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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까닭 (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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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까닭
본문 : 요한복음 8:1-11

오늘 본문 내용은 다른 성경 내용과는 달리 좀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동안 역사적으로 많은 논쟁이 있어왔던 본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7장 마지막절부터 8장 11절까지를 대괄호(大括弧)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문 내용을 대괄호(大括弧)로 표시한 이유는
꽤 많은 오래된 고사본(古寫本)에는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요한 사본(寫本)들이나 최근 사본들에는 반대로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렇다면 과연 이 내용은 요한 쓴 내용이 맞느냐 틀리냐 하는
내용의 진정성(眞精性)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어왔었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대괄호(大括弧)로 표시하고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중요한 신학적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신학적 내용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정죄(定罪)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한데...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한 여인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입니다. 말하자면 현장범입니다
현장범은 도망갈래야 갈 수 없는 확실한 죄인입니다.

그런데다가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사람 즉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 했지만 예수님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데 동의하기는 커녕...
그 사람을 향하여 죄도 정(定)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본문 3-6절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이들은 지금 아주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입니다.
살려 주라 하면... 모세의 율법에 저촉되고
그렇다고 돌로 치라 하면... 로마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알고는
고소할 조건을 얻기 위해 교묘하게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히고 땅에 무엇인가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십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 허리를 꼿꼿히 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아주 의외의 대답이었습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적어도 '돌로 치라'든지 '치지 말고 살려주라'든지..
이렇게 대답할 줄로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오자... 순간 당황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시 허리를 굽히시고는 땅에 무엇인가 계속 글씨를 쓰시기 시작하십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공은 이제 저쪽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정도 질문이면 한번에 끝나겠지 생각하고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물었는데
그 어려운 질문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치명적인 질문으로 자신들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돌을 던지든지 말든지 해야 할 순간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자, 누군가가 돌을 들고 던진다면 자기는 죄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그러면 금방 그 돌이 자기 자신을 향해 다시 날아오든지 아니면 비난이 날아오든지
둘 중에 하나는 날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그런지 아무도 돌을 던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자리를 슬슬 떠나기 시작합니다.

맨 먼저 어른부터 떠나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어른이 젊은이보다는 더 많은 죄를 지었을 것이기에 먼저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하자
이어 젊은이들도 하나씩 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시험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까지도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9절입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님은 자기를 시험하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다 떠나간 것을 확인한 다음 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定罪)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여자는 그렇게 자기를 고소하며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그 한마디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면서 내심 놀랐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여자는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거나 무슨 행동을 하실 터인데
그것이 어떤 것일까 자못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 떨어진 예수님의 말씀은 가히 파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定罪)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여자가 간음하던 현장에서 붙잡혀 이곳에 끌려 올 때 그는
'이제 나는 죽은 목숨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을 따르던 아니면 로마법을 따르던 간에!
간음하던 사람이 현장에서 잡히면 그 벌은 둘 다 사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이 이제 살게 된 것입니다.

여자는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죽어야할 내가!! 모욕과 멸시, 수치와 조롱을 당해야 할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 여자가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자기가 그렇게 다시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 때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본문이 말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까닭이 나타나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죄인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용서였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그저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신 것이 있는데 율법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11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罪)를 범치 말라!!"

이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건 아들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데...
조건달고 아들을 건져줄 아버지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그런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라 의붓아버지일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친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
일단 건져놓고!
그 후에 주의(注意)도 주고 10계명을 주든 100계명을 주든 하는 법이기에!!...
오늘 본문도 보면 일단 이 여자를 건져놓고 10계명 같은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罪)를 범치 말라!!"

이것을 보면 역시 하나님은 멋쟁이..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의붓아버지가 아니라 참아버지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이 말씀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이 여자의 죄는 사형죄에 해당했지만 용서 받았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용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간음죄 살인죄 아니 그 어떤 죄도 용서 못할 죄는 없습니다.

한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지존파(至尊派)를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한 죄를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마는 
그렇게 극악무도한 사람들도 하나님은 사랑해 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법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 값으로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받아들였을 때에 그들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그 죄가 미워 한없이 울었고...
자신들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때문에 하염없이 울었으며...
이와같은 사형죄를 지은 자신을 아직도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그들은 목놓아 울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이사야 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죄던... 아니면 지존파의 죄던 간에!!
인간의 모든 죄!!.. 그 죄가 작던 크던.. 어떻든지 간에!!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려고 그렇게 애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보내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하신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도 바로 이점이었으며...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장 주된 관심은 인간의 죄에 있고 인간의 죄를 없이 하려는데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코드가 맞아야 하는데... 맞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무수히 나오고... 기도도 열심히 하나..
하나님처럼... 죄에 관심을 가지고...  죄를 없이하고 새사람 되는데 관심 가지기 보다는
건강이나 출세 성공 이런데에만 주로 관심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죄 하나에만 항상 관심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떤 경우에서든지 죄 문제를 가장 시급(時急)한 문제로 다루신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난 다음에야!! 다른 잇슈들을 다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죄라는 것은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죄는 정확히 무엇이며...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것 또한 중요한 질문이며,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부분이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잘 아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어렴풋이 아시는 분도 있을 터인데
다같이 오늘 다시 한번더 공부해 보도록 하십시다.

