게 자유와 위로와 용기와 새 힘을 주시고 새 방향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이 모습을 닮기 원합니다.

구원받아 믿음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선행을 하면서도 자기가 선을 행한다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선행도 신문에 광고내고 싶어 하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하고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절) 하시자 “제가 언제 그랬나요?”하고 묻습니다. 이 사람은 가난한 자, 약자, 억압받는 자를 도와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이 보편화, 생활화 되어 있어서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지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늘 사람을 돌아보며 누가 낙심해있는지, 누가 괴로워하는지, 누가 외로워하는지, 누가 먹을 것이 없는지, 누가 학비가 필요한지 살피기 때문에 자기가 특별히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선을 베푸는 것이 행사입니까? 아니면 라이프스타일 입니까?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연약한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치 내 얼굴에 코가 달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스타일이 되도록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40절)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찬물 한 잔을 주었어도 결코 하늘의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남모르게 한 선행들이 모두 하늘나라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않은 것도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유익과 명예와 물질과 쾌락을 위해 살아온 것도 다 기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여유가 별로 없어도, 남을 돕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이름을 나타내지 않으려 합니다. 어떤 때는 저만 알아요. 그리고 때로는 저에게 경고를 합니다. “목사님,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선을 베풀되 조용히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경우도 많고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 가운데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몇 명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삶의 방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상시의 삶이 의례히 연약한 사람을 돕고 궁핍한 자를 돕는 것,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한 사람의 영혼이 메말라 있으면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염소로 분류된 왼쪽의 사람들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41절) 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누가 헐벗고 굶주려도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감옥에 가 있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나 바빠!” 하고 지나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 모두 바쁘지요. 그래서 “나는 이만큼 바쁜 사람이야”하고 과시하기도 하지요. 요즘은 서로 인사할 때도 “요즘 많이 바쁘시지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약한 자를 돌보는데 바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도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권세와 돈과 명예와 지위에 급급해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후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너 나 배고팠을 때 안 먹여줬지? 목말랐을 때 마실 것 안줬지?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도 안줬지?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보지도 않았지? 내가 나그네였을 때 집에 들여놓지 않았지?"라고 물으시면 “아니 주님이 그런 상황에 처해계신 것을 보고 저희가 언제 안 도와드렸다고 하십니까?”라고 항의를 할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5절). 죄는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좋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장차 예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실 때 한 그룹은 영원한 생명으로, 또 한 그룹은 영원한 죽음으로 확연히 갈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주위를 보십시오. 추수할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을 들어 보면 영혼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러분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못 본 척 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서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남들에게 무관심하게 살아왔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회개하여 연약하고 배고픈 이웃을 돌아보는 삶이 여러분과 저의 특징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심판하실 때에 모두 영생의 축복으로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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