죄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데서 부터 출발한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선악과를 따 먹은 그 불순종이라는 것이 죄이며
그 죄가 그토록 하나님에게도 중요하고 인간에게도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켰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사랑하는 부부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그 무엇이든 심각한 것이고 문제이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이 심각한 것이며 문제라는 것인데
그것이 불순종이라는 것이며 죄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때 인간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 주인이셨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네 삶이 주인이 하나님이냐?
네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네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 말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면... 더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동안 잘 지내왔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데..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거지...
나보고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간섭이다.
나는 이제부터 내 맘대로 살겠다. 따먹고 싶은 것은 따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인생 내맘대로 한번 멋들어지게 살아보겠다...

그러나 그때부터 사실 불행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난 즉시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행복과 기쁨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 불안 공포 염려... 이런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불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과 단절한 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 불쌍한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아마 하나님은 위대한 교육자(敎育者)를 구원자로 보내셨을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었다면
하나님은 최고의 과학자(科學者)를 구원자로 보내셨을 것이다.
만약 돈이었다면 최대의 재벌(財閥)을, 즐거움이었다면 정상의 연예인(演藝人)을,
질병치유였다면 세계 제일의 명의(名醫)를 구원자로 이 땅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정확히 아셨다.
하나님과 단절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 땅의 불쌍한 인간들이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제가 지난 주간에 읽은 어떤 분의 수기(手記)를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분은 결혼한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고 아내의 남편(男便)으로서 
가족과 아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야할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개인행동을 하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는
곤히 잠든 아내를 깨워 꼭 저녁밥을 얻어먹어야 자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 변화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어느 날 밤 늦게 집에 돌아옵니다.
그날도 밤 늦게까지 술을 퍼 마시고는 저녁밥을 얻어먹기 위해 벨을 누르려 하는데...
그날 따라 벨을 누르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가만히 대문을 보니 문에 열쇠가 달려 있었습니다.
옳거니 하고 이 남편은 문을 살며시 열고 집에 들어갑니다.

들어가 보니 한밤중이라 아이들은 아이들 방에서 다 자고 있고
아내도 침실에서 역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자고 있는 아내를 보니 아내의 자세가 좀 이상했습니다.
바로 누워 자는 것이 아니라 엎드린채 자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성경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음, 아내가 나를 기다리며 성경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나보군....'
이러면서 이까지는 그런대로 잘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좀더 자세히 보니... 성경책 밑에 하얀 노트 한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그 노트를 보고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 노트를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 노트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수유리 너머로 갔다.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했다.
약을 먹고 죽을까... 아니면 손목을 그어 죽을까...
그러나 그것은 내가 취할 길이 아님을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되돌아왔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위해 내게 주신 남편이므로
나는 남편을 사랑해야만 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사랑하라 명하시므로 나는 남편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주님! 도와 주세요. 나의 약함을 주님께서 잘 아시쟎아요."

이러한 아내의 글을 읽은 손은 떨렸고.. 심장은 멎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고 귀에서는 큰 북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소리를 죽여가며 하염없이 실컷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남편이었는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아 나는 아내가 나 하나만 믿고 살다가 나로 인해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내가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나를 웃음으로 대해줄 때
나는 단 한번이라도 진실함으로 아내를 대한 적이 있었던가?
아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그날 그 순간에도
나는 환락의 현장에서 나의 쾌락만을 좇아 살아왔던 한심한 남편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이상적인 배우자, 멋진 남편, 괜챦은 남자, 능력있는 청년,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라고 착각하며 스스로 자기 도취에 빠져 그동안 살아왔으니..."

조금 전에는 이런 자신이 밉고 부끄러워 한동안 울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못난 남편을 위해 그동안 살아준 아내가 불쌍해서 울기 시작합니다.
남편 같지 않는 못난 남편 탓에... 아내는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며 울었을까?
내려 누르는 절망 속에 얼마나 몸서리를 쳤을까?...
이러면서 한동안 울다가.. 마음을 추스리고 이제는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 사람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고.. 기도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기도는 다 이기적인 기도!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는 기도였었는데..
순간!! 기도다운 기도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를 단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단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고 거룩한 경험인지.. 그때 그는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눈이 떠지고 귀도 열립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제 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죄나 지존파의 죄나
매일 밤늦게까지 술먹고 들어오는 이 남자의 죄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쁜 죄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죄이며... 아주 심각하고 더러운 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누가 사랑하며
그들의 죄를 누가 용서해 주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용서함을 받은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주인 자리를 하나님이 다시 돌려 받아...
단절되었던 관계도 회복하고...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형상도 회복하여
다시 진정으로 행복한 존재,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바라봐야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 크신 은혜 속에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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